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문]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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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감상문]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그들의 소통의 단절을 볼 수가 있다. 어쩌면 그 두 사람이 각각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이라는 계층적 차이로 인해 이미 그러한 소통의 단절은 예정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결국 류를 잡은 동진은 그를 죽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동진은 그를 집에서 바로 죽이지 않고 딸이 죽은 강가에 끌고 가 죽이게 된다. 이러한 동진의 행동은 어쩌면 딸이 죽은 장소에 범인을 끌고 가 똑같이 죽임으로써 \'너도 한번 내 딸처럼 고통스럽게 죽어봐\'라는 심리가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류를 죽이는데 있어서 갈등이 일어났다는 의미도 된다고 본다. 사실 류를 죽이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면 하루라는, 짧다고 하면 짧지만 길다고 하면 긴 시간동안 그를 살려둘 필요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동진의 갈등은 물살로 인해 일렁이는 동진의 얼굴을 통해 그의 흔들리는 내면 상태를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 류를 죽이기 전에 동진이 그를 향해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는 말은 그들의 의지가 아닌 사회적 압력 혹은 사회적 요인으로 복수를 하게 된다는 그들의 비참한 심정이 잘 나타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동진의 표정도 굉장히 슬픈 표정이다. 그도 사회의 냉혹한 현실로 인해 잔인하게 바뀌어야만 했던 피해자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후 류를 살해한 후 동진은 근로자의 아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는 \'잘못 거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게 된다. 결국 자신의 양심상으로는 류를 죽일 수 없었지만 결국 그를 죽이게 되고, 그와 동시에 일말의 남아있던 자신의 양심의 상징이었던 근로자의 아이마저 죽음으로써 동진의 남아있던 양심은 그마저도 냉혹한 사회에게 처참히 찢겨진 상태가 돼 버렸다는 것을 말해 준 것이라 본다.
결국 마지막에 동진은 이름 모르는 사람들에게 판결문과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심장에 꽂힌 판결문의 내용을 보려고 애를 쓰며, 자신이 왜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끝없이 \"왜...왜..\"를 외치며 죽어간다. 동진이 죽으면서 수없이 남발하는 이 말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진의 모습이 결국 류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어 인생의 아이러니와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동진을 살해한 그 이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혁명적 무정부주의자라는 일종의 무산계급 단체의 한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산계급의 입장에서는 유산계급인 동진 또한 복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느꼈던 나의 우려처럼 현재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었다. 류는 11만9천271명이라는 청각, 언어장애인들 속에 한 사람에 불과했으며, 누나를 끔찍하게도 사랑했던 착한 동생이자 성실한 근로자였다. 또한 동진은 중소기업사장으로서 냉혹한 성향을 일부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또한 영미는 정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운동권 작가로서 정의롭다면 정의로운 여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평범한 그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서로에게 복수를 칼날을 휘둘렀고, 또 잔인하게 복수를 당했다. 물론 류는 동진의 딸을 유괴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장본인이다. 그가 유괴를 하지 않았다면 동진의 딸이 그렇게 죽을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도 역시 피해자다. 장기밀매단에게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누나를 살리기 위해서는 유괴라는 방법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수를 하면서도 복수를 당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였던 인물이었고, 그렇기에 동진의 류에 대한 복수를 절대적으로 인정할 수가 없게 만든다. 또한 류의 동진을 향한 복수도 비록 영미를 죽인 것은 동진이 맞지만 그의 딸을 죽인 것은 또 그와 영미이기 때문에 역시 류의 동진을 향한 복수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복수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이미 앞에서 수 없이 반복하며 말했듯이 복수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며 결국 사회라는 냉혹한 현실이 복수를 낳게 하였으니 복수의 칼날은 사회를 향해 날아가야 할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랫말인 \'복수는 나의 것 어쩔 수 없는 현실\' \'복수는 나의 것 너에게 준 운명 어쩔 수 없잖아\'처럼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복수를 해야만 하는 현실, 해야만 하는 운명, 참으로 참혹하고도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회의 \'범죄\'라고 불리거나 \'악\'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결국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김에 또 다른 박찬욱 감독의 복수시리즈 영화인 \'올드보이\'와 함께 비교 얘기해 보겠다.
일단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모두 고문이 쓰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고문을 복수의 한 방법으로 선호하는 듯 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영미를 전기고문 하고 올드보이에서는 철웅의 이빨을 하나씩 뽑는 고문을 통해 복수를 실현한다. 두 인물 모두 직접적인 복수의 대상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서 직접적인 복수대상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인물은 고문을 하는 정도로 보인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의 영미는 죽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그녀를 죽이려고 동진이 찾아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 때문에 차이점이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두 영화 모두 “개미”라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 에서는 영미가 류에게 “개미 같은 녀석”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예지력이 있다는 뜻으로 말했지만 올드 보이에서는 외로운 존재를 나타내는 의미이다. 여기 복수는 나의 것의 류도 굉장히 외로운 존재이기에 외로운 존재라는 숨겨진 의미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두 영화 모두 있는 자와 없는 자 간의 갈등이 존재 한다는 것이다. 즉 복수는 나의 것의 동진과 올드보이의 우진은 모두 자신의 살인을 돈으로 메울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류는 경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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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9
  • 저작시기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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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34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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