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양상
1. 비유 표현의 처리
1) 局裏的生活, 原如鳥販子手裏的禽鳥一般
2) 她父親 --- 儿女的債主 --- 的烈日一般的嚴威和旁人的賽過氷霜的冷眼
2. 한국어 조사의 처리 미숙
1) ≪自由之友≫的總編輯曾經說過, 他的刊物是決不會埋沒好稿子的
2) 我覺得新的希望就只在我們的分離
Ⅲ.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주의사항
1. 以後我們作個朋友, 我會把一切都告訴你的
2. 祥子, 在與“駱駝”這個外號發生關係以前, 是個較比有自由的洋車夫
Ⅳ.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직역과 의역
1. 직역한 제목
1)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2) 가을날의 동화
3) 결혼피로연
4) 푸른 연
5) 서극의 칼 刀 Dao
2. 의역한 제목
1)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2) 아랑곡의 혈투
3) 붉은 수수밭
4) 북경녀석들
5) 인생
6) 햇빛 쏟아지던 날들
7) 메이드 인 홍콩
Ⅴ.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현황
Ⅵ.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문제점
Ⅶ.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사례
Ⅷ. 향후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전망
Ⅸ. 결론
참고문헌
Ⅱ.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양상
1. 비유 표현의 처리
1) 局裏的生活, 原如鳥販子手裏的禽鳥一般
2) 她父親 --- 儿女的債主 --- 的烈日一般的嚴威和旁人的賽過氷霜的冷眼
2. 한국어 조사의 처리 미숙
1) ≪自由之友≫的總編輯曾經說過, 他的刊物是決不會埋沒好稿子的
2) 我覺得新的希望就只在我們的分離
Ⅲ.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주의사항
1. 以後我們作個朋友, 我會把一切都告訴你的
2. 祥子, 在與“駱駝”這個外號發生關係以前, 是個較比有自由的洋車夫
Ⅳ.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직역과 의역
1. 직역한 제목
1)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2) 가을날의 동화
3) 결혼피로연
4) 푸른 연
5) 서극의 칼 刀 Dao
2. 의역한 제목
1)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2) 아랑곡의 혈투
3) 붉은 수수밭
4) 북경녀석들
5) 인생
6) 햇빛 쏟아지던 날들
7) 메이드 인 홍콩
Ⅴ.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현황
Ⅵ.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문제점
Ⅶ.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사례
Ⅷ. 향후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전망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 등의 번역보다 더욱 많은 난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문학 작품이 이상적으로는 단어 하나 부호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치밀하게 상호 결합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완결된 통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편의 문학 작품을 완결된 통체로서 전혀 손상 없이 문화적역사적 전통 등이 상이한 다른 언어 체계를 사용하여 옮겨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문학 작품의 번역은 단순히 어떻게 해당 언어를 정확하게 옮겨놓는가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작품의 의미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김하림은 魯迅의 〈狂人日記〉에 나오는 한 구절 \"有了四千年吃人履歷的我, 當初雖然不知道, 現在明白, 難見眞的人!\"의 \'難見眞的人\'을 예로 들면서,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참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라는 식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참된 사람을 볼 면목이 없다\'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丸尾常喜가 일본어 번역을 예로 들어 밝힌 대로, 주인공인 광인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의식이 생기면서 자아수치감으로 인해 내뱉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도 나타나듯이 문학 작품의 번역은 결국 그저 어휘나 문장의 정확한 번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어떻게 파악하고 평가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작가의 창작관 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 상호 간의 접촉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번역이라는 작업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하면서, 실제 번역을 예로 들어 중국현대문학의 번역에 있어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살펴보겠다. 그 대상으로는 魯迅의 작품 중에서 〈野草狗的駁詰〉과 〈阿Q正傳優勝紀略〉을 택했다. 그것은 魯迅이 중국현대문학사에서 점하고 있는 지위가 대단히 높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여러 종류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다가 번역자들 역시 이 분야에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 분들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1) 원문 파악 부정확에 따른 오역(생략)
(2) 누락과 부연(생략)
(3) 우리말의 부자연(생략)
(4) 원문의 특수성(생략)
(5) 명사의 음역과 의역(생략)
(6) 설명의 활용(생략)
(7) 직역과 의역(생략)(생략)
(8) 이론서의 문헌명 통일
이상에서 기술한 것들과 같은 유형의 것은 아니지만, 이론서 번역에서는 작품명, 문헌명의 번역이 문제가 될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이론서에서 거론되는 수많은 작품과 문헌을 번역자가 일일이 다 읽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어떤 이론서를 번역할 때, 초고에서 공동 작업자 중 한 사람이 徐志摩의 시집 《翡冷翠的一夜》를 \'춥고 푸른 밤\'이라고 옮긴 적이 있었다. 이미 출판된 어떤 이론서에서는 蔣子龍의 소설 〈赤橙黃綠靑藍紫〉를 \'붉은 등자나무와 황녹청남자색\'이라고 번역해 놓고 있다. 만약 이런 것들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번역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면, 田間의 시 〈저也要殺人〉을 번역서에 따라서는 각기 \'그녀도 사람을 죽여야 한다\'와 \'그녀 역시 사람을 죽이려하네\'라고 번역해 놓고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맞는가? 沙汀의 소설 〈呼호〉를 \'호호\'라고 하고 吳祖光의 극본 〈畵角春聲〉을 \'화각춘성\'이라고 한 것은 과연 효과적인 번역인가? 심지어는 吳祖光의 극본이라며 각각 〈風雪夜歸人〉, 〈風雨夜歸人〉, 〈風雪夜婦人〉을 소개하고 그 스토리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번역명은 고사하고 대체 어느 것이 정확한 제목인가?
