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동성애란?
2. 동성애 관련 용어
3. 동성애의 역사
4. 동성애를 향한 인식
5. 결론
2. 동성애 관련 용어
3. 동성애의 역사
4. 동성애를 향한 인식
5. 결론
본문내용
적으로 여장남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원래 게이라는 말은 동성애자를 뜻하는 긍정적이고 일반적인 개념이다.
레즈비언(lesbian) : 은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킨다. 레스보스섬의 여인이라는 뜻인데, 그 섬의 수도였던 미틸렌에 거주하던 여성들의 동성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6세기 경 레스보스섬에서 태어나 여성을 흠모하고 동경하는 서정시를 9권이나 발표했던 그리스 최대의 여성시인 사포라는 이름도 여성들 간의 동성애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성동성애자중 남성 역할자는 버치 여성 역할자는 펨므라고 한다.
퀴어(queer) : 이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성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반은 일반과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이성애자를 제외한 성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트렌스젠더(transsexual) : 자신의 생물학적인 성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즉 성 전환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후천적으로 이성보다 동성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트랜스섹스얼리즘(transsexualism) : 수술을 통해서 성을 바꾸는 것이고, 트랜스섹슈얼은 그러한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게이와 다르다.
트렌스 베스티즘(transvestism) : 자기와 반대되는 성의 의복을 입는 행위이고, 트랜스베스티트는 그러한 행위자를 말한다.
커밍아웃(coming-out) : 영어 \'come out of closet\'에서 유래한 용어로, 번역하면 \'벽장 속에서 나오다\'는 뜻이다. 동성애자들이 더 이상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동성애의 역사
고대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를 인정하였던 문화권으로 유명하다. 당시 철학자들은 노골적으로 남성들의 성관계가 남녀간의 성관계보다 더 인간적인 사랑에 해당한다고 표현했다.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보면, 남성들간의 사랑이 얼마나 예찬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젊은 남성이면서 운동선수의 신체는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었고, 남성들의 동성애관계에서 연장자는 젊은 상대에게 성적인 만족을 가르치고 관습을 전달해주는 교육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시대에서는 특히 성인 남성이 미소년을 유혹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기대된 행위였다. 미소년의 유혹행위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성인 남성들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리스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도자기와 같은 작품을 보면, 당시의 성인 남성들이 소년과 성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 남성들은 거의 대부분 기혼자들이었기에 당시 사회의 지도층들에게는 양성애가 용납되고 유행하였다고 해석된다.
스파르타에서도 남성들간의 동성애가 보편화되었는데, 이들도 특히 성인 남성과 청소년 간의 관계였다. 이러한 형태의 동성애는 남성이 여성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병행된 양성애적 상태이므로 근래 논의가 되고 있는 이성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순수한 동성애와는 구별된다.
로마제국주의 시대의 초기에는 동성애가 유행했지만, 이를 고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스시대에는 동성애를 찬미와 이상향의 모델로 설정시켰던 반면에, 로마시대에는 동성애가 인간의 성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남녀간의 사랑도 존재하면서 황제를 비롯한 유명인들은 모두 동성애자가 아니면 양성애자로 행세해야 했다. 이러한 불가피성을 집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동성애적 행위가 방탕적인 상태에서 표현되기도 했다. 아울러 미소년이 눈에 띄면 능력있는 남성은 그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서 성관계를 맺는 소위 매춘과 같은 관습도 별다른 규제없이 성행하였다.
중세
중세 기독교 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 동성애에 배타적이었지만 실제로 수도원 안에서는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중세시대 기독교가 서양을 장악했을 무렵 교리에 동성애를 터부시하는 내용에 따라 계간(동성애 행위)을 하는 자들은 마녀로 몰리기도 하였고, 동양에서도 유교 윤리에 동성애가 금기시되기 때문에 동성애는 음지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소도미와 동성애는 서로 혼동되지 않았다. 소도미에 대한 비난은 ‘자연에 반한’ 성행위와 하느님과 국가에 대항하는 범죄를 모두 포함했다. 또 소도미트는 차이를 부정한다고 부르짖으며 하느님이 정한 ‘자연적’ 질서를 문제시했고, 따라서 ‘독신죄’를 저질렀다. 공시된 형벌은 화형, 익사형, 교수형, 참수형 등으로 특히 가혹했다. 출생률이 낮아지던 시기에 동성애는 곧 국가에 대한 ‘범죄’를 의미했다.
