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 왕안석 개혁의 대한 논란
본론
1. 개혁의 원인과 왕안석의 등장
● 시대적 배경
● 개혁의 원인
2. 왕안석(王安石)의 생애(生涯)와 사상(思想)
⑴ 왕안석의 생애
⑵ 왕안석의 사상
● 왕안석의 사상적 배경
● 왕안석의 정치, 경제, 군사사상
● 왕안석의 사상적 성격
3. 왕안석의 신법(新法)
⑴ 부국(富國)과 관련된 신법 ① 농전수리법(農田水利法)
② 방전균세법(方田均稅法)
③ 청묘법(靑苗法)
④ 모역법(募役法)
⑤ 균수법(均輸法)
⑥ 시역법(市易法)
⑵ 강병(强兵)과 관련된 신법 ① 장병법(將兵法)
② 보갑법(保甲法)
③ 보마법(保馬法)
④ 군기감(軍器監)
4. 송대의 당쟁의 원인과 성격
5. 개혁의 추진 및 한계
결론
● 왕안석 개혁의 대한 논란
본론
1. 개혁의 원인과 왕안석의 등장
● 시대적 배경
● 개혁의 원인
2. 왕안석(王安石)의 생애(生涯)와 사상(思想)
⑴ 왕안석의 생애
⑵ 왕안석의 사상
● 왕안석의 사상적 배경
● 왕안석의 정치, 경제, 군사사상
● 왕안석의 사상적 성격
3. 왕안석의 신법(新法)
⑴ 부국(富國)과 관련된 신법 ① 농전수리법(農田水利法)
② 방전균세법(方田均稅法)
③ 청묘법(靑苗法)
④ 모역법(募役法)
⑤ 균수법(均輸法)
⑥ 시역법(市易法)
⑵ 강병(强兵)과 관련된 신법 ① 장병법(將兵法)
② 보갑법(保甲法)
③ 보마법(保馬法)
④ 군기감(軍器監)
4. 송대의 당쟁의 원인과 성격
5. 개혁의 추진 및 한계
결론
본문내용
가 제시한 개혁의 파격성과 수행방법의 철저성, 그리고 개혁방안의 광범위함 등은 그 후에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당시 송대의 상황은 왕조의 말기적인 현상을 두루 나타내고 있었다. 관료의 부정부패와 매관매직. 지배계층의 사치와 향락, 군대의 타락화 그리고 지배계층의 대토지화로 백성들의 경제적기반의 위기 등이 그것이다. 당시의 이런 상황을 왕안석은 충분히 파악하고 개혁코자 하였지만, 그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왕안석의 개혁정책의 기반은 그가 청년시절 주현관을 지낸 부친을 따라 전국을 따라다니며, 사회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어 민정과 풍속에 밝았던 것과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이고도 냉철한 관찰이었다. 책상에 앉아 탁상공론과 현실에 뒤떨어진 정책을 내놓은 기존의 정책가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청렴하면서도 항상 일반 백성들의 편에 서서 행동하였던 지방 관리였기 때문에 왕안석은 아버지의 그러한 면을 항상 본보기로 삼아 백성들을 위한 개혁의 의지를 더욱 재촉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저항하는 기존세력이라는 의미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개혁은 기존의 세력과 마찰을 겪으면서 해 나가야 하기에, 완전한 수행을 해나가기가 어렵다. 왕안석 또한 그러한 보수적 구법당의 극심한 저지를 받았고, 나중에 그것이 신구법당 양당의 투쟁의 이어지게 되었으며, 훗날에 신법당의 아류인 채경과 같은 부패관료에 의해 왕안석이 개혁정신은 퇴색되고, 결국 북송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왕안석의 개혁정책이 그 가치과 의의를 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왕안석의 개혁정책-新法을 보고 있자면,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정신과 개혁열망이 느껴지는 듯하다.
※ 기사문
[인문사회]中왕조의 개혁가들은 왜 번번이 실패했는가
◇제국의 슬픔/이중톈 지음·강경이 옮김/440쪽·에버리치홀딩스
(송대의 부국강병책인 ‘희녕변법’을 주창했던 왕안석. 그는 열정과 두뇌를 갖춘 몇 안 되는 개혁가였지만 현실에 어두웠고 시대가 뒷받침해 주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사진 제공 에버리치홀딩스)
봉건 제후국들의 세력이 커지자 서한(西漢) 황실의 보전과 안녕을 위해 중앙집권 강화를 꾀하는 당대 개혁가 조조(晁錯). 어사대부의 높은 관직에 있던 그는 황제인 경제(景帝)에게 번국(藩國)의 관할지를 삭감하는 ‘삭번’을 주청한다.
