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스킷드라마 설교란 무엇인가?
2. 스킷드라마설교의 작성
3. 스킷드라마 설교의 실제
제목: 새술은 새 부대에
본문: 막 2, 17-22(해방절 기념 주일)
출연: 힌옷입은 사람(2) 속이 검은 사람(2)
2. 스킷드라마설교의 작성
3. 스킷드라마 설교의 실제
제목: 새술은 새 부대에
본문: 막 2, 17-22(해방절 기념 주일)
출연: 힌옷입은 사람(2) 속이 검은 사람(2)
본문내용
우리의 실정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행정의 공백을 메울길이 없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문제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시대를 맞으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없엇다는게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 추상같은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그후 광주 대학살극의 주범인 전두환 노태후도 버젖히 대통령이 뽑히는 웃지못한 희극이 연출되는 것이고, 몇십만원 사기친 사람은 옥살이시키면서도 정작 수십억원을 해먹은 김 현철이는 감방에 가지않아도 되는 고무줄 정의가 이나라의 최고 권부인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프랑스는 철저히 새술을 새부대에 담았고 그리고 그 대가를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새술을 헌부대에 담았고 역시 정반대의 혹독한 대가를 여실히 치루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 세상사는게 다 예수님 말씀하신 것같아야 맞지않아요? 가령 새로운 양복을 한벌 맞추었다 칩시다. 그런데 신고잇는 구두를 보니까 발가락이 다 나온 형편없는 구두를 신고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 중에 그 사람을 멋쟁이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또 양복만 놓고서 멋지다고 그래서 양복까지만 보고 발은 보지않겠다 그러는 분은 도 누가 있겠습니까? 새 양복에 어울리는 새구두가 아니면 아무리 비싼 새양복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 싸잡아서 촌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정말 오늘의 이 하나님이 주신 새시대의 기회를 진정한 새시대로 만들려면 구시대의 잔재에 대해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정신 독바로 차리고 역사와 민족앞에 죄인이 되지않으려면 그리고 그가 믿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밀실 야합의 정치를 버리고 공의의 대도로 나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역사의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말아야 합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기회주의자들을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에서 몰표를 몰아주는 우를 또다시 범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그리고 민족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복절을 맞는 저와 여러분의 다짐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는 차원에서는 더더욱 애수님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가치관을 새롭게 갖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을 사는 목표의 질을 높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우리가 행복해지기 원하는 개인적 심정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마는 그러나 신앙은 그 차원까지도 넘어서게 합니다. 그래서 설사 내가 행복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져오고 그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즐거워하는 그런 수준까지 다가서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이야 말로 복음이라는 새술을 담는 새부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봉사를 이야기하고 살아가는 의미를질문하는데 자루된 나는 여전히 소유만 생각하고 나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새 술을 헌부대에 담고 잇는 것이고 생벼를 헌옷가지에 붙이고 잇는 꼴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거기서 손해보지않으려는데 익숙한 여러분이 왜 복음의 원리안에서 이익내는 것에는 그리도 인색해야 한단 말입니까? 왜 우리가 신랑이 여는 잔치집에 가서 금식하고 배를 곯아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새술도 버리고 가죽 부대도 버리는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지않습니까?
복음이 마련해준 새로운 지평을 응시하면서 넓은 가슴을 펴십시다.
우리민족이 또다시 그 아픈 노에의 올무를 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겉모습만 신앙인인 이중인간으로 남아잇을 수는 없지않겟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 소중한 기회 이 귀한 복음안에서 이나라 이민족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새롭게 살 수 있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맙시다. 이것이 오늘 광복 54주년을 맞는 우리의 각오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행정의 공백을 메울길이 없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문제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시대를 맞으려는 의지가 우리에게는 없엇다는게 이게 문제입니다. 그런 추상같은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그후 광주 대학살극의 주범인 전두환 노태후도 버젖히 대통령이 뽑히는 웃지못한 희극이 연출되는 것이고, 몇십만원 사기친 사람은 옥살이시키면서도 정작 수십억원을 해먹은 김 현철이는 감방에 가지않아도 되는 고무줄 정의가 이나라의 최고 권부인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프랑스는 철저히 새술을 새부대에 담았고 그리고 그 대가를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새술을 헌부대에 담았고 역시 정반대의 혹독한 대가를 여실히 치루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 세상사는게 다 예수님 말씀하신 것같아야 맞지않아요? 가령 새로운 양복을 한벌 맞추었다 칩시다. 그런데 신고잇는 구두를 보니까 발가락이 다 나온 형편없는 구두를 신고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 중에 그 사람을 멋쟁이라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또 양복만 놓고서 멋지다고 그래서 양복까지만 보고 발은 보지않겠다 그러는 분은 도 누가 있겠습니까? 새 양복에 어울리는 새구두가 아니면 아무리 비싼 새양복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 싸잡아서 촌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정말 오늘의 이 하나님이 주신 새시대의 기회를 진정한 새시대로 만들려면 구시대의 잔재에 대해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대통령부터 정신 독바로 차리고 역사와 민족앞에 죄인이 되지않으려면 그리고 그가 믿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밀실 야합의 정치를 버리고 공의의 대도로 나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역사의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말아야 합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은 기회주의자들을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에서 몰표를 몰아주는 우를 또다시 범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 그리고 민족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복절을 맞는 저와 여러분의 다짐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는 차원에서는 더더욱 애수님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가치관을 새롭게 갖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을 사는 목표의 질을 높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우리가 행복해지기 원하는 개인적 심정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마는 그러나 신앙은 그 차원까지도 넘어서게 합니다. 그래서 설사 내가 행복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져오고 그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즐거워하는 그런 수준까지 다가서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이야 말로 복음이라는 새술을 담는 새부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봉사를 이야기하고 살아가는 의미를질문하는데 자루된 나는 여전히 소유만 생각하고 나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새 술을 헌부대에 담고 잇는 것이고 생벼를 헌옷가지에 붙이고 잇는 꼴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알고 거기서 손해보지않으려는데 익숙한 여러분이 왜 복음의 원리안에서 이익내는 것에는 그리도 인색해야 한단 말입니까? 왜 우리가 신랑이 여는 잔치집에 가서 금식하고 배를 곯아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새술도 버리고 가죽 부대도 버리는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지않습니까?
복음이 마련해준 새로운 지평을 응시하면서 넓은 가슴을 펴십시다.
우리민족이 또다시 그 아픈 노에의 올무를 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겉모습만 신앙인인 이중인간으로 남아잇을 수는 없지않겟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 소중한 기회 이 귀한 복음안에서 이나라 이민족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새롭게 살 수 있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맙시다. 이것이 오늘 광복 54주년을 맞는 우리의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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