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중요성
Ⅲ.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규정
Ⅳ.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
1. 성격규정의 결여
2. 법적 책임 구성의 결여
3. 진실규명차원과 정의구현차원의 구별문제
4. 위원회의 구성문제
5. 죽은 자의 차별문제
6. 군사재판
Ⅴ.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시민사회
1. 유족들과 유족회
2. 연구소와 연구자
3. 전국단위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Ⅵ.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진상규명운동
Ⅶ. 향후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개선 과제
1. 권고의견의 부재
2. 제도적 처방
3. 인권교과서
Ⅷ. 결론
참고문헌
Ⅱ.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중요성
Ⅲ.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규정
Ⅳ.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
1. 성격규정의 결여
2. 법적 책임 구성의 결여
3. 진실규명차원과 정의구현차원의 구별문제
4. 위원회의 구성문제
5. 죽은 자의 차별문제
6. 군사재판
Ⅴ.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시민사회
1. 유족들과 유족회
2. 연구소와 연구자
3. 전국단위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Ⅵ.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진상규명운동
Ⅶ. 향후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개선 과제
1. 권고의견의 부재
2. 제도적 처방
3. 인권교과서
Ⅷ.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도 있다. 군내 강경파와 일부 수구정치세력이 완강한 저항과 반발의 자세를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크게 비관할 이유는 못된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보고서 내용이나 결론을 여론주도층이 수긍하고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듯하니, 그것은 43에 대한 새 해석이 종래의 관변측 해석을 누르고 우위에 서게 됨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된 데는 보고서 내에 하나하나 제시된 증거와 논리도 중요하지만, 현대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틀이 그동안 크게 바뀌어 왔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꼽아야 한다. 지배이데올로기와 공적 기억에 기만당하고 배신당한 경험을 너무도 많이 가지게 되었던 때문이다. 사실, 어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 늘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역사인식의 천박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 하나라고만 주장하거나 하나이어야 한다고 고집할 근거도 박약하기만 하다. 진실은 언제든 변하며 다중적인 것일 수가 있다. 그렇다고 강자와 승리자가 내세우고픈 진실이, 또는 제비뽑기 식으로 아무렇게나 선택된 진실이 우리를 현혹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
진실 찾기, 진실의 확인, 진실의 복원이라는 일련의 행정(cycle)으로 이루어지는 진실회복이 늘 소망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43에 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43의 진상은 그런 진실회복운동의 긴 경로를 통해서, 그 성과로서 규명이 된 것이다. 진실은 갈등이 아닌 평화를 가져다준다. 누구든 진실에 승복하기로 하는 이상, 그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실의 횃불 밝혀 평화의 바다로” 나아가자는 말도 그런 의미로 이해된다.
그런데 한 공동체가 겪었던 비극적 사건에 대한 집단적사회적 기억은 그 원인은 재쳐둔 채 재난참화의 실상에만 사로잡히면서 왜곡되어지기 쉽다. 그것이 오히려 회상의 회피, 기억의 억압과 침전이라는 결과도 낳게 된다. 그만큼 역사적 기억은 개인적집단적 차원의 선택 또는 배제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우선은 기억할 것인가 말 것인가(잊어버릴 것인가)의 선택이 있게 되고, 기억하기로 한다면 사건의 어떤 부분을 얼마만큼 어떻게(어떤 의미로) 기억할 것인가가 결정된다. 후자의 경우에 중요해지는 것이 기억의 물질화이다. 부유하는 기억들을 잡아끌어 정박시키고, 억압되고 있거나 침잠 상태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며, 다른 집단이나 후세대인들에게 환기 또는 전달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행위이다. 그것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다양한 결과를 낳는 문화적 재현이기도 하다.
