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담배란?
2. 담배의 어원
3. 담배의 시작
4. 담배의 전래과정
1) 유럽의 전래
2) 동양으로의 전래
3) 우리나라의 전래
5. 우리나라의 담배
1) 조선시대 담배
2) 담뱃대의 길이와 신분
3)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4) 담배재배의 경제적 영향
6. 일제시대의 담배
1) 연초세
2) 궐련
참고문헌
2. 담배의 어원
3. 담배의 시작
4. 담배의 전래과정
1) 유럽의 전래
2) 동양으로의 전래
3) 우리나라의 전래
5. 우리나라의 담배
1) 조선시대 담배
2) 담뱃대의 길이와 신분
3)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4) 담배재배의 경제적 영향
6. 일제시대의 담배
1) 연초세
2) 궐련
참고문헌
본문내용
를 규제하였다.
시기가 내려올수록 제조연초의 수요가 증가하여 연초제조업이 더욱 발달해갔는데, 당시 연초제조업에서는 일본과 조선 및 영미연초회사가 3파전을 벌이면서 경쟁하였다. 총독부는 연초세령을 공포하면서 제조연초에 대하여 소비세를 부과하고 연초제조지역과 제조공장을 허가제로 하면서, 9개 지역에 48개 제조공장에만 연초제조를 허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영미연초회사는 중국으로 물러나고 영세한 조선인 연초제조업자들이 대거 몰락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인 연초제조업자들이 조선의 연초제조업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 시기(1921년)의 연초전 매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일제는 1921년 7월 연초전 매제를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총독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됨에 따라 재원을 마련해야 했고 그 재원의 일부를 연초전매제로 확보하려 하였다. 총독부는 1921년 전 매국을 설치하여 연초, 인삼, 염, 아편을 국가가 통제하는 전매제를 실시하였다. 그 중에서 총독부가 가장 주력한 것은 연초전 매제였고, 연초전매를 통하여 연초업의 모든 부문을 통제함으로써 그 이윤을 총독부가 독점하려고 하였다.
전매국은 판매업도 통제하였다. 전 매국에서는 연초판매관서를 설치하고 그 밑에 연초도매인과 소매인을 지정하여 전매연초를 판매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전에 엽연초를 판매하던 객주나 소매상들은 몰락하였고, 도매상도 주로 일본인 제조회사의 제조연초를 판매하던 도매업자에게 허가해줌으로써 조선인은 도매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매연초의 판매액은 급증하였고 전매수입도 증가해갔다. 연초전매제의 실시에 의하여 경작자와 판매자가 파국을 맞이하였으며, 조선인들은 비싼 전매연초의 소비로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인들은 총독부의 연초 전매제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우선 연초경작농민들은 재배업에 대한 통제에 저항하였다. 특히 연초경작 허가제와 엽연초 수납제에 대하여 반발하였다. 또한 집단적으로 연초를 경작하지 않는 ‘비경작운동’을 벌이거나 금연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나아가서는 수납소를 습격하거나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례는 유명한 연초산지에서 두드러졌으며, 특히 전주, 성천 등지의 농민들은 2-3년간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한편 조선인들은 전매령을 위반하는 방법으로 총독부의 전매정책에 대항하였다. 전매제에 대한 저항으로 금연운동을 벌이기도 하였고, 약간 적극적으로 전매령을 위반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결론적으로 총독부는 조선 후기 내재적으로 발전해왔던 연초의 재배업과 제조업 및 판매업의 모든 부문을 통제하고, 그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을 진압해가면서 1930년대에는 본래 의미의 전매제도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전매제도는 1945년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정부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2) 궐련
옛날 멕시코 종족의 하나인 아즈텍 문명시대 사람들은 갈대나 사탕수수깡 속에 담배를 부셔 넣고 불을 붙여 흡연하였는데 이를 스페인 정복자들이 흉내내어 유럽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오늘날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각양각색으로 즐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궐련은 작게 썬 담배를 종이(궐련지)에 말아 싼 것이다. 세계 제 1차 대전 때 군인들의 정신위안 목적 등으로 병사들에게 담배를 무료로 공급하면서부터 인기가 높아져 오늘날과 같은 종이에 말아 싼 담배를 여러 나라에서 다투어 적극 개발하게 되었고,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김정화 저, 담배이야기, 지호 2000
