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공자의 인생관
1. 인(仁)
2. 덕(德)
1) 수기(修己)로서의 덕
2) 도리(道理)로서의 덕
3) 대승(大乘)으로서의 덕
4) 중화(中和)로서의 덕
3. 효(孝)
1) 친친(親親)
2) 경장(敬長)
3) 보본(報本)
4) 반시(反始)
4. 예(禮)
Ⅱ. 노자의 인생관
Ⅲ. 로크의 인생관
Ⅳ. 브라암스(브람스)의 인생관
Ⅴ. 고구려인의 인생관
1.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
2. 후손존속
Ⅵ. 금오신화의 인생관
1. 카니발리즘(Carnivalism)
2. 잔치-인생은 축제다
참고문헌
1. 인(仁)
2. 덕(德)
1) 수기(修己)로서의 덕
2) 도리(道理)로서의 덕
3) 대승(大乘)으로서의 덕
4) 중화(中和)로서의 덕
3. 효(孝)
1) 친친(親親)
2) 경장(敬長)
3) 보본(報本)
4) 반시(反始)
4. 예(禮)
Ⅱ. 노자의 인생관
Ⅲ. 로크의 인생관
Ⅳ. 브라암스(브람스)의 인생관
Ⅴ. 고구려인의 인생관
1.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
2. 후손존속
Ⅵ. 금오신화의 인생관
1. 카니발리즘(Carnivalism)
2. 잔치-인생은 축제다
참고문헌
본문내용
용궁에 처음 도착해서 만난 수문장들의 모습을 희화화한 것은 그가 들어가는 궁문이 함인지문인 것(仁之門- 인을 머금은 문이란 뜻으로 해석되며 물을 마시는 수계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에 나타난다. 이에 더해서 아름다운 궁실, 옥 같은 침전엔 상서로운 구름 빽빽이 끼고 봉황 새긴 베개와 원앙 수놓은 이부자리에선 기쁨의 소리 들끓게 되리“라는 말로 장식된다.
또한 용왕이 한생을 위해 윤필연(글이나 서화의 작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연회)을 열어 주는 대목에서 나오는 곽개사라는 인물은 ‘게’를 의인화한 것인데 그 춤의 묘사가 희화적이다.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서 침을 흘리며 눈을 부릅뜬 채 사지를 흔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났다 하며 팔풍무를 추는데”
그가 춤추며 부르는 노래 또한 웃음을 자아내고자하며 간혹 풍자적이기까지 하다.
“(중략)
오호라 물에 사는 거족들은/ 못난 나를 비웃어서 무장공자라 하지마는
군자에게 비할 이 몸/ 뱃속에 덕이 차니 내장이 노랗네
속이 아름다워 사지에 통달하니/ 엄지발이 살이 쪄서 옥같이 불룩하네
(중략)“
뱃속에 덕이 차서 노랗다는 둥, 사지에 통달하니 엄지발가락이 불룩하다는 표현은 풍자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작품 속의 인물들도 웃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북이를 의인화한 현선생, 숲 속의 도깨비와 산에 사는 괴물들의 출현으로 용궁 속 윤필연은 한바탕의 난장무대가 되고 만다.
남염부주지의 주요테마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인식확장 및 이를 통한 세속적 문명의 초월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생은 꿈을 통해 염부주로의 공간이동을 하게 되고 그가 늘 궁금해 하던 천당지옥의 존재, 원리여부에 대한 해답의 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염부주라는 공간은 매우 특이하게 설정되어있는데 이는 기존의 낙원상과는 대비되며 ‘또 다른 현실’로서 상정되어있다. 이것은 염부주라는 공간이 낙원의 반대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의 삶과 대치되며 죽음의 세계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쇠로 만든 집에 사는데, 낮엔 불에 몸이 타 문드러지고 밤엔 살이 얼어 터졌다. 오직 아침저녁으로만 꿈틀대듯 나다니는데 그 모습은 웃으며 떠드는 것 같아서 그런 생활을 그리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염부주에 대한 묘사는 김시습이 가졌던 죽음(축제에 대비되는)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은 구복적 성격의 불교(삶이 축제이고 죽음에서도 축제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성대한 재를 통해 내세의 삶이 보장되고 축제는 계속된다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전복(시대를 관통하고 있던 불교적 내세관)은 카니발적 시각이다. 문학은 카니발적이다. 서구에서의 부패한 카톨릭 종교와 위선적인 성직자를 꼬집으며 기존의 질서에 대한 가치전복적인 의미의 카니발리즘과, 새로운 세계(염부주지)를 탄생시키며 시각전환을 촉구하며 불교를 넘어선 초월적인 시도를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시각은 분명 맞닿아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시습은 현실의 몽매성과 한계성을 삶의 본질인 유한성(죽음, 또는 無. 결국은 염부주)을 드러냄으로써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존을 상대화시켜 반성하고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려는 철학적인 성찰이다.
