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머리말
2. 김치의 어원 및 기원
1) 김치의 어원
2) 김치의 기원
3. 김치의 발전사
1) 부족국가시대~삼국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소금의 역사
5. 젓갈의 역사
6. 고추의 역사
7. 장의 역사
1) 콩의 역사
2) 된장의 역사
3) 고추장의 역사
4) 간장의 역사
8. 맺음말
참고문헌
2. 김치의 어원 및 기원
1) 김치의 어원
2) 김치의 기원
3. 김치의 발전사
1) 부족국가시대~삼국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소금의 역사
5. 젓갈의 역사
6. 고추의 역사
7. 장의 역사
1) 콩의 역사
2) 된장의 역사
3) 고추장의 역사
4) 간장의 역사
8.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 때에 시체를 소금물에 담갔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하여 소금을 비료로 사용하였다. 또 그들은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소금을 신에게 바치고, 신에게 바치는 짐승의 고기는 짜게 하였다. 이런 풍습은 그리스 사람이나 로마 사람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소금이 물건의 부패를 방지하고, 물건을 불변으로 하는 힘이 있다고 하여 고대인은 소금을 변함 없는 우정 ·성실 ·맹세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성서의 ‘소금의 맹세’는 이런 데서 생긴 것이다. 아랍인은 함께 소금을 먹은 사람을 친구로 여기는 풍속이 있다. 소금의 이러한 생활상의 중요성 ·귀중성 ·신성한 성질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일 사람을 ‘땅의 소금’이라고 하였다.
원시시대에는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채취하거나 해조(海藻)를 태워서 얻기도 하였는데,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염분을 함유한 물이 솟아 나와 대상(隊商)은 그것에서 소금을 얻었다. 유럽에서는 철기시대부터 암염이 이용되고, 때로는 암염이 있는 곳에 물을 붓고 소금이 녹은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채취한 일도 있다. 또, 사해(死海)나 솔트레이크와 같은 염호에서 얻은 조염(粗鹽)을 녹여 증발시키고 정제하여 소금을 얻었다. 동양의 문헌에서는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엮었다고 전해지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의약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약물 중독의 해독제로 소개되어 있고, 그 밖에 BC 27세기 재상 숙사씨(宿沙氏)가 처음으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채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 이전의 소금에 대한 문헌은 매우 적다. 다만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에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신라나 백제에서도 해안지방에서 소금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도염원(都鹽院)을 두어 염분(鹽盆)을 국가에서 관장하여 직접 소금을 제조 ·판매하여 재정수입원으로 삼았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사유로 이관하였다가 다시 1309년(충선 1) 염정을 민부(民部)에 이관하고 유통부분에서는 중국의 입포매법(立涯賣法)과 계구매법(計口賣法)을 모방하여 포(布)를 납부하게 하여 소금을 구입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연안의 주군마다 염장(鹽場)을 설치하여 관가에서 소금을 구워 백성들은 미포와 환물하였는데, 1411년(태종 11)에 염장역미법(鹽場易米法)을 폐지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소금은 국가의 중요한 재정 세원이었다. 그리고 궁가와 아문(衙門)경영의 소금은 일부 현물로 수납하고, 일반민영은 세금을 과해 왔다. 그 후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가 되자 소금은 완전히 전매제(專賣制)가 되었고, 1961년에 염전매법이 폐지되자 종전의 국유염전과 민영업계로 양분되었다. 마귈론, <<먹거리의 역사(하) - 제4장 필수식품>>, 까치글방, 2002년, p124-151
5. 젓갈의 역사
젓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발효식품이며, 어패류의 육, 내장 및 생식소 등에 비교적 다량의 식염을 가해 자가소화효소및 미생물의 분작용에 의해 알맞게 숙성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곡류 등의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의 식사에 대표적 조미료로 사용되었다.
