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좌파(좌익)와 포스트 막스주의(마르크스주의)
Ⅲ. 좌파(좌익)와 민족운동
Ⅳ. 좌파(좌익)와 독일 녹색당
Ⅴ. 좌파(좌익)와 영국 노동당
Ⅵ. 좌파(좌익)와 영국 신좌파운동
참고문헌
Ⅱ. 좌파(좌익)와 포스트 막스주의(마르크스주의)
Ⅲ. 좌파(좌익)와 민족운동
Ⅳ. 좌파(좌익)와 독일 녹색당
Ⅴ. 좌파(좌익)와 영국 노동당
Ⅵ. 좌파(좌익)와 영국 신좌파운동
참고문헌
본문내용
익간 ‘동시적 교환’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크라일레의 결론은 이탈리아 자본의 힘이 노조로부터 임금투쟁 자제를 이끌어낼 정도로 노조측에 대한 교환의 상대로서 1970년대 당시 충분히 성장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대노조관계에서 이탈리아 자본이 충분히 성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관찰된다. 그것은 1980년 피아트사에서 사무직과 기술직을 중심으로한 반노조 시위로 노조 세력이 현저히 위축된 이후, 물가인상에 대한 임금연동제(scala mobile) 폐지를 두고 198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자본측의 공세를 통해 증명될 수 있다. ‘교환’은 일방의 독자적 결정이나 양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상대에 의한 교섭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할 때, 기본적으로 자본이 노조의 교환상대로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교환론’ 자체가 설득력을 담보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1969년 ‘뜨거운 가을’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노조가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조직적 대항세력이자 주요한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역량을 보다 공고히 하고 경제투쟁의 상대적 성공을 정치적 사회개혁 투쟁으로 발전시켜 간 사실을 주지할 때, EUR노선은 공산당의 정치적 다수 참가라는 호기를 사회구조개혁이라는 자신의 전략적 목표달성에 이용하기 위한 전술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판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탈리아 노조들이 사회구조개혁의 조직적 전제로서 통합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는 점과, EUR노선에 나타난 요구목록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의 포기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구조개혁 요구들을 담고 있는 데서 뒷받침된다.
Ⅱ. 좌파(좌익)와 포스트 막스주의(마르크스주의)
포스트맑스주의는 맑스주의의 계급중심성과 본질론을 비판한 라클라우와 무프의 논의에 기초한다(Laclau and Mouffe, 1985 ; Laclau, 1990 ; Mouffe, 1988).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맑스주의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이 이론의 출발 자체가 비서구사회의 경험으로부터이며 따라서 그 만큼 비서구사회에 적합한 이론이라는 점에서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맑스주의가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었던 만큼이나 한국과 같은 제3세계인 60년대의 아르헨티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현하여 그 만큼 한국사회에 시사성이 크다는 가정이 가능하다(Laclau, 1990:197-9). 라클라우가 경험한 60년대의 아르헨티나의 주된 정치 구도는 페론주의와 반페론주의로 양분된 상황이었다. 페론주의는 군부와 노동조합을 제도적 기반으로 극좌에서 극우에 걸치는 광범한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반페론주의는 보수당부터 공산당까지의 전통적 정당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런 구분은 자유주의 좌파와 민족좌파의 구분으로 발전하였으며 국제주의적인 전자가 공산당의 지지를, 그리고 후자는 트로츠키 주의자의 지지를 받게 되는 의외적인 결과를 나았다. 이러한 상황들은 계급론을 포함한 전통적인 정치이론의 틀로 설명되지 않으며 접합, 헤게모니 등의 개념도구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사회 역시 다양한 정치적 주체의 이합집산 과정이 전통적 정치 사회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아 비교 가능한 역사적 조건에서 출현한 포스트맑스주의와 같은 이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을 정체성의 유동성과 차이와 연대의 조화로 요약한다.
Ⅲ. 좌파(좌익)와 민족운동
일본지역의 한인민족운동은 사회주의계열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물론 2.8독립선언운동, 박열의 천황암살사건, 김지섭폭탄투척사건 등 사회주의계열과 무관한 운동도 있었다. 이러한 운동이 민족운동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으나 지속적인 반일민족운동으로 정착하지 못한데 비해 사회주의계열의 운동은 생명력을 가졌다. 즉 조직적으로 재일한인들을 민족운동에 구성하여 지속적인 운동을 주도한 것은 사회주의계열이었던 것이다. 在日本朝鮮勞總同盟(이하 재일노총), 조선공산당 일본부 등이 그 주역이다.
