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공업과 금속기계공업
1. 철강 공업
2. 비철 금속 공업
3. 전기 기기 공업
4. 전자 기기 공업
5. 조선 공업
6. 자동차 공업
Ⅲ. 공업과 대공업
Ⅳ. 공업과 후발공업화
Ⅴ. 공업과 말레이시아 공업화
Ⅵ. 공업과 북한공업
Ⅶ. 공업과 기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과 복합적인 기계체계의 구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
2) 복합적인 기계체계
2. 대공업은 그 특징적 수단인 기계 그 자체를 기계로써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3. 기계의 형태를 취한 노동수단은 인간력을 자연력으로 대체하도록 하며, 경험적 숙련을 자연과학의 의식적 응용으로 대체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않다
참고문헌
Ⅱ. 공업과 금속기계공업
1. 철강 공업
2. 비철 금속 공업
3. 전기 기기 공업
4. 전자 기기 공업
5. 조선 공업
6. 자동차 공업
Ⅲ. 공업과 대공업
Ⅳ. 공업과 후발공업화
Ⅴ. 공업과 말레이시아 공업화
Ⅵ. 공업과 북한공업
Ⅶ. 공업과 기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과 복합적인 기계체계의 구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
2) 복합적인 기계체계
2. 대공업은 그 특징적 수단인 기계 그 자체를 기계로써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3. 기계의 형태를 취한 노동수단은 인간력을 자연력으로 대체하도록 하며, 경험적 숙련을 자연과학의 의식적 응용으로 대체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않다
참고문헌
본문내용
했다.
이러한 요소들은 말레이시아에서 국가의 힘이 강화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동아시아 NICs의 국가성격을 특징지은 역사적 배경들은 공유하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말레이시아는 한국이나 대만과 달리 지정학적으로 외국의 원조를 받을 조건을 갖추지 않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후자의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것은 중요한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제적 조건들이 동아시아 NICs의 국가가 개발지향적인 성격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건이 없었던 말레이시아는 경제성장을 강제 받을 절박함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Ⅵ. 공업과 북한공업
북한 공업의 부문별 구조변동 추이(1949~1989년)를 보면 기계제작, 금속가공공업 등 중공업 분야의 비중이 급속히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북한에서 기계제작 및 금속가공 공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우선 기계제작 공업이 “중공업의 핵심이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의 발전과 기술적 진보의 기초”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계, 금속, 화학공업은 북한의 군수산업과 밀접한 관계 하에서 육성되어 왔던 것으로 보이고, 또 이 분야 발전에 필요한 상당량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이 중화학공업육성을 군수산업과 관련하여 추진하였다는 증거는, 북한당국이 매년 발표하는 재정지출 중 군사비의 비중이 1967~1971년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균적으로 매년 10~15%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1980년대 말 북한 군수산업의 생산규모가 사회총생산(GVSP)의 30%이상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국방에서의 주체(자위)”라는 구호 아래 군수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였고, 특히 1967~1971년 기간 중에는 재정지출에서 군수산업비중이 연 평균 30~33%에 달했던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북한의 군수산업은 1980년대 후반에는 전투기, 전차, 초계정 및 미사일 등을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 수출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러시아의 북한전문가인 M.E.Trigubenko에 의할 것 같으면, 1980년대 말 기준으로 북한의 군수산업은 기술수준이나 제품의 질적 수준면에서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와서부터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해 공개적으로 정보를 노출시키고 있고, 이미 1993년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서방의 추측은 북한 군수산업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제한된 투자재원으로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치중하여 왔다는 것은 소비재공업 등 민수산업의 궁핍화를 귀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산업정책은 경공업과 농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제한된 자원과 기술수준으로 군수산업중심의 중공업에 계속 투입을 집중함으로써 경공업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업구조에서 중공업 대 경공업의 비율이 1956년 52.4 대 47.6 이던 것이 1987년에는 69.0 대 31.0 으로 최대 격차를 나타낸 이후 1990년에는 67.3 대 32.7로 다소 경공업 비중이 개선되었다.
