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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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집의 자식으로 되어 들어갔지만, 유다가 들어가고 난 후 실제로 아이를 잉태하여, 상황이 난처해졌다.
그때문에 유다는 한순간에 양어머니로 부터 갖은 구박과 핍박을 받았다. 그리하여 유다는 이복형제를 시기, 질투하게 되는데 결국 유다는 그 이복형제를 죽여버리고 만다.
이후 유다는 살인의 죄로 사형을 당할까 두려워 하였다. 그래서 조공물을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도주했고, 그곳의 총독인 빌라도의 궁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인지 빌라도는 유다가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는 유다가 빌라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유다를 높이 사기 시작했고, 유다는 빌라도의 궁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후 모든 일의 지시는 빌라도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 졌고, 유다는 빌라도의 지시를 매우 잘 따랐다. 어느날 빌라도는 궁의 높은 곳에서 과수원을 내려다 보다가 과일이 매우 먹고싶어 졌고, 유다에게 과일을 따오라 시킨다.
그러나 그 과수원의 소유주는 유다의 친아버지인 루벤의 것이었다. 유다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루벤인지 알 지 못하였고, 루벤 역시 유다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알 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루벤은 자신의 친아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하였고, 유다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빌라도의 지시를 받은 유다는 과수원으로 가서 사과를 따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과수원에서 허락도 없이 과실을 따가는 유다의 모습을 본 루벤은 당연히 붙잡아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실랑이 끝에 유가는 자신의 친아버지인 루벤을 때려 죽였다.
이에 빌라도는 살인을 저지른 유다에게 루벤의 모든 재산을 주었고, 또한 루벤의 부인인 자신의 친어머니 마저 유다의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를 밀고한 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에피소드 중에 유다가 이복형제를 죽였다는것에 초첨을 맞출 수 있다.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예수의 시선으로 넘어가면 예수 또한 시선이 유다에게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가 자신을 밀고한 자가 유다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파란옷의 고문관과 예수의 시선이 유다에게 이르고 있으나 유다는 이를 회피하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고발하는 시선을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림의 오른쪽으로 넘어와서 매우 아름다운 얼굴의 붉은색 옷을 입고 맨발의 한 채 먼곳을 응시하는 가운데 남자가 눈에 띈다. 책에서는 이 청년을 ‘오단또니오’라고 말해주고 있다.
오단또니오는 젊은나이에 우르비노 공작에 올랐는데 얼마되지 않아 이복형제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오단또니오의 이야기를 유다의 이복형제 살인이라는 에피소드를 이용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알고 보았을때, 젊은나이에 죽임을 당한 오단또니오의 얼굴에서 사뭇 비참함이 엿보인다. 그리고 오단또니오는 신발을 벗겨 놓고, 양 옆의 유다와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신발을 신겨 놓음으로써 현실세계와 죽음의 관계를 나타내 보이려 함을 알 수 있었다.
오단또니오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머물러 있다. 시선의 초점또한 맞춰지지 않은듯 보인다. 이것은 오른쪽의 세사람이 한공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목적이 있어 모인 것이 아닌 그림의 이야기를 서술함에 있어 필요에 의한 배치로 볼 수 있다.
마지막 시선은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 배치된 황금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의 시선이다. 이 사내의 시선은 유다를 노골적으로 노려보고 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노려보고 있고, 앙다문 입은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책에서는 이사람을 유다의 아버지라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다에게 살인을 당한 사과농장의 주인인 유다의 친아버지라 말하고 있다. 유다는 요기서도 시선을 피하고 있다. 자신이 죽인자의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선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채찍질’의 그림에서 부자연스러운 시선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전해주고, 시선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에서 의아한 점이 있다.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는 당시 정확한 수치에 근거한 회화로 유명하였다. 특히 투시에 있어서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부분또한 있었다.
‘채찍질’의 그림을 보더라도 예수가 밟고 있는 바닥의 대리석 모양, 그리고 천장의 투시도, 건축물들의 투시도가 들어간 정도가 매우 정확하고, 뛰어나다.
이러한 투시도법이 가장 잘 나타는 부분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면 기둥은 대략 4개가 나온다. 이 4개의 기둥을 살펴보면 의아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오니아식 기둥모양과 코린트식 기둥모양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르네쌍스 시대에는 이러한 양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책에서는 언급한다.
먼저 기둥에 대해 설명을 하고자 한다. 고대의 기둥의 모습은 대략적으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는 도리스식 기둥이다. 도리스식 기둥은 먼저 기둥이 굵고 기단부가 없다. 그리고 주두는 얕은 사발모양으로 아무 장식 없이 평평하다. 그리고 간소하면서도 힘찬 느낌을 주는 기둥들로 그리스적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것은 이오니아식 기둥이다. 이오니아식 기둥은 주두에는 두꺼운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이 2개 있으며, 여성적인 경쾌함과 우아함이 특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코린트식 기둥이 있다. 코린트식 기둥은 주두가 가시가 많고 깊게 갈라진 아칸서스잎 모양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코린트 양식은 화려함을 즐기던 로마인들에게 전해졌다.
쉽게 설명 하자면, 도리스식은 접시를 엎어놓은 듯 한 모양을 가졌고, 이오니아식은 두 개의 달팽이관을 단 것처럼 보이며, 마지막으로 코린트식은 꽃잎이 붙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적으로도 도리스식이 가장 낮은 기술이며, 다음으로 이오니아식 기둥, 마지막으로 가장어려운 코린트식 기둥이 나왓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 황금색의 하얀 알을 들고 있는 태양신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둥들이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혼합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때문에 유다는 한순간에 양어머니로 부터 갖은 구박과 핍박을 받았다. 그리하여 유다는 이복형제를 시기, 질투하게 되는데 결국 유다는 그 이복형제를 죽여버리고 만다.
