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머리말
본론1. 향가 혹은 사뇌가의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의 개념
2. 개념을 통해 본 성격과 현존 향가 25,6수에 적용
향가의 미의식, 서정성, 국민문학성, 주술성.
결론
본론1. 향가 혹은 사뇌가의 성격을 나타내는 용어의 개념
2. 개념을 통해 본 성격과 현존 향가 25,6수에 적용
향가의 미의식, 서정성, 국민문학성, 주술성.
결론
본문내용
천수관음가>는 신라시대 기원적의 한 전형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보현십원가>는 예찬적인 찬가의 요소도 있고 기도 및 기원적인 요소도 들어있다.
한편, <모죽지랑가>와 <원가>를 주술 및 종교적 성격의 가요로 보는 데에 반대하고 순수 서정 시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모죽지랑가>는 작품 내부에 종교적 요소나 찬양적 속성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자아를 강조하거나 주관적인 관점이 드러나 있는 순수한 서정가요이며, <원가>는 대상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자연과 정신의 대비에 의하여 표출한 순수서정가요라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원가>의 경우는 주술적인 내적 긴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찬송적 서정성(찬가)로는 <모죽지랑가>·<찬기파랑가>·<제망매가>, 기원적 서정성(기도)로는 <도천수관음가>·<원왕생가>를, 주술적 서정성(주가)에는 <도솔가>·<혜성가>·<원가>, 교훈적 서정성(교훈시)에는 <안민가>·<우적가>·<보현십원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3) 향가의 국민문학성
“夫詞腦者 世人戱樂之具” 이 구절은 향가의 대중문학적인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들의 성격과 그 보급성에 의해 국민문학성을 드러내고 있다.
조윤제가 일찍이 「한국문학사」에서 향가의 국민문학적 성격을 자세히 논급한 후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는 향가의 작자를 승려 5인(융천사월명사충담사광덕영재) 8수, 화랑국선도 2인(득오신충) 2수, 기타 4인(무왕희명처용실명씨노인) 4수로 분류하고, 작자에 승려가 많은 것은 「삼국유사」의 저자가 승려였으므로 불교관계의 것을 많이 기술하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된 것일 뿐, 화랑 국선 중에도 승려에 못지않은 작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리고 향가 작자에는 승려화랑 외에도 희명과 같은 여자, 불명한 아무개씨, 견우노인과 처용, 그리고 또 서동이 있다. 이들은 다 어떠한 성분의 사람들인가가 문제이지마는 견우노인은 필시 은사일 것이고, 희명은 불교 신도일지는 몰라도 여염집 여자인 것을 틀림이 없으니 이들 가운데도 향가 작가가 있다는 것은 향가가 신라에 있어 결코 귀족 계급의 독점물이 아니고 국민 간에 널리 보급되어 하나의 국민문학으로서 발달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라고 하여 향가의 성격을 귀족계급의 독점물이 아니고 국민 간에 널리 보급되어 하나의 국민문학으로서 발달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조윤제 - 한국문학사
라고 하여 향가의 성격을 귀족계급의 독점물이 아니고 국민 간에 널리 보급된 국민문학으로 규정하였다.
양주동 양주동 - 고가연구
역시 「삼국유사」소재 향가 14수를 작자별로 동요민요 2수, 국선화랑 2인 2수, 승려 4인 6수, 여류 2인 2수, 기타 2인 2수로 분류하였다. 그는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하여 향가의 사상적 배경과 주제의식, 그리고 기능까지도 유추해냈다. 아울러 현존 향가에 불교적 요소가 많음은 인정했지만 첫째, 삼국유사저자가 승려이고 그 所述이 불교 관계이므로 일반 작품은 그리 채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둘째 <혜성가>, <모죽지랑가>, <헌화가>, <원가>, <찬기파랑가>, <우적가>, <처용가> 등에서 보듯 당시 향가가 불교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널리 자연과 인생, 연모해학애원동경체관 등 인생 百般의 기술 내지 安民理國의 이상까지 무엇이나 노래하지 않음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여 국민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준영 김준영 - 한국고시가연구
은 4구 향가가 민요형이므로 남녀 상하 간에 또는 지식층이나 무식층의 구별도 없이 장소와 감정에 따라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불리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향가의 원류를 민요로, 노래의 성격을 대중적인 것으로 보았다.
4) 향가의 주술성
우리는 <균여전>의 향가관련 기록에서 노래로 신기한 효험을 보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적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최소한 균여의 시대는 향가의 전성기가 물러난 다음이지만 그 분위기와 정서를 신라에서 이어받고 있었다. 신라향가에서 <천수대비가>의 희명은 딸의 눈을 얻고자 했고, <제망매가>의 월명은 지전을 날려 죽은 누이의 명혼을 천도하였다. <원왕생가>의 광덕은 노래를 부르며 극락왕생을 기원했고, <도솔가>의 월명과 <혜성가>의 세 화랑은 역시 노래로 어려움을 물리쳤다. 이 같은 사실들은 노래를 통해 얻은 신이한 효험의 예이다.
