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Ι. 머리말
Ⅱ. 고구려 관모 연구현황
1. 관모의 지역적 분포현황
2. 관모의 분류
3.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 관모
4. 성별에 따른 관모
Ⅲ. 고구려 관모의 영향관계
1. 중국과의 영향관계
2. 신라와의 영향관계
3. 기타
Ⅳ. 맺음말
Ⅱ. 고구려 관모 연구현황
1. 관모의 지역적 분포현황
2. 관모의 분류
3.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 관모
4. 성별에 따른 관모
Ⅲ. 고구려 관모의 영향관계
1. 중국과의 영향관계
2. 신라와의 영향관계
3. 기타
Ⅳ. 맺음말
본문내용
지배신분층의 전유물 이였으며 예외적으로 예술인의 착용사례가 확인될 뿐이다. 반면 조우 장식이 없는 변은 피지배층의 관모로 착용되었다.
(3)건
건은 집안지역의 무용총과 평양지역의 장천1호분·안악3호분·약수리고분·덕흥리고분·팔청리고분·대안리1호분·수산리고분·안악1호분·쌍영총에서 확인된다. 고부변 착용 인물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안악3호분 후실 동벽무악원에서 보이는 무용인의 건은 다른 벽화에서 확인되지 않는 특이한 무늬의 건으로 볼 수 있는데 붉은 점무늬가 있는 머리 수건처럼 보인다. 독특한 머리수건과 더불어 높은 콧대의 외모로 보아 서역계 사람으로 추측된다.
건의 형태는 검은색 천을 머리에 두르고 후두부 아래에서 모아 묶은 후 남은 척을 뒤로 늘인 모습이다. <그림25~28>.
건의 착용신분층은 피지배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하급 시자와 악대·무용인·곡예인과 같은 예능인의 착용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지배층의 경우기수와 관련된 인물에서 많이 확인되지만, 팔청리 고분과 수산리 고분에서는 기수와 관련 없는 정사도에서도 확인된다. 집안과 평양지역 벽화에서 건을 착용한 신분층의 범위를 비교해 볼 때, 집안지역은 수렵인과 일부 시중, 곡예인에 불과한 반면 평양지역은 다양한 범주의 신분층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건은 평양지역에서 보다 애호된 것으로 판단된다.
(4) 책(개책, 평상책)
책은 수건을 머리에 질끈 매는 건의 형태에서 생겨난 듯하다. 머리가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는 것을 방지하거나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하여 머리 위에 테를 돌리는 고정시키는 수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주로 문관이나 무관의 의례용 모자로 사용되었으며 대체로 3종류의 책으로 구분된다. 문관용 책(개책) <그림30~32>은 앞부분이 테두리보다 약간 높으며 그 뒷부분이 한층 높아진 형태로 앞부분이 테두리보다 약간 높으며 그 뒷부분이 한층 높아진 형태로 앞부분이 모자 테보다 한 단 높고, 높은 뒷부분이 두 가닥으로 갈라지면서 구부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의 책은 안악3호분의 기실(記室), 성사(省事), 문하배(門下拜)와 안악3호분에 그려진 대 행렬도에서 나타나는데 일부분을 살펴보면 뒤 운두가 솟은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책(평상책)에 쓰인 색깔로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데 말을 탄 무관은 검은 책을, 어깨에 도끼를 걸치고 걸어가는 무관<그림39>은 붉은 책(평상책)을 썼다. 그리고 어깨에 활을 걸친 채 걷고 있는 오른쪽의 무관은 검은 책을 쓰고 있어 주로 색깔에 따라 무관 내의 신분 및 지위의 차이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대체로 하급 무관이 붉은 책을 썼던 것으로 나타났다.「후한서」에 대가·주부는 책을 쓰고, 소가는 절풍을 썼다고 하니, 책은 절풍보다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한 것이다.
책은 우리 쓰개 중에서도 민족정 특성이 강한 것으로서, 중국의 책<그림41,42>과는 달리 애초부터 독립적인 관모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책은 중국의 책에 비하여 보다 경쾌한 형상으로 고구려 독자의 특징을 보인다. 중국에서는 용도(用途)와 신분에 따라 책의 색을 구분한 예가 있는데, 고구려 벽화에는 대부분 흑색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안악3호분에 적색의 책이 나타나 있어 색깔에 의한 신분상의 차이는 고구려의 책에도 반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책은 안악 3호분<그림33~40>, 평양 역전고분, 감신총, 약수리 고분, 덕흥리고분<그림36,37,38>, 팔청리 고분, 대안리1호분에서 확인된다.