43에 대해서도 앞에서 보았듯이 다방면으로 문화적 재현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사실적 재현도 있었고, 상징적 재현도 있었다. 사건 자체를 재현해보려는 노력도 있었고, 그것에 관한 개인적 심상이나 사회적 기억을 투영시키는 방식의 재현도 있었다. 주로 문학미술 분야에서의 개인적 재현행위들도 있었지만, 집단적조직적인 재현활동이 대종을 이루었다. 증언, 추모제, 마당극, 노래, 영상물조형물 제작이 대표적인 경우들이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의 관찰의 시점보다는 ‘안’에서의 문제제기 자세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로부터 특별한 의도와 목적의식을 내장시켰다고 볼 수 있는 실천적 문화운동 범주가 성립했던 것이다. 그것은 43의 두 측면, 즉 항쟁과 학살에 공히 초점을 맞추면서도 종래의 지배담론이나 공적 기억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 의미를 찾고 재현해내려 했다. 그것은 진실회복을 위한 지난한 싸움이기도 했다. 이것이 43 문화운동을 ‘기억의 정치’의 장에 위치시켜놓고 ‘기억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고찰하며 그 효과를 꼼꼼하게 분석도 해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글에서는 43 문화운동의 양상을 자세히 전면적으로 다룰 여유가 없었음으로 해서 지금 단계에서는 그런 분석이 정치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투쟁’이 현존하는 대립물의 팽팽한 대치와 갈등의 형국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창조적 혁신, 어떤 유의 부활과 전변(transformation)과 초월(transcendence)을 중요한 의미항으로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 그 문화운동=기억투쟁은, 43을, 그 격렬한 항쟁과 대량학살의 시간을 직접 체험하고 살아남은 자의 심층기억과 사적 기억들을, 그러나 공적 기억의 지배력과 그것에 포섭된 사회적 기억들의 무게에 눌려서 전혀 목소리를 못 내고 침묵하는 개인의 회상으로만 존재하는 수동적 기억들을 민주화의 시공간 속에서 비로소 목소리를 내며 분출하는 활성적 기억으로 만들어갔다. 억압된 기억의 변성과 변위가 일어나 자기 확신을 기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부활하고 변환된 기억은 다시 기존의 공적 기억에 균열을 일으키고 사회적 기억의 질서를 교란시키면서 43에 관한 새로운 공적 기억의 소재요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하여 문화적 재현 운동은 결과적으로 청산 대상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집합기억 형성, 새로운 역사적 기억 구성창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임이 판명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집단/공동체/사회가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낡은 이데올로기적 기억으로부터 신생의 기억=대항기억으로의 이전, 아니 단순한 수평이동이 아니라 극적인 비상과 초월을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43 문화운동을 탐색해 봄으로써 얻게 되는 이론적 시사점이다.
Ⅱ.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중요성
사건 발생 55년 만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정부의 매우 공식적인 제주43사건 관련 진상조사보고서의 확정은 그 동안 미군 지배와 전쟁, 냉전과 독재체제로 인하여 지체되었던 민주주의 발전과 과거청산, 인권보호와 신장에 획기적 전환의 일대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 시기 매우 어려운 조건과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분투해 온 모든 민주 인사, 양심적 세력, 시민사회단체에게 깊은 경의와 감사, 연대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특히 이 자리에 초대해 준 지역언론사, 기자협회와 연구소 관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이분들의 노고가 아니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성과를 달성하기
그렇게 된 데는 보고서 내에 하나하나 제시된 증거와 논리도 중요하지만, 현대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틀이 그동안 크게 바뀌어 왔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꼽아야 한다. 지배이데올로기와 공적 기억에 기만당하고 배신당한 경험을 너무도 많이 가지게 되었던 때문이다. 사실, 어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 늘 고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역사인식의 천박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역사적 사건의 진실이 하나라고만 주장하거나 하나이어야 한다고 고집할 근거도 박약하기만 하다. 진실은 언제든 변하며 다중적인 것일 수가 있다. 그렇다고 강자와 승리자가 내세우고픈 진실이, 또는 제비뽑기 식으로 아무렇게나 선택된 진실이 우리를 현혹하도록 방임해서도 안된다.
진실 찾기, 진실의 확인, 진실의 복원이라는 일련의 행정(cycle)으로 이루어지는 진실회복이 늘 소망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43에 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43의 진상은 그런 진실회복운동의 긴 경로를 통해서, 그 성과로서 규명이 된 것이다. 진실은 갈등이 아닌 평화를 가져다준다. 누구든 진실에 승복하기로 하는 이상, 그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실의 횃불 밝혀 평화의 바다로” 나아가자는 말도 그런 의미로 이해된다.
