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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 사칠론이 갖는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추만 성리학의 전 체계 내에서 사칠론이 차지하는 위치가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의 고찰 역시 <천명도해>를 중심으로 추만 성리학의 개괄적인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사칠론이 차지하는 위치와 의의를 확인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그의 천명관(天命觀)과 천인합일의 근거를 고찰해야 한다. 먼저 하늘 천(天)에 대한 그의 설명부터 들어보자.
하늘은 곧 理다. 그 덕에 넷이 있는데, 원(元)과 형(亨)과 이(利)와 정(貞)-성(誠)은 그 가운데 있다-이 그것이다.. 같은 책, 論天命之理;天卽理也,而其德有四,曰元亨利貞(誠在其中,是也.
하늘은 바로 理이며, 하늘의 덕에는 원과 형과 이와 정의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誠)은 이들 네 가지 덕 가운데 두루 퍼져 있다고 한다. 그럼 이 네 가지 덕은 어떤 성격의 것인가?
대개 원이란 始의 理요, 형이란 通의 理요, 이란 遂의 理요, 정이란 成의 理다. 그래서 그 시가 있기 때문에 통하게 되고 통이 있기 때문에 수하게 되고 수가 있기 때문에 성하게 되며 성이 있게 되면 다시 시 하게 된다. 이렇게 순환하는 것은 그침이 없는데 이는 성(誠)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은 사덕(四德)을 일관하여 그 理를 하나로 하기 때문에 드디어 사물을 命하는 근원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명이다.. 같은 책, 論天命之理;蓋元者,始之理,亨者,通之理,利者,遂之理,貞者,成之理,而其所以始而通,通而遂,遂而成,成而復始,循環而無息者,乃誠之爲也,故此誠也,貫四德一其理,遂爲命物之源,此所謂天命也.
여기서 보면 네 가지 덕이란 사계절의 순환으로부터 추상되어 구성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원천이 바로 성이다. 따라서 이 誠의 개념은 바로 천명의 속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상의 내용을 추만 자신의 독특한 견해라기보다는 주역의 내용을 그가 원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 하늘(天)은 어떻데 만물을 생성하는가?
이런 까닭에 천도(天道)가 유행할 즈음에 당하여 이 理는 항상 그 가운데 깃들어 있으며, 그 만물이 와서 받게 될 때 이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성 또한 넷이 있는데 인의예지(仁義禮智)(信 또한 四性에 갖추어 있다)가 그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있어서는 명(命)이라 하고 사물에 있어서는 성(性)이라 하는데, 성(性)과 물(物)은 비록 그 이름은 다르나 그 理는 하나인 것이다.. 같은 책,論天命之理;是以當天道流行之際,此理常寓於其中,聽其萬物之來受者而賦與之,故物之性亦有四,仁義禮智信亦具於四性是也,故在天曰命在物曰性,性與物,其名雖異,其理則一也.
하늘은 만물에 각각의 理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생성한다. 따라서 하늘의 덕 즉 理는 사물에서 性이 된다. 그리고 이 성은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네 가지 덕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원, 형, 이, 정의 네 가지 덕은 인, 의, 예, 지의 네 가지 성에 대응하게 된다.(信의 경우는 誠과 마찬가지로 네 가지 성에 두루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하늘의 理를 부여받아 만물이 생성되는 것이라면, 理는 하나인데 만물은 서로 다양하게 생성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성리학에서는 음양이나 오행과 같은 기(氣)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게 된다. 즉 기에는 여러 성질이 있고, 이런 기의 다양한 성질에 의해 만물이 서로 다르게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추만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의 글이 그 예증이다.
그래서 하늘이 사물에 대하여 명하는 까닭은 비록 이 하나의 理이나 그 形이 되는 까닭은 실제로 두 氣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生은 그 性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과 간격이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받은 바의 기질에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인 것의 가지런하지 못함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하늘과 더불어 간혹 간격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은 책, 서문;是以天之於物也,其所以命之者,雖此一理而其所以形之者,實由乎二氣,故吾人之生也,其所受之性,則果無間於天也,其所稟之氣質則有淸濁粹駁之不齊,故始與天或不能無間焉.
이렇게 理와 氣를 가지고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는 것이 성리학의 특징인데,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다 보면 이 두 개념 사이의 관계 정립이 문제가 된다. 추만의 경우 다음과 같은 이기 관계(理氣關係)에 대한 설명이 눈에 뜨인다.
