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연보 1
2. 작가소개 1
3. 작가보기 1
(1) 성석제의 대표작 2
(2) 성석제 작품의 특징 2
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작품분석 4
(1) 작품소개 6
(2) 줄거리 6
(3) 인물분석 9
(4) 내용분석 11
5. 작품평가 14
6. 우리들의 감상 14
[참고문헌] 16
2. 작가소개 1
3. 작가보기 1
(1) 성석제의 대표작 2
(2) 성석제 작품의 특징 2
4.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작품분석 4
(1) 작품소개 6
(2) 줄거리 6
(3) 인물분석 9
(4) 내용분석 11
5. 작품평가 14
6. 우리들의 감상 14
[참고문헌] 16
본문내용
아닐까 생각한다.
분석적 서사가 아니라 긍정의 포용, 우리의 메마른 피부를 씻어주는 너그러운 노래를 듣는 일은 진귀한 체험이다. 그 긍정이 현실 세계의 어둡고 메마른 부정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 우리 삶의 어둠은「새가 되었네」에서 슬픈 엘레지로 날아 내리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감각화 하는 것은 우리가 언감생심 가져보는 새로움이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감각의 갱신이리고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나 우리 소설의 그 잘난 엄숙주의에 지친 나 같은 독자에게는 오래된 갈증이다. 성석제의 소설은 우리의 눈을 맑게 한다. 그 맑음은 혼탁한 지성의 지리한 변론이 줄 수 없는, 오직 저 산야의 푸르름만이 줄 수 있는, 근원적인 맑음과 많이 가까이 있다. 병든 눈앞에 낀 스모그를 걷어내는 것, 소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놀라움, 성석제의 이 첫 창작집은 그 일을 부드럽고도 즐거운 쾌락 속에서 해내 보이고 있다.
3) 재미난 문체
성석제의 소설을 읽다보면 읽는 중간중간 생기는 긴장이 웃음으로 빠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한 편을 다 읽고 났을 때는 목젖이 아프다. 눈으로 읽었을 뿐인데 목안이 얼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더욱이 독서는 진지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독자라면 성석제의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이것을 소설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게 한다.
4) 모순적 문체
그의 작품에서는 잘 계산된 플롯이나 잘 빚어진 인물 형상보다는 잉여적인 에피소드, 별 의미 없이 반복되는 잰말투의 입담, 줄기보다는 곁가지로 자꾸 뻗어나가는 듯한 말의 웅성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쓸모 없는 곁가지로서의 잰말투의 소설 화법은 낭비와 잉여로서의 인생의 근원적인 허무감을 보여준다. 말없음만이 침묵이 아니라,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것, 혹은 여럿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는 소음도 결국은 침묵이자 우울한 허무감의 표현이라는 점을 그의 소설은 보여준다. 그가 뱉어내는 숱한 요설과 화려한 입담이 결국은 침묵이라니! 우리가 그 소음에 귀기울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유정의 이런 모습을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상’과 ‘김유정’에게서 찾아본다면, ‘이상’의 경우에는 그냥 슬픔으로 끝을 맺는 ‘이상’ 보다는 그 슬픔을 한 박자 끌어올려 밝음에 단계로 나아가는 ‘김유정을 더 닮았다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작품을 살펴본다면 『홀림』의 단편 소설 가운데 「붐빔과 텅 빔」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출세가도를 달리는 형은 부유했으며, 늘 바쁘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동생은 이와 대비되어 가난했고 늘 한 발짝씩 늦게 형을 따라하는데, 따라하는 그가 성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꼭 형이 실패한 후 그 일을 따라하게 되었으므로… 마지막은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형제도 결국엔 똑같이 암 선고를 받게 되고 둘 다 치료가 된 듯 하지만 형은 보름 동안 피를 토해내다 죽고 아우는 암이 재발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작가가 실컷 소음을 만들 듯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결국 그 공허한 끝맺음은 그간의 소음으로 인하여 허무감을 더욱 부추기게 한다.
