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With Authority 권위 있는 목회자 요약
본문내용
는 우리들을 인도하여 기독교의 이야기에 충실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런 실천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도우신다.
제 8장.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 성찰적인 지도자
자기 생각에는 교회를 많이 성장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평신도 지도자들은 목사의 기술을 인정하면서도 영적인 깊이가 모자라다고 불평하는 교회 이야기를 회상해 보라. 평신도가 보는 그 목사의 문제점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 목사의 지도력은 전문성에 기초하였으나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의 권위는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 전문성과 신성성의 대변자
우리들 대부분은 교회를 지도하는 자들이나 필요시에 도움을 베푸는 자들로서의 전문성을 원한다. 전문성은 성찰적인 지도력의 실천적 또는 도구적 측면이다. 반면에 성례전적 현존은 지도력의 존재 또는 의미의 측면이다. 이 두가지는 함께 존재하며, 이 둘이 분리될 때 교회의 증거는 손상을 입는다.
* 평신도들이 성직자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주는 요소 1위 : “신앙적 진정성(religious authenticity)”
* 평신도들이 뽑은 진정성 있는 목사상 : 머리와 가슴이 하나인자, 복음을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사람인 자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 목사의 신분이 암시하는 두가지
a. 목사의 성품이나 인격적인 영성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 되는 것이 목사의 실천에 영향을 미친다.
b. 성례전적인 현존과 제사장적인 성격과의 관계, 특히 목회관계에서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관계-수탁자 보증에 관한 것이다.
2)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
성찰적인 지도자로서 기능을 수행하면서 이러한 역할 가운데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두 가지 수준, 즉 명시적 수준과 암시적 수준에서 나타난다.
a. 명시적 수준 : 여러 역할가운데서 목사의 인격적 전문성에 성스러운 무게를 더해준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시는 초월하신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은 우리가 교역실천에서 말하고 행하는 것에 깊이를 더해준다. 또 심리치료등과는 구별되는 목회상담의 역동성을 창출한다.
b. 암시적 수준 : 하나님의 현존을 대변하는 자로서 목사의 성례전적 위치가 기여한다. 투사와 전이의 현상들도 있다. 모사는 교인들의 가장 깊은 감정들과 미해결의 의문들과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투사하는 대상이 된다. 삶의 현장에서 신성불가침의 상징이 됨으로써 목사들은 하나님을 특정한 인간의 필요들에 가까이 계신 분으로 만들어준다.
목사가 된다는 것-삶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성찰적 지도력에서 전문성과 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3) 성례전적 현존과 신뢰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 목사의 상징적 지위는 권위를 행사하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목사는 가장 심각한 인생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자이다. 목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최고의 유익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며 복음에 충실하려고 애쓰면서, 교회의 최고의 덕을 위하여 헌신함으로써 위임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특성들이 교회와 목사 또는 신부와의 유대관계의 성격이 될 때, 그러한 특성들은 성찰적인 지도자로서 목사의 기능향상에 중요하게 기여한다. 기꺼이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공감을 보이며, 돌봄과 자비를 표현하고, 진실을 말하며, 정의로우며, 개인과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그러한 특성들은 일종의 “신비적인 토양”을 창조한다. 이 신비적인 토양은 공통적인 관계의 잔디밭에서 목사와 교인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토양은 치료하며 구속하며 해방시키는 목회관계를 만들어 준다. 그러한 특성들은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는 은사들을 깨닫게 하며, 다른 사람의 성찰적인 능력들을 환기시킨다.
4) 신성불가침을 대변하는 것과 소명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신성불가침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목사가 도덕적, 영적 거인이 되어야한다고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반드시 평신도들보다 인격적인 수준에서 더 거룩하고 사랑이 많고 하나님께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목사를 목사되게 하는 것은 목사의 직책 또는 역할 때문이다.
그런 실존적 지식은 교역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반영하며, 그것은 평신도와 목사 공히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는 소명과 함께 좀더 특별하게 그 가운데 얼마에게 안수교역에 들어오라는 소명을 의미한다. 목사의 소명에는 외적 소명, 즉 교회의 소명으로 그에게 목사의 직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교회가 인정하는 것과, 내적 소명 즉 신비적 소명으로 목사가 되라는 내면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 포함된다. 신비적 소명은 자기의 존재의 깊이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온다.
이런 만남 - 극적이든 점진적이든 - 은 하비투스 즉 자신의 존재와 교역실천을 구체적으로 형성해주는 기독교 신앙과 삶의 비전의 핵심에 있다. 이것은 신성불가침을 대변하는 신앙적 진정성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요, 외적인 직책 이상의 것이다. 목사의 직책뿐 아니라 목사의 인격은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한다. 목사는 직책상 신실하다고 인정받을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신실성을 가져야한다.
“전문성이 없는 소명은 무능하고 비효과적이요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소명이 없는 전문성은 생생한 동기를 부여하고 민감성과 감각을 일깨우고 자기 실현의 합당한 의식을 배양하는 도덕적, 인간적인 뿌리에 이르는 통로를 열 수 없다. 또한 소명이 없는 전문성은 우리 인간의 노력이 목적하는 바 인간성의 더 큰 목적을 쉽게 보여 주지 못한다.”-제임스 구스타프슨
그것은 생생한 소명감이 성찰적인 전문능력을 성례전적인 임재와 연결시켰을 때에 가능하다. 그럴 때에 우리는 교회의 안수받은 지도자로서의 우리의 권위의 갱신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교역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성찰적으로 교회를 지도하는 법을 배운 목사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목사는 서기관과 같지 아니하고 권세있는 자와 같이 가르친다”
제 8장.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 성찰적인 지도자
자기 생각에는 교회를 많이 성장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평신도 지도자들은 목사의 기술을 인정하면서도 영적인 깊이가 모자라다고 불평하는 교회 이야기를 회상해 보라. 평신도가 보는 그 목사의 문제점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 목사의 지도력은 전문성에 기초하였으나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의 권위는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1) 전문성과 신성성의 대변자
우리들 대부분은 교회를 지도하는 자들이나 필요시에 도움을 베푸는 자들로서의 전문성을 원한다. 전문성은 성찰적인 지도력의 실천적 또는 도구적 측면이다. 반면에 성례전적 현존은 지도력의 존재 또는 의미의 측면이다. 이 두가지는 함께 존재하며, 이 둘이 분리될 때 교회의 증거는 손상을 입는다.