염마가 박생에게 삼한 이래의 치란사를 듣다가 고려가 신라를 멸하고 건국하는 대목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금오신화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세속권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김시습 개인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도피라는 방법으로 저항했던 그의 생애에 대한 변명이라고도 보여 진다.
“국가의 책임을 맡은이는 폭력으로 인민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니 인민이 비록 잠시 따르더라도 끝에 가서는 불평이 쌓여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오. 또 덕이 없이는 지위를 차지 할 수 없는 것이니 하늘이 비록 묵묵히 말은 없을지라도 그 명령은 엄한 것이오. 또 대체로 국가는 인민의 것이요, 명령이란 하늘의 명령이니 천명이 가버리고 민심이 떠난다면 아무리 자기 몸을 보존하려 한들 어찌되겠습니까?”-남염부주지-
주지하고 있다시피 수양대군의 단종 살해와 왕권찬탈이라는 음모에 대해 죽음으로 항거한 사육신 못지않게 여러 가지 형태로 저항적 정서를 담아낸 생육신으로서의 면모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시스적 의미로서의 축제는 저항적인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기존의 종교와 권력, 권위에 대한 저항이 그것인데 김시습의 인생에 있어 계유정난으로 생육신이 되어 유랑하는 삶이 바로 그의 작품에서 현실과 유리된 인간형으로 나타나며, 이 인간형들이 누리는 잔치 속에 저항성이 살아있는 것이다. 또한 축제는 삶의 유한성과 누추함을 잊게 하는 수단으로서 등장하지만 결국 축제가 끝난 후 사형에 처해지는 어릿광대처럼 한바탕의 축제가 끝난 뒤에는 허무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축제는 삶의 유한성을 잊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하지만 오히려 삶의 끝인 죽음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귀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형상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전반을 아우르는 고립된 인간형(각 작품의 인간들은 세계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죽은 원귀 혹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과의 합일을 도모하고 있다)과 도피라는 결론은 어쩌면 그의 삶의 모습이 은연중에 작중인물에 묻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 대목을 축제의 기본정신인 ‘저항’과 ‘저항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나타난 대목이라는 확대해석을 해본다.
인물 훤한 부유한 장사꾼인 홍생은 보통 이상의 감수성을 지닌 풍류남아이며 유람을 통해 기이한 여인과 만나게 되며, 그로 인해 다른 세상에 눈뜨게 된다는 것이 이 취유부벽정기의 주된 줄거리이다. 홍생은 역사적 회고를 통해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제2수의 “풍류로 왔던 옛 영광은 먼지가 되었고/ 적막한 텅빈 성에는 납가새만 무성하네”나 제4수의 “영웅은 적막하여 지금 어디있는고 / 어렴풋이 뵈는 풀과 나무에게 몇 년 지났나 묻노라 ”와 같은 표현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이 시구들을 통해 김시습은 무한하며 장구한 자연과 대비된 인간의 삶의 초라함과 허무함을 대조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시를
또한 용왕이 한생을 위해 윤필연(글이나 서화의 작자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연회)을 열어 주는 대목에서 나오는 곽개사라는 인물은 ‘게’를 의인화한 것인데 그 춤의 묘사가 희화적이다.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서 침을 흘리며 눈을 부릅뜬 채 사지를 흔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뒤로 물러났다 하며 팔풍무를 추는데”
그가 춤추며 부르는 노래 또한 웃음을 자아내고자하며 간혹 풍자적이기까지 하다.
“(중략)
오호라 물에 사는 거족들은/ 못난 나를 비웃어서 무장공자라 하지마는
군자에게 비할 이 몸/ 뱃속에 덕이 차니 내장이 노랗네
속이 아름다워 사지에 통달하니/ 엄지발이 살이 쪄서 옥같이 불룩하네
(중략)“
뱃속에 덕이 차서 노랗다는 둥, 사지에 통달하니 엄지발가락이 불룩하다는 표현은 풍자와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작품 속의 인물들도 웃음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거북이를 의인화한 현선생, 숲 속의 도깨비와 산에 사는 괴물들의 출현으로 용궁 속 윤필연은 한바탕의 난장무대가 되고 만다.