강준만 저, 담배의 사회문화사, 인물과사상사 2011
이이영, 손왕주 저, 겨자씨만한 역사 세상을 열다, 가림출판사 2012
김지섭 저, 우리 문화 이야기, 초당 2001
시기가 내려올수록 제조연초의 수요가 증가하여 연초제조업이 더욱 발달해갔는데, 당시 연초제조업에서는 일본과 조선 및 영미연초회사가 3파전을 벌이면서 경쟁하였다. 총독부는 연초세령을 공포하면서 제조연초에 대하여 소비세를 부과하고 연초제조지역과 제조공장을 허가제로 하면서, 9개 지역에 48개 제조공장에만 연초제조를 허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영미연초회사는 중국으로 물러나고 영세한 조선인 연초제조업자들이 대거 몰락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인 연초제조업자들이 조선의 연초제조업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 시기(1921년)의 연초전 매제를 실시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일제는 1921년 7월 연초전 매제를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총독부의 재정지출이 확대됨에 따라 재원을 마련해야 했고 그 재원의 일부를 연초전매제로 확보하려 하였다. 총독부는 1921년 전 매국을 설치하여 연초, 인삼, 염, 아편을 국가가 통제하는 전매제를 실시하였다. 그 중에서 총독부가 가장 주력한 것은 연초전 매제였고, 연초전매를 통하여 연초업의 모든 부문을 통제함으로써 그 이윤을 총독부가 독점하려고 하였다.
전매국은 판매업도 통제하였다. 전 매국에서는 연초판매관서를 설치하고 그 밑에 연초도매인과 소매인을 지정하여 전매연초를 판매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전에 엽연초를 판매하던 객주나 소매상들은 몰락하였고, 도매상도 주로 일본인 제조회사의 제조연초를 판매하던 도매업자에게 허가해줌으로써 조선인은 도매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매연초의 판매액은 급증하였고 전매수입도 증가해갔다. 연초전매제의 실시에 의하여 경작자와 판매자가 파국을 맞이하였으며, 조선인들은 비싼 전매연초의 소비로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인들은 총독부의 연초 전매제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저항하였다.
우선 연초경작농민들은 재배업에 대한 통제에 저항하였다. 특히 연초경작 허가제와 엽연초 수납제에 대하여 반발하였다. 또한 집단적으로 연초를 경작하지 않는 ‘비경작운동’을 벌이거나 금연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나아가서는 수납소를 습격하거나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례는 유명한 연초산지에서 두드러졌으며, 특히 전주, 성천 등지의 농민들은 2-3년간 지속적으로 투쟁하였다.
한편 조선인들은 전매령을 위반하는 방법으로 총독부의 전매정책에 대항하였다. 전매제에 대한 저항으로 금연운동을 벌이기도 하였고, 약간 적극적으로 전매령을 위반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결론적으로 총독부는 조선 후기 내재적으로 발전해왔던 연초의 재배업과 제조업 및 판매업의 모든 부문을 통제하고, 그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을 진압해가면서 1930년대에는 본래 의미의 전매제도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전매제도는 1945년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정부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2) 궐련
옛날 멕시코 종족의 하나인 아즈텍 문명시대 사람들은 갈대나 사탕수수깡 속에 담배를 부셔 넣고 불을 붙여 흡연하였는데 이를 스페인 정복자들이 흉내내어 유럽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오늘날 지구상의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각양각색으로 즐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궐련은 작게 썬 담배를 종이(궐련지)에 말아 싼 것이다. 세계 제 1차 대전 때 군인들의 정신위안 목적 등으로 병사들에게 담배를 무료로 공급하면서부터 인기가 높아져 오늘날과 같은 종이에 말아 싼 담배를 여러 나라에서 다투어 적극 개발하게 되었고,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김정화 저, 담배이야기, 지호 2000
강준만 저, 담배의 사회문화사, 인물과사상사 2011
이이영, 손왕주 저, 겨자씨만한 역사 세상을 열다, 가림출판사 2012
김지섭 저, 우리 문화 이야기, 초당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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