북한은 제3차 7개년 계획(1987~1993)기간 중에 모든 사회주의 경제의 해체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업생산은 1.5배, 그리고 연평균 성장률은 5.6%를 이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이 기간 중 기계공업, 전력, 광업생산 등에 역점을 두어 1993년 전력생산은 1986년 수준보다 1.3배, 석탄생산은 1.4배, 비철금속 생산은 1.6배 증대했고, 현대기계 산업분야의 발전으로 자동차 엔진, 수력장비, 전력장비 등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화학비료 생산도 1.5배 증대했고, 경공업(지방공업) 생산도 1.7배 증대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보와 자료로 보아 1990년대 이후 경공업(지방공업) 생산증대를 통해 북한주민의 생필품 공급을 늘리겠다는 북한당국의 정책적 의도가 좀더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징조를 읽을 수 있다.
사실 북한의 제3차 7개년 계획의 기본과업과 목표가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계속 힘 있게 다그쳐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위한 물질 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마련하고”, “인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더욱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인민생활 수준을 한 계단 높이 올려 세우는 것”을 제시하면서부터 농업과 경공업 분야의 비중이 다소 개선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경공업 혁명”의 기치(1984년)를 내걸고 이른바 8·3 인민소비품 증산운동을 김정일의 주도로 전개한 바 있지만, 그 구체적인 개선징조는 1987년 이후부터 미미하게나마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은 김일성의 신년사를 통해 1989년을 “경공업의 해”로 설정하고, 동시에 동년 6월에는 경공업발전 3개년 계획(1989.7~1992.6)을 수립하여 “방직공업 발전으로 입는 문제를 높은 수준에서 해결하고, 식료가공공업 발전으로 몇 년 내에 식료가공품 생산을 3.2배 증대, 일용품공업 발전으로 몇 년 내에 일용품 2.5배 생산증대, 2~3년 내에 전반적 경공업 제품의 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킬 것” 등을 제시한 바 있었다. 또한 1990년 6월에는 “전국 경공업 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이후 북한의 우방인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체제해체와 북한 내에서의 경공업 공장에 대한 원료, 자재, 동력의 공급문제가 애로에 봉착하여 경공업의 발전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Ⅶ. 공업과 기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과 복합적인 기계체계의 구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
제품은 전적으로 동일한 작업기에 의해 만들어 짐. 이는 이전에는 한사람의 수공업자가 자기의 도구를 가지고 수행하였거나, 또는 여러 수공업자가 각종 도구들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수행하였던 것임. 이와 같은 협업은 우선 동시적으로 험께 운동하는 같은 종류의 방적기가 한 곳에 집합한 것으로 나타남.
2) 복합적인 기계체계
노동대상이 일련의 상호보완적인 각종 작업기에 의하여 수행되는 서로 관련된 한계열의 부분과정들을 통과할
이러한 요소들은 말레이시아에서 국가의 힘이 강화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된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동아시아 NICs의 국가성격을 특징지은 역사적 배경들은 공유하지 않는데, 그 중에서도 말레이시아는 한국이나 대만과 달리 지정학적으로 외국의 원조를 받을 조건을 갖추지 않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후자의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것은 중요한데, 앞서도 언급했듯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국제적 조건들이 동아시아 NICs의 국가가 개발지향적인 성격을 갖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건이 없었던 말레이시아는 경제성장을 강제 받을 절박함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Ⅵ. 공업과 북한공업
북한 공업의 부문별 구조변동 추이(1949~1989년)를 보면 기계제작, 금속가공공업 등 중공업 분야의 비중이 급속히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북한에서 기계제작 및 금속가공 공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우선 기계제작 공업이 “중공업의 핵심이며 인민경제 모든 부문의 발전과 기술적 진보의 기초”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기계, 금속, 화학공업은 북한의 군수산업과 밀접한 관계 하에서 육성되어 왔던 것으로 보이고, 또 이 분야 발전에 필요한 상당량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북한이 중화학공업육성을 군수산업과 관련하여 추진하였다는 증거는, 북한당국이 매년 발표하는 재정지출 중 군사비의 비중이 1967~1971년 기간을 제외하고는 평균적으로 매년 10~15%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1980년대 말 북한 군수산업의 생산규모가 사회총생산(GVSP)의 30%이상에 이른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국방에서의 주체(자위)”라는 구호 아래 군수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였고, 특히 1967~1971년 기간 중에는 재정지출에서 군수산업비중이 연 평균 30~33%에 달했던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북한의 군수산업은 1980년대 후반에는 전투기, 전차, 초계정 및 미사일 등을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 수출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러시아의 북한전문가인 M.E.Trigubenko에 의할 것 같으면, 1980년대 말 기준으로 북한의 군수산업은 기술수준이나 제품의 질적 수준면에서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90년대 들어와서부터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해 공개적으로 정보를 노출시키고 있고, 이미 1993년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한 서방의 추측은 북한 군수산업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제한된 투자재원으로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치중하여 왔다는 것은 소비재공업 등 민수산업의 궁핍화를 귀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산업정책은 경공업과 농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제한된 자원과 기술수준으로 군수산업중심의 중공업에 계속 투입을 집중함으로써 경공업이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공업구조에서 중공업 대 경공업의 비율이 1956년 52.4 대 47.6 이던 것이 1987년에는 69.0 대 31.0 으로 최대 격차를 나타낸 이후 1990년에는 67.3 대 32.7로 다소 경공업 비중이 개선되었다.
