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들어가며
II. 본론
1. 프랑스 혁명 전의 여성
2. 프랑스 혁명 기의 여성
3. 프랑스 혁명 후 얻은 성과(여성적 측면)
4. 프랑스 혁명 기의 (대표)여성들
III. 맺으며
IV. 참고문헌
II. 본론
1. 프랑스 혁명 전의 여성
2. 프랑스 혁명 기의 여성
3. 프랑스 혁명 후 얻은 성과(여성적 측면)
4. 프랑스 혁명 기의 (대표)여성들
III. 맺으며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하고 여성 대오의 선두에 서서 베르사유로 전격했다. 그는 국왕과 그 일가를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호송하는 행진에도 앞장섰다. 당시 광경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었다.
왕정 입장에서 장례식이었고 백성들에게는 사육제 기분이었다. ……흐트러진 복장을 한 국민군 병사들이 대오도 짓지 않고 팔짱을 낀 채 휘파람을 불거나 웃고 떠들면서 빵 한조각을 총검에 매단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는 여자들이 대포 위에 걸터앉거나 마음에 드는 경기병들의 안장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춤이라도 추러 가는 것처럼 노동자나 군인들하고 팔장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 기마 행렬의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를 높이 지르며……열광하는……지휘관은 테르아뉴 드 메리클이었다. ……여자들은 승리에 도취해 소리를 질렀다.
1790년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던 그는 혁명적인 성향의 잡지를 창간하려고 국경 근처로 갔다가 오스트리아 군인에게 체포되었다. 그를 취조한 오스트리아 관헌은 ‘이 여자는 민주주의 사상에 관련된 모든 것에 광적인 열성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와의 대좌를 요구했다. 황제와 대면한 그는 단호히 자신의 혁명 사상에 대해서 말하고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세계의 모든 군주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석방된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지롱드파의 부르주아 공화국 수립의 정치적 목표에 동의하며 여자들 앞에 나가 여자도 용기를 내어 무장을 하자고, ‘전투적 여성 부대’를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1793년 봄부터 프랑스는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5월에는 지롱드파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축출되었다. 그동안 지롱드파의 입장에 있던 테로아뉴도 무사하지 못했다. 지롱드파는 제2의 프랑스 혁명이 된 1792년 8월 이후 민중들과의 결합보다는 온건한 개혁 쪽에 무게를 실었으며, 왕당파와도 협력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렇기에 민중들은 지롱드파를 반혁명 세력이라고 판단했다. 테로아뉴는 로베스피에르와 마라를 지지하는 민중 여성들에게 붙잡혀 무수히 구타당했다. 그는 튀일리 궁전의 돌 위에서 쓰러진 뒤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 혁명의 아마죠네스’. ‘바스티유 감옥의 탈취자’. ‘베르사이유 행진의 선도자’, ‘여성 혁명방위대 사령관’ 등의 명칭으로 군중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반혁명주의자들의 비난의 대표적 대상이었던 그녀의 활약상은 그녀가 택한 정치적 노선이었던 ‘투사적 페미니즘(Warrior Feminism)'의 절정이었다.
(테로와뉴 드 메리클 관련 참고자료)
테로와뉴 드 메리클
테로와뉴의 ‘전투적 여성 부대’ 조직에 관한 연설 중 일부
“시투아엔 여러분! 우리의 온몸을 조국에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우리도 무장합시다. 우리는 자연과 법에 의해서 그 권리를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보여줍시다. 용감함에서 우리가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 유럽에 보여줍시다. 프랑스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있고, 18세기 이념에 뒤떨어져 있지 않는, 즉 선행을 범죄로 보는 것과 같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편견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 여성들이여!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만 우리의 사명은 숭고합니다. 우리의 족쇄를 끊읍시다. 남자들의 불공평과 오만과 무지에 그토록 오랜 세월 굴종해온 여성, 우리도 이제는 우리 몸을 붙잡고 있는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탈출할 때입니다.……여성 여러분, 우리들도 무장합시다. 군사 훈련을 받고 프랑스 여군 명부에 제일 먼저 등록합시다.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여성 부대에 들어갑시다.”
