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야담의 개념
Ⅲ. 야담의 서사체
Ⅳ. 야담의 사실과 허구
Ⅴ. 야담과 청구야담
Ⅵ. 야담과 어우야담
Ⅶ. 야담과 천예록
Ⅷ. 야담과 임랑돈독
Ⅸ. 야담과 모란탈재
Ⅹ. 야담과 주장군전
Ⅺ. 야담과 치노호첩
참고문헌
Ⅱ. 야담의 개념
Ⅲ. 야담의 서사체
Ⅳ. 야담의 사실과 허구
Ⅴ. 야담과 청구야담
Ⅵ. 야담과 어우야담
Ⅶ. 야담과 천예록
Ⅷ. 야담과 임랑돈독
Ⅸ. 야담과 모란탈재
Ⅹ. 야담과 주장군전
Ⅺ. 야담과 치노호첩
참고문헌
본문내용
전제와 화제를 가르는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하기는 어렵다. ‘특별함’의 정도에 대한 판단은 주관성을 내포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 화제와 전제를 구분할 수 있다.---첫째, 이야기의 출발 상황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대체로 이야기 전제에 해당하며, 전환이나 절정에 해당하는 내용은 화제에 해당한다. 둘째, 서술자가 특별한 배려 없이 단적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대개 전제에 해당하며, 관심 속에 상세히 서술하는 내용은 화제에 해당한다. 셋째, 작중인물이나 서술자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내용은 전제에 해당하며, 그들이 특별한 일로 받아들이는 내용은 화제에 해당한다. 넷째, 이상의 기준과 더불어 연구자가 당대 독자의 입장에서 내용의 특별함 여부를 헤아린 결과 또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두 이야기 구성요소 가운데 전제는 대개 단편적이고 거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하여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전제의 현실 반영적 의미는 만만치 않다. 전제에 제시되는 현실상황은 허구적 변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서 현실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야기의 전제들을 통해 이야기 담당자들에게 있어 현실의 어떠한 부면이 ‘당연지사(當然之事)’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추정해 볼 수 있으며, 그것은 현실 상황의 바른 이해에 긴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화제’에 있어 현실이 수용되는 양상은 전제에 있어서 와는 다르다. 화제의 상황은 관심 속에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만큼 현실과 관련하여 풍성한 논의거리를 제공해 준다. 그렇지만 화제의 내용이 실제 현실과 바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화제 속에 형상화된 현실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현실’로서, 일상적 현실의 평범한 한 단면이라 보기 힘들다. 거기에는 사실과 함께 허구가, 경험과 함께 ‘꿈’이 착종돼 있다. 그 변수를 제대로 짚어내야만 현실의 실상을 읽어낼 수 있다.
화제의 현실 수용 양상을 짚어보는 데 있어 관건이 되는 요소는 ‘현실성’과 ‘필연성’ 여부라 할 수 있다. 화제가 현실성과 필연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작중 현실이 지니는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먼저 화제가 현실성과 필연성을 함께 갖추고 있을 때, 곧 필연적 현실성을 갖추고 있을 때 그것은 현실의 한 단면을 ‘전형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게 된다. 즉 그 상황은 특별한 것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서의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이야기내용으로부터 현실의 심상하지 않은 숨겨진 모습, 새로운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곧 현실의 본질적 국면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한편, 이와 달리 화제가 필연성이나 현실성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곧 필연적 현실성을 갖추지 못하고 비현실적 요소나 우연적 요소에 의존하여 부각될 때 그 화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작품 속의 현실은 한갓 꿈에 불과하거나(환상이 개입한 경우), 뒤틀리고 전도된 것이거나(과장이 개입한 경우), 보편성이 결여된 ‘특수한 것’에 불과하다(우연이 개입한 경우). 그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기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서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이러한 화제는 작중상황을 통해 현실을 바로 보여주기보다는 거꾸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현실의 ‘불가능태(不可能態)’ 쪽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Ⅴ. 야담과 청구야담
신분과 재산의 관계를 문제 삼는 야담 자료들에는 몰락한 양반들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양반이란 상위 신분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다(그것은 앞서 살핀 대로 시대 변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이 양반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다.
몰락 양반들이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삶을 습관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아내의 바느질이나 친척들의 도움 등에 의지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과거--그리고 정치적 연줄--를 통한 출세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살아가는 양반들의 모습을 여러 이야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미 살펴본 바 있는 청구 74의 유진사나 청구 69의 송씨 양반, 청구 215의 한 무변 등이 다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로 이야기 전제나 현실성 있는 화제를 통해 제시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실제 현실에 있어 많은 양반들이 취했던 삶의 방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 가난한 양반들은 이야기 속에서 뜻밖의 행운에 의하여 부귀를 얻곤 한다. 그렇지만 앞서 이미 밝힌 바 있듯이 그것은 꿈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이 양반들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할 만한 현실적인 어떤 방법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 삶은 무기력하고 타성적이다.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 있어 그러한 삶의 방식이 가져올 현실적인 결과--이야기 속의 결과는 혹시 부귀일지 몰라도--는 더욱 더 심한 몰락과 좌절감일 것이다.
그런데 야담에 등장하는 양반 가운데 무척이나 간고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신념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양반으로서의 도리와 명분을 꿋꿋이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주목된다. 양반으로서의 법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부귀의 유혹을 거부하려 하는 노학구(청구 140)나 굶주림에 지친 상태에서도 불의한 음식을 들기를 거부하는 선비(청구81) 등에서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선비의 모습을 옮겨 본다.
