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의 건축과 동양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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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수근의 건축과 동양정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김수근의 건축과 동양정신

본문내용

불러 일으킨다. 외관에서의 동일 모티프의 반복이 결국 형식화의 경향을 드러낸다. 경동교회보다는 한결 긴장이 덜하여졌으나 주변을 압도하는 조형의지만은 여전하다.
● 공릉 공간신사옥 : 숭고성을 향한 극한적인 재료처리가 두드러지고 있다. I형강을 세운듯한 외벽의 기둥들은 실은 콘크리트 기둥을 싸고 있는 철판을 접은 것에 불과하다.
실내의 작업공간은 둘레의 넓은 유리에 의한 트인 조망에도 불구하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으며 그 주된 원인은 모든 가구를 검은 색으로 통일시켜 버린 실내 처리 때문이다. 이곳은 건축에 삶의 모든 것을 걸고 일할 각오가 되어 있는 수도사적인 젊은이들의 터전답게 많은 것의 희생을 건축을 통해서도 드러내고 있다. 위층의 볼트형 천창조차도 낮은 천장부분의 노출콘크리트 주두부분과 함께 명랑한 분위기보다는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밖에 「한국바이엘 사옥」과 과천의 「서울대 공원본관」 및 「국민은행 전산본부」등의 재료와 조형적 처리는 '80년대의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시도들은 그간의 「공간그룹」의 경향에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는 거의 완전한 변신으로 여겨지는 것들이다.
사상의 문제에 대한 요약
창작예술가로서 그 전성기에 있어 사람과 사상전체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적 창작의 바탕이 될 사상문제는 역시 자기의 사상이 형성되는 젊은 시절에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교육이 사상교육과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뜻한다. 김수근 자신도 이런 면에서 부족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가 자신의 사상문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런데까지 대화가 발전해가는 것은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언의 대화속에도 사상의 문제는 서로가 의식하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때에는 부드럽고 수용적인 나의 태도가 사상의 문제에 관해서는 단호해지고 지배적으로 되는 것이 아마 그에게는 이상하고 거북하게까지 느껴졌을 것이다.
건축에 있어서의 Negativism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사상적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때에도 그의 관심은 건축분야에서의 사상으로 Negativism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문호현상 전반에 관한 사상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가의 사상을 오늘의 문화현상에 다시 살려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창작에서만이 아니라 생활일반에서까지 적용되어야 할 사상이라는 뜻이었다.
Negativism은 그것이 하나의 윤리적 기준으로 나타날 때는 절제를 뜻한다. 남보다 무엇이든 3배를 더 살았다고 한 그 자신의 말처럼 그의 생활은 풍부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제가 필요했었다. 종교인에게만 절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에게도 과학자에게도 절제는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전문적 수행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절제는 인간의 모든 분야활동에 적용되는 소극적 가치기준이다.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제한성이다. 자연을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오늘 우리 인류에게 다시 인식되는 도가사상의 교훈이다. 그는 그러한 자연의 제한성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패기와 의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Negativism의 필요성을 다시 말해준 것이다. 예술가의 생애와 창작에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화적 창조의 바탕이 될 사상은 소극적인 것만으로 충분할 수 없다. 적극적 의미를 갖는 사상적 바탕도 있어야 한다. 무엇을 어디까지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제한적 가치기준도 필요하지만, 무엇을 위하여 창작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지향적 가치기준도 필요하다.
김수근씨는 우리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찾고 지켜나가는 것을 창작의 사상적 바탕으로 했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에서도 나타나고, 공간사를 중심으로 한 종합예술적 활동에서도 드러났다. 이것은 민족주의 예술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한 민족주의는 너무나 당연한 사상적 선택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오늘 우리시대의 예술가라면 누구나 당연히 민족주의적일수밖에 없다. 차라리 반민족주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를 특별히 강조하게 되면 필요없는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민족주의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 예술가들의 창작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적극적 사상의 바탕이 민족주의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오늘의 우리 예술가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김수근씨에게도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민족주의의 불충분성을 무엇으로 보충하느냐에 있다. 서양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는 종교적 구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시대적 가치기준이 있었다. 하나님 중심의 역사를 인간중심의 역사로 회복시키는 과업이 있었다.
그것은 그 시대의 모든 인류에게 호소할 수 있는 사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 우리의 르네상스가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내놓을 수 잇는 사상은 무엇인가?
김수근씨는 마산성당을 비롯하여 경동교회와 불광동 성당등을 설계하면서 이러한 사상적 문제를 의식했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 이러한 사상적 문제를 의식했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 우리의 대화에는 그런 사상적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 사상적 방향에 대한 것도 어렴풋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새대를 모든면에서 진정한 평등화를 추구하는 시대로 보자는 사상이었다. 모든 민족의 문화가 평등한 대우를 받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평등한 문화적 혜택을 받게하는 시대적 정신을 표방하는 사상을 말했다. 나는 이런 사상문제에 관한 우리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것이 김수근씨의 작품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표현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원숙한 단계의 그의 작품은 그런 사상적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그것은 또한 우리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적극적 사상이 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꿈같은 우리의 이야기에도 등장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니 나 혼자만의 꿈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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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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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93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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