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시대적 배경과 산문문학
1. 조선후기 시대적 배경 및 문학의 특징
2. 산문의 개념
3. 조선후기 산문문학의 발흥
판소리
1. 판소리의 발생과 전개
2. 판소리의 특성
3. 조선후기 대표적인 판소리 작품소개
4. 결론
수필
1. 수필의 개념 및 특성
2. 한국 고대 수필문학의 기원
3. 문자사용과 분류 따른 수필의 종류와 작품 소개
(1) 조선 후기의 한문수필
(2) 한글수필
결론
1. 조선후기 시대적 배경 및 문학의 특징
2. 산문의 개념
3. 조선후기 산문문학의 발흥
판소리
1. 판소리의 발생과 전개
2. 판소리의 특성
3. 조선후기 대표적인 판소리 작품소개
4. 결론
수필
1. 수필의 개념 및 특성
2. 한국 고대 수필문학의 기원
3. 문자사용과 분류 따른 수필의 종류와 작품 소개
(1) 조선 후기의 한문수필
(2) 한글수필
결론
본문내용
과 내일에 대한 지표가 있어야 한다.
⑥ 수필은 비전문적인 문학이다.
수필은 생활인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비전문적인 글이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개성이 드러나야만 한다.
⑦ 수필은 간결한 산문 문학이다.
수필은 간결한 것이 특징이며, 기성의 언어를 그대로 구성하여 이루어진 생활에 젖어 있는 산문으로 구성된다.
2. 한국의 수필 문학의 기원
우리나라의고대수필문학은 역사의 차이 때문에한글로된것보다는한문으로쓰인것이더많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래된 글일수록 소실도 많이 되고, 보존이 잘 된 경우가 드물어, 한글로 쓰여진 수필이 더 많이 전해지고 있다.병자호란 이전에는 한문으로 대부분의 글이 씌어졌고, 수필 또한 예외가 아닌데,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의패관문학작품들을비롯하여조선후기에있었던다수의 문집들이이에속한다.특히홍만종의<사화총림>,<순오지>,김만중의<서포만필>,박지원의<열하일기>등이유명하다.한글로된수필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이후로 크게 발달하는데. 내용으로는대개일기·기행문·내간문·기타잡필로크게나누어볼수있다.이한글수필들은조선후기에운문적인옛말투에서벗어나려는서민들의각성에서이루어졌다.한글수필에는<동명일기>,<윤씨행장>,<조침문>등이있다.
(1)우리 나라의 수필 문학의 기원
우리나라에서는 서설(書說), 증서(贈書), 잡기(雜記), 찬송(贊頌), 논변(論辯) 등의 문장으로 고려 때부터 써 왔다
. 고려 때의 학자인 이제현의 수필집이라 할 수 있는 <역옹패설>의 서문(序文)에, \"지정(至正) 임오년 여름 비가 한 달 동안 계속 왔다. 문을 닫고 들어앉으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답답함을 이길 수 없었다. 처마의 낙수를 받아 벼룻물을 삼고, 벗들 사이에 왕복한 편지 조각들을 이어붙인 다음 기록할 것을 닥치는 대로 그 종이의 배면(背面)에 적고, 그 끝에 제목(題目)을 붙여 역옹패설이라고 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역옹패설>이 오늘날의 수필과는 좀 다르다 해도 비평 의식에 의해 붓 가는 대로 쓴 글임에 틀림이 없다. 이보다 먼저 나온 이규보의 <백운소설>에서도 수필적인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수필이란 말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일신수필>에서 처음 언급되며, 이민구의 <독사수필>, 조성건의 <한거수필> 등에 그 용례가 보인다.
3. 문자사용과 분류 따른 수필의 종류와 작품 소개
(1) 조선 후기의 한문 수필
한문 수필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시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기행문 형식의 수필부터, 고려시대의 패관 문학, 각종 설 등의 수필들로 이어지며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꾸준히 수필이 쓰이는데, 조선 전기에는 운문 문학이 발달했지만, 병자호란 이후 산문 문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수필 역시 이전보다 많이 쓰이게 되었다.
한문수필의 공통적인 특징은, 문예비평적인 것이 절대적이며, 다음으로는 교훈적(유교적 도덕적)인 것이 많으며, 그리고 개성적이고 에세이적인 것이 적다는 것, 체계적인 것이 없고 단편적인 것이 많고, 일정한 구조가 없는 무형식은 일반 수필의 특성과 동일하다는 것 등은 통설로 볼 수가 있다. 한문수필은 한글수필 형식의 기반이 되어 바톤을 그에 넘겨줌으로써 차츰 쇠퇴하여 갔다. 한문수필에서는 작품 속에 잠겨 있는 선인들의 사상과 그것을 형상화한 기법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글 속에 들어있는 선인들의 우주관, 인생관을 눈여겨보아야 하며, 언뜻 보아서는 흥미로운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그 속에 작가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녹여 놓은 표현기법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한문 수필로는 16세기 초, 성현의 <용제총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 박두세의 <요로원야화기>, 18세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을 들 수 있다.
