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양장의 모단걸 - 뾰족구두에 모자 쓴 멋쟁이
2. 결혼은 자유로, 이혼도 떳떳이
3. 신여성의 결혼 양상
4. 연애결혼 선망
5. 신식결혼식
참고문헌
2. 결혼은 자유로, 이혼도 떳떳이
3. 신여성의 결혼 양상
4. 연애결혼 선망
5. 신식결혼식
참고문헌
본문내용
니다. 따라서 개화기 여학교에서는 한 소녀라도 이 조혼에서 구제하기 위해 집에 가는 여학생에게는 일일이 기수를 딸려보내어 볼 일만 보고 데려오도록 시켰습니다. 대사가 있으면 그 일을 다 치를 때까지 이 기수는 사랑방에서 거처하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같이 혼처가 나서도 학교측이 완강히 버티며 딸을 내어주지 않자 어떤 부모들은 아예 딸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겨우 17,18세 된 소녀를 나이가 많다 하여 시집도 못 갈 것으로 체념한 것이었습니다.
이화학당은 이 버림받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측에서 중매하여 결혼시키는 ‘학교결혼’을 고안해냈습니다. 신랑은 신식 청년들이었으며, 초창기 학교 결혼식은 학당 안의 강당이나 교내 예배당에서 예식을 올리고 전교생이 축복하는 가운데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갔습니다. 한편 여학생간에는 ‘조혼 반대 구락부’같은 비밀 서클이 은연중에 존재하여 부모의 강요 앞에 약해지게 마련이었던 단독의 저항을 연대의 저항으로 강화해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이 학교결혼은 여삭생의 조흔을 막는 학교의 한 전략으로 어느 만큼은 효과를 거두었으나, 조혼의 폐풍이 가시지 않아서 졸업 전에 약혼하고 결혼하는 학생의 수는 매우 많았습니다. ‘결석’한다는 말은 여학생간에 결혼한다는 은어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생의 사락 가운데 결혼이 제1이라 하여 재물을 많이 들여 결혼식을 성대하게 해왔으나, 개화기 이휴 결혼의 식의 형태 또한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개화 초 복수 결혼 또는 빈자 결혼이란 신식 결혼이 기독교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여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이 결혼 방식은 예로부터 빈민들 사이에서 행해져 오돈 것과 같은 것으로, 찬물을 떠 놓고 아주 가까운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은 신부의 귀머리를 얹어주고 신부는 신랑의 상투끈을 매어주는 것으로 결혼예식이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복수결혼은 18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그 모습이 조금 바뀌어 ‘예배당 결혼’이란 새로운 결혼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초창기의 예배당 결혼은 신랑신부를 앞에 세워놓고 목사가 결혼에 관련되 성경구절을 읽어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목사의 낭독이 끝나며 ‘결혼증빙’이라는 결혼증명서에 결혼 당사자뿐 아니라 친권자, 주례, 증인의 도장을 찍어 결혼한 사실을 서로 확인케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식결혼은 통칭 사회결혼으로도 불렸으며 1920년대 초기에 이르러서는 번창하여 장소가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이에 예식장이란 것이 새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예식장 앞에는 결혼식 복장을 빌려주는 가게도 생겨났고 신부화장을 전문으로 하는 미장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양식 이른바 신식 결혼에 대한 기록은 이미 구한말부터 보이고 있으며 1920년대 이래 점차 확삭되어 갔습니다. 이와 함께 신혼여행 또한 확산되었으며, 결혼식 때의 화장법이나 의상 등에 관한 소개가 사진 게재와 함께 신문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이배용 저, 우리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최혜실 저,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생각의 나무
이화학당은 이 버림받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측에서 중매하여 결혼시키는 ‘학교결혼’을 고안해냈습니다. 신랑은 신식 청년들이었으며, 초창기 학교 결혼식은 학당 안의 강당이나 교내 예배당에서 예식을 올리고 전교생이 축복하는 가운데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갔습니다. 한편 여학생간에는 ‘조혼 반대 구락부’같은 비밀 서클이 은연중에 존재하여 부모의 강요 앞에 약해지게 마련이었던 단독의 저항을 연대의 저항으로 강화해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이 학교결혼은 여삭생의 조흔을 막는 학교의 한 전략으로 어느 만큼은 효과를 거두었으나, 조혼의 폐풍이 가시지 않아서 졸업 전에 약혼하고 결혼하는 학생의 수는 매우 많았습니다. ‘결석’한다는 말은 여학생간에 결혼한다는 은어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생의 사락 가운데 결혼이 제1이라 하여 재물을 많이 들여 결혼식을 성대하게 해왔으나, 개화기 이휴 결혼의 식의 형태 또한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개화 초 복수 결혼 또는 빈자 결혼이란 신식 결혼이 기독교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여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이 결혼 방식은 예로부터 빈민들 사이에서 행해져 오돈 것과 같은 것으로, 찬물을 떠 놓고 아주 가까운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은 신부의 귀머리를 얹어주고 신부는 신랑의 상투끈을 매어주는 것으로 결혼예식이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복수결혼은 18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그 모습이 조금 바뀌어 ‘예배당 결혼’이란 새로운 결혼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초창기의 예배당 결혼은 신랑신부를 앞에 세워놓고 목사가 결혼에 관련되 성경구절을 읽어내려가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목사의 낭독이 끝나며 ‘결혼증빙’이라는 결혼증명서에 결혼 당사자뿐 아니라 친권자, 주례, 증인의 도장을 찍어 결혼한 사실을 서로 확인케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식결혼은 통칭 사회결혼으로도 불렸으며 1920년대 초기에 이르러서는 번창하여 장소가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이에 예식장이란 것이 새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예식장 앞에는 결혼식 복장을 빌려주는 가게도 생겨났고 신부화장을 전문으로 하는 미장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서양식 이른바 신식 결혼에 대한 기록은 이미 구한말부터 보이고 있으며 1920년대 이래 점차 확삭되어 갔습니다. 이와 함께 신혼여행 또한 확산되었으며, 결혼식 때의 화장법이나 의상 등에 관한 소개가 사진 게재와 함께 신문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이배용 저, 우리 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최혜실 저,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생각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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