인도, 태국 등 열대지방인 인도차이나반도 쪽에서는 더운 기후로 인하여 음식의 저장이 쉽지 않았고, 수렵, 채취, 어로를 통하여 얻은 음식물 중 일부분이 부패로 인해 버려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면하고 연해에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므로 어패류의 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하여 젓갈의 원료가 풍부하여 이를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젓갈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상의 최초 젓갈은 기원전 3-5세기경의 중국문헌에서 발견되나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에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는 폐백음식에 \"해\"(지금의 젓갈)이 등장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일상 먹는 반찬이었다. 젓갈류는 가정단위로 제조되어 요리수준으로 사용되다가, 조선말기에 접어들면서 대량생산체제로 전환되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젓갈기술은 식염만을 이용하는 뱅어젓, 밴댕이젓, 갈치젓, 조기젓, 황석어젓, 새우젓, 조개젓, 게젓, 굴젓 등이 흔히 사용되었으며, 일부 식해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젓갈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보면 어패류를 염장 발효시킨 젓갈뿐만 아니라 식해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젓갈은 어패류를 약 20%의 농도가 되도록 소금에 절여 상온에서 보관하여 특유한 감칠맛이 나도록 한 식품이고, 식해는 생선에 쌀밥과 소금을 섞어 숙성시킴으로써 자연발효로 생긴 유산에 의해 생선의 부패를 억제한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식해를 담가 먹는 지방은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로서 모두 동해안에 접해 있는 지방이다. 식해에 쓰이는 생선으로는 명태, 가자미, 고등어, 도루묵, 멸치 등 다양하고, 바다에서 먼 고장에서는 말린 생선으로 담그기도 한다.
젓갈은 지역적으로 볼때 기후가 더운 남쪽지방일수록 짠맛이 강하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짠맛이 덜한 경향이 있다. 이는 발효과정에서의 부패 방지와 기후와 관련한 체내의 염분 배출량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과 관련된 것으로 보여 진다. 윤숙자, <<한국의 저장 발효 음식 - 제 5장 젓갈류>>, 신광, 2003년, p131-155
6. 고추의 역사
고추의 원산지는 남미 아마존강 유역이며 1493년 콜럼부스가 스페인으로 가져가 유럽에 전파하였고 17세기경 중국, 일본에 전파되었다.
고추는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으로 재배 고추의 원생종은 미국 남부로부터 아르헨티나 사이에 분포되어 있고, 종류에 따라서는 컬럼버스시대 이전에 이미 상당히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재배고추의 원산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추는 멕시코에서 기원전 6500년경의 유적으로부터 C. annuum으로 추정되는 종류가 출토되었으며, 기원전 850년경에는 재배가 확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는 1542년에 이미 3계통이 전파되었으며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환경이 원산지와 비슷하여 재배가 용이하였다.
1400년대 유럽에서는 후추를 귀하게 여겼는데 콜럼부스를 따라 항해했던 쟌가라는 사람이 멕시코 원주민들이 \"아기\"라는 이름의 후추보다 더 맵고 빛깔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를 만들 때에 시체를 소금물에 담갔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하여 소금을 비료로 사용하였다. 또 그들은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소금을 신에게 바치고, 신에게 바치는 짐승의 고기는 짜게 하였다. 이런 풍습은 그리스 사람이나 로마 사람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소금이 물건의 부패를 방지하고, 물건을 불변으로 하는 힘이 있다고 하여 고대인은 소금을 변함 없는 우정 ·성실 ·맹세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성서의 ‘소금의 맹세’는 이런 데서 생긴 것이다. 아랍인은 함께 소금을 먹은 사람을 친구로 여기는 풍속이 있다. 소금의 이러한 생활상의 중요성 ·귀중성 ·신성한 성질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일 사람을 ‘땅의 소금’이라고 하였다.