열하일기
1780년 박지원이 그의 종형인 금성위,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에 가는 도중 열하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그곳 문물제도를 목격하고 견문한 바를 각 분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연암의 대표작인 이 <열하일기>는 중국의 신문물을 망라한 서술, 그곳 실학사상의 소개로 수많은 조선시대 연경 기행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 ·습상 ·고거 ·토목 ·건축 ·선박 ·의학 ·인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문학 ·예술 ·고동 ·지리 ·천문 ·병사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었는데, 경치나 풍물 등을 단순히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 면에 중점을 두어 수많은 연행록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나는 일찌기 한사군의 땅은 요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땅히 여진에까지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그런 줄 아느냐 하면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현도나 낙랑은 있으나, 진번과 임둔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한소제(漢昭帝)의 시원(始元) 5년에 사군을 합하여 2부(府)로 하고, 원봉
(元鳳) 원년에 다시 2부를 2군(郡)으로 고쳤다. 현도 세 고을 중에 고구려현이 있고, 낙랑 스물 다섯 고을 중에 조선현이 있으며, 요동 열여덟 고을 중에 안시현이 있다. 다만 진번은 장안에서 7천리, 임둔은 장안에서 6천 1백 리에 있다. 이는 김윤(세조 때의 학자)의 이른바,
‘우리 나라 지경 안에서 이 고을들은 찾을 수 없고, 의당히 지금 영고탑 등지에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이로 본다면 진번, 임둔은 한말에 바로 부여, 읍루, 옥저에 들어간 것이니, 부여는 다섯이고 옥저는 넷이던 것이 혹 변하여 물길(勿吉)이 되고, 혹 변하여 말갈이 되며, 혹 변하여 발해가 되고, 혹 변하여 여진으로 된 것이다. 발해의 무왕 대무예가 일본의 성무왕(聖武王)에게 보낸 글월 중에,
‘고구려의 옛 터를 회복하고, 부여의 끼친 풍속을 물려 받았다.’
하였으니, 이로써 미루어 보면, 한사군의 절반은 요동에, 절반은 여진에 걸쳐 있어서, 서로 포옹하고 잇달렸은즉, 이는 본시 우리의 폭원(幅員)안에 있었음은 더욱 명확한 일이다.
그런데 한의 이후로, 중국에서 말하는 패수가 어딘지 일정하지 못하고, 또 우리나라 선비들은 반드시 지금의 평양으로써 표준을 삼아서 이러쿵저러쿵 패수의 자리를 ょ는다. 이는 다름 아니라
⑥ 수필은 비전문적인 문학이다.
수필은 생활인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비전문적인 글이다. 그러나 사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개성이 드러나야만 한다.
⑦ 수필은 간결한 산문 문학이다.
수필은 간결한 것이 특징이며, 기성의 언어를 그대로 구성하여 이루어진 생활에 젖어 있는 산문으로 구성된다.
2. 한국의 수필 문학의 기원
우리나라의고대수필문학은 역사의 차이 때문에한글로된것보다는한문으로쓰인것이더많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래된 글일수록 소실도 많이 되고, 보존이 잘 된 경우가 드물어, 한글로 쓰여진 수필이 더 많이 전해지고 있다.병자호란 이전에는 한문으로 대부분의 글이 씌어졌고, 수필 또한 예외가 아닌데, 고려시대와 조선전기의패관문학작품들을비롯하여조선후기에있었던다수의 문집들이이에속한다.특히홍만종의<사화총림>,<순오지>,김만중의<서포만필>,박지원의<열하일기>등이유명하다.한글로된수필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이후로 크게 발달하는데. 내용으로는대개일기·기행문·내간문·기타잡필로크게나누어볼수있다.이한글수필들은조선후기에운문적인옛말투에서벗어나려는서민들의각성에서이루어졌다.한글수필에는<동명일기>,<윤씨행장>,<조침문>등이있다.
(1)우리 나라의 수필 문학의 기원
우리나라에서는 서설(書說), 증서(贈書), 잡기(雜記), 찬송(贊頌), 논변(論辯) 등의 문장으로 고려 때부터 써 왔다
. 고려 때의 학자인 이제현의 수필집이라 할 수 있는 <역옹패설>의 서문(序文)에, \"지정(至正) 임오년 여름 비가 한 달 동안 계속 왔다. 문을 닫고 들어앉으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답답함을 이길 수 없었다. 처마의 낙수를 받아 벼룻물을 삼고, 벗들 사이에 왕복한 편지 조각들을 이어붙인 다음 기록할 것을 닥치는 대로 그 종이의 배면(背面)에 적고, 그 끝에 제목(題目)을 붙여 역옹패설이라고 쓴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역옹패설>이 오늘날의 수필과는 좀 다르다 해도 비평 의식에 의해 붓 가는 대로 쓴 글임에 틀림이 없다. 이보다 먼저 나온 이규보의 <백운소설>에서도 수필적인 문장을 찾아볼 수 있다. 수필이란 말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일신수필>에서 처음 언급되며, 이민구의 <독사수필>, 조성건의 <한거수필> 등에 그 용례가 보인다.
