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방통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문화통합론과 북한문학 공통] '고전'의 가치와 잡지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을 나름대로 서술하시오. - 월북 작가 정지용 시인의 활동상을 중심으로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문장파 예술가와 정지용
1) 문장파 예술가
2) 정지용에 대해서
2. 정지용 시의 시사적 배경
1) 모더니즘의 등장배경
2) 구인회의 조직, 활동, 성격
3. 정지용의 시 세계와 시사적 의의
1) 정지용의 시 세계
2) 정지용 시의 시사적 의의
4. 정지용 시 세계
1) 객관적 시점
(1) 초기시
(2) 중기시
(3) 후기시
2) 주관적 시점
5. 고전적 관점에서 본 시
1) 장수산
2) 호랑나뷔
6. 정지용의 시에 대한 편견과 비판
7.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
1)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
2) 문장파 예술가들이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
Ⅲ. 결론
<참고문헌>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문장파 예술가와 정지용
1) 문장파 예술가
2) 정지용에 대해서
2. 정지용 시의 시사적 배경
1) 모더니즘의 등장배경
2) 구인회의 조직, 활동, 성격
3. 정지용의 시 세계와 시사적 의의
1) 정지용의 시 세계
2) 정지용 시의 시사적 의의
4. 정지용 시 세계
1) 객관적 시점
(1) 초기시
(2) 중기시
(3) 후기시
2) 주관적 시점
5. 고전적 관점에서 본 시
1) 장수산
2) 호랑나뷔
6. 정지용의 시에 대한 편견과 비판
7.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
1) 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
2) 문장파 예술가들이 우리 문학사에 끼친 영향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시점
한때 정지용이 월북했다는(여기에 대해서는 월북인가 납북인가 하는 논란이 있다) 이유만으로 그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월북 작가들에 대한 논의가 해금되면서 우리 시사에서 실종의 위기에 놓였던 정지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30년대의 모더니즘 문학은 일제시대의 탄압으로부터의 해방구를 꿈꾸는 구실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구인회>에는 정지용이 있었다. 정지용은 흔히 모더니스트로 평가된다. 그 때문에 정지용은 전통과 단절한 채 서구 문학을 이식하는 시인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지용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30년대의 작품에만 한정시키는데서 오는 오류이다. 또한 지금까지 정지용의 시를 연구한 논문들은 형식을 분석하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정지용의 전기적 고찰을 소홀히 하였으며, 이로 인해 정지용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정지용 시의 내용적 고찰에 관한 다양한 측면의 문학 연구방법이 다각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새벽안개처럼 찾아온 광복은 이 땅의 지식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찬 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이념을 내세워 좌우로 분열되고 서로가 반목질시하는 그런 풍조가 조성되면서 그의 비극적인 행각이 비롯된 것이다. 해방 정국을 맞아 정지용은 좌익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이제 자신이 일제 강점기에 보여주었던 자기 지키기 행위였던 우리말로의 글쓰기에 만족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 시를 쓰기보다는 나라를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언론인으로서의 글쓰기와 학교 선생으로서의 가르치기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 근대 문인들의 글쓰기는 지식인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한국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정지용의 시적 편력과 글쓰기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식민 치하에서 억압당하기만 했던 시심이 해방된 조국의 넓은 공간에서 마음 놓고 활개 필 것만 같았던 그런 감격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누군가 우리 민족의 분열을 획책하고 극도의 혼란상을 조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했던 순수 시인이 이런 정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그 자신의 본행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야만 했던 것이 그 시대상황이고 보면, 정지용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했고, 비극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625전쟁과 함께 그의 생사도 가늠할 길 없이 묘연히 잠적하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월북작가>로 잘못 운명 지어져 분단국의 비극을 온통 한 몸에 안아야만 했다. 이런 민족사적 비극이 없었던들, 정지용은 천재시인으로서 1930년대의 명성을 그대로 지닌 채 누렸을 것이다.
3) 고전적 관점에서 본 시
(1) 장수산
장수산1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히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속 겨울 한밤 내
장수산2
풀도 떨지 않는 돌산이오 돌도 한덩이로 열두골을 고비고비 돌았세라 찬 하늘이 골마다 따로 씨우었고 얼음이 굳이 얼어 드딤돌이 믿음직 하이 꿩이 긔고 곰이 밟은 자옥에 나의 발도 노히노니 물소리 귀또리처럼 하놋다 피락 마락하는 해ㅅ살에 눈우에 눈이 가리어 앉다 흰시울 알에 흰시울이 눌리워 숨쉬는다 온산중 나려앉는 휙진 시울들이 다치지 안히! 나도 내더져 앉다 일즉이 진달래 꽃그림자에 붉었던 絶壁 보이한 자리 우에!