* 평신도들이 성직자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주는 요소 1위 : “신앙적 진정성(religious authenticity)”
* 평신도들이 뽑은 진정성 있는 목사상 : 머리와 가슴이 하나인자, 복음을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사람인 자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 목사의 신분이 암시하는 두가지
a. 목사의 성품이나 인격적인 영성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 되는 것이 목사의 실천에 영향을 미친다.
b. 성례전적인 현존과 제사장적인 성격과의 관계, 특히 목회관계에서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 존재하는 신뢰관계-수탁자 보증에 관한 것이다.
2)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
성찰적인 지도자로서 기능을 수행하면서 이러한 역할 가운데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두 가지 수준, 즉 명시적 수준과 암시적 수준에서 나타난다.
a. 명시적 수준 : 여러 역할가운데서 목사의 인격적 전문성에 성스러운 무게를 더해준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시는 초월하신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은 우리가 교역실천에서 말하고 행하는 것에 깊이를 더해준다. 또 심리치료등과는 구별되는 목회상담의 역동성을 창출한다.
b. 암시적 수준 : 하나님의 현존을 대변하는 자로서 목사의 성례전적 위치가 기여한다. 투사와 전이의 현상들도 있다. 모사는 교인들의 가장 깊은 감정들과 미해결의 의문들과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투사하는 대상이 된다. 삶의 현장에서 신성불가침의 상징이 됨으로써 목사들은 하나님을 특정한 인간의 필요들에 가까이 계신 분으로 만들어준다.
목사가 된다는 것-삶의 현장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의 상징이 된다는 것-은 성찰적 지도력에서 전문성과 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3) 성례전적 현존과 신뢰
신성불가침의 대변자로서 목사의 상징적 지위는 권위를 행사하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목사는 가장 심각한 인생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자이다. 목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최고의 유익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며 복음에 충실하려고 애쓰면서, 교회의 최고의 덕을 위하여 헌신함으로써 위임받은 자로서의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특성들이 교회와 목사 또는 신부와의 유대관계의 성격이 될 때, 그러한 특성들은 성찰적인 지도자로서 목사의 기능향상에 중요하게 기여한다. 기꺼이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공감을 보이며, 돌봄과 자비를 표현하고, 진실을 말하며, 정의로우며, 개인과 공동체의 유익을 구하는 그러한 특성들은 일종의 “신비적인 토양”을 창조한다. 이 신비적인 토양은 공통적인 관계의 잔디밭에서 목사와 교인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토양은 치료하며 구속하며 해방시키는 목회관계를 만들어 준다. 그러한 특성들은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주는 은사들을 깨닫게 하며, 다른 사람의 성찰적인 능력들을 환기시킨다.
4) 신성불가침을 대변하는 것과 소명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신성불가침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목사가 도덕적, 영적 거인이 되어야한다고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반드시 평신도들보다 인격적인 수준에서 더 거룩하고 사랑이 많고 하나님께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목사를 목사되게 하는 것은 목사의 직책 또는 역할 때문이다.
그런 실존적 지식은 교역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반영하며, 그것은 평신도와 목사 공히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시는 소명과 함께 좀더 특별하게 그 가운데 얼마에게 안수교역에 들어오라는 소명을 의미한다. 목사의 소명에는 외적 소명, 즉 교회의 소명으로 그에게 목사의 직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교회가 인정하는 것과, 내적 소명 즉 신비적 소명으로 목사가 되라는 내면적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 포함된다. 신비적 소명은 자기의 존재의 깊이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온다.
이런 만남 - 극적이든 점진적이든 - 은 하비투스 즉 자신의 존재와 교역실천을 구체적으로 형성해주는 기독교 신앙과 삶의 비전의 핵심에 있다. 이것은 신성불가침을 대변하는 신앙적 진정성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요, 외적인 직책 이상의 것이다. 목사의 직책뿐 아니라 목사의 인격은 하나님의 현존을 상징한다. 목사는 직책상 신실하다고 인정받을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신실성을 가져야한다.
“전문성이 없는 소명은 무능하고 비효과적이요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소명이 없는 전문성은 생생한 동기를 부여하고 민감성과 감각을 일깨우고 자기 실현의 합당한 의식을 배양하는 도덕적, 인간적인 뿌리에 이르는 통로를 열 수 없다. 또한 소명이 없는 전문성은 우리 인간의 노력이 목적하는 바 인간성의 더 큰 목적을 쉽게 보여 주지 못한다.”-제임스 구스타프슨
그것은 생생한 소명감이 성찰적인 전문능력을 성례전적인 임재와 연결시켰을 때에 가능하다. 그럴 때에 우리는 교회의 안수받은 지도자로서의 우리의 권위의 갱신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교역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 성찰적으로 교회를 지도하는 법을 배운 목사들이 예수님께 들었던 것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목사는 서기관과 같지 아니하고 권세있는 자와 같이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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