이후 유다는 살인의 죄로 사형을 당할까 두려워 하였다. 그래서 조공물을 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도주했고, 그곳의 총독인 빌라도의 궁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인지 빌라도는 유다가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는 유다가 빌라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빌라도는 유다를 높이 사기 시작했고, 유다는 빌라도의 궁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후 모든 일의 지시는 빌라도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 졌고, 유다는 빌라도의 지시를 매우 잘 따랐다. 어느날 빌라도는 궁의 높은 곳에서 과수원을 내려다 보다가 과일이 매우 먹고싶어 졌고, 유다에게 과일을 따오라 시킨다.
그러나 그 과수원의 소유주는 유다의 친아버지인 루벤의 것이었다. 유다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루벤인지 알 지 못하였고, 루벤 역시 유다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알 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루벤은 자신의 친아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고 생각하였고, 유다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알 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빌라도의 지시를 받은 유다는 과수원으로 가서 사과를 따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과수원에서 허락도 없이 과실을 따가는 유다의 모습을 본 루벤은 당연히 붙잡아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실랑이 끝에 유가는 자신의 친아버지인 루벤을 때려 죽였다.
이에 빌라도는 살인을 저지른 유다에게 루벤의 모든 재산을 주었고, 또한 루벤의 부인인 자신의 친어머니 마저 유다의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를 밀고한 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에피소드 중에 유다가 이복형제를 죽였다는것에 초첨을 맞출 수 있다.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예수의 시선으로 넘어가면 예수 또한 시선이 유다에게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가 자신을 밀고한 자가 유다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파란옷의 고문관과 예수의 시선이 유다에게 이르고 있으나 유다는 이를 회피하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고발하는 시선을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림의 오른쪽으로 넘어와서 매우 아름다운 얼굴의 붉은색 옷을 입고 맨발의 한 채 먼곳을 응시하는 가운데 남자가 눈에 띈다. 책에서는 이 청년을 ‘오단또니오’라고 말해주고 있다.
오단또니오는 젊은나이에 우르비노 공작에 올랐는데 얼마되지 않아 이복형제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오단또니오의 이야기를 유다의 이복형제 살인이라는 에피소드를 이용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알고 보았을때, 젊은나이에 죽임을 당한 오단또니오의 얼굴에서 사뭇 비참함이 엿보인다. 그리고 오단또니오는 신발을 벗겨 놓고, 양 옆의 유다와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신발을 신겨 놓음으로써 현실세계와 죽음의 관계를 나타내 보이려 함을 알 수 있었다.
오단또니오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머물러 있다. 시선의 초점또한 맞춰지지 않은듯 보인다. 이것은 오른쪽의 세사람이 한공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목적이 있어 모인 것이 아닌 그림의 이야기를 서술함에 있어 필요에 의한 배치로 볼 수 있다.
마지막 시선은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 배치된 황금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의 시선이다. 이 사내의 시선은 유다를 노골적으로 노려보고 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노려보고 있고, 앙다문 입은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책에서는 이사람을 유다의 아버지라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다에게 살인을 당한 사과농장의 주인인 유다의 친아버지라 말하고 있다. 유다는 요기서도 시선을 피하고 있다. 자신이 죽인자의 시선을 회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선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채찍질’의 그림에서 부자연스러운 시선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전해주고, 시선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에서 의아한 점이 있다. 삐에로 델라 프란체스까는 당시 정확한 수치에 근거한 회화로 유명하였다. 특히 투시에 있어서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부분또한 있었다.
‘채찍질’의 그림을 보더라도 예수가 밟고 있는 바닥의 대리석 모양, 그리고 천장의 투시도, 건축물들의 투시도가 들어간 정도가 매우 정확하고, 뛰어나다.
이러한 투시도법이 가장 잘 나타는 부분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면 기둥은 대략 4개가 나온다. 이 4개의 기둥을 살펴보면 의아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이오니아식 기둥모양과 코린트식 기둥모양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르네쌍스 시대에는 이러한 양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책에서는 언급한다.
먼저 기둥에 대해 설명을 하고자 한다. 고대의 기둥의 모습은 대략적으로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는 도리스식 기둥이다. 도리스식 기둥은 먼저 기둥이 굵고 기단부가 없다. 그리고 주두는 얕은 사발모양으로 아무 장식 없이 평평하다. 그리고 간소하면서도 힘찬 느낌을 주는 기둥들로 그리스적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온 것은 이오니아식 기둥이다. 이오니아식 기둥은 주두에는 두꺼운 소용돌이 모양의 장식이 2개 있으며, 여성적인 경쾌함과 우아함이 특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코린트식 기둥이 있다. 코린트식 기둥은 주두가 가시가 많고 깊게 갈라진 아칸서스잎 모양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코린트 양식은 화려함을 즐기던 로마인들에게 전해졌다.
쉽게 설명 하자면, 도리스식은 접시를 엎어놓은 듯 한 모양을 가졌고, 이오니아식은 두 개의 달팽이관을 단 것처럼 보이며, 마지막으로 코린트식은 꽃잎이 붙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적으로도 도리스식이 가장 낮은 기술이며, 다음으로 이오니아식 기둥, 마지막으로 가장어려운 코린트식 기둥이 나왓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분명 황금색의 하얀 알을 들고 있는 태양신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둥들이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을 혼합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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