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레포트-비운의 왕, 단종(端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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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 레포트-비운의 왕, 단종(端宗)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ⅰ. 단종의 즉위
ⅱ. 계유정난(1453)과 세조의 즉위
ⅲ. 단종 복위운동의 전개와 의의
ⅳ. 비운의 왕, 단종
Ⅲ. 결 론

본문내용

위를 찬탈당하고 청령포에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고 그 주검이 동강에 버려졌으나 호장 엄흥도가 그 시신을 수습하여 현재의 능이 있는 영월에 암장하였다. 아마 역사상 가장 슬프고 애환이 많은 단종대왕 능은 다른 능과는 많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한양에서 백리 이내에 모시는 것이 관례지만 단종의 왕릉은 지방에 모셔진 유일한 왕릉이며 낮은 구릉에 모셔지는 다른 왕릉에 비해 높은 곳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왕릉이 봉문, 정자각, 참도홍살문이 일직선 상에 조영되지만 단종릉의 봉분은 신좌을향으로 모셔졌고 정자각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능의 옆구리를 향해 절을 할 수 밖에 없다. 중종 때에 단종에 대한 제사를 지낼 것을 결의하고 사신을 영월에 파견하여 단종의 무덤을 물색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깨끗하게 단장되어 명승지가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안타까운 과정은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우승지 신상의 보고에) 본 고을의 고로(高老) 전 호장 엄주의 손자 엄속과 양인 지무작과 관노 이말산이 말하기를, “군 북쪽 5리 동을지에 동향한 고분이 실지로 노산군의 산소인데, 묘가 길가에 있어서 무너지고 깎여서 높이가 겨우 두 자쯤 되고 여러 무덤이 옆에 늘어 있는데, 읍 사람들이 전하여 임금의 산소라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라도 모두 알아내고, 또 여러 무덤은 모두 돌을 옆에 늘어놓았는데, 이 묘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임용한, 『조선국왕이야기』,혜안, 1998, p.260
노산군(단종)의 시체는 숲속에 던져져 방치되었다. 한 달이 지나도 염습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시체를 쪼아먹었다. 마침내 한 동자가 밤에 와서 몰래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는데,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연산군일기>4년 7월 13일
아마 처음에는 마을 공동묘지나 엄씨가의 선산에 매장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장례도 목숨걸고 행해졌으며 표지는 물론이고 관리 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광해군 2년에 단종을 위한 사당이 세워지고 숙종 때 비로소 노산군으로 복권했다가 다시 단종으로 복권하였다. 왕호 회복 이후 단종의 모역도 정비하여 장릉이라 명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27대 임금 중 유일하게 단종릉에만 있는 장판옥은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것으로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받친 충신위, 조사위, 환관구노위, 여인위를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라고 한다. 즉, 단종의 안타까운 삶과 그를 복위하려 했던 충신들이 보여준 신하로서의 덕목은 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Ⅲ. 결 론
수양대군의 왕권 계승은 당시 조선인들에겐 왕위 찬탈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대에 단종을 위해 충절을 보였던 신하들을 높이 평가했던 점으로 미루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논쟁이 수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아마 그를 복권하는 것이 세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 국왕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조의 찬탈 사건은 조선 전기 정치변화와 문화의 흐름의 저변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었고 하나의 잘못된 사건이 후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후 사화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호사화이다. 연산군 4년에 김일손 등 성종 이래 중앙에 등장하였던 신진사류가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을 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종직과 유자광은 일찍이 개인적 감정이 있었고 김종직 제자 김일손이 성종 때 춘추관의 사관으로 있으면서 훈구파 이극돈의 비행과 세조의 찬탈을 사초에 기록한 일로 김일손과 이극돈 사이에 반목이 생긴다. 김일손은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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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6.11
  • 저작시기2010.05
  • 파일형식한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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