물론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관건은 번역자의 성실성이다. 즉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번역자가 모든 작품과 문헌을 직접 확인해가면서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즉 각종 작품과 문헌의 번역명을 목록으로 만들고, 내용 확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는 한편, 이미 확인된 것은 모두가 통일해서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발표문에 첨부된 한글판 중국현대문학 작품 목록은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수많은 작품이 다 번역되는 것은 아니며, 작품 외에도 논문연구서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인 만큼 관련 학회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Ⅶ.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사례
아래 하나의 원문에 대해 두 개의 번역이 예시되어 있다. 둘 다 의미 전달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역은 전혀 별개의 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차이를 드러낸다. 실제로 공동 번역작업에 임하다 보면 번역만을 보고도 번역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때 번역자의 풍골과 원문의 고유한 결이 만나는 데에는 어떤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순전히 우연적인 것일까?
다음의 인용문을 보기로 하자.
詞的解放已經有過專號, 詞裏可以罵娘, 還可以打打麻將。
曲何妨也解放, 也來混混? 不過曲一解放, 自然要直---後臺戱搬到前臺---未免有失詩人溫柔敦厚之旨, 至於平仄不調, 聲律乖謬, 還在其次。(瞿秋白,〈曲的解放〉)
詞의 해방에 대해 벌써 특집호가 나왔는데, 사에서는 욕지꺼리도 담을 수 있고, 게다가마작도 한 판 땡길 수가 있답니다.
왜 曲은 해방될 수 없을까요. 혹시 곡이 너무 나갈까봐요? 하지만曲, 그것은 해방되면 당연히直하게 되죠. 그런데 이게 말이죠 뒷 무대에서 앞 무대로 옮기는 것이라, 시인께선 溫柔敦厚한 뜻을 잃으시지 않으면 안 되니 平仄이 어그러지고 聲律이 망그러지는 문제는 그 다음으로 그냥 미루어 놓읍시다.
사(詞)의 해방이라는 특집이 진작에 마련되어 부럿으니, 노래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에미를 엿멕이는 육두문자를 써도 좋고,마작패를 두들겨도 무방하게 되었겄다.
아, 곡이란 놈도 해방되어서는 안된다는 법이 없으니께, 염치없는 짓거리를 해쌌네 그랴. 허나,굽은 놈이 해방이 될라치면곧은 놈이 되어부러야 마땅한 노릇이렷다. 그러다 봉께 무대 뒤에 숨은 놈들 남들 보는 앞전으로 끌어내야 쓰것구나. 시 쓰시는 분네들 온유돈후(溫柔敦厚)허신 뜻을 잃게 되
사실 문학 작품의 번역은 단순히 어떻게 해당 언어를 정확하게 옮겨놓는가 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작품의 의미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김하림은 魯迅의 〈狂人日記〉에 나오는 한 구절 \"有了四千年吃人履歷的我, 當初雖然不知道, 現在明白, 難見眞的人!\"의 \'難見眞的人\'을 예로 들면서,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참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라는 식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보다는 \'참된 사람을 볼 면목이 없다\'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丸尾常喜가 일본어 번역을 예로 들어 밝힌 대로, 주인공인 광인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의식이 생기면서 자아수치감으로 인해 내뱉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도 나타나듯이 문학 작품의 번역은 결국 그저 어휘나 문장의 정확한 번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어떻게 파악하고 평가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작가의 창작관 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 상호 간의 접촉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번역이라는 작업은, 설사 그것이 아무리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하면서, 실제 번역을 예로 들어 중국현대문학의 번역에 있어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몇 가지 문제점들을 살펴보겠다. 그 대상으로는 魯迅의 작품 중에서 〈野草狗的駁詰〉과 〈阿Q正傳優勝紀略〉을 택했다. 그것은 魯迅이 중국현대문학사에서 점하고 있는 지위가 대단히 높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여러 종류의 번역본이 나와 있는데다가 번역자들 역시 이 분야에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 분들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1) 원문 파악 부정확에 따른 오역(생략)
