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낯설고도 신선한. 혹은 낯설어서 신선한.
촘촘한 그물망안에 던져진 모호한 삶
일상
일탈?
괴물
리얼리즘?
지극히 형식적인 홍상수식 리얼리즘
촘촘한 그물망안에 던져진 모호한 삶
일상
일탈?
괴물
리얼리즘?
지극히 형식적인 홍상수식 리얼리즘
본문내용
목적으로 귀결하는 남자들의 행동은 너무 뻔하고, 그래서 더없이 남루하다. 교묘하게 내숭을 떠는 여자들은 앙큼하고 탐욕스럽다. 그런 여성 캐릭터 때문인지 홍상수 영화는 반페미니즘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구태의연한 여성 캐릭터는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못마땅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 수정』에서의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의 선화와 여대생 경희는 야릇한 채로 신비화되어버리며 자칫 남성의 성적 환타지에 부응하는 여자들로 비춰질 소지를 충분히 제공했다. 그 부분만큼은 비판받을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시각으로 그의 영화를 바라보자. 홍상수 감독이 가장 잘 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하며 그들의 소통 속의 행간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홍상수 영화의 요체는, 어쩔 수 없이 속물적이고 소심한 인간군상의 진면목을 그리는 데 있다. 그럴 때에 영화는 자연스레, 우리들이 예전부터 주욱 그래왔던 것. 다시 말해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현재를 고발하게 되는 것이며, 현재가 과거의 총체이자 현현이라고 볼 때에 홍상수 영화는 과거를 얘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캐릭터들의 구태의연함은 으레 과거 우리들의 구태의연함에 다름아니다. 예컨대 『오 수정』에서 순결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수정의 모습은 ‘성개방 시대’라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순결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지 단순히 여주인공을 구태의연하게 그린 것은 아니듯 말이다. 홍상수 영화에는 과거와,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만이 존재할 뿐 미래는 존재치 않는다. 우리들이 홍상수 영화를 보고 과거를 회상할지언정 미래를 기약하거나 꿈꾸지 않듯 말이다.
『생활의 발견』에 등장하는 괴물들 그리고 홍상수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그들 중 관객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다른 영화의 배우들처럼 예쁘게 보이지도 않고 멋있는 대사를 말하지도 않고 엄청난 사건을 겪지도 않는다. 홍상수가 그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의 작품 다섯 편을 통틀어 유추해보건대 그의 메시지는 결국 ‘까놓고 보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동일한 욕망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속물들.......
『생활의 발견』중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경수가 선영과 선영 남편의 외도를 은유적으로 폭로하는 고발장을 선영네 집
『생활의 발견』에 등장하는 괴물들 그리고 홍상수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그들 중 관객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다른 영화의 배우들처럼 예쁘게 보이지도 않고 멋있는 대사를 말하지도 않고 엄청난 사건을 겪지도 않는다. 홍상수가 그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의 작품 다섯 편을 통틀어 유추해보건대 그의 메시지는 결국 ‘까놓고 보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수준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동일한 욕망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속물들.......
『생활의 발견』중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경수가 선영과 선영 남편의 외도를 은유적으로 폭로하는 고발장을 선영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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