또한 중세시대때 기사도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사나이들 간의 사랑에 대한 찬미가 있었다.
봉건문화의 토대는 오로지 남성만의 세계로, 이러한 사나이들 간의 우정은 흔히 두 기사로 하여금 죽음도 불사하도록 만드는 열렬한 관계로 발전되기도 했다. 뒤비는 사나이들 간의 아모르가 봉건사회에서 갖는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가 말하듯이 이 문화에서 ‘보통의 사랑’은 당연히 남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따라서 반드시 ‘육체관계’에 다다르지 않는다 해도 ‘동성애적 사랑’이다. 필리프 2세는 조프루와와 열정적인 관계를 맺었고, 그리고 나서 조프루아의 형제인 사자왕 리처드와 열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르네상스 시대때는 동성사회 전통과 이서애 문화사이의 갈등의 지속으로 이성애 문화의 발전이 도처에서 감지가 되었다. 그 변했다는 징후는 단연 ‘롤랑’이다. 즉 롤랑의 노래에서 오직 전쟁과 남성의 우정에만 관심을 갖는듯 하다가 롤랑이 한 여자에게 홀딱 빠진 연인이 생겼다는 것이다. 16세기에 옛 동성사회 문화의 저항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영역은 아마 인문주의 비극일 것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상상계는 호모섹슈얼과 레즈비언의 모습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동일한 성을 가진 타인에게 느끼는 성적 욕망을 지칭하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정신적, 시각적 혹은 문학적 표현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성애 행위(소도미)와 동성애적 욕망(남성적 사랑)사이에 역설적인 구분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숱한 예술가들은 남성의 아름다움을 사
레즈비언(lesbian) : 은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킨다. 레스보스섬의 여인이라는 뜻인데, 그 섬의 수도였던 미틸렌에 거주하던 여성들의 동성애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6세기 경 레스보스섬에서 태어나 여성을 흠모하고 동경하는 서정시를 9권이나 발표했던 그리스 최대의 여성시인 사포라는 이름도 여성들 간의 동성애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성동성애자중 남성 역할자는 버치 여성 역할자는 펨므라고 한다.
퀴어(queer) : 이성애자를 제외한 모든 성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반은 일반과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이성애자를 제외한 성적 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트렌스젠더(transsexual) : 자신의 생물학적인 성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즉 성 전환의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성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후천적으로 이성보다 동성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트랜스섹스얼리즘(transsexualism) : 수술을 통해서 성을 바꾸는 것이고, 트랜스섹슈얼은 그러한 수술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게이와 다르다.
트렌스 베스티즘(transvestism) : 자기와 반대되는 성의 의복을 입는 행위이고, 트랜스베스티트는 그러한 행위자를 말한다.
커밍아웃(coming-out) : 영어 \'come out of closet\'에서 유래한 용어로, 번역하면 \'벽장 속에서 나오다\'는 뜻이다. 동성애자들이 더 이상 벽장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밝은 세상으로 나와 공개적으로 사회에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동성애의 역사
고대
고대 그리스는 동성애를 인정하였던 문화권으로 유명하다. 당시 철학자들은 노골적으로 남성들의 성관계가 남녀간의 성관계보다 더 인간적인 사랑에 해당한다고 표현했다. 플라톤의 향연을 읽어보면, 남성들간의 사랑이 얼마나 예찬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에는 젊은 남성이면서 운동선수의 신체는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었고, 남성들의 동성애관계에서 연장자는 젊은 상대에게 성적인 만족을 가르치고 관습을 전달해주는 교육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시대에서는 특히 성인 남성이 미소년을 유혹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기대된 행위였다. 미소년의 유혹행위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성인 남성들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리스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도자기와 같은 작품을 보면, 당시의 성인 남성들이 소년과 성행위를 하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 남성들은 거의 대부분 기혼자들이었기에 당시 사회의 지도층들에게는 양성애가 용납되고 유행하였다고 해석된다.
