본문내용
생활과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 활발하고 착한 아들 마이키를 보여주며 앞으로 있을 비극적인 상황과 대조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존 큐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한다. 야구를 하던 도중 아들 마이키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마이키의 증상은 DMO로서 심장이 정상인의 3배만큼 커져 혈액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장 이식을 받아야지 살 수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존 큐의 집안 형편 때문에 수술을 받지 않을 것을 권한다.
“의료 서비스를 하려면 돈이 듭니다” 이런 말을 하는 병원의 입장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물론 병원도 일종의 사기업이고 이윤을 내야 개인 나아가 경제가 돌아가고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당사자에게 맡겨야지 병원 측에서 수술을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생명 윤리적으로 생명을 돈에 견주는 것 자체도 잘못되었을 뿐더러 미리 환자에 대한 집안 배경이나 경제 사정 등의 정보를 알아보는 것 자체도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병원은 최대한 중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생가을 했고 생명의 존엄성보다 물질적 가치가 더 중요시 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장면을 볼 때 문득 이전에 보았던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가 생각이 났다. 그 드라마는 비인기 분야인 흉부 외과 의사들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첫 회에서 “왜 수석이 흉부 외과를 지원했냐?”는 대사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정도로 비인기 분야인 만큼 의사들의 수가 적고 위의 상황처럼 수술비는 당연히 비싸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의대생들이나 의학 전문 대학을 가려는 나 같은 이들은 돈과 같은 부수적인 것보단 정말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흉부 외과에 지원을 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이식 수술 병원(공급)이 소수이고 환자수(수요)는 많다는 것을 이 표에서 알 수 있다.)
이 장면을 보고 미국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미국의 건강 보험 제도는 민감 보험 방식으로서 미국이 유일했다. 물론 연구와 임상이 풍부하다라는 장점이 있지만 이윤을 공제한 고부담, 저급여로 보장 수준이 낮고 보험 상품별 차등화 된 의료보장과 무보험자 발생이 생길 수 있다. 존의 경우 보험 상품별 차등화 된 의료 서비스를 받아 25만불 중 단지 2만불만 보험 회사에서 내준다고 했다. 미국이 가장 선진화 된 국가고 물론 그 의료서비스 또한 아주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라고 하나 그건 결국 지불할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생명의 존엄성은 사치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존은 많은 단체에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며 돈을 마련해보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격 미달이니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그 자격이란게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조차 필요한지 의문이 갔다.
이 장면은 존이 병원 인질극 때 위급 환자가 생긴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존은 심장 전문의에게 총상을 치료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며 도대체 아들 마이키를 위해서 몇 명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 엄마 또한 위급한 상황일 수 있는데 치료도 못한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결국은 두 경우 모두 잘 해결되었지만 만약의 상황이란게 있을 수 있는데 물론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장면을 캡처한 이유는 병원 이름 때문이다. 우리는 감자의 복녀와 같이 많은 문학 작품에서 작품의 상황과 주인공의 이름을 반대로 해서 극적 효과를 높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 병원의 이름도 ‘hope memorial hospital\' 희망 기념 병원인 셈이다. 하지만 이 병원은 존 가족에게 절망의 장소이다. 생명의 존엄성보다 돈을 중시하는 병원이 정말 이런 이름을 내걸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위 사진의 의사는 미국 의료 보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한다. HMO 보험은 만일 환자가 돈이 없다면 의사가 고의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고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보험 회사가 의사에게 보너스를 준다고 한다. 병원이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은 법으로조차 금지되어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병원 나아가 의사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환자, 법률 따윈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돈이 없다면 의료 서비스를 행해야 하는 의사들이 엉덩이를 걷어차며 환자를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존 큐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한다. 야구를 하던 도중 아들 마이키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마이키의 증상은 DMO로서 심장이 정상인의 3배만큼 커져 혈액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장 이식을 받아야지 살 수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존 큐의 집안 형편 때문에 수술을 받지 않을 것을 권한다.
“의료 서비스를 하려면 돈이 듭니다” 이런 말을 하는 병원의 입장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물론 병원도 일종의 사기업이고 이윤을 내야 개인 나아가 경제가 돌아가고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당사자에게 맡겨야지 병원 측에서 수술을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생명 윤리적으로 생명을 돈에 견주는 것 자체도 잘못되었을 뿐더러 미리 환자에 대한 집안 배경이나 경제 사정 등의 정보를 알아보는 것 자체도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병원은 최대한 중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생가을 했고 생명의 존엄성보다 물질적 가치가 더 중요시 되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장면을 볼 때 문득 이전에 보았던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가 생각이 났다. 그 드라마는 비인기 분야인 흉부 외과 의사들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였는데 첫 회에서 “왜 수석이 흉부 외과를 지원했냐?”는 대사를 본 기억이 있다. 그 정도로 비인기 분야인 만큼 의사들의 수가 적고 위의 상황처럼 수술비는 당연히 비싸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의대생들이나 의학 전문 대학을 가려는 나 같은 이들은 돈과 같은 부수적인 것보단 정말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흉부 외과에 지원을 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이식 수술 병원(공급)이 소수이고 환자수(수요)는 많다는 것을 이 표에서 알 수 있다.)
이 장면을 보고 미국의 의료 서비스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미국의 건강 보험 제도는 민감 보험 방식으로서 미국이 유일했다. 물론 연구와 임상이 풍부하다라는 장점이 있지만 이윤을 공제한 고부담, 저급여로 보장 수준이 낮고 보험 상품별 차등화 된 의료보장과 무보험자 발생이 생길 수 있다. 존의 경우 보험 상품별 차등화 된 의료 서비스를 받아 25만불 중 단지 2만불만 보험 회사에서 내준다고 했다. 미국이 가장 선진화 된 국가고 물론 그 의료서비스 또한 아주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라고 하나 그건 결국 지불할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생명의 존엄성은 사치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존은 많은 단체에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며 돈을 마련해보지만 어느 곳에서도 자격 미달이니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그 자격이란게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조차 필요한지 의문이 갔다.
이 장면은 존이 병원 인질극 때 위급 환자가 생긴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존은 심장 전문의에게 총상을 치료하라고 말한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며 도대체 아들 마이키를 위해서 몇 명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 엄마 또한 위급한 상황일 수 있는데 치료도 못한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결국은 두 경우 모두 잘 해결되었지만 만약의 상황이란게 있을 수 있는데 물론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장면을 캡처한 이유는 병원 이름 때문이다. 우리는 감자의 복녀와 같이 많은 문학 작품에서 작품의 상황과 주인공의 이름을 반대로 해서 극적 효과를 높이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 병원의 이름도 ‘hope memorial hospital\' 희망 기념 병원인 셈이다. 하지만 이 병원은 존 가족에게 절망의 장소이다. 생명의 존엄성보다 돈을 중시하는 병원이 정말 이런 이름을 내걸 자격이 있는지 궁금하다.
위 사진의 의사는 미국 의료 보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한다. HMO 보험은 만일 환자가 돈이 없다면 의사가 고의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고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 보험 회사가 의사에게 보너스를 준다고 한다. 병원이 환자를 돌려보내는 것은 법으로조차 금지되어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병원 나아가 의사들은 개인적 이익을 위해 죽어가는 환자, 법률 따윈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이다. 돈이 없다면 의료 서비스를 행해야 하는 의사들이 엉덩이를 걷어차며 환자를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