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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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마르크스

1) 생애

2) 마르크스주의 (Marxism)

ⅰ. 사상의 형성

ⅱ. 인간해방의 세계관

ⅲ. 유물사관

ⅳ. 계급투쟁론과 프롤레타리아 발견

ⅴ. 잉여가치설과 시민사회의 해부

ⅵ. 사회주의, 공산주의

ⅶ. 사후의 마르크스주의

3. 마르크스주의자

1) 레닌

2) 엥겔스

4. 결론

5. 참고문헌

본문내용

리아독재를 주장하였고, 공산당전위조직의 중요성과 엘리트 혁명가의 역할을 강조하였는데, 이로써 마르크스 이론의 중대한 전환을 가져왔다. 또 후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제국주의론을 주창하였다.
그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공산혁명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선진국 자본주의의 모순이 제국주의를 통해서 후진국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선진국 노동자들은 후진국 노동자들을 대리 착취함으로써 모순을 극복할 동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를 거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그 뒤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로 계승, 변형되었다. 편집부,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2) 엥겔스 (1820-1895)
1837년 엘버펠트의 김나지움을 중퇴하고, 섬유공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의 일을 1년쯤 도운 뒤 브레멘에서 2년 반 동안 업무를 견습하는 한편, 여가를 이용하여 평론과 시를 써서 오발트라는 필명으로 신문 등에 발표하였다. 1841년 베를린 근위포병여단에 지원 입대하여 병역 의무를 다하는 1년 동안 틈틈이 베를린대학에서 철학 등을 청강했으며, 헤겔 좌파에 가담하였다.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아버지가 공동 경영하는 영국 맨체스터의 에르멘 앤드 엥겔스사의 방적공장에서 일했는데, 그 동안 여가를 이용해서 노동자들의 실정을 돌아보고, 노동운동, 차티스트운동, 사회주의운동과 접촉한 뒤 공산주의자의 입장을 굳히면서 몇 편의 논문을 썼다. 그 동안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노동자 번스를 알게 되어 43년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44년 마르크스와 루게가 발간한 ‘독불 연보’에 발표한 ‘국민경제학 비판대강’은 마르크스의 경제학 연구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44년 8월 영국에서 독일로 돌아오던 중 파리에 들러 마르크스를 만나 의견의 일치를 발견하였으며, 이로써 평생에 걸친 두 사람의 우정과 협동이 시작되었다. 그 최초의 사업이 헤겔좌파를 비평한 ‘신성가족’(1845)의 공동 집필이다. 그 뒤 바르멘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면서 맨체스터에서의 견문과 연구를 바탕으로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썼다. 45년 4월 집을 나와 마르크스가 거처하고 있던 브뤼셀에 주거를 정하고, 그곳에서 공동으로 ‘독일 이데올로기’를 집필하여 인간사회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파악 방식인 유물사관을 제시하였다. 또한 공산주의자의 연대와 결집을 목표로 공산주의통신위원회를 창설하였고, 47년에는 의인동맹에 가입한 뒤 공산주의자동맹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동맹의 강령 작성을 목표로 해서 공산주의의 원리를 기초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에 의해 ‘공산당선언’이 집필되었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나자, 독일로 되돌아가 마르크스와 함께 ‘신 라인신문’을 발간했으며, 나아가 의용군의 부관으로서 전투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으나, 혁명의 패배로 인하여 마르크스의 뒤를 따라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의 ‘신 라인신문’, ‘정치경제평론’ 발간에 협력하였고, ‘독일농민전쟁’ 등의 논문을 기고하기도 했으나 생활이 궁핍하여 50년부터 다시 에르멘 앤드 엥겔스 사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비즈니스맨 생활을 하게 되었다. 50~60년 사원, 60~64년 업무대리인, 64~69년 사무소지배인으로 일했으며, 계속적으로 마르크스에 대한 경제적 원조를 하였다. 그 동안 교외에 있는 집에서는 친구들과 정치, 학문적으로 교류하는 이중생활을 하였다. 63년 교외에 있는 집에서 함께 살던 번스가 죽었으며, 64년 번스의 여동생 리디아를 아내로 맞아들었다. 69년 7월 회사 근무를 그만두고 70년 가을 런던으로 건너가 마르크스의 집 가까이에 거처를 정한 뒤 저술과 정치활동에 몰두하였다. ‘자연변증법’, ‘공상에서 과학으로’(1884)를 집필하였다. 편집부,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4. 결론
19세기 이래 세계사상계는 거대한 담론을 잃어버렸다. 근 100년간 과거의 담론만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특히 90년대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불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광풍은 놀라우리만치 세계경제를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지만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체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어떤 사상이든 일방적인 강요는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가져온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자본주의, 이의 모순을 짚어낸 유일한 사람은 19세기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말 마르크스였다. 이사야 벌린, 『칼 마르크스-그의 생애와 시대』, 미다스 북스, 2001.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모순. 그렇다면 바람직한 사회상은 무엇일까? 너도 나도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우리들이 요구하는 건 전력이나 전술이 아닌 말하는 자의 진정성이다. 사상이나 이념은 언제든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를 가져올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맹목적인 일방통행을 강요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회를 구성할 것인지, 인류가 만들어 가야할 사회는 어떤 모습이 최적일지 명확한 답이 서지 않는다. 앞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자세히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르크스가 선택한 학문적 이론이 과연 그 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일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마르크스주의를 보다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닌 목표로 보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사회과학적 이론은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에도 당연히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 아래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찾고, 주체적인 민중의 모습을 통해 기존의 모순된 구조를 타파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으로써 도움이 될 것이다.
5. 참고문헌
김세균, 『마르크스 이론의 재구성을 위한 하나의 시도』, 서울대학교, 2000.
송태경, 『마르크스 이론의 재해석』, 자유인, 1995.
이사야 벌린, 『칼 마르크스-그의 생애와 시대』, 미다스 북스, 2001.
조현수 편저, 『마르크스 선집』, 타임기획, 2006.
편집부, 『두산 세계대백과』, 두산, 2002.
편집부,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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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10.30
  • 저작시기2013.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9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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