5) 리얼리즘 넘어가기
성석제의 소설을 살펴보면, 그 등장 인물부터가 심상치 않다. 과연 이런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화적인 인물(알코올 중독자, 춤꾼, 도박꾼 등)이 등장한다. 또 이런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과 대화 역시 우리의 일상에서 일상적이게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성석제가 그리는 작품세계란 현실을 벗어나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딱 떨어지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흔히 발견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수 있겠다싶은 인물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성석제가 그리는 세계는 실제와 상상사이, 허구와 참 사이, 추억과 지금 사이, 진실과 거짓사이에 있다. 실제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농담을 던지거나 또는 상황 설정자체를 허구적으로 꾸미고, 거짓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소설 안에 주석을 달고, 그것이 참임을 집요하게 설득하려든다. 그래서 참과 거짓을 흩어놓고는 어느 것이 진짜일까? 라고 독자에게 묻는 듯하다. 이것은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함부로 판단하게 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는 구실을 하게 할지도 모른다. 작가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소설만을 접해온 독자라면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석제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성석제의 소설이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그 ‘사이’의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소설에는 유독 ‘인물의 공상’이 많이 드러난다.)
등장 인물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축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다시 말해 그 지배적인 힘을 상실해 가는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주목함으로써 우리에게 본질의 발견이 위와 같은 인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6) 옛날 이야기
성석제의 소설은 민담이나 전설의 양식을 띄고 있는 것이 많다. 설화의 재구성이 그의 소설의 특징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근래에 4백 년 전에 살다 간 가조의 문집을 얻었다. 예순이 넘는 생애에 몇 편의 시와 만언 소, 유언이 남겨진 글의 전부인데, 간명하고 아름다운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송구스러웠다. 생전에 흉금을 터놓고 지내던 벗들이 보탠 추모글의 간절함은 4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머리칼을 빳빳이 곤두서게 만든다. 그 각각의 문장들조차 자신의 이름으로는 단 하나의 문집을 남겼을 뿐인데, 나는 벌써 내 이름이 박힌 책을 십여 권 넘게 내고 말았다. 어떻든 나는 행운아다.
성석제 문학의 한 가능성은 그의 문학이 고전의 세계로 열려 있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100년의 한국사는 그 깊고 넓은 세계를 캄캄 어둠 속에 팽개쳐놓고 서구를 향해 맹목적으로 내달려왔다. 이른바 과거 부정, 전통 단절이 그것인데, 이제- 그 어둠 속을 되돌아 살필 때다. 다행히도 국학계의 연구성과가 축적돼 있으니 길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성석제 문학은 드
분석적 서사가 아니라 긍정의 포용, 우리의 메마른 피부를 씻어주는 너그러운 노래를 듣는 일은 진귀한 체험이다. 그 긍정이 현실 세계의 어둡고 메마른 부정 위에 서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 우리 삶의 어둠은「새가 되었네」에서 슬픈 엘레지로 날아 내리고 있지만 그것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감각화 하는 것은 우리가 언감생심 가져보는 새로움이다.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감각의 갱신이리고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나 우리 소설의 그 잘난 엄숙주의에 지친 나 같은 독자에게는 오래된 갈증이다. 성석제의 소설은 우리의 눈을 맑게 한다. 그 맑음은 혼탁한 지성의 지리한 변론이 줄 수 없는, 오직 저 산야의 푸르름만이 줄 수 있는, 근원적인 맑음과 많이 가까이 있다. 병든 눈앞에 낀 스모그를 걷어내는 것, 소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놀라움, 성석제의 이 첫 창작집은 그 일을 부드럽고도 즐거운 쾌락 속에서 해내 보이고 있다.
3) 재미난 문체
성석제의 소설을 읽다보면 읽는 중간중간 생기는 긴장이 웃음으로 빠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한 편을 다 읽고 났을 때는 목젖이 아프다. 눈으로 읽었을 뿐인데 목안이 얼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더욱이 독서는 진지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독자라면 성석제의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이것을 소설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게 한다.
