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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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논리적사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원동력이며, 사유와 사물들의 변증법적 운동을 탄생시키는 투쟁이다. 이 논리학은 진화나 역사가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세계에 논리를 적용시킨 것이다. 결국 변증법적 논리학은 사유를 과학의 역사적인 진보에 적응시키려는 노력과 다른 것이 아니다.
브렁슈비크(Brunschvicg) "행동이나 사유가 과거에 획득하였던 승리를 기호화하지만, 행동이나 사유의 미래의 정복을 보증하지는 못하는 작전론이나 시학기술과 비슷하다."
A. 방법론과 인식론(l'epistemologie)
철학은 과학 자체, 과학의 방법과 결과 등을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들에 대한 반성, 과학들에 대한 이러한 철학연구를 논리학(logique)또는 과학의 논리학이라 한다. 이는 과학에 대한 일종의 방법론으로서의 철학이다. 그래서 랄랑드는 과학에 대한 철학을 "과학적인 방법들에 대한 후천적인 탐구(l'etude a posteriori)"라고 정의한다. 철학자는 참된 사유의 규칙들을 선천적으로(a priori)확립한다고 이제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단지 과학적 사유의 방법을 반성하면서 참된 사유의 규칙들을 밝혀내려고 노력한다.
방법론은 인식론을 향하여 확대되고 인식론을 통하여 심화된다. 인식론(epistemologie)을 랄랑드는 "여러 과학들의 원리, 가정, 성과 등에 대한 비판적 연구"라고 정의한다. 인식론은 과학의 기원, 가치, 실재와의 관계 등을 문제로 삼는다. 브렁슈비크(Brunschvicg)는 철학일반을 "해결된 문제들에 대한 과학"이라고 정의한다.
인식론(l'epistemologie)이 인식 이론(la theorie de la connaisssance)길을 연다.
B. 연역법 또는 여타의 추론에 대하여
*연역법(la deduction)
연역법은 선천적(a priori)이다. 연역은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필연적이고 분석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어 반복(tautologie)이며 동어반복은, 희랍어로 to auto legein이며 동일한 것을 말한다는 뜻이다..
연역법은 결론을 실제로 증명하는 유일한 추론이다. 비록 논리학은 "증명의 과학"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연역법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논리적 추론이다.
a) 유비(analogie)에 의한 추론
유비에 의한 추론은 가시적이고 부분적인 유사함으로부터 다른 유사함을 결론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소설가의 한 작품이 잘 썼다고 다른 작품도 잘 썼을 것이라고 유비추론한다. 그런데 제르튀르라는 사람을 아는데 그녀는 나에게 불쾌감을 준다. 다른 제르튀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소개받았다. 이 처음 만난 여자에게 불쾌감을 갖는다면, 이런 유비 추론은 사실상 추론이 아니다. 이런 유비에 의한 추론은 단순한 심리적 연상이다.
이런 추론과정에서 추론의 가치가 유비과정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와 소설에는 어느 정도 내적 연관이 있으나, 필연적인 내적 연관은 없다. 게다가 사람과 그의 이름 사이에는 내적 연관이 없다. 결국 유비추론은 앞선 사실로부터 다음 사실로 필연적인 귀결을 낼 수 없다. 결국 논리적 필연성은 (추상적 형식으로서) 연역적 추론에만 있다.
그렇다고 유비 추론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도덕, 종교에는 유비 추론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 베르나르(Bernard)는 식물은 글루코즈라는 포도당을 물에 녹지 않는 녹말의 형태로 저장한다는 사실에서 동물도 포도당을 특수한 형태로 저장하지 않을까라는 가정을 하였다.
b) 귀납법(induction)
귀납법은 유비 추론과 비슷하다. 귀납법이 유비 추론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하나만의 관찰 사실을 많은 사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관찰을 통하여 일반적 법칙을 인정하는 것이다. 뽀르-르와얄(Port-Royal)의 논리학에서 "여러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체험하고, 여러 강의 강물이 짜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을 때, 귀납하여 바닷물은 짜고 강물은 짜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귀납법은 거짓 추론이다. 왜냐하면 확인된 것을 넘어서 긍정하며, 우리가 본 것 이상의 것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부분을 전체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모든 연역 추론에서 대전제의 전칭긍정 명제도 사실과 사건의 경우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대전제의 전칭
긍정 명제가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진리라 규정한 경우에만 보편성을 지닌다. 정의에 의한 보편성의 명제는 모든 일자는 전체이라는
명제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일자이다 고로 사람은 전체이다.)
흄(Hume)은 이미, 귀납법이 논리적 추론과 관계 있다기보다 심리적 착각과 관계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인식에 대한 습관적 인식을 비판한 것이다. 예를 들어 물은 온도가 높으면 부피가 팽창한다. 그러나 0도에서 4도까지로 온도의 증가는 물이 수축한다. 다른 예로서 럿셀(Russell)은
병아리의 귀납법을 말한다: 병아리는 모이를 주는 농부의 손이 자신의 목을 비틀 때까지 먹이와 손의 관계 이상을 알지 못한다. (IMF 상황에 이르기까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에서 프로레타리아의 처지는 병아리 귀납법이며,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흘리는 자본가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교육 노동자를 포함해서 노동자 조합을 통하여 반동의 저항을 뚫고 진정한 의식의 창발로서 "저항의 저항"을 시도하는 자는 도덕적 영웅으로서 예수와 같다.) 또 다른 예로 오스트렐리아에 검은 백조가 있다는 것을 보면 모든 백조는 희다는 것이 잘못된 추론이라는 것을 안다.
현대과학은 자연 법칙의 존재를 인정한다. 즉 어떤 사실들은 다른 사실들과 필연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이 결정론적 공준(le
postulat deterministe)이다. 이 공준은 그 자체로 귀납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이런 필연적 연관인
공존(concomitance)은 일종의 일치일 수는 있지만 보편적인 법칙일 수는 없다. (검증가능성, 오류가능성, 반증가능성)
출처 : [기타] http://www.masilga.com/philosophy/Concept/Concepts18.asp#1
  • 가격3,0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8.0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8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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