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흐름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조선전기의 흐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조선전기의 흐름

1. 조선왕조의 탄생
2. 왕권의 강화
3. 세종의 문화정책
4. 계유정난과 세조의 즉위
5. 성종의 정책
6. 조선의 행정주체와 이념
 (1) 급진파의 등장
 (2)유교적 이상국가 건설추구
7. 행정제도 및 정책
 (1)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2)지방행정체제의 확립
 (3) 봉건적 신분제도의 확립
 (4) 경국대전의 제정
 (5) 행정조직의 확립
 (6) 교육제도
 (7) 관리의 임용
8. 행정의 특징
 (1) 유교적인 정치
 (2) 문반우위 정책
 (3) 행정기구 간의 상호견제와 균형적 체제
 (4) 관인지배체제의 발전

◈ 연산군과 사화의 시작
1. 무오사화
2. 갑자사화
3. 기묘사화
4. 을사사화
5. 사화의 영향

◈ 붕당정치
1. 붕당의 발생
2. 붕당의 전개
3. 붕당정치가 가지는 의미

본문내용

사림이 훈구파 윤원형을 제거하여 선조 때에 이르러 사림이 정계를 장악하였다. 하지만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자격자의 수에 비해 관직의 수가 한정되어있었다. 붕당정치는 이처럼 한정된 관직 대한 다툼에서 시작되었다.
2. 붕당의 전개
(1) 동. 서의 분당(선조,1575) : 이조전랑직의 문제로 김효원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동인
서인으로 분당되었다.
(2) 남. 북 분당(선조, 1592) : 서인 정철이 논죄의 대상이 되었을 때, 동인은 서인을 공격
하였으나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되었다.
(3) 대북과 소북의 분당 : 선조 말기에 북인이 득세, 광해군을 둘러싼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분열
(4) 대북의 집권(광해군 원년, 1608) : 광해군이 즉위한 이후 대북이 집권하면서 소북등을
제거
(5) 서인의 집권 :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은 후금가의 항쟁과정에서 국방강화의
명분을 내세워 어영청총융청수어청을 설치하여 서인정권의 세력을
강화시켰다.
(6) 효종의 북벌계획 : 숭명반청 의식이 강한 서인을 등용하여 북벌계획을 추진하였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서인의 군사적 기반이 강화되었다.
(7) 서. 남의 대립 : 현종은 군비증강에서 오는 재정난을 타개하고, 증대된 서인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남인을 등용하였다. 남인들은 북벌운동의 무모함을
비판하면서 예송논쟁을 일으켜 서인과 대립하였다.
(8) 숙종 때의 서인집권 : 숙종이 즉위하여 남인을 등용하자 남인이 병권을 강화하였다.
이에 남인을 축출하고 서인을 등용하였는데, 이를 경신 대출척이
라한다. 그 후 서인이 노론(송시열)과 소론(윤증)으로 분열되고
노론은 송시열을 영수로 하여 정통 성리학의 명분을 바탕으로
숭명반청 정책을 지지하였고, 소론은 윤증을 영수로 하여 성리학
과 대외정책에 탄력성을 가지면서 내정개혁에 치중하였다.
(9) 기하환국(숙종, 1689) : 숙종은 장희빈의 소생(연령군)을 세자로 책봉하였는데 서인이
반대하자 서인을 축출하고 남인을 재 등용
(10) 갑술옥사(숙종, 1694) : 남인은 서인이 폐비음모를 꾸민다고 하여 서인을 투옥하는
옥사를 일으킴. 이에 숙종은 오히려 남인을 축출하고 소론을
등용
(11) 노론의 득세(1701) : 장희빈이 민비를 해하려고 한 사건이 있은 이후, 숙종 27년에
민비가 죽자 숙종은 소론을 축축하고 노론을 중용
(12) 신임사화 : 경종이 즉위한 이후 소론(유봉희)이 노론(김창집)을 반역죄로 몰아 제거
하고 정권을 장악
(13) 영. 정조의 탕평책 : 왕권의 신장을 꾀하려는 불편부당의 정책을 말하며, 이리하여
일시 당쟁이 완화되었으나, 사도세자 문제를 중심으로 시파와
벽파로 분열. 순조 이후 세도정치가 등장.
3. 붕당정치가 가지는 의미
조선은 성리학적 정치 체제를 철저하게 실현한 왕조였다. 성리학에서 정치 주체는 국왕과 도덕적 자기 수양을 한 사대부들이었다. 사림세력이 정치 세력화됨에 붕당이란 현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붕당은 의리나 명분이 갖는 배타적 성격으로 인해 정치 형태는 타자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이러한 배제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려는 방안으로 탕평론이 제시되었다.
조선시대 붕당의 특징은 정치는 권력의 논리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그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점에 있다. 다만 그 가치의 성격과 실현할 주체에 대한 규정에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그 가치가 도덕적 명분과 사회 규범에 있는지 백성의 행복에 있는지, 또 그 주된 주체가 사람이어야 하는지 국왕이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은 구별되었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한계는 결국 이런 논의가 지식인들에 의한 정치 곧 엘리트화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화를 넘어 사회의 모든 성원을 주체로 인정하는 사회 통합적 근대 정치 이론이나 국가이론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은 효율적인 사회 통합의 틀을 마련하지 못하여 근대적 민족 국가를 건설하지 못하였다. 즉, 당시의 국왕지식인 등 비교적 소수의 특권층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은 하층민을 포함하는 모든 사회 성원을 주체로 상정하는 바탕에서 통합을 통해 국가적 공론을 형성하는 데는 이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붕당정치가 무조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붕당정치에서는 상호 견제하고 대립하는 것이 곧 상호 공존하는 방법이다. 붕당 정치의 본질적인 취지는 바로 일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현대 민주정치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할 수 있겠다.
  • 가격1,400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13.08.25
  • 저작시기2013.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4824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