3. 문자사용과 분류 따른 수필의 종류와 작품 소개
(1) 조선 후기의 한문 수필
한문 수필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라시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기행문 형식의 수필부터, 고려시대의 패관 문학, 각종 설 등의 수필들로 이어지며 존재한다. 조선시대에도 역시 꾸준히 수필이 쓰이는데, 조선 전기에는 운문 문학이 발달했지만, 병자호란 이후 산문 문학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수필 역시 이전보다 많이 쓰이게 되었다.
한문수필의 공통적인 특징은, 문예비평적인 것이 절대적이며, 다음으로는 교훈적(유교적 도덕적)인 것이 많으며, 그리고 개성적이고 에세이적인 것이 적다는 것, 체계적인 것이 없고 단편적인 것이 많고, 일정한 구조가 없는 무형식은 일반 수필의 특성과 동일하다는 것 등은 통설로 볼 수가 있다. 한문수필은 한글수필 형식의 기반이 되어 바톤을 그에 넘겨줌으로써 차츰 쇠퇴하여 갔다. 한문수필에서는 작품 속에 잠겨 있는 선인들의 사상과 그것을 형상화한 기법에 주목해야할 것이다. 글 속에 들어있는 선인들의 우주관, 인생관을 눈여겨보아야 하며, 언뜻 보아서는 흥미로운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그 속에 작가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녹여 놓은 표현기법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한문 수필로는 16세기 초, 성현의 <용제총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 박두세의 <요로원야화기>, 18세기,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을 들 수 있다.
열하일기
1780년 박지원이 그의 종형인 금성위, 박명원을 따라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에 가는 도중 열하의 문인들과 사귀고, 연경의 명사들과 교유하며 그곳 문물제도를 목격하고 견문한 바를 각 분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연암의 대표작인 이 <열하일기>는 중국의 신문물을 망라한 서술, 그곳 실학사상의 소개로 수많은 조선시대 연경 기행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 ·지리 ·풍속 ·습상 ·고거 ·토목 ·건축 ·선박 ·의학 ·인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문학 ·예술 ·고동 ·지리 ·천문 ·병사 등에 걸쳐 수록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상세히 기술되었는데, 경치나 풍물 등을 단순히 묘사한 데 그치지 않고 이용후생 면에 중점을 두어 수많은 연행록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나는 일찌기 한사군의 땅은 요동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마땅히 여진에까지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그런 줄 아느냐 하면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현도나 낙랑은 있으나, 진번과 임둔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한소제(漢昭帝)의 시원(始元) 5년에 사군을 합하여 2부(府)로 하고, 원봉
(元鳳) 원년에 다시 2부를 2군(郡)으로 고쳤다. 현도 세 고을 중에 고구려현이 있고, 낙랑 스물 다섯 고을 중에 조선현이 있으며, 요동 열여덟 고을 중에 안시현이 있다. 다만 진번은 장안에서 7천리, 임둔은 장안에서 6천 1백 리에 있다. 이는 김윤(세조 때의 학자)의 이른바,
‘우리 나라 지경 안에서 이 고을들은 찾을 수 없고, 의당히 지금 영고탑 등지에
있었을 것이다.‘
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이로 본다면 진번, 임둔은 한말에 바로 부여, 읍루, 옥저에 들어간 것이니, 부여는 다섯이고 옥저는 넷이던 것이 혹 변하여 물길(勿吉)이 되고, 혹 변하여 말갈이 되며, 혹 변하여 발해가 되고, 혹 변하여 여진으로 된 것이다. 발해의 무왕 대무예가 일본의 성무왕(聖武王)에게 보낸 글월 중에,
‘고구려의 옛 터를 회복하고, 부여의 끼친 풍속을 물려 받았다.’
하였으니, 이로써 미루어 보면, 한사군의 절반은 요동에, 절반은 여진에 걸쳐 있어서, 서로 포옹하고 잇달렸은즉, 이는 본시 우리의 폭원(幅員)안에 있었음은 더욱 명확한 일이다.
그런데 한의 이후로, 중국에서 말하는 패수가 어딘지 일정하지 못하고, 또 우리나라 선비들은 반드시 지금의 평양으로써 표준을 삼아서 이러쿵저러쿵 패수의 자리를 ょ는다. 이는 다름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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