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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본문내용
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책이다. 흔히들 역사를 승리한 자들의 역사라고 하여, 2차 세계대전 당시 패배한 히틀러에 대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서, 나의투쟁을 조금 읽어 보았는데 사람들이 괜히 히틀러를 욕하고, 치욕적인 인물로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현대 역사에서 표현하는 거의 모든, 히틀러 비판에 대한 이유가, 사실상 이 책에도 담겨져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Fig. 히틀러의 ‘나의 투쟁’
“유대인은 어제의 일은 모두 잊고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낡고 불법적인 것만을 되풀이한다. (중략) 이 악마와도 같은 유혹자의 교활성에 의한 우리들의 희생물을 누가 저주할 수 잇겠는가? 이 궤변적인 거짓말에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곤란한 일이었던가!”
“그러므로 나는 오늘날 내가 유대인과 투쟁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뜻이라고 믿으며 동시에 나의 주의 일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확신한다.”
“양쪽이 아주 똑같지 않은 두 생물이 교배하면 언제나 양자의 중간 정도의 것이 탄생하며 그 혼합종은 낮은 쪽 어버이보다는 우수하나 높은 쪽 어버이보다는 열등하다.”
‘나의 투쟁‘에 있는 글을 몇 가지 인용해봤는데, 히틀러의 인종 차별주의적인 생각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글귀이다. 특히 위의 인용문들은 히틀러가 얼마나 유대인을 증오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히틀러가 집권 전, 옥중에서 쓴 글로 히틀러가 직접적으로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들을 학살하기 전의 히틀러의 망상이라고만 생각할 수 도 있으나, 히틀러는 위의 생각들을 집권이 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잔악성을 보여주었다.
2)아우슈비츠 수용소 사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은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 나치 학살의 생생한 현장으로 400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스실, 철벽, 군영, 고문실 등이 있다.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인 하인리히 힘러가 주동이 되어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그 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었으며, 1942년부터 대학살을 시작하였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 이처럼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다. 희생자의 유품은 재활용품으로 사용했고, 장신구는 물론 금니까지 뽑아 금괴로 만들었으며, 머리카락을 모아 카펫을 짰다. 뼈는 갈아서 골분비료로까지 썼으니 사람의 몸뚱이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우슈비츠에 관련된 영화를 한편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는데, 위의 자료에서 표현하듯이 위생시설이라 강조하는 샤워실로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가, 처음에는 물로
Fig. 히틀러의 ‘나의 투쟁’
“유대인은 어제의 일은 모두 잊고서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낡고 불법적인 것만을 되풀이한다. (중략) 이 악마와도 같은 유혹자의 교활성에 의한 우리들의 희생물을 누가 저주할 수 잇겠는가? 이 궤변적인 거짓말에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곤란한 일이었던가!”
“그러므로 나는 오늘날 내가 유대인과 투쟁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뜻이라고 믿으며 동시에 나의 주의 일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확신한다.”
“양쪽이 아주 똑같지 않은 두 생물이 교배하면 언제나 양자의 중간 정도의 것이 탄생하며 그 혼합종은 낮은 쪽 어버이보다는 우수하나 높은 쪽 어버이보다는 열등하다.”
‘나의 투쟁‘에 있는 글을 몇 가지 인용해봤는데, 히틀러의 인종 차별주의적인 생각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글귀이다. 특히 위의 인용문들은 히틀러가 얼마나 유대인을 증오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히틀러가 집권 전, 옥중에서 쓴 글로 히틀러가 직접적으로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들을 학살하기 전의 히틀러의 망상이라고만 생각할 수 도 있으나, 히틀러는 위의 생각들을 집권이 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잔악성을 보여주었다.
2)아우슈비츠 수용소 사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은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 나치 학살의 생생한 현장으로 400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스실, 철벽, 군영, 고문실 등이 있다.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인 하인리히 힘러가 주동이 되어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를 세웠다. 그 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었으며, 1942년부터 대학살을 시작하였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 이처럼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다. 희생자의 유품은 재활용품으로 사용했고, 장신구는 물론 금니까지 뽑아 금괴로 만들었으며, 머리카락을 모아 카펫을 짰다. 뼈는 갈아서 골분비료로까지 썼으니 사람의 몸뚱이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히틀러의 인종차별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우슈비츠에 관련된 영화를 한편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는데, 위의 자료에서 표현하듯이 위생시설이라 강조하는 샤워실로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가, 처음에는 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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