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임야소유권
Ⅱ.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목재수급
1. 용재의 생산량 추이
2. 용재의 수이입량 추이
3. 용재의 수이출량 추이
4. 용재의 이입량과 이출량 비교
Ⅲ.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국제수지
1. 직접투자 : <일본의 직접투자(주식, 사업투자, 차입금) 추계>
1) 주식(=본점회사 출자)
2) 사업투자(=지점회사 투자)
3) 차입금
2. 기타투자
Ⅳ.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계층별임금
Ⅴ.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종교와 교육
참고문헌
Ⅱ.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목재수급
1. 용재의 생산량 추이
2. 용재의 수이입량 추이
3. 용재의 수이출량 추이
4. 용재의 이입량과 이출량 비교
Ⅲ.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국제수지
1. 직접투자 : <일본의 직접투자(주식, 사업투자, 차입금) 추계>
1) 주식(=본점회사 출자)
2) 사업투자(=지점회사 투자)
3) 차입금
2. 기타투자
Ⅳ.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계층별임금
Ⅴ.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종교와 교육
참고문헌
본문내용
] 재정편에서 그 세입과 세출액을 파악할 수 있다. 양자의 차액(즉 매 연도 보험료를 중심으로 하는 그 해의 수입에서 지출을 뺀 잉여금)이 대장성 예금부 관리하에 들어가는 형태로 유출되었다. 그 수치와 무역외수지표의 해당 항목을 비교해 보면 매우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Ⅳ.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계층별임금
일제하의 실질임금에 관한 허수열의 추계치를 보면, 숙련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상승 추세를 보인 반면, 조선인 노동자들의 다수를 이루는 불숙련노동자와 농업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정체 양상을 보였다. 다수를 이루는 한 쪽(비숙련노동자)이 정체하고 소수인 다른 한 쪽(도시 숙련노동자)이 증가하여, 전체적으로는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이 미약하게나마 상승한 셈이다.
또, 근로대중의 다수를 이루는 농림어업의 소생산자 중, 반농반로(半農半勞) 빈농층의 수입은 농업노동자와 같은 추이를 보였다(=‘정체했다’). 반면 일정 규모 이상의 경영규모를 갖는 농림어업주의 소득은 농가당 평균 미곡생산액을 기준으로 할 때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해 보면, 숙련노동자와 농림어업 자영업주까지 포함한 전체 대중의 소득수준은 향상되었다. 비숙련노동자라는 한 그룹은 개선이 없었을 뿐, 악화되지도 않은 반면, 숙련노동자 및 중상층 자영업주 그룹은 개선되었다. 1인당 소득이 증가하는 가운데 소득분배가 악화되었으나, 하층 대중의 생활수준이 악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 비숙련노동자층의 임금 정체 및 소득분배 악화 현상은 일제하의 경제성장이 없었거나 기형적이거나 부실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되는 가운데서, 근대의학 및 공중보건제도의 전면적 도입에 따라 갑작스레 사망률만 낮아져 인구구조 및 노동시장의 균형이 깨진 결과일 뿐이었다. 비숙련노동자 집단의 소득 향상이 없었던 것은 근대경제성장의 불가피한 부산물이었다.
이처럼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1인당 소득과 소비지출, 임금은 생활수준의 악화를 시사하지 않는다.
Ⅴ.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종교와 교육
한국 초등학교의 교과 과정은 일본어가 필수 과목이었고, 1921년의 「第2次朝鮮敎育令」이후에는 일본 역사가 추가되었다. 교과서는 일본어로 씌어 졌으며, 수업용 언어도 조선어 및 한문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본어였다.
후기로 갈수록 교육 과정의 차이는 점점 더 커졌다. 인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교육의 인도화가 활발해졌다. 한국은 반대의 방향을 걸었다. 1938년 이후에는 조선어 및 한문이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고, 초등학교의 수업용 언어도 완전히 일본어로 바뀌었다.
교육 과정이 아무리 일본적이라 해도 취학률이 낮으면 그것이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1941년에 한국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43.4%였다. 한 편 인도는 19.8%였다.
인도 총독부든 조선 총독부든 교육 정책의 주된 목적은 植民地民들의 사고 방식을 통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었지만, 그 방법은 각각 달랐다. 인도 총독부는 그가 인도 엘리트층에게 서구식 가치관과 개념을 나누어 주기만 하면, 이후에는 엘리트층들이 그들의 지식을 민중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植民地民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인도의 교육 제도는 중등교육 이상에 중점이 두어졌다. 이것은 植民地民의 사고 방법을 바꾼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낮은 정책이었기 때문에 비판받기도 했지만, 비용이 적게 드는 정책이기도 했다.
