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재전우 (艮齋 田愚, 이기심성론, 간재전우성리학, 심본성설, 성존심비, 송시열, 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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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간재전우 (艮齋 田愚, 이기심성론, 간재전우성리학, 심본성설, 성존심비, 송시열, 도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간재 전우에 대해
 2.생애와 활동 사항
 3.학문과 도학진흥
 4.평가

Ⅲ.결론

본문내용

니, 차라리 몸과 마음을 올바로 가다듬어 신명을 얻어 학문을 열심히 닦아 뜻을 편다면 1년, 2년, 10년, 20년 어느 때인가는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도학 정신에 더욱 투철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 “수천 년의 도학이 간재 한 몸에 달렸으니 가벼이 죽기보다 학문을 북돋우는 것이 더 큰일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스스로 일제의 탄압에 대해 조선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전혀 일본인을 상대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았으며, 제자 가운데 개화하는 사람은 이름을 지웠다.
이와 같은 학문적 업적에 대해 곽종석(郭鍾錫)은 그의 저서 『면우집(宇集)』 권111의 「홍성길(洪成吉)에게 답하는 글」에서 “나 스스로는 간옹(艮翁)에게서 평소에 그 청절(淸節)을 흠앙(欽仰)했던 것이요, 성존심비(性尊心卑)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미치지 못했던 바이니 간옹이야말로 나의 의혹된 바를 풀어줄 수 있는 분이다”라고 하였다.
제자로는 오진영(吳震泳)·최병심(崔秉心)·이병은(李炳殷)·송기면(宋基冕)·권순명(權純命)·유영선(柳永善)·김병준(金炳駿)·김택술(金澤述) 등을 비롯하여 3,0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안자편(顔子篇)』·『연원정종(淵源正宗)』·『간재집』·『간재사고(艮齋私稿)』 등이 있다.
4.평가
그의 성리학 연구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그대로 실현시키려 한 점에서 조선조 최후의 정통 유학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있어서는 나라가 망해도 의병을 일으키려 하지 않고 도학군자만을 자부하고 있었고, 또한 파리장서(巴里長書)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며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전통적 도학의 중흥만이 국권 회복의 길이라 여겼기에 이 정신에 투철했던 것이고, 그의 처신이 어떠했던 지간에 조선조 최후를 장식했던 성리학적 공헌은 높이 평가될 수 있다
Ⅲ.결론
간재전우 에 대해 결론을 내리자면 간재전우 분명 성리학적 연구는 분명히 뛰어나다. 또한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그대로 실현시키려 한 점에서 조선조 최후의 정통 유학자로서 추앙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파리장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분명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 결론을 내려볼 때 간재전우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고 자신의 성리학적 사상을 크게 펼친것도 알 수 있다.
그는 전통적 도학의 중흥만이 국권 회복의 길이라 여겼기에 그 정신 그의 처신이 나쁘더라도 성리학적으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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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4.04.14
  • 저작시기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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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1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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