스파르타에서도 남성들간의 동성애가 보편화되었는데, 이들도 특히 성인 남성과 청소년 간의 관계였다. 이러한 형태의 동성애는 남성이 여성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병행된 양성애적 상태이므로 근래 논의가 되고 있는 이성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순수한 동성애와는 구별된다.
로마제국주의 시대의 초기에는 동성애가 유행했지만, 이를 고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스시대에는 동성애를 찬미와 이상향의 모델로 설정시켰던 반면에, 로마시대에는 동성애가 인간의 성생활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단순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남녀간의 사랑도 존재하면서 황제를 비롯한 유명인들은 모두 동성애자가 아니면 양성애자로 행세해야 했다. 이러한 불가피성을 집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동성애적 행위가 방탕적인 상태에서 표현되기도 했다. 아울러 미소년이 눈에 띄면 능력있는 남성은 그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서 성관계를 맺는 소위 매춘과 같은 관습도 별다른 규제없이 성행하였다.
중세
중세 기독교 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 동성애에 배타적이었지만 실제로 수도원 안에서는 동성애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중세시대 기독교가 서양을 장악했을 무렵 교리에 동성애를 터부시하는 내용에 따라 계간(동성애 행위)을 하는 자들은 마녀로 몰리기도 하였고, 동양에서도 유교 윤리에 동성애가 금기시되기 때문에 동성애는 음지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소도미와 동성애는 서로 혼동되지 않았다. 소도미에 대한 비난은 ‘자연에 반한’ 성행위와 하느님과 국가에 대항하는 범죄를 모두 포함했다. 또 소도미트는 차이를 부정한다고 부르짖으며 하느님이 정한 ‘자연적’ 질서를 문제시했고, 따라서 ‘독신죄’를 저질렀다. 공시된 형벌은 화형, 익사형, 교수형, 참수형 등으로 특히 가혹했다. 출생률이 낮아지던 시기에 동성애는 곧 국가에 대한 ‘범죄’를 의미했다.
또한 중세시대때 기사도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사나이들 간의 사랑에 대한 찬미가 있었다.
봉건문화의 토대는 오로지 남성만의 세계로, 이러한 사나이들 간의 우정은 흔히 두 기사로 하여금 죽음도 불사하도록 만드는 열렬한 관계로 발전되기도 했다. 뒤비는 사나이들 간의 아모르가 봉건사회에서 갖는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가 말하듯이 이 문화에서 ‘보통의 사랑’은 당연히 남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따라서 반드시 ‘육체관계’에 다다르지 않는다 해도 ‘동성애적 사랑’이다. 필리프 2세는 조프루와와 열정적인 관계를 맺었고, 그리고 나서 조프루아의 형제인 사자왕 리처드와 열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르네상스 시대때는 동성사회 전통과 이서애 문화사이의 갈등의 지속으로 이성애 문화의 발전이 도처에서 감지가 되었다. 그 변했다는 징후는 단연 ‘롤랑’이다. 즉 롤랑의 노래에서 오직 전쟁과 남성의 우정에만 관심을 갖는듯 하다가 롤랑이 한 여자에게 홀딱 빠진 연인이 생겼다는 것이다. 16세기에 옛 동성사회 문화의 저항이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영역은 아마 인문주의 비극일 것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상상계는 호모섹슈얼과 레즈비언의 모습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동일한 성을 가진 타인에게 느끼는 성적 욕망을 지칭하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정신적, 시각적 혹은 문학적 표현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성애 행위(소도미)와 동성애적 욕망(남성적 사랑)사이에 역설적인 구분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숱한 예술가들은 남성의 아름다움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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