그러나 이미 이 理가 있게 됨으로써 곧 이 氣가 있게 되고, 그 후에야 理가 머물 곳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理가 있으면 氣가 있게 되고 氣가 있으면 곧 理가 있게 된다.. 같은 책, 서문;然旣有此理則又有此氣,而後理有所寓,故有理則斯有氣,有氣則斯有理.
理가 있으면 곧 氣의 조짐에 있게 되고 氣가 있으면 곧 理의 따름이 있게 됨으로써 천지의 공(功)을 이루게 된다. 理氣가 같이 기다림에 빠짐이 없음이 이와 같으니 저 사덕은 이른바 理요 오행은 氣다.. 같은 책, 論五行之道; 有理便有氣朕焉, 有氣便有理從焉,以遂天地之功,理氣之相須無闕者如是夫,是以四德者所謂理也,五行者所謂氣也.
이 두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理와 氣에 의해서 만물이 생성되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간에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를 이기의 불상리(理氣不相離) 또는 불가분개(不可分開)의 관계라고 한다. 이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천지의 사이에는 理도 있고 氣도 있는데 하늘에서 그 體가 되는 것은 이런 만물의 性을 부여한 이 理다.(理는 체와 용으로 나눌 수 없다. 이를 반드시 體라고 하는 것은 氣의 입장에서 理를 보면 곧 본체가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 그 用이 되는 것은 이런 만물의 형을 이룬 이 氣다.(氣는 곧 스스로 體와 用으로 나뉜다. 여기서 홀로 用만을 말한 것은 理의 입장에서 氣를 보면 곧 大用이 되기 때문이다.)理는 氣의 體이고 氣는 理의 用이다.. 같은 책, 論五行之道; 曰天地之間, 有理有氣, 其所以爲體(理不可分體用而於此必謂之體者, 自氣而觀理則爲本體故也) 於天而賦此萬物之性者此理也, 其所以爲用(氣則自分體用, 而於此獨謂之用者, 自理而觀氣則爲大用故也), 於天而成此萬物之形者此氣也, 理爲氣體, 氣爲理之用.
다시 말해서 理는 체이고 氣는 용이며, 그리고 理가 만물에 부여되었을
하늘은 곧 理다. 그 덕에 넷이 있는데, 원(元)과 형(亨)과 이(利)와 정(貞)-성(誠)은 그 가운데 있다-이 그것이다.. 같은 책, 論天命之理;天卽理也,而其德有四,曰元亨利貞(誠在其中,是也.
하늘은 바로 理이며, 하늘의 덕에는 원과 형과 이와 정의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誠)은 이들 네 가지 덕 가운데 두루 퍼져 있다고 한다. 그럼 이 네 가지 덕은 어떤 성격의 것인가?
대개 원이란 始의 理요, 형이란 通의 理요, 이란 遂의 理요, 정이란 成의 理다. 그래서 그 시가 있기 때문에 통하게 되고 통이 있기 때문에 수하게 되고 수가 있기 때문에 성하게 되며 성이 있게 되면 다시 시 하게 된다. 이렇게 순환하는 것은 그침이 없는데 이는 성(誠)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은 사덕(四德)을 일관하여 그 理를 하나로 하기 때문에 드디어 사물을 命하는 근원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명이다.. 같은 책, 論天命之理;蓋元者,始之理,亨者,通之理,利者,遂之理,貞者,成之理,而其所以始而通,通而遂,遂而成,成而復始,循環而無息者,乃誠之爲也,故此誠也,貫四德一其理,遂爲命物之源,此所謂天命也.
여기서 보면 네 가지 덕이란 사계절의 순환으로부터 추상되어 구성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원천이 바로 성이다. 따라서 이 誠의 개념은 바로 천명의 속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상의 내용을 추만 자신의 독특한 견해라기보다는 주역의 내용을 그가 원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 하늘(天)은 어떻데 만물을 생성하는가?