일본지역에서 전개된 가장 대표적인 민족운동인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은 재일노총이 1927년 6월부터 전개한 민족운동으로 大阪(오사카)에서 일어나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총독폭압정치반대운동은 1925년 11월 검거된 朝鮮공산당원에 대한 공판에 따른 가혹행위, 전남 완도군 소안도 소안학교 강제폐쇄사건 등 국내에서 벌어진 식민통치정책의 모순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이 가운데 소안학교 강제 폐쇄는 전남지역민이 다수 거주하는 오사카한인사회에도 영향을 미쳐 1927년 5월 10일에 大阪완도향우회, 재東京완도향우회, 재橫濱완도향우회가 합동으로 격문 4천매를 발송하였으며, 특히 大阪완도향우회는 21일 오사카시내 金水館에서 소안사립학교페교반대동맹을 조직하고 반대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소안사립학교폐교에 반대하는 운동은 성격이 1927년 6월 1일 총독失政공격대회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5월 21일 소안사립학교 폐교반대연설회를 개최한 주최측은 이 문제를 ‘전 조선적으로 확대시키는 동시에 지난 4월부터 일어난 경성제일고보사건(경성제2高普사건의 誤記), 해남·영흥사건, 통영김기정사건을 합하여 전 오사카에 거주하는 조선사람을 망라하여 當局失政탄핵운동실행위원회’를 발족한 후 6월 1일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6월 1일에 열린 총독失政공격대회는 일본지역에서 전개된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의 始原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재일노총 大阪조선노조를 비롯하여 일본노동조합, 노동당 大阪지부, 전국청년동맹, 수평사 등 일본사회운동단체 40여개가 후원한 가운데 열린 대회에는 4천여 청중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소안도 출신으로 당시 재일노총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남국(鄭南局)의 진상보고와 일본노동조합평의회 본부집행위원장 野田律太의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에 대한 정책 이면 폭로라는 연설의 뒤를 이어 泉尾노동조합 소년부 소속 한인 소년 소녀들의 우리 조선 약소민족과 우리 소년의 비애라는 연설로 진행되던 중 800여 경찰의 해산령으로 폐회되었다.
소안사립학교 폐교를 비롯하여 경성제2고보사건, 해남·영흥사건, 통영김기정사건 등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안학교강제
크라일레의 결론은 이탈리아 자본의 힘이 노조로부터 임금투쟁 자제를 이끌어낼 정도로 노조측에 대한 교환의 상대로서 1970년대 당시 충분히 성장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대노조관계에서 이탈리아 자본이 충분히 성장한 것은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관찰된다. 그것은 1980년 피아트사에서 사무직과 기술직을 중심으로한 반노조 시위로 노조 세력이 현저히 위축된 이후, 물가인상에 대한 임금연동제(scala mobile) 폐지를 두고 198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자본측의 공세를 통해 증명될 수 있다. ‘교환’은 일방의 독자적 결정이나 양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등한 상대에 의한 교섭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할 때, 기본적으로 자본이 노조의 교환상대로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교환론’ 자체가 설득력을 담보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1969년 ‘뜨거운 가을’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노조가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조직적 대항세력이자 주요한 사회개혁세력으로서의 역량을 보다 공고히 하고 경제투쟁의 상대적 성공을 정치적 사회개혁 투쟁으로 발전시켜 간 사실을 주지할 때, EUR노선은 공산당의 정치적 다수 참가라는 호기를 사회구조개혁이라는 자신의 전략적 목표달성에 이용하기 위한 전술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판단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탈리아 노조들이 사회구조개혁의 조직적 전제로서 통합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는 점과, EUR노선에 나타난 요구목록이 단순히 경제적 이익의 포기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구조개혁 요구들을 담고 있는 데서 뒷받침된다.