북한은 제3차 7개년 계획(1987~1993)기간 중에 모든 사회주의 경제의 해체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업생산은 1.5배, 그리고 연평균 성장률은 5.6%를 이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이 기간 중 기계공업, 전력, 광업생산 등에 역점을 두어 1993년 전력생산은 1986년 수준보다 1.3배, 석탄생산은 1.4배, 비철금속 생산은 1.6배 증대했고, 현대기계 산업분야의 발전으로 자동차 엔진, 수력장비, 전력장비 등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화학비료 생산도 1.5배 증대했고, 경공업(지방공업) 생산도 1.7배 증대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보와 자료로 보아 1990년대 이후 경공업(지방공업) 생산증대를 통해 북한주민의 생필품 공급을 늘리겠다는 북한당국의 정책적 의도가 좀더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징조를 읽을 수 있다.
사실 북한의 제3차 7개년 계획의 기본과업과 목표가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계속 힘 있게 다그쳐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위한 물질 기술적 토대를 튼튼히 마련하고”, “인민들의 의식주 문제를 더욱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인민생활 수준을 한 계단 높이 올려 세우는 것”을 제시하면서부터 농업과 경공업 분야의 비중이 다소 개선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경공업 혁명”의 기치(1984년)를 내걸고 이른바 8·3 인민소비품 증산운동을 김정일의 주도로 전개한 바 있지만, 그 구체적인 개선징조는 1987년 이후부터 미미하게나마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은 김일성의 신년사를 통해 1989년을 “경공업의 해”로 설정하고, 동시에 동년 6월에는 경공업발전 3개년 계획(1989.7~1992.6)을 수립하여 “방직공업 발전으로 입는 문제를 높은 수준에서 해결하고, 식료가공공업 발전으로 몇 년 내에 식료가공품 생산을 3.2배 증대, 일용품공업 발전으로 몇 년 내에 일용품 2.5배 생산증대, 2~3년 내에 전반적 경공업 제품의 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킬 것” 등을 제시한 바 있었다. 또한 1990년 6월에는 “전국 경공업 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이후 북한의 우방인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체제해체와 북한 내에서의 경공업 공장에 대한 원료, 자재, 동력의 공급문제가 애로에 봉착하여 경공업의 발전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Ⅶ. 공업과 기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과 복합적인 기계체계의 구별
1)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분업
제품은 전적으로 동일한 작업기에 의해 만들어 짐. 이는 이전에는 한사람의 수공업자가 자기의 도구를 가지고 수행하였거나, 또는 여러 수공업자가 각종 도구들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수행하였던 것임. 이와 같은 협업은 우선 동시적으로 험께 운동하는 같은 종류의 방적기가 한 곳에 집합한 것으로 나타남.
2) 복합적인 기계체계
노동대상이 일련의 상호보완적인 각종 작업기에 의하여 수행되는 서로 관련된 한계열의 부분과정들을 통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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