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주거건축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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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주거건축의 고찰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의 주택 형성요인
2. 조선시대 주택의 분류
1) 상류층 주택
2) 중류 주택
3) 서민 주택

본문내용

다. 그리고 도서, 내륙, 산간등지에서 나타나는 배치상의 차이점은 산간과 도서지장은 본채와 부속채가 적고 대지면적도 좁음에 비하여 내륙지방은 본채와 부속채가 크고 중심으로 마당의 측면이나 맞은편에서 진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대부분 안채가 정면에서 그대로 보이지 않게 시각적 굴절효과를 노리고 있다.
또, 마을 안길에서 서로 마주치는 가옥의 대문은 서로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데 이는 마을 안길의 한 지점에서 내부동선이 맞붙어 교차되는 혼란을 방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옥의 독립성과 기밀성의 유지에 적절히 대처하도록 고려되어 있다.
이보다 고식이라고 여겨지는 배치방법은 영동이나 안동 지역의 양통집에서 볼 수 있는데 앞마당은 외부에 개방된 채 바깥마당과 구분이 없고 다만 집 뒤의 뒤뜰 공간만 독립적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대단히 오래된 방법으로 담장에 의해서만 구획하는 공간으로서는 가장 먼저 나타난 것으로 보여진다. 다시 말해서 그 이전에는 공간 중심에 집을 짓고 이것만으로 공간을 구성하였으나 나중에 담장으로 공간을 둘러 내부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일반화되면서 가장 먼저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살림집은 기능에 따라 각기 따로 지어지는데 이것은 집의 중심체인 몸체를 중심으로 각자 빙 둘러쌌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런 방식은 청암리 사지의 절터 배치에 나타난다.) 뒤뜰만을 담장으로 둘러쳐서 설정하는 방식은 안동, 서해안의 양통집, 남해안의 겹집, 제주도의 주택에서 볼 수 있는데 양반집의 규모를 갖춘 집에서도 다른 공간과 구획되어 설정된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 의하면 20세기 이전의 가난한 민가에서는 뒤뜰조차 설정하지 않았으며 다만 여유가 있는 민가에서나 이를 설정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서민 주택의 재료는 한국의 전래적인 주택에서 대부분이 그렇듯 주택을 축조하는데 사용되는 재료는 그 지방 자연환경의 요건에 따라 구득이 용이한 재료가 이용되었다. 거의 대부분이 목조의 심벽구조인 서민 주택은 그 지방 산간에서 목재를 구했을 것이고 다만 중상류층 주택에 가까운 규모가 큰 주택을 경우에는 타지방에서 목재를 구했으며 목수까지 초청하여 건축하였다. 그러나 산간지방에서 목재가 많기 때문에 주택건축에 있어서 사용되는 재료가 더 크고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내륙지방이 우수한 것이 흥미롭다. 이것은 주변에서 생산된 얻기가 쉬운 재료를 사용한 것보다는 거주자들의 생활능력에 크게 좌우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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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92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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