번국의 하나인 오(吳)나라 승상을 지낸 원앙이 나서 “오와 초(楚)는 모반을 일으킬 힘이 없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조조는 삭번을 밀어붙였고 제후국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오초칠국의 난’이다. 위기에 몰린 황제는 “조조를 죽이고 환수한 영토를 되돌려 주면 반란을 조용히 평정할 수 있다”는 원앙의 간청을 수락해 조조를 처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간신이고 충신인지 분명하지 않다. 조조는 분명 선견지명이 있었고, 정의롭고 강직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원앙은? 그 역시 올곧고 후덕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조조는 죽음을 맞이했는가. 학식과 재주는 뛰어났지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몰랐다. 가문에 대한 위협을 느낀 조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삭번책 철회를 당부했지만 거부당하자 독약을 마신다. 현실감각이 없는 공상세계에 빠져 있던 조조는 무엇을 할 것인지만 고민했지 ‘어떻게’가 없었다.
중국 CCTV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초한지 강의’를 통해 ‘역사대중화’의 깃발을 올린 이중톈 샤먼대 교수. 그는 중국 역사의 물줄기가 뒤바뀌는 결정적 순간을 파고들어가 난세(亂世)의 영웅과 간웅들의 행적을 세밀하게 뒤쫓는다.
그의 분석은 매우 신랄하면서도 명쾌하다. 우리는 중국 역사의 영웅과 간신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저자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역사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세력과 세력, 노선과 노선의 투쟁임을 설파한다.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속살을 아프게 들춰낸다.
송(宋)대의 부국강병책인 ‘희녕변법’을 주창했던 왕안석의 실패도 마찬가지다. 그의 개혁안인 청묘법, 방전균세법, 치장법 등은 모두 그 시대에 필요한 묘책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 소동파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악덕 관리들은 개혁을 부정부패의 계기로 삼았다. 그는 열정적이고 머리를 갖춘 개혁가였지만 현실에는 어두웠다. 도덕적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개혁의 결과는 도덕성과 무관했다.
아편전쟁에 나선 청대 관리들은 거짓 보고로 일관했다. 영국군에 대패하고도 ‘승전’이라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섬나라 오랑캐에게 패했다는 보고는 곧 죽음이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거짓 보고라는 ‘아편’ 속으로 빠져 들었다.
책은 많지만 한 번 잡으면 결코 놓기 싫은 책을 만나긴 쉽지 않다. 소설이 아닌 인문학 관련 책은 번역서일 경우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책을 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 들 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다.
국가 경영을 꿈꾸는 정치인,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 리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을 덮으면 ‘어떻게’는 없고 ‘무엇’만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절로 한숨이 나올 것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참고 문헌
伯贊 편, 이진복김진옥 옮김, 『中國全史 (下)』,학민사,1990.
徐連達吳浩坤趙克堯 주편, 중국사연구회 옮김,『中國通史』, 청년사,1989.
佐藤一郞 外 ,『인물로 보는 중국역사 4』, 신원문화사,1995.
이석생, 『왕안석 시역법 연구』, 효성여대, 1982
제임스 류, 이범학 역, 『왕안석과 개혁정책』, 지식산업사,1991.
중국역사문화연구회 편, 『中國의 歷史와 文化』, 도서출판 보성,1998.
신승하, 『중국사』, 대한교과서,1998.
申採湜, 『東洋史槪論』,삼영사,1997
申龍澈 外, 『동양의 역사와 문화』,탐구당,1993
李春植, 『中國史 序說』, 교보 문고,1997
찰즈 허커, 박지훈 외 編, 『中國文化史』, 한길사,
동양사학회 編, 『개관 東洋史』, 지식산업사, 1997
中國史硏究室 編譯, 『中國歷史(下)』, 신서원, 1993
이범학, 「왕안석의 대외경략책과 신법」『인간과 역사의 대응』,1984
하지만 개혁이라는 단어에는 항상 저항하는 기존세력이라는 의미가 따라다닌다. 그만큼 개혁은 기존의 세력과 마찰을 겪으면서 해 나가야 하기에, 완전한 수행을 해나가기가 어렵다. 왕안석 또한 그러한 보수적 구법당의 극심한 저지를 받았고, 나중에 그것이 신구법당 양당의 투쟁의 이어지게 되었으며, 훗날에 신법당의 아류인 채경과 같은 부패관료에 의해 왕안석이 개혁정신은 퇴색되고, 결국 북송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로 인해 왕안석의 개혁정책이 그 가치과 의의를 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왕안석의 개혁정책-新法을 보고 있자면,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정신과 개혁열망이 느껴지는 듯하다.