남염부주지의 주요테마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인식확장 및 이를 통한 세속적 문명의 초월이라고 할 수 있다. 박생은 꿈을 통해 염부주로의 공간이동을 하게 되고 그가 늘 궁금해 하던 천당지옥의 존재, 원리여부에 대한 해답의 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염부주라는 공간은 매우 특이하게 설정되어있는데 이는 기존의 낙원상과는 대비되며 ‘또 다른 현실’로서 상정되어있다. 이것은 염부주라는 공간이 낙원의 반대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의 삶과 대치되며 죽음의 세계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쇠로 만든 집에 사는데, 낮엔 불에 몸이 타 문드러지고 밤엔 살이 얼어 터졌다. 오직 아침저녁으로만 꿈틀대듯 나다니는데 그 모습은 웃으며 떠드는 것 같아서 그런 생활을 그리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염부주에 대한 묘사는 김시습이 가졌던 죽음(축제에 대비되는)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은 구복적 성격의 불교(삶이 축제이고 죽음에서도 축제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성대한 재를 통해 내세의 삶이 보장되고 축제는 계속된다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가치전복(시대를 관통하고 있던 불교적 내세관)은 카니발적 시각이다. 문학은 카니발적이다. 서구에서의 부패한 카톨릭 종교와 위선적인 성직자를 꼬집으며 기존의 질서에 대한 가치전복적인 의미의 카니발리즘과, 새로운 세계(염부주지)를 탄생시키며 시각전환을 촉구하며 불교를 넘어선 초월적인 시도를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시각은 분명 맞닿아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김시습은 현실의 몽매성과 한계성을 삶의 본질인 유한성(죽음, 또는 無. 결국은 염부주)을 드러냄으로써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존을 상대화시켜 반성하고 죽음을 통해 삶을 이해하려는 철학적인 성찰이다.
염마가 박생에게 삼한 이래의 치란사를 듣다가 고려가 신라를 멸하고 건국하는 대목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금오신화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세속권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김시습 개인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도피라는 방법으로 저항했던 그의 생애에 대한 변명이라고도 보여 진다.
“국가의 책임을 맡은이는 폭력으로 인민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니 인민이 비록 잠시 따르더라도 끝에 가서는 불평이 쌓여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오. 또 덕이 없이는 지위를 차지 할 수 없는 것이니 하늘이 비록 묵묵히 말은 없을지라도 그 명령은 엄한 것이오. 또 대체로 국가는 인민의 것이요, 명령이란 하늘의 명령이니 천명이 가버리고 민심이 떠난다면 아무리 자기 몸을 보존하려 한들 어찌되겠습니까?”-남염부주지-
주지하고 있다시피 수양대군의 단종 살해와 왕권찬탈이라는 음모에 대해 죽음으로 항거한 사육신 못지않게 여러 가지 형태로 저항적 정서를 담아낸 생육신으로서의 면모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시스적 의미로서의 축제는 저항적인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기존의 종교와 권력, 권위에 대한 저항이 그것인데 김시습의 인생에 있어 계유정난으로 생육신이 되어 유랑하는 삶이 바로 그의 작품에서 현실과 유리된 인간형으로 나타나며, 이 인간형들이 누리는 잔치 속에 저항성이 살아있는 것이다. 또한 축제는 삶의 유한성과 누추함을 잊게 하는 수단으로서 등장하지만 결국 축제가 끝난 후 사형에 처해지는 어릿광대처럼 한바탕의 축제가 끝난 뒤에는 허무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결국 축제는 삶의 유한성을 잊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하지만 오히려 삶의 끝인 죽음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귀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형상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그의 작품전반을 아우르는 고립된 인간형(각 작품의 인간들은 세계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죽은 원귀 혹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과의 합일을 도모하고 있다)과 도피라는 결론은 어쩌면 그의 삶의 모습이 은연중에 작중인물에 묻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 대목을 축제의 기본정신인 ‘저항’과 ‘저항을 통한 카타르시스’가 나타난 대목이라는 확대해석을 해본다.
인물 훤한 부유한 장사꾼인 홍생은 보통 이상의 감수성을 지닌 풍류남아이며 유람을 통해 기이한 여인과 만나게 되며, 그로 인해 다른 세상에 눈뜨게 된다는 것이 이 취유부벽정기의 주된 줄거리이다. 홍생은 역사적 회고를 통해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게 되는데 이는 제2수의 “풍류로 왔던 옛 영광은 먼지가 되었고/ 적막한 텅빈 성에는 납가새만 무성하네”나 제4수의 “영웅은 적막하여 지금 어디있는고 / 어렴풋이 뵈는 풀과 나무에게 몇 년 지났나 묻노라 ”와 같은 표현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이 시구들을 통해 김시습은 무한하며 장구한 자연과 대비된 인간의 삶의 초라함과 허무함을 대조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렇게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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