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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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난, 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유대인들은 그 언약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도 모세의 출애굽, 40년간의 광야 생활, 각종 사사를 통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등, 하나님이 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셔서 유대인들을 많이 도우셨다.
이러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메시아는 이스라엘만을 구하러 온다는 기독교와 대치되는 생각과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럽인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인이므로) 많은 박해를 받아왔다.
18세기 중엽의 독일에서의 유대인 차별은 극을 달리고 있었다. 유대인에 대한 법률은 차별적으로 제정되어 거주 지역, 직업 선택, 혼인 상대 등에 있어서의 제한을 받았으며 정상적인 시민 생활의 영역에서 제외되어 오로지 경제적인 효용의 관점에서만 하나의 소수민족 집단으로 용인되고 있었다. 19세기 말 이러한 관점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그 기반 위에 나치스가 탄생하면서 유대인의 고난은 절정에 달한다.
수천,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아우슈비츠로 추방되었으며, 거기에서 다시 부켄발트로 추방되었고, 이들은 악명 높은 유대인 집단수용소로 끌려가 가스 처형, 화형 등의 반인륜적인 방법으로 처형되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뛰어난 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독일인에게는 그들을 하나로 뭉치기 위한 수단의 하나인 우월주의에 방해가 되었다. 히틀러의 유대인의 대학살도 이것이 원인이었다. 독일군은 유대인의 피를 받은 3대까지를 몰살하였다.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독가스실 사건은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적인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확고했던 유대인의 신앙은 기독교 광신도들과 그러한 명문을 앞세운 나치스의 박해를 더욱 부채질했다. 유대인들의 절대적인 신앙은 라펜스부르크의 나치스 강제 수용소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다음 시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 주님,
호의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악의를 품은 사람들까지도 기억하여 주소서.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고난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그 고난으로 인해 우리가 얻은 열매도 기억하여 주소서.
이 모든 고난의 결과로 맺어진 열매들,
이를테면 우리의 우정과 충성,
우리의 겸손과 용기, 관용, 넓은 마음도 기억하여 주소서.
그리고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될 때에
우리가 맺은 모든 열매들로 인해 그들이 용서받게 하소서.
그러나 엘리위젤(Elie Wiesel)의 1986년도 노벨 평화상 수상작품인 「나치스와 유대인」에서는 조금 다른 내용이 담겨있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복되고 찬미 받으소서......”
(중략)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의 내부에서 반항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왜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우주의 영원한 주인이며 전능하고 두려운 하나님은 침묵만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단 말인가?
(중략)
평범하고 신실한 14살의 유대인 소년 엘리제르는 이렇게 처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하나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의 하나님, 당신은 무엇입니까? 당신에게 저들의 신앙과 저들의 분노와 저들의 반항심을 나타내고 있는 저들 고통 받는 무리에 대해 당신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허약과 이 와해와 이 부패 앞에서 우주만물의 주인 당신의 전지전능함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아직도 저들의 병든 마음과 불구의 육신에 고통을 주십니까?’
(중략)
왜, 그러나 왜 내가 하나님을 찬미해야 한단 말인가?
엘리제르는 철저한 반발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주일과 축일에도 밤낮으로 여섯 개의 화장장에서 화장을 계속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한 힘으로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와 부나,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살인공장들을 창설하지 않았는가?
아담과 하와에 의해 속임을 당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낙원에서 몰아냈고, 노아의 세대가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을 때는 홍수로 그들을 다스렸다. 소돔이 하나님의 눈에 들지 않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과 유황비를 내리게 했다. 그러나 여기 이 사람들, 하나님이 배신해 온 이 사람들, 고문당하고 학살당하고 독가스를 쐬고 불에 타죽도록 하나님이 내버려 둬 온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의문한다. 엘리 위젤의 개인의 처절한 개인적, 비극적 체험을 바탕으로 씌여진 엘리 위젤의 많은 글들은 우리에게 단순히 유대인들의 고난과 그 실상을 고백하고자 하는 글만은 아니다. 비록 나치의 학살과 학대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나치의 죄악상, 전쟁의 폐해를 고발해야 한다는 집념이 있었던 것은 명백하지만, 그는 나치스에 대한 증오와 그 증오로 인한 자기파멸로 드러난다는 내용보다는 더 많은 것을 그 이면에 담고 있다.
오히려 그는 최악의 역사적 고난 속에서 자신들의 유일신인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의심으로 절규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종국에는 그 고난을 이겨내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영광을 받는 유대인의 모습을 자신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엘리 위젤은 소설 「흑야」에서 자기 가족의 죽음이상으로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가지 사건을 회고한다. 그것은 불과 13살 정도된 한 소년이 옥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 하나로 전체 수인들이 집합된 자리에서 교수대에 그의 목이 매달려 죽임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었다. 반시간 이상 목졸린 채로 허공에 매달려 몸부림치며 혀를 내밀고 눈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데 피를 흘리고 서서히 죽어가던 이 소년을 보면서 엘리 위젤은 자신의 가슴속에서 피 눈물나는 외마디 절규를 토해내고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고 그때 그는 어떤 목소리의 대답을 듣는다. ‘나는 저 소년과 함께 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 수년 후 엘리 위젤이 생존자가 되어 파리에 가서 유명한 작가 프랑수아 모리악(Francois Mauriac)을 만났을 때 그 체험을 들려주자 모리악은 조용히 엘리 위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에게 나타난 그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고 싶소. 2000년전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고통을 대신
  • 가격3,200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13.07.14
  • 저작시기2013.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9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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