그런데 한 공동체가 겪었던 비극적 사건에 대한 집단적사회적 기억은 그 원인은 재쳐둔 채 재난참화의 실상에만 사로잡히면서 왜곡되어지기 쉽다. 그것이 오히려 회상의 회피, 기억의 억압과 침전이라는 결과도 낳게 된다. 그만큼 역사적 기억은 개인적집단적 차원의 선택 또는 배제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우선은 기억할 것인가 말 것인가(잊어버릴 것인가)의 선택이 있게 되고, 기억하기로 한다면 사건의 어떤 부분을 얼마만큼 어떻게(어떤 의미로) 기억할 것인가가 결정된다. 후자의 경우에 중요해지는 것이 기억의 물질화이다. 부유하는 기억들을 잡아끌어 정박시키고, 억압되고 있거나 침잠 상태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며, 다른 집단이나 후세대인들에게 환기 또는 전달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행위이다. 그것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다양한 결과를 낳는 문화적 재현이기도 하다.
43에 대해서도 앞에서 보았듯이 다방면으로 문화적 재현 작업이 이루어져 왔다. 사실적 재현도 있었고, 상징적 재현도 있었다. 사건 자체를 재현해보려는 노력도 있었고, 그것에 관한 개인적 심상이나 사회적 기억을 투영시키는 방식의 재현도 있었다. 주로 문학미술 분야에서의 개인적 재현행위들도 있었지만, 집단적조직적인 재현활동이 대종을 이루었다. 증언, 추모제, 마당극, 노래, 영상물조형물 제작이 대표적인 경우들이었다. 그것은 ‘밖’으로부터의 관찰의 시점보다는 ‘안’에서의 문제제기 자세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로부터 특별한 의도와 목적의식을 내장시켰다고 볼 수 있는 실천적 문화운동 범주가 성립했던 것이다. 그것은 43의 두 측면, 즉 항쟁과 학살에 공히 초점을 맞추면서도 종래의 지배담론이나 공적 기억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 의미를 찾고 재현해내려 했다. 그것은 진실회복을 위한 지난한 싸움이기도 했다. 이것이 43 문화운동을 ‘기억의 정치’의 장에 위치시켜놓고 ‘기억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고찰하며 그 효과를 꼼꼼하게 분석도 해보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글에서는 43 문화운동의 양상을 자세히 전면적으로 다룰 여유가 없었음으로 해서 지금 단계에서는 그런 분석이 정치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투쟁’이 현존하는 대립물의 팽팽한 대치와 갈등의 형국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창조적 혁신, 어떤 유의 부활과 전변(transformation)과 초월(transcendence)을 중요한 의미항으로 내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 그 문화운동=기억투쟁은, 43을, 그 격렬한 항쟁과 대량학살의 시간을 직접 체험하고 살아남은 자의 심층기억과 사적 기억들을, 그러나 공적 기억의 지배력과 그것에 포섭된 사회적 기억들의 무게에 눌려서 전혀 목소리를 못 내고 침묵하는 개인의 회상으로만 존재하는 수동적 기억들을 민주화의 시공간 속에서 비로소 목소리를 내며 분출하는 활성적 기억으로 만들어갔다. 억압된 기억의 변성과 변위가 일어나 자기 확신을 기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부활하고 변환된 기억은 다시 기존의 공적 기억에 균열을 일으키고 사회적 기억의 질서를 교란시키면서 43에 관한 새로운 공적 기억의 소재요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하여 문화적 재현 운동은 결과적으로 청산 대상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집합기억 형성, 새로운 역사적 기억 구성창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임이 판명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 집단/공동체/사회가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낡은 이데올로기적 기억으로부터 신생의 기억=대항기억으로의 이전, 아니 단순한 수평이동이 아니라 극적인 비상과 초월을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43 문화운동을 탐색해 봄으로써 얻게 되는 이론적 시사점이다.
Ⅱ. 제주 4 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중요성
사건 발생 55년 만에 이루어진 대한민국 정부의 매우 공식적인 제주43사건 관련 진상조사보고서의 확정은 그 동안 미군 지배와 전쟁, 냉전과 독재체제로 인하여 지체되었던 민주주의 발전과 과거청산, 인권보호와 신장에 획기적 전환의 일대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지난 시기 매우 어려운 조건과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하여 분투해 온 모든 민주 인사, 양심적 세력, 시민사회단체에게 깊은 경의와 감사, 연대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특히 이 자리에 초대해 준 지역언론사, 기자협회와 연구소 관계자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이분들의 노고가 아니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성과를 달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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