1793, 테로와뉴의 격문 48전지구 시민에게중 일부
(국민공회에서 지롱드파가 추방되기 얼마 전에 파리 전 지역에 화해의 호소를 전달)
“시민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들은 교묘히 선동된 원념의 포로가 되어 모두 파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멈추십시오. 돌이켜 생각할 때입니다.……지금 몇몇 지구에서는 국란의 전조로 보이는 가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일으키는 도발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시민 여러분! 멈추십시오. 그리고 고쳐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멸망하게 됩니다.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증오와 원념을 버리고 단결할 것을 전체의 이익이 요구하고 있는 때입니다.”
III. 맺으며
혁명 당시 여성 정치가였던 마농 롤랑은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혁명광장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을 쳐다보며 외쳤다.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졌는가!” 이 아이러니컬한 그녀의 외침은 자유를 열망했던 당시 여성들 모두의 외침이라 볼 수 있겠다.
프랑스 혁명은 여성사의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사적인 영역인 가정 내에서 여성 지위가 상승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영역 내에서도 여성의 권리 부여와 그 지위에 관해 논의되고 추진되었다. 비록 당시의 민주주의 사상은 여성들을 시민권에서 배제했고, 봉건적 사상은 정치권력을 남성적인 것으로 상징해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프랑스 여성들은 18세기동안 공적인 영역에 참여했고, 능동적인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여 투쟁하였다. 이러한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은 시민 모두에게 여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여성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줌으로서 후에 산업 혁명 후에 일어났던 여성 운동에 그 바탕이 되었다. 따라서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이 프랑스 혁명을 일컬어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사건이라 지칭했던 것이다.
IV. 참고문헌(사진, 그림 포함)
조르주 뒤비 미셸 페로 지음, 권기돈 정나원 옮김, 여성의 역사 4 [상, 하], 새물결, 1998
서양 사학자 13인 지음, 서양 문화사 깊이 읽기, 푸른역사, 2008
박석분 지음, 인물여성사(세계편1), 새날, 1996
김성원 지음, 프랑스혁명기의 십자매, 한울림, 1985
클린 존스 지음, 방문숙 이호영 옮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1
http://hr.skhu.ac.kr (성공회대학교 인권평화 센터)
http://ko.wikipedia.org
http://vos.ucsb.edu/
왕정 입장에서 장례식이었고 백성들에게는 사육제 기분이었다. ……흐트러진 복장을 한 국민군 병사들이 대오도 짓지 않고 팔짱을 낀 채 휘파람을 불거나 웃고 떠들면서 빵 한조각을 총검에 매단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로는 여자들이 대포 위에 걸터앉거나 마음에 드는 경기병들의 안장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춤이라도 추러 가는 것처럼 노동자나 군인들하고 팔장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 기마 행렬의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를 높이 지르며……열광하는……지휘관은 테르아뉴 드 메리클이었다. ……여자들은 승리에 도취해 소리를 질렀다.
1790년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던 그는 혁명적인 성향의 잡지를 창간하려고 국경 근처로 갔다가 오스트리아 군인에게 체포되었다. 그를 취조한 오스트리아 관헌은 ‘이 여자는 민주주의 사상에 관련된 모든 것에 광적인 열성을 보인다’고 보고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와의 대좌를 요구했다. 황제와 대면한 그는 단호히 자신의 혁명 사상에 대해서 말하고 자유와 평등을 위해서 세계의 모든 군주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석방된 그는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지롱드파의 부르주아 공화국 수립의 정치적 목표에 동의하며 여자들 앞에 나가 여자도 용기를 내어 무장을 하자고, ‘전투적 여성 부대’를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1793년 봄부터 프랑스는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5월에는 지롱드파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축출되었다. 그동안 지롱드파의 입장에 있던 테로아뉴도 무사하지 못했다. 지롱드파는 제2의 프랑스 혁명이 된 1792년 8월 이후 민중들과의 결합보다는 온건한 개혁 쪽에 무게를 실었으며, 왕당파와도 협력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렇기에 민중들은 지롱드파를 반혁명 세력이라고 판단했다. 테로아뉴는 로베스피에르와 마라를 지지하는 민중 여성들에게 붙잡혀 무수히 구타당했다. 그는 튀일리 궁전의 돌 위에서 쓰러진 뒤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 혁명의 아마죠네스’. ‘바스티유 감옥의 탈취자’. ‘베르사이유 행진의 선도자’, ‘여성 혁명방위대 사령관’ 등의 명칭으로 군중의 사랑을 받음과 동시에 반혁명주의자들의 비난의 대표적 대상이었던 그녀의 활약상은 그녀가 택한 정치적 노선이었던 ‘투사적 페미니즘(Warrior Feminism)'의 절정이었다.
