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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sil)로 바꾸고 대규모 개각을 단행하였다. 2003년 5월 30일 미얀마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아웅산 수지여사 지지세력과 미얀마 군사정부 지지세력간의 충돌로 인해 아웅산 수지여사가 구금된 이후, 미국 등 서방세계의 강한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미얀마 정부는 SPDC 내부에서 합리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킨윤장군을 수상으로 임명한 이후 2003년 8월 민주주의 7단계 로드맵을 발표하고 서방세계에 화해 제스쳐를 보냈으나, 서양에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2004년 10월 킨윤장군이 실각하고 강경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미얀마군부와 서방세계와의 대화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미얀마 정부의 아웅산수지 여사 구금,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등으로 미얀마 국내정세가 어수선한 가운데 민주주의로 가는 7단계 로드맵중 제1단계인 국민회의가 2004년 5월 17일 NLD 참석없이 진행되었다. 2005년 4월 17일 미얀마가 영국식민지 시절, 샨주(State)의 지도자 역할을 하던 Mr. Sao Shwe Thaike의 아들 Mr. Sao Hkam Hpa(캐나다 거주)가 샨주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면서 임시정부를 수립한다고 외신을 통해 선언하면서 SURA, KNU 등 반군단체의 활동이 거세진다. 2005년 5월 7일 양곤시내의 두 군데의 쇼핑센타와 무역전시관에서 정교하게 제작된 시한폭탄이 5분간격으로 터지게되고 정부는 반군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경색정국으로 몰아간다. 군부에서는 정권유지와 쟁탈을 위한 암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2005년 10월 24일 그동안 정부에서 배급제로 공급하던 기름값을 900%인상하면서 또 한번의 위기가 닥쳐온다. 기름값이 모든 물류비에 반영되면서 모든물가가 폭등하고 공공요금도 인상되었다. 2005년 11월 18일 정부 모든 부처와 군 사령부까지도 양곤에서 320킬로 북쪽에 떨어져있는 삐머나로 옮긴다는 발표를 하고 사실상 수도를 옮기고 있다. 미국과 유엔을 통한 아웅산 수지의 연금해제와 정치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현정권은 쇄국과 폐쇄의 길로만 걸어가고 있다. 민생과 치안의 불안이 점점 확대되고 있고 외국인 거주 및 거주환경의 악화로 온통 답답한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다. 밤이 너무 깊다. 마치 새벽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미얀마에 유일한 희망은 오직 예수! 예수님 한뿐 뿐이다. 구원의 새벽동은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Ⅲ. 미얀마 선교역사
미얀마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의 하나인 바간에 있는 짠싯따왕의 무덤에 보면 연꽃의 중심과 여덟 개의 이파리에 십자가 문형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십가자 문형은 로마의 지하교회에서 발견된 형태와 일치하는 것을 볼 수있는데 이는 1287년 몽고에 의해 바간왕조가 함락 당할때에 몽고군 안에 다수의 기독교 신자인 군인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있다. 1496년 바고에 도착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무역상인 스테파노의 일기에 보면 친구가 죽은 후에 무너진 교회 옆에서 장례식을 치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시기에 인도와 태국 등지에 카톨릭 신도들과 알마니안, 시리아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버마에와서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할 수있다. 미얀마에 도착한 최초의 선교 그룹은 로마 카톨릭이다.
1. 미얀마 로마 카톨릭 선교역사
1497년 Vasco de Gama가 아프리카의 남쪽끝 희망봉을 지나 아시아의 새로운 대륙을 찾던 중 미얀마에 도착하게 되었고 동.서양의 무역로가 열리게 되었다. 인도에 도착한 포루투칼 상인들이 중국으로 가려할때에 미얀마 몬주의 목떠마와 떠닌다리주에 정착한 후에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이때에 포루투칼 상인들은 배에 카톨릭 신부들을 항상 동행하였는데 상인들은 주로 떠닌다리의 베
Ⅲ. 미얀마 선교역사
미얀마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의 하나인 바간에 있는 짠싯따왕의 무덤에 보면 연꽃의 중심과 여덟 개의 이파리에 십자가 문형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십가자 문형은 로마의 지하교회에서 발견된 형태와 일치하는 것을 볼 수있는데 이는 1287년 몽고에 의해 바간왕조가 함락 당할때에 몽고군 안에 다수의 기독교 신자인 군인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유추해 볼 수있다. 1496년 바고에 도착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무역상인 스테파노의 일기에 보면 친구가 죽은 후에 무너진 교회 옆에서 장례식을 치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같은 시기에 인도와 태국 등지에 카톨릭 신도들과 알마니안, 시리아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버마에와서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추측할 수있다. 미얀마에 도착한 최초의 선교 그룹은 로마 카톨릭이다.
1. 미얀마 로마 카톨릭 선교역사
1497년 Vasco de Gama가 아프리카의 남쪽끝 희망봉을 지나 아시아의 새로운 대륙을 찾던 중 미얀마에 도착하게 되었고 동.서양의 무역로가 열리게 되었다. 인도에 도착한 포루투칼 상인들이 중국으로 가려할때에 미얀마 몬주의 목떠마와 떠닌다리주에 정착한 후에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이때에 포루투칼 상인들은 배에 카톨릭 신부들을 항상 동행하였는데 상인들은 주로 떠닌다리의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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