한편, 조선 총독부는 초등교육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일본식 사고 방법을 교육하려고 했다. 특히 공립의 초등교육 기관을 늘리는 것을 중요시했다. 전체 취학 아동에서 차지하는 공립학교 학생수의 비율이 1920-40년 사이에 23%에서 76%로 상승했다.
조선 총독부는 한국에 일본의 고유 종교인 神道를 보급하기에 분주했다. 神道의 道場인 神社를 많이 만들었으며, 일본인과 日本神이 한국 역사의 시초부터 한국의 왕과 건국 신으로 되었다고 하는 日鮮同祖論을 내세워, 한국인의 神社 참배를 강요했다.
위의 움직임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강화되었다. 총독부는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한국인 마음속의 종교적인 자세를 일본의 神道의 그것으로 대체하려 했다. 예를 들면 農村振興運動을 시행하면서 총독부는 農村振興運動의 민간 측 대리인을 지방의 향교에 모아 교육하면서, 그 곳에서 神道의 교리를 가르쳤다. 神社의 수는 1920년에 82, 1925년에 152, 1930년에 231, 1935년에 324로 급증해 갔다.
식민 본국 종교의 보급의 정도는 인도보다도 한국에 있어서 훨씬 높았다. 1930년대 후반에 인도의 기독교 信者 비율은 1.8% 정도였지만, 한국의 神道 信者 비율은 8.5%였다.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 종교를 가지게 된 사람이 증가할수록 일본적인 생활 양식과 사고 양식을 습득한 사람이 증가하게 되며 그만큼 통제하기 쉽게 된다. 자본을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투자의 위험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화주의 정책은 그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보편적인 제도로 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1881년에 알제리 各部의 행정을 본국 各省에 직속하도록 하는 등, 알제리에 대해서 동화주의 정책을 폈다. 그렇지만 1900년대에 들어온 이후 정책이 바뀌어 알제리는 자치 단체로 되었다. 알제리 예산이 알제리 의회의 감독 하에 성립하도록 되었다. 그 계기는 동화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프랑스領 인도지나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있었다.
참고문헌
김낙년 / 식민지기 조선의 국제수지 추계, 경제사학회, 2004
배재수 / 식민지기 조선의 목재수급 추이 및 특성, 경제사학회, 2005
이우연 / 식민지기 임야소유권의 정리 : 산림녹화와 소유권, 경제사학회, 2006
이우연 외 1명 / 식민지 조선의 임금 수준과 구조, 경제사학회, 2007
오성철 / 식민지기 교육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 초등학교 규율의 내용과 형식, 한국교육사학회, 2000
허수 / 일제하 사상 논쟁에 나타난 종교 개념의 충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2009
Ⅳ.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계층별임금
일제하의 실질임금에 관한 허수열의 추계치를 보면, 숙련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상승 추세를 보인 반면, 조선인 노동자들의 다수를 이루는 불숙련노동자와 농업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정체 양상을 보였다. 다수를 이루는 한 쪽(비숙련노동자)이 정체하고 소수인 다른 한 쪽(도시 숙련노동자)이 증가하여, 전체적으로는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이 미약하게나마 상승한 셈이다.
또, 근로대중의 다수를 이루는 농림어업의 소생산자 중, 반농반로(半農半勞) 빈농층의 수입은 농업노동자와 같은 추이를 보였다(=‘정체했다’). 반면 일정 규모 이상의 경영규모를 갖는 농림어업주의 소득은 농가당 평균 미곡생산액을 기준으로 할 때 2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해 보면, 숙련노동자와 농림어업 자영업주까지 포함한 전체 대중의 소득수준은 향상되었다. 비숙련노동자라는 한 그룹은 개선이 없었을 뿐, 악화되지도 않은 반면, 숙련노동자 및 중상층 자영업주 그룹은 개선되었다. 1인당 소득이 증가하는 가운데 소득분배가 악화되었으나, 하층 대중의 생활수준이 악화된 것은 아니었다.
이 비숙련노동자층의 임금 정체 및 소득분배 악화 현상은 일제하의 경제성장이 없었거나 기형적이거나 부실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근대경제성장이 진행되는 가운데서, 근대의학 및 공중보건제도의 전면적 도입에 따라 갑작스레 사망률만 낮아져 인구구조 및 노동시장의 균형이 깨진 결과일 뿐이었다. 비숙련노동자 집단의 소득 향상이 없었던 것은 근대경제성장의 불가피한 부산물이었다.