4) 모순적 문체
그의 작품에서는 잘 계산된 플롯이나 잘 빚어진 인물 형상보다는 잉여적인 에피소드, 별 의미 없이 반복되는 잰말투의 입담, 줄기보다는 곁가지로 자꾸 뻗어나가는 듯한 말의 웅성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쓸모 없는 곁가지로서의 잰말투의 소설 화법은 낭비와 잉여로서의 인생의 근원적인 허무감을 보여준다. 말없음만이 침묵이 아니라,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것, 혹은 여럿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는 소음도 결국은 침묵이자 우울한 허무감의 표현이라는 점을 그의 소설은 보여준다. 그가 뱉어내는 숱한 요설과 화려한 입담이 결국은 침묵이라니! 우리가 그 소음에 귀기울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김유정의 이런 모습을 좀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상’과 ‘김유정’에게서 찾아본다면, ‘이상’의 경우에는 그냥 슬픔으로 끝을 맺는 ‘이상’ 보다는 그 슬픔을 한 박자 끌어올려 밝음에 단계로 나아가는 ‘김유정을 더 닮았다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작품을 살펴본다면 『홀림』의 단편 소설 가운데 「붐빔과 텅 빔」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출세가도를 달리는 형은 부유했으며, 늘 바쁘고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동생은 이와 대비되어 가난했고 늘 한 발짝씩 늦게 형을 따라하는데, 따라하는 그가 성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꼭 형이 실패한 후 그 일을 따라하게 되었으므로… 마지막은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형제도 결국엔 똑같이 암 선고를 받게 되고 둘 다 치료가 된 듯 하지만 형은 보름 동안 피를 토해내다 죽고 아우는 암이 재발하여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작가가 실컷 소음을 만들 듯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결국 그 공허한 끝맺음은 그간의 소음으로 인하여 허무감을 더욱 부추기게 한다.
5) 리얼리즘 넘어가기
성석제의 소설을 살펴보면, 그 등장 인물부터가 심상치 않다. 과연 이런 인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화적인 인물(알코올 중독자, 춤꾼, 도박꾼 등)이 등장한다. 또 이런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과 대화 역시 우리의 일상에서 일상적이게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성석제가 그리는 작품세계란 현실을 벗어나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묻는다면 그 대답 역시 딱 떨어지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흔히 발견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수 있겠다싶은 인물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성석제가 그리는 세계는 실제와 상상사이, 허구와 참 사이, 추억과 지금 사이, 진실과 거짓사이에 있다. 실제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농담을 던지거나 또는 상황 설정자체를 허구적으로 꾸미고, 거짓 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소설 안에 주석을 달고, 그것이 참임을 집요하게 설득하려든다. 그래서 참과 거짓을 흩어놓고는 어느 것이 진짜일까? 라고 독자에게 묻는 듯하다. 이것은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함부로 판단하게 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는 구실을 하게 할지도 모른다. 작가의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소설만을 접해온 독자라면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성석제는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성석제의 소설이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그 ‘사이’의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소설에는 유독 ‘인물의 공상’이 많이 드러난다.)
등장 인물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면, 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축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다시 말해 그 지배적인 힘을 상실해 가는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주목함으로써 우리에게 본질의 발견이 위와 같은 인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켜준다.
6) 옛날 이야기
성석제의 소설은 민담이나 전설의 양식을 띄고 있는 것이 많다. 설화의 재구성이 그의 소설의 특징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근래에 4백 년 전에 살다 간 가조의 문집을 얻었다. 예순이 넘는 생애에 몇 편의 시와 만언 소, 유언이 남겨진 글의 전부인데, 간명하고 아름다운 그 문장들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송구스러웠다. 생전에 흉금을 터놓고 지내던 벗들이 보탠 추모글의 간절함은 4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머리칼을 빳빳이 곤두서게 만든다. 그 각각의 문장들조차 자신의 이름으로는 단 하나의 문집을 남겼을 뿐인데, 나는 벌써 내 이름이 박힌 책을 십여 권 넘게 내고 말았다. 어떻든 나는 행운아다.
성석제 문학의 한 가능성은 그의 문학이 고전의 세계로 열려 있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난 100년의 한국사는 그 깊고 넓은 세계를 캄캄 어둠 속에 팽개쳐놓고 서구를 향해 맹목적으로 내달려왔다. 이른바 과거 부정, 전통 단절이 그것인데, 이제- 그 어둠 속을 되돌아 살필 때다. 다행히도 국학계의 연구성과가 축적돼 있으니 길 찾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성석제 문학은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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