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째 날로 변경된 것도 사도들의 모범에 의해 규범화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구약의 유대인들이 지켜오던 안식일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축제 행사를 예수께서 부활한 매주 첫날 하면서 그날이 예배드리는 날로 결정되었다.
2. 안식교회의 견해
천주교회를 비록한 모든 기독교회는 주일을 기독교의 공적인 예배일로 지킨다. 그러나 안식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창조사역 후 안식하신 일곱째 날의 안식일이 성경의 유일한 교훈으로 믿고 지키고 있다. 안식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안식일은 창세기에 기록된 그 안식일 이외에 어떠한 다른 날도 주신 일이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안식일과 관련된 성경에 대해 개혁주의와 안식교 신학자의 해석에는 견해 차이가 있다.
결 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과 축복을 위해 만드신 제도이다. 천지 창조 때 안식일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은 창조 규범으로 전 인류와 모든 시대에 구속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의 원리와 함께 그것을 지키고 순종하는 방법을 성경에서 가르치는 다른 교훈들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매개로 하여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하셨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징표였다. 그리고 안식일은 창조 때 시작되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 완성되는 종말론적 의미가 크게 담겨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참된 안식을 베푸신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모든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안식을 만드시고 완성하시며 성도들에게 그것을 제공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참된 안식을 소유할 수 없다. 다만 성도가 이 땅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완전하고도 최종적 안식을 소유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안식일과 주일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안식일에 관한 많은 궁금증들을 가지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아왔기에 주일에 대한 여러 가지 고정관념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주일에는 무조건 교회에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유를 댈 필요도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의 삶에서 평안히 이뤄져갈 때는 그것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이 없었다. 주일에 교회를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군입대전에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하나님 제가 어느 곳에서 어떤 군 생활을 해도 좋으니 주일성수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대 배정을 받은 곳은 21사단의 G.O.P.부대였다. 평일과 주일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의 주일은 나에겐 엄청난 혼란과 고민을 가져다주었다. 갑자기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고 예배드리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난 죽을 것 같았다. 20년간 몸에 배어있던 생활이 한순간에 바뀌면서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함은 내게 큰 두려움이 될 정도였다. 같은 소초 내에 군종병이 있었지만 이름만 군종병이었지 다른 병사와는 다를 바가 없는 병사였기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주일성수에 대해 그토록 간구했던 나의 기도는 그렇게 하나님께 외면받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신앙을 가지 내가 그런 상황 속에서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못함이 내겐 너무나도 큰 공허와 답답함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난 102보충대에서 지급받은 작은 성경책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등병이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변뿐이었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무언가 소리를 낸 다는 것은 고참으로부터 군기교육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에 난 아무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난 혼자서 속으로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해서 속으로 찬양을 부르고 속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속으로 기도하고 주기도문을 끝으로 예배를 드려갔다. 그렇게 나의 주일에 대한 고민은 군대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왜 주일을 성수해야 하는지? 주일에 꼭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무엇이 주일성수인지? 나의 군생활에서 주일과 관련하여 직접 부딪히게 되는 고민들로부터 해서 그 외에 주일과 연관하여 더 확장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주일에 대한 많은 지혜를 군대에서 얻어낼 수 있었고, 나는 전역하면서 군대가기전 그토록 하나님께 간구했던 주일성수에 관한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었다고 자랑할 많은 간증거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안식일과 주일을 읽으면서 나는 보통 2학년 때 듣는 칼빈주의 수업을 듣지 않고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온 것에 대해서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고민한 많은 고민들의 대부분의 해답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보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전에 보지 않고 군대에서 그러한 고민을 했던 것에 대해 더 감사했다. 군대에서 주일에 관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책을 통에서 접할 수 있었고, 내가 주일과 관련해서 고민했던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확인받을 수 있었던 것과 불확실하게 혼자 정의해놓았던 것들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많은 지식들을 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책을 읽는 동안 600페이지의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주일학교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주일에 왜 교회에 나오는지, 주일의 개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전엔 나도 그 질문에 확실한 답을 갖지 못했기에 그런 질문조차도 하지 못했는데, 이젠 그전보다 자신 있게 아이들에게 왜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대답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대답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안식이란 값없이 주신 은혜라는 것이다. 그 은혜를 피조물로서 기억하고 감사하며 지금 얻는 안식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기대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런 지혜와 기회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귀한 책을 통하여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게 하신 박희석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 안식교회의 견해
천주교회를 비록한 모든 기독교회는 주일을 기독교의 공적인 예배일로 지킨다. 그러나 안식교회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창조사역 후 안식하신 일곱째 날의 안식일이 성경의 유일한 교훈으로 믿고 지키고 있다. 안식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안식일은 창세기에 기록된 그 안식일 이외에 어떠한 다른 날도 주신 일이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안식일과 관련된 성경에 대해 개혁주의와 안식교 신학자의 해석에는 견해 차이가 있다.
