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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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약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체류한 기간이 215년이란 의견인데, 이는 “70인역”과, “사마리아 오경”이 출애굽기 12:40의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년이라”는 기록을 순수한 애굽 체류기간과 족장들이 생존했던 시기를 합한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애굽에서 체류한 기간이 출애굽기 12:40에 기록한 대로 430년이라는 의견이다. 본인은 430년에 더 비중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문 맛소라(한국의 개역및 개역개정판은 맛소라 사본을 체택하고 있다) 사본은 애굽에 거주한 기간이 430년이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는 점과 이어지는 출애굽기 12:41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출 12:41)

출애굽기 12:41은 야훼의 군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시기를 말함에 있어서 “430년이 마치는 그 날에”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430년 동안 머물게 하셨다가 날이 다하므로 출애굽을 결행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창세기 15:13에 의하면, 야훼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괴롭힘을 받을 것이라”는 예고를 하는데, 그 기간을 400년이라고 규정하셨다. 그리고 창세기 15:16에서는 “4대만에 가나안으로 돌아 올 것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1세대를 100년으로 보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제 2세대를 출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세대 400년이란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성경이 늘 채용하는 것처럼 대략적인 기간을 말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체류한 기간이 215년이라는 의견 보다는 430년이란 의견이 더 타당하다.
또한 인구 증가를 관찰해 보아도 430년 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창세기 46:27에 의하면 야곱과 그의 가족이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아마 애굽에서 출생한 야곱의 손자들과 그들의 종들까지 합하면 약 2,000여명 정도가 애굽의 고센에 정착하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출애굽기 12:37에 의하면 출애굽에 참여한 장정이 60만 가량이라 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약 200만 정도였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1,000배가 증가한 것이다. 215년 동안 인구가 1,000배가 증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인구 증가추세를 감안할 때 215년이란 의견보다는 430년이란 의견에 신뢰가 간다.
출애굽 연도에 관하여는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중심으로 추적해보는 방법이 가장 타당할 듯싶다. 열왕기상 6:1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왕상 6:1)

성전건축이 시작된 시기가 B.C 966년이므로 그로부터 480년 전에 출애굽이 이루어졌다고 하니 B.C 1,440년경에 출애굽이 감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판단일 것이다.


Ⅱ 애굽에서의 생활

B.C 2,000년경 애굽의 역사는 4개의 통치기간으로 구분된다.
첫째 통치 시기는 애굽의 “제 12왕조”로서 이 시기는 애굽의 통일이 이루어졌고,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주변국과의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때가 B.C 1,876년경이다. 제 12왕조 말경에 ‘요셉’이 애굽으로 들어왔고, 이어 야곱의 가족이 고센에 정착했다. 요셉은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으로 이주한 후 71년을 살다가 죽는데, 이때는 제 12왕조의 말기였다.
둘째 통치 시기는 “힉소스왕조” 기간이다. 애굽의 13, 14왕조에서 왕권이 약화되고, 지방의 관리들이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계속함으로써 애굽의 국력이 집결되고 있지 못할 때, 아시아계로 추정되는 힉소스가 애굽의 북부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였고, 정권을 장악하자 애굽인들도 그들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요셉이 죽은 후 약 75년 정도가 지난 뒤인 B.C 1730년경이다. 출애굽기 1:8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라는 진술은 바로 힉소스 왕조를 뜻한다. 이들은 요셉의 공로를 알지도 못했고, 또 요셉에게 감사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힉소스는 소수 집단으로 애굽 북부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수가 많은 히브리인들은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특히 애굽 남부의 정통 왕조들과 충돌이 일어날 경우 히브리인들이 애굽의 정통왕조와 군사적 동맹을 맺어 내응한다면 그것은 힉소스의 멸망을 초래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힉소스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세 번째 통치 시기는 “제 18왕조”로서 강력한 왕권을 회복하였고, 힉소스 왕조의 북부 애굽을 수복했다. 제 18왕조 3대 바로인 “투트모스 1세”가 집권하는 동안에 ‘모세’가 태어났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노예 신분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집요한 학대가 이어졌다. 이미 히브리인들은 모든 통치세력으로부터 위협적인 존재로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요셉의 일은 잊혀진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히브리인의 인구는 더욱 증가하자(출 1:12). 남아를 살해하라는 잔인한 칙령이 내려진다.
네 번째 통치시기는 “제 19왕조”이다. 무려 109년 동안 애굽을 통치했는데, 109년 중 66년을 ‘라암세스 2세’가 통치했다.


Ⅲ 모세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는 레위족의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난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 ‘아론’은 3세, ‘미리암’은 7세였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범상치 않은 아이임을 알았으므로(출 2:2; 행 7:20; 히 11:23, 아마 야훼의 아이로 보았다는 표현일 것이다.) 석 달이나 숨기었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상자에 넣어 강에 띄웠다. 야훼의 아이이므로 야훼께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미리암’으로 하여금 모세가 어찌 되는지 관찰하게 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부모에 의해 길러졌고, 어느 정도 성장하여서 바로의 궁으로 들어가 생활을 한다. 모세를 아들로 삼았던 바로의 딸은 \'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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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35페이지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8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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