(5) 라관(백라관, 청라관, 비라관)
백라관
왕은 5채로 된 옷을 입고 왕은 5채로 된 옷을 입고 흰색 라(羅)로 만든 관을 쓰며 가죽으로 된 허리띠에는 모두 금테(금단추)를 두른다. 대신은 청색 라(羅)로 만든 관을 쓰고 그 다음은 진홍색 라로 만든 관을 쓰는데, 두 개의 새 깃을 꽂고 금테(금단추)와 은테(은단추)를 섞어 두른다. (구당서 권220열)<그림46>
이 두 기록의 내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라관 의 모습이 확인된다. 고구려 왕의 관은 흰색 라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금으로 테를 두르거나 금장식 단추로 장식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혜문관(惠文冠)등은 매우 성근 사(紗)로 만들었고 안악3호 고분벽화 등에서 그물로 보여지나, 고구려에서는 비교적 고운 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안악3호 고분벽화의 주인공이 쓴 백라관은 그물로 표현되지 않았다. 왕의 관은 그 실제 예가 안악3호분 고분벽화 주인공에서 확인된다. 안악3호 고분 벽화에서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쓴 관을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흑색의 책 위의 흰색의 라로 만든 덧 관을 쓰고 있는데, 관의 앞이마 부분에는 금색의 테두리가 둘러져 있고 이 테는 또다시 이(耳)의 가운데 부분에서 위로 연결되어 있다. 관의 끈이 귀의 뒷부분으로부터 내려와 턱에서 묶어져 포(袍)의 옷고름 위까지 내려와 있는데, 끈의 끝부분은 큰 단추모양의 화려한 장식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중국의 경우 무관이 쓴 관에 연결된 끈들은 5촌(寸)(약15cm)으로 제한하였다. 이 같은 요소들은 안악3호 고분 벽화에 보이는 주인공이 쓴 관이 고구려왕이 쓴 백라관임을 알게 한다.
② 청라관, 비라관
대신은 청색 라로 만든 관을 쓰고, 그 다음 관리는 진홍색 라로 만든 골소(骨素)를 쓰는데 두 개 의 새 깃을 꽂고 금테와 은테 또는 금장식 단추나 은장식 단추를 섞어 둘렀다.
「구당서(舊唐書)」고려전에는 ‘옷에 복식을 하되 왕만은 오색 비단을 사용하고 관은 비단 백라(百羅)로 만들었고 더욱 관과 띠에 금장식을 하였으며 벼슬이있는 귀한 사람은 청라(靑羅)로 만들어 썼고 다음은 역시 비단으로 비라(緋羅)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새 날개를 꽂았으며 금은 장식을 하였다.’ 고 하였다.(구당서, 권199열전 고려전)
덕흥리 고분벽화나 쌍영총 주인공의 청라관이 섬세한 그물로 표현되는 것은 왕관인 백라관 보다 성근 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34) <그림48,51>
고구려 남자들은 공사(公事)로 모일 적에 신분에 따라 비단, 금, 은, 등으로 만들거나 장식한 관모를 착용했다. 대개 고구려의 왕은 백라관, 관직이 높은 사람은 청라관, 그 다음은 비라관을
(3)건
건은 집안지역의 무용총과 평양지역의 장천1호분·안악3호분·약수리고분·덕흥리고분·팔청리고분·대안리1호분·수산리고분·안악1호분·쌍영총에서 확인된다. 고부변 착용 인물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안악3호분 후실 동벽무악원에서 보이는 무용인의 건은 다른 벽화에서 확인되지 않는 특이한 무늬의 건으로 볼 수 있는데 붉은 점무늬가 있는 머리 수건처럼 보인다. 독특한 머리수건과 더불어 높은 콧대의 외모로 보아 서역계 사람으로 추측된다.
건의 형태는 검은색 천을 머리에 두르고 후두부 아래에서 모아 묶은 후 남은 척을 뒤로 늘인 모습이다. <그림25~28>.
건의 착용신분층은 피지배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하급 시자와 악대·무용인·곡예인과 같은 예능인의 착용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지배층의 경우기수와 관련된 인물에서 많이 확인되지만, 팔청리 고분과 수산리 고분에서는 기수와 관련 없는 정사도에서도 확인된다. 집안과 평양지역 벽화에서 건을 착용한 신분층의 범위를 비교해 볼 때, 집안지역은 수렵인과 일부 시중, 곡예인에 불과한 반면 평양지역은 다양한 범주의 신분층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건은 평양지역에서 보다 애호된 것으로 판단된다.
