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펼치는 말
1. 생태위기에 대한 일반적 고찰
2. 생태위기에 대한 궁극적 대안으로서의 생태의식
Ⅲ. 나오는 말
참고문헌
Ⅱ. 펼치는 말
1. 생태위기에 대한 일반적 고찰
2. 생태위기에 대한 궁극적 대안으로서의 생태의식
Ⅲ. 나오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 구름은 태양을 가렸고 수면 위에는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았다. 길게 육지를 파고들어 물굽이를 이루는 곳에 강물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으나 유심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것도 움직이는 것 같지가 않았다. 다만 움직이는 것은 하구에 우뚝 솟은 공장 굴뚝들을 통해 솟아오르고 있는 여러 개의 불기둥뿐이었다. 불기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기 바닷물 위에 붉은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그래서 때때로 용암이 솟아오르듯 바닷물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는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바다가 살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붉은 그림자들은 바다를 서서히 죽이고, 드디어는 죽어버린 죽음의 사신이었다. 그 흔한 갈매기조차 잿빛 바다 위에 너울거리는 붉은 그림자들을 두려워하고 날아오지 않았다. 김용성, 「사해 위에서,」,실천문학사, 1976
이렇듯, ‘불기둥’으로 상징되는 공장의 모습은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일념하에 맹목적으로 성장 제일주의를 불사르던 당시의 현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붉은 그림자’는 곧 산업화로 인한 병폐로서 무분별하게 버려진 폐수와 공장의 각종 오염 물질이 바다를 병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갈매기조차도 날아오지 않는 황폐한 현실을 만들어 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황폐성은 살기 좋았던 해안 마을을 급기야 폐촌으로 만들고 말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불기둥처럼 이글거리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그 뒤에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고 자신의 거주 공간까지 박탈당하는 부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용암처럼 붉은 기운이 기둥처럼 믿음직스럽게 찬란한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 믿어도 결국 검은 그림자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순경이 부임해 간 경비 초소에 선임자 김순경은 ‘나는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저 하늘과 바다, 이런게 나를 우스꽝스러운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며 공장으로 인한 하늘과 바다의 파괴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임을 제시히고 있다. 언제나 국가를 위한 임무 수행에 자부심을 지니려 하지만 하늘과 바다가 그러한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잠으로 도피하게끔 한다. 즉 김순경은 국가의 부강을 위해 불기둥으로 상징되는 공장은 늘 가동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로 인해 바다와 하늘이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지닐 수 없음을 도저히 맨 정신으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참인 ‘나’는 이러한 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폐촌이 되어 버린 마을의 을씨년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인데 그것은 수백 마리나 됨직한 제비 떼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본 폐촌의 언저리에 모여 있는 제비 떼들이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인간을 공격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꼼짝 없이 죽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인공 ‘나’가 어렴풋이 견지하고 있는 생태의식으로서 자연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인간이 언젠가는 자연에 의해 보복 당할 것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주인공 ‘나’의 생태의식은 폐촌이 되어 버린 마을에 대한 인상을 통해 집약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지나간 일들이었다. 내가 본 웅덩이에는 물고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는 바다의 물빛은 초소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짙은 잿빛이 아니었다. 그것을 오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영롱하지가 않고 암영의 오색이었다. 물 밑에서부터 검고 어두운 그림자가 떠올라 기름의 화학적인 빛깔을 떠받들고 있었다.
웅덩이에는 이곳의 마지막 생명체인 듯싶은 회색의 갑옷을 입은 갈게 한 마리가 그름을 헤치며 힘에 겨운 듯 헤엄을 쳐서 갈대밭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더러워진 해안을 따라 키 작은 갈대가 자라고 있었다. 갈대는 해안뿐만 아니라 반쯤 기울어져 가는 집 뜰에도 부엌에도 외양간에도 그것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가리지 않고 침범했다.
위 지문은 ‘나’가 지금은 그저 웅덩이로 변해버렸지만 과거에는 바다인근 마을사람들에 의해 돌로 만들어진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양어장이었을 것이며, 바다의 빛깔도 지금처럼 잿빛이 아니라 오색으로 영롱하게 빛났을 것을 상상해본 후 현실의 모습을 대조해 보는 장면이다. 이렇듯 생태위기의 현실에 대한 문제 인식은 이 작품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은 표층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생태 위기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의 극복에 대한 막연한 믿음만을 견지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또한 ‘나’역시 심각한 해양오염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극복의지도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홍성원의 <남도기행>은 해양오염의 실태를 바다낚시를 즐기는 서울 낚시꾼과 그에게 배를 빌려주는 김선두라는 어부를 통해 면밀하게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서울 낚시꾼은 ‘인간의 손에 가공되지 않은 유일한 자연이 바다’라고 생각하는 자이며 즐겨 바다를 찾는 이유도 ‘도시의 난해하고 힘겹던 삶이 행사하는 온갖 종류의 구속으로부터 잠시나마 놓여나는 방면의 기쁨\'을 얻는 자이다.