<삼국유사>의 시대는 <균여전>의 시대와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일연은 향가의 이성적인 면을 사고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향가로 사람의 병을 낫게 하거나 귀신을
한편, <모죽지랑가>와 <원가>를 주술 및 종교적 성격의 가요로 보는 데에 반대하고 순수 서정 시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모죽지랑가>는 작품 내부에 종교적 요소나 찬양적 속성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자아를 강조하거나 주관적인 관점이 드러나 있는 순수한 서정가요이며, <원가>는 대상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자연과 정신의 대비에 의하여 표출한 순수서정가요라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원가>의 경우는 주술적인 내적 긴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찬송적 서정성(찬가)로는 <모죽지랑가>·<찬기파랑가>·<제망매가>, 기원적 서정성(기도)로는 <도천수관음가>·<원왕생가>를, 주술적 서정성(주가)에는 <도솔가>·<혜성가>·<원가>, 교훈적 서정성(교훈시)에는 <안민가>·<우적가>·<보현십원가>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3) 향가의 국민문학성
“夫詞腦者 世人戱樂之具” 이 구절은 향가의 대중문학적인 성격을 드러낸 것이다. 작가들의 성격과 그 보급성에 의해 국민문학성을 드러내고 있다.
조윤제가 일찍이 「한국문학사」에서 향가의 국민문학적 성격을 자세히 논급한 후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는 향가의 작자를 승려 5인(융천사월명사충담사광덕영재) 8수, 화랑국선도 2인(득오신충) 2수, 기타 4인(무왕희명처용실명씨노인) 4수로 분류하고, 작자에 승려가 많은 것은 「삼국유사」의 저자가 승려였으므로 불교관계의 것을 많이 기술하다 보니 자연 그렇게 된 것일 뿐, 화랑 국선 중에도 승려에 못지않은 작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리고 향가 작자에는 승려화랑 외에도 희명과 같은 여자, 불명한 아무개씨, 견우노인과 처용, 그리고 또 서동이 있다. 이들은 다 어떠한 성분의 사람들인가가 문제이지마는 견우노인은 필시 은사일 것이고, 희명은 불교 신도일지는 몰라도 여염집 여자인 것을 틀림이 없으니 이들 가운데도 향가 작가가 있다는 것은 향가가 신라에 있어 결코 귀족 계급의 독점물이 아니고 국민 간에 널리 보급되어 하나의 국민문학으로서 발달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라고 하여 향가의 성격을 귀족계급의 독점물이 아니고 국민 간에 널리 보급되어 하나의 국민문학으로서 발달하였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조윤제 - 한국문학사
라고 하여 향가의 성격을 귀족계급의 독점물이 아니고 국민 간에 널리 보급된 국민문학으로 규정하였다.
양주동 양주동 - 고가연구
역시 「삼국유사」소재 향가 14수를 작자별로 동요민요 2수, 국선화랑 2인 2수, 승려 4인 6수, 여류 2인 2수, 기타 2인 2수로 분류하였다. 그는 이러한 분류를 바탕으로 하여 향가의 사상적 배경과 주제의식, 그리고 기능까지도 유추해냈다. 아울러 현존 향가에 불교적 요소가 많음은 인정했지만 첫째, 삼국유사저자가 승려이고 그 所述이 불교 관계이므로 일반 작품은 그리 채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둘째 <혜성가>, <모죽지랑가>, <헌화가>, <원가>, <찬기파랑가>, <우적가>, <처용가> 등에서 보듯 당시 향가가 불교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널리 자연과 인생, 연모해학애원동경체관 등 인생 百般의 기술 내지 安民理國의 이상까지 무엇이나 노래하지 않음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여 국민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준영 김준영 - 한국고시가연구
은 4구 향가가 민요형이므로 남녀 상하 간에 또는 지식층이나 무식층의 구별도 없이 장소와 감정에 따라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불리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향가의 원류를 민요로, 노래의 성격을 대중적인 것으로 보았다.
4) 향가의 주술성
우리는 <균여전>의 향가관련 기록에서 노래로 신기한 효험을 보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적은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최소한 균여의 시대는 향가의 전성기가 물러난 다음이지만 그 분위기와 정서를 신라에서 이어받고 있었다. 신라향가에서 <천수대비가>의 희명은 딸의 눈을 얻고자 했고, <제망매가>의 월명은 지전을 날려 죽은 누이의 명혼을 천도하였다. <원왕생가>의 광덕은 노래를 부르며 극락왕생을 기원했고, <도솔가>의 월명과 <혜성가>의 세 화랑은 역시 노래로 어려움을 물리쳤다. 이 같은 사실들은 노래를 통해 얻은 신이한 효험의 예이다.
<삼국유사>의 시대는 <균여전>의 시대와 다른 차이를 보인다. 일연은 향가의 이성적인 면을 사고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향가로 사람의 병을 낫게 하거나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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