이처럼 생활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1인당 소득과 소비지출, 임금은 생활수준의 악화를 시사하지 않는다.
Ⅴ. 식민지기(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의 종교와 교육
한국 초등학교의 교과 과정은 일본어가 필수 과목이었고, 1921년의 「第2次朝鮮敎育令」이후에는 일본 역사가 추가되었다. 교과서는 일본어로 씌어 졌으며, 수업용 언어도 조선어 및 한문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일본어였다.
후기로 갈수록 교육 과정의 차이는 점점 더 커졌다. 인도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교육의 인도화가 활발해졌다. 한국은 반대의 방향을 걸었다. 1938년 이후에는 조선어 및 한문이 필수 과목에서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고, 초등학교의 수업용 언어도 완전히 일본어로 바뀌었다.
교육 과정이 아무리 일본적이라 해도 취학률이 낮으면 그것이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1941년에 한국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43.4%였다. 한 편 인도는 19.8%였다.
인도 총독부든 조선 총독부든 교육 정책의 주된 목적은 植民地民들의 사고 방식을 통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었지만, 그 방법은 각각 달랐다. 인도 총독부는 그가 인도 엘리트층에게 서구식 가치관과 개념을 나누어 주기만 하면, 이후에는 엘리트층들이 그들의 지식을 민중에게 전달하게 될 것이고, 결국 모든 植民地民에게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인도의 교육 제도는 중등교육 이상에 중점이 두어졌다. 이것은 植民地民의 사고 방법을 바꾼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낮은 정책이었기 때문에 비판받기도 했지만, 비용이 적게 드는 정책이기도 했다.
한편, 조선 총독부는 초등교육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일본식 사고 방법을 교육하려고 했다. 특히 공립의 초등교육 기관을 늘리는 것을 중요시했다. 전체 취학 아동에서 차지하는 공립학교 학생수의 비율이 1920-40년 사이에 23%에서 76%로 상승했다.
조선 총독부는 한국에 일본의 고유 종교인 神道를 보급하기에 분주했다. 神道의 道場인 神社를 많이 만들었으며, 일본인과 日本神이 한국 역사의 시초부터 한국의 왕과 건국 신으로 되었다고 하는 日鮮同祖論을 내세워, 한국인의 神社 참배를 강요했다.
위의 움직임은 1930년대에 들어와서 더욱 강화되었다. 총독부는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한국인 마음속의 종교적인 자세를 일본의 神道의 그것으로 대체하려 했다. 예를 들면 農村振興運動을 시행하면서 총독부는 農村振興運動의 민간 측 대리인을 지방의 향교에 모아 교육하면서, 그 곳에서 神道의 교리를 가르쳤다. 神社의 수는 1920년에 82, 1925년에 152, 1930년에 231, 1935년에 324로 급증해 갔다.
식민 본국 종교의 보급의 정도는 인도보다도 한국에 있어서 훨씬 높았다. 1930년대 후반에 인도의 기독교 信者 비율은 1.8% 정도였지만, 한국의 神道 信者 비율은 8.5%였다.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 종교를 가지게 된 사람이 증가할수록 일본적인 생활 양식과 사고 양식을 습득한 사람이 증가하게 되며 그만큼 통제하기 쉽게 된다. 자본을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투자의 위험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화주의 정책은 그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보편적인 제도로 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1881년에 알제리 各部의 행정을 본국 各省에 직속하도록 하는 등, 알제리에 대해서 동화주의 정책을 폈다. 그렇지만 1900년대에 들어온 이후 정책이 바뀌어 알제리는 자치 단체로 되었다. 알제리 예산이 알제리 의회의 감독 하에 성립하도록 되었다. 그 계기는 동화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프랑스領 인도지나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있었다.
참고문헌
김낙년 / 식민지기 조선의 국제수지 추계, 경제사학회, 2004
배재수 / 식민지기 조선의 목재수급 추이 및 특성, 경제사학회, 2005
이우연 / 식민지기 임야소유권의 정리 : 산림녹화와 소유권, 경제사학회, 2006
이우연 외 1명 / 식민지 조선의 임금 수준과 구조, 경제사학회, 2007
오성철 / 식민지기 교육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 초등학교 규율의 내용과 형식, 한국교육사학회, 2000
허수 / 일제하 사상 논쟁에 나타난 종교 개념의 충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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