Ⅱ. 좌파(좌익)와 포스트 막스주의(마르크스주의)
포스트맑스주의는 맑스주의의 계급중심성과 본질론을 비판한 라클라우와 무프의 논의에 기초한다(Laclau and Mouffe, 1985 ; Laclau, 1990 ; Mouffe, 1988).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맑스주의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이 이론의 출발 자체가 비서구사회의 경험으로부터이며 따라서 그 만큼 비서구사회에 적합한 이론이라는 점에서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포스트맑스주의가 1968년 파리에서 시작되었던 만큼이나 한국과 같은 제3세계인 60년대의 아르헨티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현하여 그 만큼 한국사회에 시사성이 크다는 가정이 가능하다(Laclau, 1990:197-9). 라클라우가 경험한 60년대의 아르헨티나의 주된 정치 구도는 페론주의와 반페론주의로 양분된 상황이었다. 페론주의는 군부와 노동조합을 제도적 기반으로 극좌에서 극우에 걸치는 광범한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반페론주의는 보수당부터 공산당까지의 전통적 정당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런 구분은 자유주의 좌파와 민족좌파의 구분으로 발전하였으며 국제주의적인 전자가 공산당의 지지를, 그리고 후자는 트로츠키 주의자의 지지를 받게 되는 의외적인 결과를 나았다. 이러한 상황들은 계급론을 포함한 전통적인 정치이론의 틀로 설명되지 않으며 접합, 헤게모니 등의 개념도구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사회 역시 다양한 정치적 주체의 이합집산 과정이 전통적 정치 사회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아 비교 가능한 역사적 조건에서 출현한 포스트맑스주의와 같은 이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가 제기한 문제의 핵심을 정체성의 유동성과 차이와 연대의 조화로 요약한다.
Ⅲ. 좌파(좌익)와 민족운동
일본지역의 한인민족운동은 사회주의계열이 주도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물론 2.8독립선언운동, 박열의 천황암살사건, 김지섭폭탄투척사건 등 사회주의계열과 무관한 운동도 있었다. 이러한 운동이 민족운동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으나 지속적인 반일민족운동으로 정착하지 못한데 비해 사회주의계열의 운동은 생명력을 가졌다. 즉 조직적으로 재일한인들을 민족운동에 구성하여 지속적인 운동을 주도한 것은 사회주의계열이었던 것이다. 在日本朝鮮勞總同盟(이하 재일노총), 조선공산당 일본부 등이 그 주역이다.
일본지역에서 전개된 가장 대표적인 민족운동인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은 재일노총이 1927년 6월부터 전개한 민족운동으로 大阪(오사카)에서 일어나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총독폭압정치반대운동은 1925년 11월 검거된 朝鮮공산당원에 대한 공판에 따른 가혹행위, 전남 완도군 소안도 소안학교 강제폐쇄사건 등 국내에서 벌어진 식민통치정책의 모순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이 가운데 소안학교 강제 폐쇄는 전남지역민이 다수 거주하는 오사카한인사회에도 영향을 미쳐 1927년 5월 10일에 大阪완도향우회, 재東京완도향우회, 재橫濱완도향우회가 합동으로 격문 4천매를 발송하였으며, 특히 大阪완도향우회는 21일 오사카시내 金水館에서 소안사립학교페교반대동맹을 조직하고 반대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소안사립학교폐교에 반대하는 운동은 성격이 1927년 6월 1일 총독失政공격대회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5월 21일 소안사립학교 폐교반대연설회를 개최한 주최측은 이 문제를 ‘전 조선적으로 확대시키는 동시에 지난 4월부터 일어난 경성제일고보사건(경성제2高普사건의 誤記), 해남·영흥사건, 통영김기정사건을 합하여 전 오사카에 거주하는 조선사람을 망라하여 當局失政탄핵운동실행위원회’를 발족한 후 6월 1일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6월 1일에 열린 총독失政공격대회는 일본지역에서 전개된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의 始原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재일노총 大阪조선노조를 비롯하여 일본노동조합, 노동당 大阪지부, 전국청년동맹, 수평사 등 일본사회운동단체 40여개가 후원한 가운데 열린 대회에는 4천여 청중이 참가했다. 이 대회는 소안도 출신으로 당시 재일노총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정남국(鄭南局)의 진상보고와 일본노동조합평의회 본부집행위원장 野田律太의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에 대한 정책 이면 폭로라는 연설의 뒤를 이어 泉尾노동조합 소년부 소속 한인 소년 소녀들의 우리 조선 약소민족과 우리 소년의 비애라는 연설로 진행되던 중 800여 경찰의 해산령으로 폐회되었다.
소안사립학교 폐교를 비롯하여 경성제2고보사건, 해남·영흥사건, 통영김기정사건 등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의 계기를 제공한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안학교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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