한편 어부인 김선두는 어부로서의 자긍심이나 남다른 생태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자는 아니다. 다만 그는 생계를 위해 바다낚시꾼들에게 배를 빌려줄 뿐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오염된 바다의 원인 제공자인 공단과 정부에 대해 날카로운 적개심을 견지하고 있다. 외국 화물선에서 불이나 그 안에 실린 기름이 바다를 오염시켜 어장을 못쓰게 만들었다며 흥분하는 모습에서 그의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나가 어제 B도 근방에서 죽은 괴기를 한 섬이나 뜰채로 건져왔소. 낚시를 헐라고 B도쪽으로 다가가는디 갯바구 근방 바다에 왼통 죽은 괴기가 흐옇게 떠 있드라 말이오. 감싱이 돗돔 농어 능셍이 같은 크고 작은 괴기들이 눈팅이가 깨지고 배창시가 터져가꼬 갯바구 근처 바다에 흐옇게 떠 있드랑께요. 낭중에 알고 본께 간밤에 어떤 쳐죽일 놈들이 섬을 뺑뺑이 돌아 댕김시로 괴기
이렇듯, ‘불기둥’으로 상징되는 공장의 모습은 산업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일념하에 맹목적으로 성장 제일주의를 불사르던 당시의 현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만들어진 ‘붉은 그림자’는 곧 산업화로 인한 병폐로서 무분별하게 버려진 폐수와 공장의 각종 오염 물질이 바다를 병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갈매기조차도 날아오지 않는 황폐한 현실을 만들어 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황폐성은 살기 좋았던 해안 마을을 급기야 폐촌으로 만들고 말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불기둥처럼 이글거리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그 뒤에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고 자신의 거주 공간까지 박탈당하는 부정적인 그림자를 드리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용암처럼 붉은 기운이 기둥처럼 믿음직스럽게 찬란한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이라 믿어도 결국 검은 그림자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순경이 부임해 간 경비 초소에 선임자 김순경은 ‘나는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저 하늘과 바다, 이런게 나를 우스꽝스러운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며 공장으로 인한 하늘과 바다의 파괴가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임을 제시히고 있다. 언제나 국가를 위한 임무 수행에 자부심을 지니려 하지만 하늘과 바다가 그러한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잠으로 도피하게끔 한다. 즉 김순경은 국가의 부강을 위해 불기둥으로 상징되는 공장은 늘 가동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로 인해 바다와 하늘이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지닐 수 없음을 도저히 맨 정신으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참인 ‘나’는 이러한 그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폐촌이 되어 버린 마을의 을씨년스러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인데 그것은 수백 마리나 됨직한 제비 떼를 보고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본 폐촌의 언저리에 모여 있는 제비 떼들이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인간을 공격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꼼짝 없이 죽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인공 ‘나’가 어렴풋이 견지하고 있는 생태의식으로서 자연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인간이 언젠가는 자연에 의해 보복 당할 것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주인공 ‘나’의 생태의식은 폐촌이 되어 버린 마을에 대한 인상을 통해 집약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지나간 일들이었다. 내가 본 웅덩이에는 물고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까이서 보는 바다의 물빛은 초소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짙은 잿빛이 아니었다. 그것을 오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영롱하지가 않고 암영의 오색이었다. 물 밑에서부터 검고 어두운 그림자가 떠올라 기름의 화학적인 빛깔을 떠받들고 있었다.
웅덩이에는 이곳의 마지막 생명체인 듯싶은 회색의 갑옷을 입은 갈게 한 마리가 그름을 헤치며 힘에 겨운 듯 헤엄을 쳐서 갈대밭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더러워진 해안을 따라 키 작은 갈대가 자라고 있었다. 갈대는 해안뿐만 아니라 반쯤 기울어져 가는 집 뜰에도 부엌에도 외양간에도 그것들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가리지 않고 침범했다.
위 지문은 ‘나’가 지금은 그저 웅덩이로 변해버렸지만 과거에는 바다인근 마을사람들에 의해 돌로 만들어진 잔잔한 호수와도 같은 양어장이었을 것이며, 바다의 빛깔도 지금처럼 잿빛이 아니라 오색으로 영롱하게 빛났을 것을 상상해본 후 현실의 모습을 대조해 보는 장면이다. 이렇듯 생태위기의 현실에 대한 문제 인식은 이 작품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 위기에 대한 인식은 표층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생태 위기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의 극복에 대한 막연한 믿음만을 견지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또한 ‘나’역시 심각한 해양오염에 대해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극복의지도 견지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홍성원의 <남도기행>은 해양오염의 실태를 바다낚시를 즐기는 서울 낚시꾼과 그에게 배를 빌려주는 김선두라는 어부를 통해 면밀하게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서울 낚시꾼은 ‘인간의 손에 가공되지 않은 유일한 자연이 바다’라고 생각하는 자이며 즐겨 바다를 찾는 이유도 ‘도시의 난해하고 힘겹던 삶이 행사하는 온갖 종류의 구속으로부터 잠시나마 놓여나는 방면의 기쁨\'을 얻는 자이다.
한편 어부인 김선두는 어부로서의 자긍심이나 남다른 생태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자는 아니다. 다만 그는 생계를 위해 바다낚시꾼들에게 배를 빌려줄 뿐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오염된 바다의 원인 제공자인 공단과 정부에 대해 날카로운 적개심을 견지하고 있다. 외국 화물선에서 불이나 그 안에 실린 기름이 바다를 오염시켜 어장을 못쓰게 만들었다며 흥분하는 모습에서 그의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나가 어제 B도 근방에서 죽은 괴기를 한 섬이나 뜰채로 건져왔소. 낚시를 헐라고 B도쪽으로 다가가는디 갯바구 근방 바다에 왼통 죽은 괴기가 흐옇게 떠 있드라 말이오. 감싱이 돗돔 농어 능셍이 같은 크고 작은 괴기들이 눈팅이가 깨지고 배창시가 터져가꼬 갯바구 근처 바다에 흐옇게 떠 있드랑께요. 낭중에 알고 본께 간밤에 어떤 쳐죽일 놈들이 섬을 뺑뺑이 돌아 댕김시로 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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