(테로와뉴 드 메리클 관련 참고자료)
테로와뉴 드 메리클
테로와뉴의 ‘전투적 여성 부대’ 조직에 관한 연설 중 일부
“시투아엔 여러분! 우리의 온몸을 조국에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우리도 무장합시다. 우리는 자연과 법에 의해서 그 권리를 부여받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보여줍시다. 용감함에서 우리가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 유럽에 보여줍시다. 프랑스 여성은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있고, 18세기 이념에 뒤떨어져 있지 않는, 즉 선행을 범죄로 보는 것과 같은 불합리하고 부도덕한 편견을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 여성들이여!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만 우리의 사명은 숭고합니다. 우리의 족쇄를 끊읍시다. 남자들의 불공평과 오만과 무지에 그토록 오랜 세월 굴종해온 여성, 우리도 이제는 우리 몸을 붙잡고 있는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탈출할 때입니다.……여성 여러분, 우리들도 무장합시다. 군사 훈련을 받고 프랑스 여군 명부에 제일 먼저 등록합시다. 조국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여성 부대에 들어갑시다.”
1793, 테로와뉴의 격문 48전지구 시민에게중 일부
(국민공회에서 지롱드파가 추방되기 얼마 전에 파리 전 지역에 화해의 호소를 전달)
“시민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들은 교묘히 선동된 원념의 포로가 되어 모두 파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멈추십시오. 돌이켜 생각할 때입니다.……지금 몇몇 지구에서는 국란의 전조로 보이는 가두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일으키는 도발자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시민 여러분! 멈추십시오. 그리고 고쳐 생각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멸망하게 됩니다.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증오와 원념을 버리고 단결할 것을 전체의 이익이 요구하고 있는 때입니다.”
III. 맺으며
혁명 당시 여성 정치가였던 마농 롤랑은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혁명광장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을 쳐다보며 외쳤다. “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졌는가!” 이 아이러니컬한 그녀의 외침은 자유를 열망했던 당시 여성들 모두의 외침이라 볼 수 있겠다.
프랑스 혁명은 여성사의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사적인 영역인 가정 내에서 여성 지위가 상승했음은 물론이거니와 정치 영역 내에서도 여성의 권리 부여와 그 지위에 관해 논의되고 추진되었다. 비록 당시의 민주주의 사상은 여성들을 시민권에서 배제했고, 봉건적 사상은 정치권력을 남성적인 것으로 상징해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프랑스 여성들은 18세기동안 공적인 영역에 참여했고, 능동적인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여 투쟁하였다. 이러한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은 시민 모두에게 여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줌과 동시에 여성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줌으로서 후에 산업 혁명 후에 일어났던 여성 운동에 그 바탕이 되었다. 따라서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이 프랑스 혁명을 일컬어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사건이라 지칭했던 것이다.
IV. 참고문헌(사진, 그림 포함)
조르주 뒤비 미셸 페로 지음, 권기돈 정나원 옮김, 여성의 역사 4 [상, 하], 새물결, 1998
서양 사학자 13인 지음, 서양 문화사 깊이 읽기, 푸른역사, 2008
박석분 지음, 인물여성사(세계편1), 새날, 1996
김성원 지음, 프랑스혁명기의 십자매, 한울림, 1985
클린 존스 지음, 방문숙 이호영 옮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시공사, 2001
http://hr.skhu.ac.kr (성공회대학교 인권평화 센터)
http://ko.wikipedia.org
http://vos.ucsb.edu/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