이런 까닭에 천도(天道)가 유행할 즈음에 당하여 이 理는 항상 그 가운데 깃들어 있으며, 그 만물이 와서 받게 될 때 이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사물의 성 또한 넷이 있는데 인의예지(仁義禮智)(信 또한 四性에 갖추어 있다)가 그것이다. 따라서 하늘에 있어서는 명(命)이라 하고 사물에 있어서는 성(性)이라 하는데, 성(性)과 물(物)은 비록 그 이름은 다르나 그 理는 하나인 것이다.. 같은 책,論天命之理;是以當天道流行之際,此理常寓於其中,聽其萬物之來受者而賦與之,故物之性亦有四,仁義禮智信亦具於四性是也,故在天曰命在物曰性,性與物,其名雖異,其理則一也.
하늘은 만물에 각각의 理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생성한다. 따라서 하늘의 덕 즉 理는 사물에서 性이 된다. 그리고 이 성은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네 가지 덕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원, 형, 이, 정의 네 가지 덕은 인, 의, 예, 지의 네 가지 성에 대응하게 된다.(信의 경우는 誠과 마찬가지로 네 가지 성에 두루 갖추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하늘의 理를 부여받아 만물이 생성되는 것이라면, 理는 하나인데 만물은 서로 다양하게 생성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성리학에서는 음양이나 오행과 같은 기(氣)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게 된다. 즉 기에는 여러 성질이 있고, 이런 기의 다양한 성질에 의해 만물이 서로 다르게 생성된다는 것이다. 이 점은 추만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의 글이 그 예증이다.
그래서 하늘이 사물에 대하여 명하는 까닭은 비록 이 하나의 理이나 그 形이 되는 까닭은 실제로 두 氣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生은 그 性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과 간격이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받은 바의 기질에 맑고 흐리고 순수하고 섞인 것의 가지런하지 못함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하늘과 더불어 간혹 간격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같은 책, 서문;是以天之於物也,其所以命之者,雖此一理而其所以形之者,實由乎二氣,故吾人之生也,其所受之性,則果無間於天也,其所稟之氣質則有淸濁粹駁之不齊,故始與天或不能無間焉.
이렇게 理와 氣를 가지고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는 것이 성리학의 특징인데,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다 보면 이 두 개념 사이의 관계 정립이 문제가 된다. 추만의 경우 다음과 같은 이기 관계(理氣關係)에 대한 설명이 눈에 뜨인다.
그러나 이미 이 理가 있게 됨으로써 곧 이 氣가 있게 되고, 그 후에야 理가 머물 곳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理가 있으면 氣가 있게 되고 氣가 있으면 곧 理가 있게 된다.. 같은 책, 서문;然旣有此理則又有此氣,而後理有所寓,故有理則斯有氣,有氣則斯有理.
理가 있으면 곧 氣의 조짐에 있게 되고 氣가 있으면 곧 理의 따름이 있게 됨으로써 천지의 공(功)을 이루게 된다. 理氣가 같이 기다림에 빠짐이 없음이 이와 같으니 저 사덕은 이른바 理요 오행은 氣다.. 같은 책, 論五行之道; 有理便有氣朕焉, 有氣便有理從焉,以遂天地之功,理氣之相須無闕者如是夫,是以四德者所謂理也,五行者所謂氣也.
이 두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理와 氣에 의해서 만물이 생성되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간에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를 이기의 불상리(理氣不相離) 또는 불가분개(不可分開)의 관계라고 한다. 이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천지의 사이에는 理도 있고 氣도 있는데 하늘에서 그 體가 되는 것은 이런 만물의 性을 부여한 이 理다.(理는 체와 용으로 나눌 수 없다. 이를 반드시 體라고 하는 것은 氣의 입장에서 理를 보면 곧 본체가 되기 때문이다.) 하늘에 그 用이 되는 것은 이런 만물의 형을 이룬 이 氣다.(氣는 곧 스스로 體와 用으로 나뉜다. 여기서 홀로 用만을 말한 것은 理의 입장에서 氣를 보면 곧 大用이 되기 때문이다.)理는 氣의 體이고 氣는 理의 用이다.. 같은 책, 論五行之道; 曰天地之間, 有理有氣, 其所以爲體(理不可分體用而於此必謂之體者, 自氣而觀理則爲本體故也) 於天而賦此萬物之性者此理也, 其所以爲用(氣則自分體用, 而於此獨謂之用者, 自理而觀氣則爲大用故也), 於天而成此萬物之形者此氣也, 理爲氣體, 氣爲理之用.
다시 말해서 理는 체이고 氣는 용이며, 그리고 理가 만물에 부여되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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