<감상>
반향과 흐름이라는 감각적 심상을 빌려 정신적 고요의 공간을 빚어내고 있는 시이다. <장수산>은 전체적으로 의식의 접점과 교묘한 울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는 장수산의 고요이며 화자의 시름은 고요하면 고요할수록 `심히 흔들리우는\' 반어적 순간에 서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동화될 수 없을 시인과 장수산, 곧 인간과 자연의 경계선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이 분리를 인간적 차원을 넘어서는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초월적 의식은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되는 동양적 자연관의 구경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지용이 이 두 편의 시를 통하여 보여주는 정신적 탐색은 몰입의 한 경계선을 완전히 타파하지 못한 채 `절벽이 보이는 자리 우에\' 멈추어 버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지용은 스스로 설정한 정신적 시련인 `고요\' 그 자체에 침잠함으로써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도달하는 대신 물아화해(物我和解)의 지점에 서게 된 것이다. 화자가 그리려는 세계는 장수산의 신비로울 정도로 고요한 세계이다. 그 세계는 희고 신비로우며 청결한 곳이다. 이 시에서 시인 정지용은 장수산을 통해서 순수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는 것 같다.
(2) 호랑나뷔
畵具(화구)를 메고 山(산)을 疊疊(첩첩) 들어간 후 이내 踪跡(종적)이 杳然(묘연)하다 丹楓(단풍)이 이울고 峰(봉)마다 찡그리고 눈이 날고 嶺(영)우에 賣店(매점)은 덧문 속문이 닫히고 三冬(삼동)내― 열리지 않었다 해를 넘어 봄이 짙도록 눈이 처마와 키가 같었다 大幅(대폭) 캔바스 우에는 木花(목화) 송이 같은 한떨기 지난해 흰 구름이 새로 미끄러지고 瀑布(폭포)소리 차즘 불고 푸른 하눌 되돌아서 오건만 구두와 안ㅅ신이 나란히 노힌채 戀愛(연애)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집집 들창마다 夕刊(석간)에 비린내가 끼치였다 博多(하카다) 胎生(태생)수수한 寡婦(과부) 흰얼골이사 淮陽(회양) 高城(고성) 사람들 끼리에도 익었건만 賣店(매점) 바깥 主人(주인)된 畵家(화가)는 이름 조차 없고 松花(송화)가루 노랗고 뻑 뻑국 고비 고사리 고부라지고 호랑나
한때 정지용이 월북했다는(여기에 대해서는 월북인가 납북인가 하는 논란이 있다) 이유만으로 그에 대한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월북 작가들에 대한 논의가 해금되면서 우리 시사에서 실종의 위기에 놓였던 정지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다. 30년대의 모더니즘 문학은 일제시대의 탄압으로부터의 해방구를 꿈꾸는 구실로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구인회>에는 정지용이 있었다. 정지용은 흔히 모더니스트로 평가된다. 그 때문에 정지용은 전통과 단절한 채 서구 문학을 이식하는 시인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지용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30년대의 작품에만 한정시키는데서 오는 오류이다. 또한 지금까지 정지용의 시를 연구한 논문들은 형식을 분석하는 데만 치중한 나머지 정지용의 전기적 고찰을 소홀히 하였으며, 이로 인해 정지용의 문학사적 위치에 대한 의문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정지용 시의 내용적 고찰에 관한 다양한 측면의 문학 연구방법이 다각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새벽안개처럼 찾아온 광복은 이 땅의 지식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세찬 바람이 몰아친 것이다. 이념을 내세워 좌우로 분열되고 서로가 반목질시하는 그런 풍조가 조성되면서 그의 비극적인 행각이 비롯된 것이다. 해방 정국을 맞아 정지용은 좌익 문학 단체인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이제 자신이 일제 강점기에 보여주었던 자기 지키기 행위였던 우리말로의 글쓰기에 만족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 시를 쓰기보다는 나라를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언론인으로서의 글쓰기와 학교 선생으로서의 가르치기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 근대 문인들의 글쓰기는 지식인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삶 그 자체였다. 그리고 한국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정지용의 시적 편력과 글쓰기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식민 치하에서 억압당하기만 했던 시심이 해방된 조국의 넓은 공간에서 마음 놓고 활개 필 것만 같았던 그런 감격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누군가 우리 민족의 분열을 획책하고 극도의 혼란상을 조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리알처럼 맑고 투명했던 순수 시인이 이런 정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그 자신의 본행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야만 했던 것이 그 시대상황이고 보면, 정지용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했고, 비극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625전쟁과 함께 그의 생사도 가늠할 길 없이 묘연히 잠적하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월북작가>로 잘못 운명 지어져 분단국의 비극을 온통 한 몸에 안아야만 했다. 이런 민족사적 비극이 없었던들, 정지용은 천재시인으로서 1930년대의 명성을 그대로 지닌 채 누렸을 것이다.