인이 괴로이 무러 오
“ ㅊㄹ쳐 알지 못면 반시 먹지 아니리라.”
그 안 본 그 가쟝의 고집핀 셩졍을 아지라. 부득이 딕고여 오
“우리 문 압 아모 사의 논에 됴도가 반이나 익엇기로 앗가 인졍 후의 나가 손으로 그 이삭 두어 줌을 더다가 불의 복가 오홉을 장만여 이미 죽을 어 드리오나 스로 각건 참괴온 말 엇지 다오리잇가. 이후 그 사의 의복이나 지어 주고 갑슬 밧지 아니면 오날 블미 죄 저기 속올 듯와이다. 다히 햐져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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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이야기 구성요소 가운데 전제는 대개 단편적이고 거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하여 현실의 구체적인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전제의 현실 반영적 의미는 만만치 않다. 전제에 제시되는 현실상황은 허구적 변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서 현실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야기의 전제들을 통해 이야기 담당자들에게 있어 현실의 어떠한 부면이 ‘당연지사(當然之事)’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추정해 볼 수 있으며, 그것은 현실 상황의 바른 이해에 긴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화제’에 있어 현실이 수용되는 양상은 전제에 있어서 와는 다르다. 화제의 상황은 관심 속에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만큼 현실과 관련하여 풍성한 논의거리를 제공해 준다. 그렇지만 화제의 내용이 실제 현실과 바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화제 속에 형상화된 현실은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현실’로서, 일상적 현실의 평범한 한 단면이라 보기 힘들다. 거기에는 사실과 함께 허구가, 경험과 함께 ‘꿈’이 착종돼 있다. 그 변수를 제대로 짚어내야만 현실의 실상을 읽어낼 수 있다.
화제의 현실 수용 양상을 짚어보는 데 있어 관건이 되는 요소는 ‘현실성’과 ‘필연성’ 여부라 할 수 있다. 화제가 현실성과 필연성을 갖추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작중 현실이 지니는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먼저 화제가 현실성과 필연성을 함께 갖추고 있을 때, 곧 필연적 현실성을 갖추고 있을 때 그것은 현실의 한 단면을 ‘전형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으로서의 의의를 지니게 된다. 즉 그 상황은 특별한 것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서의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이야기내용으로부터 현실의 심상하지 않은 숨겨진 모습, 새로운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곧 현실의 본질적 국면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한편, 이와 달리 화제가 필연성이나 현실성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곧 필연적 현실성을 갖추지 못하고 비현실적 요소나 우연적 요소에 의존하여 부각될 때 그 화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작품 속의 현실은 한갓 꿈에 불과하거나(환상이 개입한 경우), 뒤틀리고 전도된 것이거나(과장이 개입한 경우), 보편성이 결여된 ‘특수한 것’에 불과하다(우연이 개입한 경우). 그것은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지기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서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이러한 화제는 작중상황을 통해 현실을 바로 보여주기보다는 거꾸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현실의 ‘불가능태(不可能態)’ 쪽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Ⅴ. 야담과 청구야담
신분과 재산의 관계를 문제 삼는 야담 자료들에는 몰락한 양반들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이들은 양반이란 상위 신분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서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다(그것은 앞서 살핀 대로 시대 변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이 양반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다.
몰락 양반들이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삶을 습관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아내의 바느질이나 친척들의 도움 등에 의지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면서 과거--그리고 정치적 연줄--를 통한 출세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살아가는 양반들의 모습을 여러 이야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미 살펴본 바 있는 청구 74의 유진사나 청구 69의 송씨 양반, 청구 215의 한 무변 등이 다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로 이야기 전제나 현실성 있는 화제를 통해 제시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실제 현실에 있어 많은 양반들이 취했던 삶의 방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이 가난한 양반들은 이야기 속에서 뜻밖의 행운에 의하여 부귀를 얻곤 한다. 그렇지만 앞서 이미 밝힌 바 있듯이 그것은 꿈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이 양반들은 자신의 처지를 극복할 만한 현실적인 어떤 방법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 삶은 무기력하고 타성적이다. 새롭게 변화하는 세상에 있어 그러한 삶의 방식이 가져올 현실적인 결과--이야기 속의 결과는 혹시 부귀일지 몰라도--는 더욱 더 심한 몰락과 좌절감일 것이다.
그런데 야담에 등장하는 양반 가운데 무척이나 간고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신념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양반으로서의 도리와 명분을 꿋꿋이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주목된다. 양반으로서의 법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부귀의 유혹을 거부하려 하는 노학구(청구 140)나 굶주림에 지친 상태에서도 불의한 음식을 들기를 거부하는 선비(청구81) 등에서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선비의 모습을 옮겨 본다.
인이 괴로이 무러 오
“ ㅊㄹ쳐 알지 못면 반시 먹지 아니리라.”
그 안 본 그 가쟝의 고집핀 셩졍을 아지라. 부득이 딕고여 오
“우리 문 압 아모 사의 논에 됴도가 반이나 익엇기로 앗가 인졍 후의 나가 손으로 그 이삭 두어 줌을 더다가 불의 복가 오홉을 장만여 이미 죽을 어 드리오나 스로 각건 참괴온 말 엇지 다오리잇가. 이후 그 사의 의복이나 지어 주고 갑슬 밧지 아니면 오날 블미 죄 저기 속올 듯와이다. 다히 햐져쇼셔.”
인이 쟉여 크게 지져 오
“하이 만민을 시 반시 그 힘을 먹어 롱공상이 각각 졔 직업이 잇거늘 뎌 사의 근고 곡식이 엇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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