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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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가리를 달아 적을 공포에 떨게 하고 용의 아가리에서 현자 대포알을 쏘아 적의 대장이 탄 배를 먼저 깨어 부순다.
이제 이순신 장군과 크게 관련 있는 임진왜란에 대해서 기술하면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임진왜란의 주요해전을 살펴보면 우선 ‘옥포해전’을 들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참전한 최초의 해전으로 원균과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한 이순신은 자신의 기함을 중심으로 횡렬로 늘어서서 왜군의 중심부를 공격하여 결국 26척의 왜선을 격침하고 세 명의 포로를 되찾는 등 첫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사기가 충전한 공의 함대는 계속하여 합포에서 왜선 5척을 무찌르고 다음 날에는 적진포에서 적의 적선 11척을 부수었다. 이때의 공적으로 가선대부(종2품)로 승차되셨다.
옥포해전 외에 사천포해전과 한산도대첩, 명랑해전, 노량해전 등의 주요해전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한산도 대첩과 노량해전을 보면, 연이는 패배에 분노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수군 격파 명령을 받은 왜군은 7월 상순에 들어서면서 견내량에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공은 56척의 연합 함대를 이끌고 다시 출전하여 7월 8일 적과 마주하였다. 공은 좁은 지역이라 한산도 앞 바다까지 유인하여 뱃머리를 180도 돌려 그 유명한 학익진을 펴 공략하여 적선 66척을 불태워 버렸다. 이것이 바로 한산도 대첩이다. 이 한산도 해전은 전쟁국면이 조선에 유리하게 한 대첩이었다.
끝으로 1598년(무술년)8월 17일 왜군의 괴수 도요토미가 사망하고 그의 유언에 따라 무사귀환을 위하여 대부분의 병력을 울산, 부산, 사천 및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일부에서는 그들의 철귀를 위장하려고 일부러 성을 쌓는 등 매우 분주하였다. 정보를 입수한 공은 왜교로부터 돌아가는 바다를 봉쇄하고 이에 당황한 왜군은 남해 등지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전선을 총 동원하여 유도 등지를 가로막고 있는 공의 연합함대를 견제 또는 격파하면서 마지막 탈출의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공과 수군은 명나라 수군과 연합하여 왜군을 관음포로 유도하여 섬멸하였다. 이 해전에서 공은 적의 총에 맞아 전사하였으며 왜선은 200여척이 격파되고 이로써 임진왜란은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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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9.10
  • 저작시기201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6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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