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환상 [파시즘 후기자본주의 탈근대 - 향락에서 탈주로][모나드적 환상 나르시시즘적 자아 환상을 통한 유대][후기자본주의의 마법과 이데올로기적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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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포스트모더니즘과 환상 [파시즘 후기자본주의 탈근대 - 향락에서 탈주로][모나드적 환상 나르시시즘적 자아 환상을 통한 유대][후기자본주의의 마법과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시시즘적 자아가 소설에 등장했다.
나르시시즘적 인격이란 외부세계에서 애정의 대상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심리적 성향을 말한다. 예컨대《아담이 눈뜰 때》에서, 사적 가치에만 몰입된 은선은 물론 섹스를 고독의 형식으로 삼는 현재는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짜 낙원’에서 그들과 관계를 맺는 아담 역시 그와 별반 차이를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소설의 인물들은 서구 소비문화에 만연된 불성실하고 병적인 나르시시스트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특성을 보여준다. 인물들의 무의식 속에 진정한 사랑과 유대에 대한 향수가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아담이 눈뜰 때》의 아담이 제도권에 편입되는 대학입학을 포기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를 넘어서는 청년의 정신을 은밀히 암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인물들은 나르시시즘적 심리 속에 유대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무의식 속에 잔존하는 사랑과 화해의 소망이 환상으로 연출되며 현실 속 인물과의 진정한 유대가 표현되는 소설도 있다. 이런 환상은 나르시시즘적 환상이나 이데올로기적 환상과는 달리 실재계와의 접촉 속에서 진정한 유대를 암시한다. 현실의 타인에게 소통됨으로써 진정한 소통이 불가능한 현실 (상징계)에 대한 전복적 힘을 직접 드러낸다. 모더니즘의 환상은 모나드적 현실의 음화로 귀결되지만, 이 포스트모던적 환상은 나르시시즘을 넘어서는 상호주체적 공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웰컴 투 동막골>은 합리적 코드로 된 현실의 균열지점 (환상을 포함한)과 또 다른 코드의 세계가 겹쳐지며 복수코드화의 방식으로 진정한 유대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3. 후기자본주의의 마법과 이데올로기적 환상
후기자본주의의 마법이란 상부구조 영역(문화, 지식, 욕망)마저 용해시키는 무서운 속도의 자본의 운동에 의한 환상을 말한다. 자본주의의 가속도는 실재계적 영역을 자본주의의 상징계로 전이시키는 끝없는 과정이다. 이 엄청난 가속도는 자본주의의 균열지점에서 실재계와 대면하는 소설과 진보적 사유, 탈주의 욕망 등과 반대되는 운동 과정으로 그것들이 틈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대신 실재계를 자본주의 상징계로 전이시키는 과정에서 현란한 지각 매체와 시뮬라크르, 상품 이미지 등을 통해 성찰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환상을 연출한다. 따라서 현실은 성찰의 매체마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적 마법에 의해 직접 접근된다.
이 같은 자본주의의 환상의 작용은 자본의 운동이 미지의 영역(실재계)으로부터 향락이 방사되도록 하는 잉여향락을 통해 실감된다. 예컨대 엄청난 속도의 디지털 매체의 진화는 그 신상품이 열어주는 미지의 세계를 환상적이게 받아들이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잉여향락에 의해 열린 자본주의 체계는 그 운동의 결과로 닫히며 그 순간 체계의 모순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의해 은폐된다. 이것이 변혁운동의 욕망(소설의 욕망)과는 반대되는 자본주의의 영구적 혁명이다.
후기자본주의 시대에도 (모더니즘시대의)사람들의 낯선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환상적인 시뮬라크르들에 둘러싸여 그것이 감춰지고 비판적 사고가 마비될 뿐이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 환상 속에서 거짓 화해를 연출한다. 잉여향락과 욕망의 시대가 사람들의 유대의 열정을 ‘거세’시켜 더욱 ‘낯선 두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주의의 마법은 동화적 마법과 결합한다.
후기자본주의의 동화는 실제로 욕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울분이 향락을 훔쳐간 사람들에게 쏠리도록 전개된다. 아이들의 동화 <백설공주>의 왕비는 향락을 훔치고 있는 사람이며 후기자본주의의 사회주의자 불법시위자 악플네티즌 등에 대응된다. 자본주의의 마법은 그런 마녀들을 제거하고 잉여향락을 방출하여 왕궁과도 같은 사회를 만들 것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제공한다. 어른들은 낯선 두려움을 잊기 위해 삶 자체의 영역에서 연출되는 환상인 동시에 현실인 ‘현실의 동화’에 빠져든다. 후기자본주의의 동화는 끝없는 자기갱신이 필요한 자본주의 현실에서 전개된다. 이 같은 끝없는 서사적 자기갱신이 없다면 향락의 유혹이 없는 (자본주의적) 현실은 더 이상 환상적 서사로 연출될 수 없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처럼 끝없이 새롭게 반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백설공주>와 달리 후기자본주의의 동화는 사람들의 성찰적 사고를 완전히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환상적으로 발전해도 여전히 가난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환상적 시뮬라크르가 끝없이 연출되는 이미지 사회에서 그들은 환상과 환멸의 동거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삶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 실재계와 접촉하려는 열망을 느낄 뿐이다. 성찰적 사고를 소멸시키는 이미지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소설(리얼리즘)은 더 이상 쓰여지기 어려워졌다. 대신 사람들이 환상과 환멸의 동거 속에 살아가면서 가끔 실재계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그린 포스트모던 소설이 우리 시대에 겨우 살아남은 서사미학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소설 - 배수아의 <프린세스 안나>
배수아의 <프린세스 안나>에서는 디즈니의 스노 화이트가 동화가 아닌 현실 자체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주문을 걸듯이 어린 딸들을 프린세스가 왕자와 결혼하는 판타지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나 안나는 성장하면서 어릴 때 모르던 우울과 슬픔을 알게 된다. 성장한다는 것은 그처럼 판타지에 초대되는 동시에 실제로는 불행 속에서 결코 프린세스가 될 수 없다는 환멸에 이르는 과정이다. <프린세스 안나>의 여자들은 매번 환멸로 귀결되는 판타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것은 현실의 삶이 후기자본주의의 환상적 시뮬라크르들로 에워싸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서사가 사라진 1990년대 이후의 빈 공간을 가상공간과 판타지가 점령해버린 것이다.
소설적 사유를 실종시키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현실에 대한 대응물이 아마 이미지 소설일 것이다. 이미지 소설은 화려한 이미지 사회의 외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울한 삶을 그리는데, 여기에서는 쓸쓸한 환멸의 경험마저 이미지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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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02
  • 저작시기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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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42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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