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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본문내용
완전히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원주가 비록 민주화의 진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나, 그 분들이 비단 원주만의 민주화를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원주의 정신이 온 나라에 퍼지거나, 혹은 원주 자체 내에서도 모든 이들의 참여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이를 설득하는 일도 힘들거니와 원주의 운동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두 분들은 흘러간 시간에 비해서 성과가 더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원주 신협에서도 말하였듯이 원주 신협의 목적은 빠른 성과를 거두어 모든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 실천하여 서서히 진보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이 나타나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해 나간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 지00 주교님과 무위당 선생님께서도 이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자본가들의 관점.
- 자본가라고 하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지만 일단은 일제 때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자본이 많은 부르주아층을 말하고 싶다. 이 사람들이 과연 원주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까? 아마도 이 사람들은 원주의 운동에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기 자신이 편한 생활을 하게 되면 남들의 생활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왜 굳이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고민을 하겠는가? 어쩌면 이러한 운동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가 잘 살고자 하면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분배가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가려는 공산주의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3) 과거 소작인을 비롯한 현재 농민들의 관점.
- 과거의 소작인들이나 현재의 농민들이나 동일하게 갖고 있는 문제점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거의 소작인들은 자신의 땅이 없음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수확물을 거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으며, 현재의 농민들은 불균등한 자원의 배분으로 일년내내 어렵게 농사를 해
도 그 수확물의 값이 형편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자신에게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원주의 운동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과거의 소작인도, 현재의 농민들도 자체적인 힘으로는 충분한 자본을 만들어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러므로 원주의 이러한 운동은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줄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그들에게 이러한 운동은 하나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4)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의 관점
- 위의 두 사람에게 원주의 운동은 하나의 큰 위협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두 사람은 군인 출신으로 강력한 정권을 유지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던 대통령들이다. 이들은 강력한 정권의 힘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규합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원주의 운동은 시민들이 자체 생명력을 가지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시민들아 자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곧 자체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시민들에게 힘이 생기면 반대로 약해지는 것은 정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힘이 시민들에게 생기면 그들의 집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이들은 원주의 운동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 극단적인 사상가들
- 극단적인 사상가들이라고 하면 ‘극 자본주의 지향’ 혹은 ‘극 사회주의 지향’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에게 사상이라는 것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6.25가 이것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들이 원주의 운동을 본다면 허무한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원주는 분명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론, 그 중간단계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를 사회주의 성향의 배분에 그 의미를 두고 있는 듯했다. 현재 자본주의의 가장 문제점은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거나에 상관없이 자본을 성취한 자가 이것을 배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큰 욕심과 더 큰 이상만을
2) 자본가들의 관점.
- 자본가라고 하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지만 일단은 일제 때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자본이 많은 부르주아층을 말하고 싶다. 이 사람들이 과연 원주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까? 아마도 이 사람들은 원주의 운동에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기 자신이 편한 생활을 하게 되면 남들의 생활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왜 굳이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고민을 하겠는가? 어쩌면 이러한 운동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이가 잘 살고자 하면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분배가 필요할 수밖에 없고 그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가려는 공산주의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3) 과거 소작인을 비롯한 현재 농민들의 관점.
- 과거의 소작인들이나 현재의 농민들이나 동일하게 갖고 있는 문제점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거의 소작인들은 자신의 땅이 없음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수확물을 거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으며, 현재의 농민들은 불균등한 자원의 배분으로 일년내내 어렵게 농사를 해
도 그 수확물의 값이 형편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자신에게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원주의 운동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과거의 소작인도, 현재의 농민들도 자체적인 힘으로는 충분한 자본을 만들어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러므로 원주의 이러한 운동은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줄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지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그들에게 이러한 운동은 하나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4)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의 관점
- 위의 두 사람에게 원주의 운동은 하나의 큰 위협으로 작용했을 것 같다. 두 사람은 군인 출신으로 강력한 정권을 유지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던 대통령들이다. 이들은 강력한 정권의 힘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힘을 하나로 규합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원주의 운동은 시민들이 자체 생명력을 가지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시민들아 자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곧 자체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시민들에게 힘이 생기면 반대로 약해지는 것은 정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힘이 시민들에게 생기면 그들의 집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이들은 원주의 운동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 극단적인 사상가들
- 극단적인 사상가들이라고 하면 ‘극 자본주의 지향’ 혹은 ‘극 사회주의 지향’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이들에게 사상이라는 것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6.25가 이것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들이 원주의 운동을 본다면 허무한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원주는 분명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론, 그 중간단계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를 사회주의 성향의 배분에 그 의미를 두고 있는 듯했다. 현재 자본주의의 가장 문제점은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것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이거나에 상관없이 자본을 성취한 자가 이것을 배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큰 욕심과 더 큰 이상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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