원시시대에는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채취하거나 해조(海藻)를 태워서 얻기도 하였는데,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염분을 함유한 물이 솟아 나와 대상(隊商)은 그것에서 소금을 얻었다. 유럽에서는 철기시대부터 암염이 이용되고, 때로는 암염이 있는 곳에 물을 붓고 소금이 녹은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채취한 일도 있다. 또, 사해(死海)나 솔트레이크와 같은 염호에서 얻은 조염(粗鹽)을 녹여 증발시키고 정제하여 소금을 얻었다. 동양의 문헌에서는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엮었다고 전해지는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의약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약물 중독의 해독제로 소개되어 있고, 그 밖에 BC 27세기 재상 숙사씨(宿沙氏)가 처음으로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채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고려 이전의 소금에 대한 문헌은 매우 적다. 다만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에 소금을 해안지방에서 운반해 왔다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신라나 백제에서도 해안지방에서 소금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도염원(都鹽院)을 두어 염분(鹽盆)을 국가에서 관장하여 직접 소금을 제조 ·판매하여 재정수입원으로 삼았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사유로 이관하였다가 다시 1309년(충선 1) 염정을 민부(民部)에 이관하고 유통부분에서는 중국의 입포매법(立涯賣法)과 계구매법(計口賣法)을 모방하여 포(布)를 납부하게 하여 소금을 구입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연안의 주군마다 염장(鹽場)을 설치하여 관가에서 소금을 구워 백성들은 미포와 환물하였는데, 1411년(태종 11)에 염장역미법(鹽場易米法)을 폐지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소금은 국가의 중요한 재정 세원이었다. 그리고 궁가와 아문(衙門)경영의 소금은 일부 현물로 수납하고, 일반민영은 세금을 과해 왔다. 그 후 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가 되자 소금은 완전히 전매제(專賣制)가 되었고, 1961년에 염전매법이 폐지되자 종전의 국유염전과 민영업계로 양분되었다. 마귈론, <<먹거리의 역사(하) - 제4장 필수식품>>, 까치글방, 2002년, p124-151
5. 젓갈의 역사
젓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발효식품이며, 어패류의 육, 내장 및 생식소 등에 비교적 다량의 식염을 가해 자가소화효소및 미생물의 분작용에 의해 알맞게 숙성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곡류 등의 탄수화물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의 식사에 대표적 조미료로 사용되었다.
인도, 태국 등 열대지방인 인도차이나반도 쪽에서는 더운 기후로 인하여 음식의 저장이 쉽지 않았고, 수렵, 채취, 어로를 통하여 얻은 음식물 중 일부분이 부패로 인해 버려졌다. 특히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면하고 연해에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므로 어패류의 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하여 젓갈의 원료가 풍부하여 이를 장기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젓갈로 발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상의 최초 젓갈은 기원전 3-5세기경의 중국문헌에서 발견되나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사기>에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는 폐백음식에 \"해\"(지금의 젓갈)이 등장하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일상 먹는 반찬이었다. 젓갈류는 가정단위로 제조되어 요리수준으로 사용되다가, 조선말기에 접어들면서 대량생산체제로 전환되었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젓갈기술은 식염만을 이용하는 뱅어젓, 밴댕이젓, 갈치젓, 조기젓, 황석어젓, 새우젓, 조개젓, 게젓, 굴젓 등이 흔히 사용되었으며, 일부 식해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젓갈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보면 어패류를 염장 발효시킨 젓갈뿐만 아니라 식해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젓갈은 어패류를 약 20%의 농도가 되도록 소금에 절여 상온에서 보관하여 특유한 감칠맛이 나도록 한 식품이고, 식해는 생선에 쌀밥과 소금을 섞어 숙성시킴으로써 자연발효로 생긴 유산에 의해 생선의 부패를 억제한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식해를 담가 먹는 지방은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로서 모두 동해안에 접해 있는 지방이다. 식해에 쓰이는 생선으로는 명태, 가자미, 고등어, 도루묵, 멸치 등 다양하고, 바다에서 먼 고장에서는 말린 생선으로 담그기도 한다.
젓갈은 지역적으로 볼때 기후가 더운 남쪽지방일수록 짠맛이 강하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짠맛이 덜한 경향이 있다. 이는 발효과정에서의 부패 방지와 기후와 관련한 체내의 염분 배출량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과 관련된 것으로 보여 진다. 윤숙자, <<한국의 저장 발효 음식 - 제 5장 젓갈류>>, 신광, 2003년, p131-155
6. 고추의 역사
고추의 원산지는 남미 아마존강 유역이며 1493년 콜럼부스가 스페인으로 가져가 유럽에 전파하였고 17세기경 중국, 일본에 전파되었다.
고추는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으로 재배 고추의 원생종은 미국 남부로부터 아르헨티나 사이에 분포되어 있고, 종류에 따라서는 컬럼버스시대 이전에 이미 상당히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재배고추의 원산지는 명확하지 않다.
고추는 멕시코에서 기원전 6500년경의 유적으로부터 C. annuum으로 추정되는 종류가 출토되었으며, 기원전 850년경에는 재배가 확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는 1542년에 이미 3계통이 전파되었으며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환경이 원산지와 비슷하여 재배가 용이하였다.
1400년대 유럽에서는 후추를 귀하게 여겼는데 콜럼부스를 따라 항해했던 쟌가라는 사람이 멕시코 원주민들이 \"아기\"라는 이름의 후추보다 더 맵고 빛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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