※ 기사문
[인문사회]中왕조의 개혁가들은 왜 번번이 실패했는가
◇제국의 슬픔/이중톈 지음·강경이 옮김/440쪽·에버리치홀딩스
(송대의 부국강병책인 ‘희녕변법’을 주창했던 왕안석. 그는 열정과 두뇌를 갖춘 몇 안 되는 개혁가였지만 현실에 어두웠고 시대가 뒷받침해 주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사진 제공 에버리치홀딩스)
봉건 제후국들의 세력이 커지자 서한(西漢) 황실의 보전과 안녕을 위해 중앙집권 강화를 꾀하는 당대 개혁가 조조(晁錯). 어사대부의 높은 관직에 있던 그는 황제인 경제(景帝)에게 번국(藩國)의 관할지를 삭감하는 ‘삭번’을 주청한다.
번국의 하나인 오(吳)나라 승상을 지낸 원앙이 나서 “오와 초(楚)는 모반을 일으킬 힘이 없다”고 반대한다. 하지만 조조는 삭번을 밀어붙였고 제후국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오초칠국의 난’이다. 위기에 몰린 황제는 “조조를 죽이고 환수한 영토를 되돌려 주면 반란을 조용히 평정할 수 있다”는 원앙의 간청을 수락해 조조를 처형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누가 간신이고 충신인지 분명하지 않다. 조조는 분명 선견지명이 있었고, 정의롭고 강직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원앙은? 그 역시 올곧고 후덕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왜 조조는 죽음을 맞이했는가. 학식과 재주는 뛰어났지만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몰랐다. 가문에 대한 위협을 느낀 조조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삭번책 철회를 당부했지만 거부당하자 독약을 마신다. 현실감각이 없는 공상세계에 빠져 있던 조조는 무엇을 할 것인지만 고민했지 ‘어떻게’가 없었다.
중국 CCTV ‘백가강단’ 프로그램에서 ‘초한지 강의’를 통해 ‘역사대중화’의 깃발을 올린 이중톈 샤먼대 교수. 그는 중국 역사의 물줄기가 뒤바뀌는 결정적 순간을 파고들어가 난세(亂世)의 영웅과 간웅들의 행적을 세밀하게 뒤쫓는다.
그의 분석은 매우 신랄하면서도 명쾌하다. 우리는 중국 역사의 영웅과 간신을 이분법적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저자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역사는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세력과 세력, 노선과 노선의 투쟁임을 설파한다.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이라는 속살을 아프게 들춰낸다.
송(宋)대의 부국강병책인 ‘희녕변법’을 주창했던 왕안석의 실패도 마찬가지다. 그의 개혁안인 청묘법, 방전균세법, 치장법 등은 모두 그 시대에 필요한 묘책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자치통감의 저자인 사마광, 소동파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도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악덕 관리들은 개혁을 부정부패의 계기로 삼았다. 그는 열정적이고 머리를 갖춘 개혁가였지만 현실에는 어두웠다. 도덕적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개혁의 결과는 도덕성과 무관했다.
아편전쟁에 나선 청대 관리들은 거짓 보고로 일관했다. 영국군에 대패하고도 ‘승전’이라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섬나라 오랑캐에게 패했다는 보고는 곧 죽음이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거짓 보고라는 ‘아편’ 속으로 빠져 들었다.
책은 많지만 한 번 잡으면 결코 놓기 싫은 책을 만나긴 쉽지 않다. 소설이 아닌 인문학 관련 책은 번역서일 경우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책을 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독서삼매경에 푹 빠져 들 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다.
국가 경영을 꿈꾸는 정치인, 기업을 경영하는 오너, 리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책을 덮으면 ‘어떻게’는 없고 ‘무엇’만 판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절로 한숨이 나올 것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참고 문헌
伯贊 편, 이진복김진옥 옮김, 『中國全史 (下)』,학민사,1990.
徐連達吳浩坤趙克堯 주편, 중국사연구회 옮김,『中國通史』, 청년사,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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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류, 이범학 역, 『왕안석과 개혁정책』, 지식산업사,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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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하, 『중국사』, 대한교과서,1998.
申採湜, 『東洋史槪論』,삼영사,1997
申龍澈 外, 『동양의 역사와 문화』,탐구당,1993
李春植, 『中國史 序說』, 교보 문고,1997
찰즈 허커, 박지훈 외 編, 『中國文化史』, 한길사,
동양사학회 編, 『개관 東洋史』, 지식산업사, 1997
中國史硏究室 編譯, 『中國歷史(下)』, 신서원, 1993
이범학, 「왕안석의 대외경략책과 신법」『인간과 역사의 대응』,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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