(2) 누락과 부연(생략)
(3) 우리말의 부자연(생략)
(4) 원문의 특수성(생략)
(5) 명사의 음역과 의역(생략)
(6) 설명의 활용(생략)
(7) 직역과 의역(생략)(생략)
(8) 이론서의 문헌명 통일
이상에서 기술한 것들과 같은 유형의 것은 아니지만, 이론서 번역에서는 작품명, 문헌명의 번역이 문제가 될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이론서에서 거론되는 수많은 작품과 문헌을 번역자가 일일이 다 읽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 년 전 어떤 이론서를 번역할 때, 초고에서 공동 작업자 중 한 사람이 徐志摩의 시집 《翡冷翠的一夜》를 \'춥고 푸른 밤\'이라고 옮긴 적이 있었다. 이미 출판된 어떤 이론서에서는 蔣子龍의 소설 〈赤橙黃綠靑藍紫〉를 \'붉은 등자나무와 황녹청남자색\'이라고 번역해 놓고 있다. 만약 이런 것들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번역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면, 田間의 시 〈저也要殺人〉을 번역서에 따라서는 각기 \'그녀도 사람을 죽여야 한다\'와 \'그녀 역시 사람을 죽이려하네\'라고 번역해 놓고 있는데 과연 어느 것이 맞는가? 沙汀의 소설 〈呼호〉를 \'호호\'라고 하고 吳祖光의 극본 〈畵角春聲〉을 \'화각춘성\'이라고 한 것은 과연 효과적인 번역인가? 심지어는 吳祖光의 극본이라며 각각 〈風雪夜歸人〉, 〈風雨夜歸人〉, 〈風雪夜婦人〉을 소개하고 그 스토리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번역명은 고사하고 대체 어느 것이 정확한 제목인가?
물론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관건은 번역자의 성실성이다. 즉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번역자가 모든 작품과 문헌을 직접 확인해가면서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즉 각종 작품과 문헌의 번역명을 목록으로 만들고, 내용 확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는 한편, 이미 확인된 것은 모두가 통일해서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발표문에 첨부된 한글판 중국현대문학 작품 목록은 일정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수많은 작품이 다 번역되는 것은 아니며, 작품 외에도 논문연구서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인 만큼 관련 학회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Ⅶ. 중국어번역(한중번역)의 사례
아래 하나의 원문에 대해 두 개의 번역이 예시되어 있다. 둘 다 의미 전달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역은 전혀 별개의 글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의 차이를 드러낸다. 실제로 공동 번역작업에 임하다 보면 번역만을 보고도 번역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때 번역자의 풍골과 원문의 고유한 결이 만나는 데에는 어떤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순전히 우연적인 것일까?
다음의 인용문을 보기로 하자.
詞的解放已經有過專號, 詞裏可以罵娘, 還可以打打麻將。
曲何妨也解放, 也來混混? 不過曲一解放, 自然要直---後臺戱搬到前臺---未免有失詩人溫柔敦厚之旨, 至於平仄不調, 聲律乖謬, 還在其次。(瞿秋白,〈曲的解放〉)
詞의 해방에 대해 벌써 특집호가 나왔는데, 사에서는 욕지꺼리도 담을 수 있고, 게다가마작도 한 판 땡길 수가 있답니다.
왜 曲은 해방될 수 없을까요. 혹시 곡이 너무 나갈까봐요? 하지만曲, 그것은 해방되면 당연히直하게 되죠. 그런데 이게 말이죠 뒷 무대에서 앞 무대로 옮기는 것이라, 시인께선 溫柔敦厚한 뜻을 잃으시지 않으면 안 되니 平仄이 어그러지고 聲律이 망그러지는 문제는 그 다음으로 그냥 미루어 놓읍시다.
사(詞)의 해방이라는 특집이 진작에 마련되어 부럿으니, 노래가사로 말할 것 같으면 에미를 엿멕이는 육두문자를 써도 좋고,마작패를 두들겨도 무방하게 되었겄다.
아, 곡이란 놈도 해방되어서는 안된다는 법이 없으니께, 염치없는 짓거리를 해쌌네 그랴. 허나,굽은 놈이 해방이 될라치면곧은 놈이 되어부러야 마땅한 노릇이렷다. 그러다 봉께 무대 뒤에 숨은 놈들 남들 보는 앞전으로 끌어내야 쓰것구나. 시 쓰시는 분네들 온유돈후(溫柔敦厚)허신 뜻을 잃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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