(4) 책(개책, 평상책)
책은 수건을 머리에 질끈 매는 건의 형태에서 생겨난 듯하다. 머리가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는 것을 방지하거나 머리를 단정하게 하기 위하여 머리 위에 테를 돌리는 고정시키는 수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주로 문관이나 무관의 의례용 모자로 사용되었으며 대체로 3종류의 책으로 구분된다. 문관용 책(개책) <그림30~32>은 앞부분이 테두리보다 약간 높으며 그 뒷부분이 한층 높아진 형태로 앞부분이 테두리보다 약간 높으며 그 뒷부분이 한층 높아진 형태로 앞부분이 모자 테보다 한 단 높고, 높은 뒷부분이 두 가닥으로 갈라지면서 구부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의 책은 안악3호분의 기실(記室), 성사(省事), 문하배(門下拜)와 안악3호분에 그려진 대 행렬도에서 나타나는데 일부분을 살펴보면 뒤 운두가 솟은 책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책(평상책)에 쓰인 색깔로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데 말을 탄 무관은 검은 책을, 어깨에 도끼를 걸치고 걸어가는 무관<그림39>은 붉은 책(평상책)을 썼다. 그리고 어깨에 활을 걸친 채 걷고 있는 오른쪽의 무관은 검은 책을 쓰고 있어 주로 색깔에 따라 무관 내의 신분 및 지위의 차이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대체로 하급 무관이 붉은 책을 썼던 것으로 나타났다.「후한서」에 대가·주부는 책을 쓰고, 소가는 절풍을 썼다고 하니, 책은 절풍보다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한 것이다.
책은 우리 쓰개 중에서도 민족정 특성이 강한 것으로서, 중국의 책<그림41,42>과는 달리 애초부터 독립적인 관모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책은 중국의 책에 비하여 보다 경쾌한 형상으로 고구려 독자의 특징을 보인다. 중국에서는 용도(用途)와 신분에 따라 책의 색을 구분한 예가 있는데, 고구려 벽화에는 대부분 흑색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안악3호분에 적색의 책이 나타나 있어 색깔에 의한 신분상의 차이는 고구려의 책에도 반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책은 안악 3호분<그림33~40>, 평양 역전고분, 감신총, 약수리 고분, 덕흥리고분<그림36,37,38>, 팔청리 고분, 대안리1호분에서 확인된다.
(5) 라관(백라관, 청라관, 비라관)
백라관
왕은 5채로 된 옷을 입고 왕은 5채로 된 옷을 입고 흰색 라(羅)로 만든 관을 쓰며 가죽으로 된 허리띠에는 모두 금테(금단추)를 두른다. 대신은 청색 라(羅)로 만든 관을 쓰고 그 다음은 진홍색 라로 만든 관을 쓰는데, 두 개의 새 깃을 꽂고 금테(금단추)와 은테(은단추)를 섞어 두른다. (구당서 권220열)<그림46>
이 두 기록의 내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라관 의 모습이 확인된다. 고구려 왕의 관은 흰색 라로 만들어지고 그 위에 금으로 테를 두르거나 금장식 단추로 장식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의 혜문관(惠文冠)등은 매우 성근 사(紗)로 만들었고 안악3호 고분벽화 등에서 그물로 보여지나, 고구려에서는 비교적 고운 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안악3호 고분벽화의 주인공이 쓴 백라관은 그물로 표현되지 않았다. 왕의 관은 그 실제 예가 안악3호분 고분벽화 주인공에서 확인된다. 안악3호 고분 벽화에서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쓴 관을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흑색의 책 위의 흰색의 라로 만든 덧 관을 쓰고 있는데, 관의 앞이마 부분에는 금색의 테두리가 둘러져 있고 이 테는 또다시 이(耳)의 가운데 부분에서 위로 연결되어 있다. 관의 끈이 귀의 뒷부분으로부터 내려와 턱에서 묶어져 포(袍)의 옷고름 위까지 내려와 있는데, 끈의 끝부분은 큰 단추모양의 화려한 장식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중국의 경우 무관이 쓴 관에 연결된 끈들은 5촌(寸)(약15cm)으로 제한하였다. 이 같은 요소들은 안악3호 고분 벽화에 보이는 주인공이 쓴 관이 고구려왕이 쓴 백라관임을 알게 한다.
② 청라관, 비라관
대신은 청색 라로 만든 관을 쓰고, 그 다음 관리는 진홍색 라로 만든 골소(骨素)를 쓰는데 두 개 의 새 깃을 꽂고 금테와 은테 또는 금장식 단추나 은장식 단추를 섞어 둘렀다.
「구당서(舊唐書)」고려전에는 ‘옷에 복식을 하되 왕만은 오색 비단을 사용하고 관은 비단 백라(百羅)로 만들었고 더욱 관과 띠에 금장식을 하였으며 벼슬이있는 귀한 사람은 청라(靑羅)로 만들어 썼고 다음은 역시 비단으로 비라(緋羅)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새 날개를 꽂았으며 금은 장식을 하였다.’ 고 하였다.(구당서, 권199열전 고려전)
덕흥리 고분벽화나 쌍영총 주인공의 청라관이 섬세한 그물로 표현되는 것은 왕관인 백라관 보다 성근 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34) <그림48,51>
고구려 남자들은 공사(公事)로 모일 적에 신분에 따라 비단, 금, 은, 등으로 만들거나 장식한 관모를 착용했다. 대개 고구려의 왕은 백라관, 관직이 높은 사람은 청라관, 그 다음은 비라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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