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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본문내용
월에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완전한 삶의 목적은 이룰 수 없었고 이것은 기녀의 신분상 한계이기도 합니다. 황진이 역시 이 시에서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푸른 하늘에 던져버린다는 것은 버려짐이 아니라 높고 푸른 하늘로의 도약을 의미하며, 이것은 새로운 만남 속에서 이별을 극복하려는 삶의 자세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특별한 존재
이와 같이 황진이는 시조를 통하여 자신의 문학적 서사를 잘 드러내었는데 이처럼 이별을 담담히 받아드리고 순응하는 시조가 있는 반면, 또 어떤 시조들은 그녀의 당당함이나 자아발견의 시조도 있습니다. 위에 시조 중에서도 영반월은 자신을 곤륜산의 옥으로 비교하면서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다른 시조에서도 비록 자신은 하찮은 기생이고 이별을 받아드려야 하는 존재이지만 오히려 자신은 아무나 만나지 못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시조도 있습니다.
<소백주>
汎彼中流小柏舟 강 복판에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배,
幾年閑繫碧波頭 몇 해나 푸른 물가에 한가히 매였던가.
後人若問誰先渡 누가 먼저 건넜느냐고 뒷사람이 물으면,
文武兼全萬戶侯 文武를 모두 갖춘 萬戶侯라 대답하리.
<해석>
황진이는 작은 잣나무 배를 보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녀로서 늘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온 삶이지만 황진이는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당당한 삶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배는 몇 해나 푸른 물가에 한가히 매여 있지만 아무나 탈 수 있는 배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아닌 특별한 존재만이 이 배를 탈 수 있으며, 자신을 매어 있는 배에 비유한 황진이는 자신의 존재도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비록 자신을 조그만 나무배에 비유하였으나 시의 전체적인 내용에는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이 엿 보입니다. 훗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너갔느냐’고 묻는다면 자존심이 강한 소백주(小栢舟)는 ‘문무(文武)를 함께 갖춘 만호후(萬戶侯)라 하리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3)인격적 성숙
또 다른 시조는 황진이 자신의 인격적 성장을 나타내는 시조도 있는데 이 시조는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어떠한 사람을 만나냐의 따라서 인격적 수양이 가능하며 강압적인 만남이 아닌 자유분방한 만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언제 무신여>
내 언제 無信여 님을 언 소겻관대
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업
秋風에 지 닙소
(2)특별한 존재
이와 같이 황진이는 시조를 통하여 자신의 문학적 서사를 잘 드러내었는데 이처럼 이별을 담담히 받아드리고 순응하는 시조가 있는 반면, 또 어떤 시조들은 그녀의 당당함이나 자아발견의 시조도 있습니다. 위에 시조 중에서도 영반월은 자신을 곤륜산의 옥으로 비교하면서 특별한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다른 시조에서도 비록 자신은 하찮은 기생이고 이별을 받아드려야 하는 존재이지만 오히려 자신은 아무나 만나지 못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시조도 있습니다.
<소백주>
汎彼中流小柏舟 강 복판에 떠 있는 조그만 잣나무배,
幾年閑繫碧波頭 몇 해나 푸른 물가에 한가히 매였던가.
後人若問誰先渡 누가 먼저 건넜느냐고 뒷사람이 물으면,
文武兼全萬戶侯 文武를 모두 갖춘 萬戶侯라 대답하리.
<해석>
황진이는 작은 잣나무 배를 보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녀로서 늘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온 삶이지만 황진이는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당당한 삶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배는 몇 해나 푸른 물가에 한가히 매여 있지만 아무나 탈 수 있는 배가 아니다. 보통 사람이 아닌 특별한 존재만이 이 배를 탈 수 있으며, 자신을 매어 있는 배에 비유한 황진이는 자신의 존재도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비록 자신을 조그만 나무배에 비유하였으나 시의 전체적인 내용에는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이 엿 보입니다. 훗날 뒷사람이 ‘누가 먼저 건너갔느냐’고 묻는다면 자존심이 강한 소백주(小栢舟)는 ‘문무(文武)를 함께 갖춘 만호후(萬戶侯)라 하리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3)인격적 성숙
또 다른 시조는 황진이 자신의 인격적 성장을 나타내는 시조도 있는데 이 시조는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어떠한 사람을 만나냐의 따라서 인격적 수양이 가능하며 강압적인 만남이 아닌 자유분방한 만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언제 무신여>
내 언제 無信여 님을 언 소겻관대
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업
秋風에 지 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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