결 론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과 축복을 위해 만드신 제도이다. 천지 창조 때 안식일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은 창조 규범으로 전 인류와 모든 시대에 구속력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의 원리와 함께 그것을 지키고 순종하는 방법을 성경에서 가르치는 다른 교훈들처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매개로 하여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하셨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징표였다. 그리고 안식일은 창조 때 시작되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 완성되는 종말론적 의미가 크게 담겨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참된 안식을 베푸신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모든 성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안식을 만드시고 완성하시며 성도들에게 그것을 제공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참된 안식을 소유할 수 없다. 다만 성도가 이 땅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완전하고도 최종적 안식을 소유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안식일과 주일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안식일에 관한 많은 궁금증들을 가지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아왔기에 주일에 대한 여러 가지 고정관념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주일에는 무조건 교회에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유를 댈 필요도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의 삶에서 평안히 이뤄져갈 때는 그것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이 없었다. 주일에 교회를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내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군입대전에 나의 가장 큰 기도제목은 ‘하나님 제가 어느 곳에서 어떤 군 생활을 해도 좋으니 주일성수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십시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대 배정을 받은 곳은 21사단의 G.O.P.부대였다. 평일과 주일의 개념이 없는 곳에서의 주일은 나에겐 엄청난 혼란과 고민을 가져다주었다. 갑자기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고 예배드리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난 죽을 것 같았다. 20년간 몸에 배어있던 생활이 한순간에 바뀌면서 주일에 예배드리지 못함은 내게 큰 두려움이 될 정도였다. 같은 소초 내에 군종병이 있었지만 이름만 군종병이었지 다른 병사와는 다를 바가 없는 병사였기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주일성수에 대해 그토록 간구했던 나의 기도는 그렇게 하나님께 외면받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신앙을 가지 내가 그런 상황 속에서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못함이 내겐 너무나도 큰 공허와 답답함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난 102보충대에서 지급받은 작은 성경책을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이등병이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용변뿐이었다. 그러기에 그 속에서 무언가 소리를 낸 다는 것은 고참으로부터 군기교육의 대상이 되는 것이기에 난 아무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난 혼자서 속으로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해서 속으로 찬양을 부르고 속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속으로 기도하고 주기도문을 끝으로 예배를 드려갔다. 그렇게 나의 주일에 대한 고민은 군대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왜 주일을 성수해야 하는지? 주일에 꼭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무엇이 주일성수인지? 나의 군생활에서 주일과 관련하여 직접 부딪히게 되는 고민들로부터 해서 그 외에 주일과 연관하여 더 확장된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주일에 대한 많은 지혜를 군대에서 얻어낼 수 있었고, 나는 전역하면서 군대가기전 그토록 하나님께 간구했던 주일성수에 관한 기도의 제목이 응답되었다고 자랑할 많은 간증거리들을 얻을 수 있었다.
안식일과 주일을 읽으면서 나는 보통 2학년 때 듣는 칼빈주의 수업을 듣지 않고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온 것에 대해서 더욱 감사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고민한 많은 고민들의 대부분의 해답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 보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그전에 보지 않고 군대에서 그러한 고민을 했던 것에 대해 더 감사했다. 군대에서 주일에 관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책을 통에서 접할 수 있었고, 내가 주일과 관련해서 고민했던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확인받을 수 있었던 것과 불확실하게 혼자 정의해놓았던 것들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논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많은 지식들을 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책을 읽는 동안 600페이지의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주일학교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주일에 왜 교회에 나오는지, 주일의 개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확실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전엔 나도 그 질문에 확실한 답을 갖지 못했기에 그런 질문조차도 하지 못했는데, 이젠 그전보다 자신 있게 아이들에게 왜 주일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고 대답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대답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안식이란 값없이 주신 은혜라는 것이다. 그 은혜를 피조물로서 기억하고 감사하며 지금 얻는 안식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기대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런 지혜와 기회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귀한 책을 통하여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게 하신 박희석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