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없음.
본문내용
서는 최고가 좋은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것이 중요하다. 최고는 부담스럽지 않나. 최고가 된다는 것은 최악으로 더 빨리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이 중요하다.
사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삶에 있어서 한 가지 목표 지점을 꼽는다면?
아직 목표가 한 가지만으로 요약될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바쁘지만 즐겁다.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백발이 성성하도록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가 만나본 마영범씨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신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그의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디자인에 있어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몇 년 전 암에 걸렸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그 후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그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기본적 본능 중 하나이고, 예술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술의 시작은 자아의 표현임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다른 형태이다. 디자인은 소비자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다는 점이 순수예술과는 많이 다르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문학과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비록 소통의 구조는 조금 다를지언정 문학도 결국은 작가와 독자의 커뮤니케이션이지 않은가. 디자인의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다소 일방향적인 측면이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지점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아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꼭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도 문학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디자인을 함에 있어 디자이너의 자아와 세계는 철저하게 용해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을 쓴다고 생각해볼 때, 소설에는 반드시 작가가 묻어나게 마련이지만 껄끄러운 알갱이가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과 융화되어있을 때에야 우리는 그 작품을 훌륭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녹아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설탕물에 설탕이 보이지 않지만 단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작가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융화되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문학에서의 중용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는 문화를 이끄는 사람이자 엄청난 문화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실은 책, 음반, 잡지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갖가지 작품들이 그의 작업실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마치 온갖 예술이 뒤섞여 용해된 듯 했다. 마영범씨의 말대로 예술의 경계는 현대에 와서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사실 글 쓰는 사람 외에는 별로 만나 볼 기회가 없는 와중에 마영범씨를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예 다른 영역, 다른 세계쯤으로 생각했던 디자인에서도 맞닿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운 점이었다. 그것이 창작, 즉 creative를 하는 사람으로서 닿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삶에 있어서 한 가지 목표 지점을 꼽는다면?
아직 목표가 한 가지만으로 요약될 수 있는 나이는 아닌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바쁘지만 즐겁다.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백발이 성성하도록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을 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가 만나본 마영범씨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신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그의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디자인에 있어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는 몇 년 전 암에 걸렸고,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그 후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그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생각이었다고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의 기본적 본능 중 하나이고, 예술 또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술의 시작은 자아의 표현임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의 다른 형태이다. 디자인은 소비자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다는 점이 순수예술과는 많이 다르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문학과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비록 소통의 구조는 조금 다를지언정 문학도 결국은 작가와 독자의 커뮤니케이션이지 않은가. 디자인의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다소 일방향적인 측면이 있지만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지점은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아가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꼭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도 문학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디자인을 함에 있어 디자이너의 자아와 세계는 철저하게 용해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을 쓴다고 생각해볼 때, 소설에는 반드시 작가가 묻어나게 마련이지만 껄끄러운 알갱이가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과 융화되어있을 때에야 우리는 그 작품을 훌륭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녹아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설탕물에 설탕이 보이지 않지만 단 맛이 느껴지는 것처럼, 작가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고 융화되어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는 것. 그것이 문학에서의 중용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는 문화를 이끄는 사람이자 엄청난 문화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실은 책, 음반, 잡지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갖가지 작품들이 그의 작업실 빈 곳을 메우고 있었다. 마치 온갖 예술이 뒤섞여 용해된 듯 했다. 마영범씨의 말대로 예술의 경계는 현대에 와서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사실 글 쓰는 사람 외에는 별로 만나 볼 기회가 없는 와중에 마영범씨를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예 다른 영역, 다른 세계쯤으로 생각했던 디자인에서도 맞닿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운 점이었다. 그것이 창작, 즉 creative를 하는 사람으로서 닿는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