3) 고전적 관점에서 본 시
(1) 장수산
장수산1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새도 울지 않어 깊은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 간뒤 조찰히 늙은 사나히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히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속 겨울 한밤 내
장수산2
풀도 떨지 않는 돌산이오 돌도 한덩이로 열두골을 고비고비 돌았세라 찬 하늘이 골마다 따로 씨우었고 얼음이 굳이 얼어 드딤돌이 믿음직 하이 꿩이 긔고 곰이 밟은 자옥에 나의 발도 노히노니 물소리 귀또리처럼 하놋다 피락 마락하는 해ㅅ살에 눈우에 눈이 가리어 앉다 흰시울 알에 흰시울이 눌리워 숨쉬는다 온산중 나려앉는 휙진 시울들이 다치지 안히! 나도 내더져 앉다 일즉이 진달래 꽃그림자에 붉었던 絶壁 보이한 자리 우에!
<감상>
반향과 흐름이라는 감각적 심상을 빌려 정신적 고요의 공간을 빚어내고 있는 시이다. <장수산>은 전체적으로 의식의 접점과 교묘한 울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는 장수산의 고요이며 화자의 시름은 고요하면 고요할수록 `심히 흔들리우는\' 반어적 순간에 서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동화될 수 없을 시인과 장수산, 곧 인간과 자연의 경계선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는 이 분리를 인간적 차원을 넘어서는 견인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초월적 의식은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되는 동양적 자연관의 구경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지용이 이 두 편의 시를 통하여 보여주는 정신적 탐색은 몰입의 한 경계선을 완전히 타파하지 못한 채 `절벽이 보이는 자리 우에\' 멈추어 버린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정지용은 스스로 설정한 정신적 시련인 `고요\' 그 자체에 침잠함으로써 물아일체(物我一體)에 도달하는 대신 물아화해(物我和解)의 지점에 서게 된 것이다. 화자가 그리려는 세계는 장수산의 신비로울 정도로 고요한 세계이다. 그 세계는 희고 신비로우며 청결한 곳이다. 이 시에서 시인 정지용은 장수산을 통해서 순수한 삶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는 것 같다.
(2) 호랑나뷔
畵具(화구)를 메고 山(산)을 疊疊(첩첩) 들어간 후 이내 踪跡(종적)이 杳然(묘연)하다 丹楓(단풍)이 이울고 峰(봉)마다 찡그리고 눈이 날고 嶺(영)우에 賣店(매점)은 덧문 속문이 닫히고 三冬(삼동)내― 열리지 않었다 해를 넘어 봄이 짙도록 눈이 처마와 키가 같었다 大幅(대폭) 캔바스 우에는 木花(목화) 송이 같은 한떨기 지난해 흰 구름이 새로 미끄러지고 瀑布(폭포)소리 차즘 불고 푸른 하눌 되돌아서 오건만 구두와 안ㅅ신이 나란히 노힌채 戀愛(연애)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날 밤 집집 들창마다 夕刊(석간)에 비린내가 끼치였다 博多(하카다) 胎生(태생)수수한 寡婦(과부) 흰얼골이사 淮陽(회양) 高城(고성) 사람들 끼리에도 익었건만 賣店(매점) 바깥 主人(주인)된 畵家(화가)는 이름 조차 없고 松花(송화)가루 노랗고 뻑 뻑국 고비 고사리 고부라지고 호랑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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