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공통점
1) 성화추구의 지도력
2) 경제적 성화의 지도력
2. 차이점
1) 에큐메니칼적 복음주의자
2) 사랑과 눈물의 십자가신학적 설교가
1) 성화추구의 지도력
2) 경제적 성화의 지도력
2. 차이점
1) 에큐메니칼적 복음주의자
2) 사랑과 눈물의 십자가신학적 설교가
본문내용
33)의 지도력 비교연구
목차
1. 공통점
1) 성화추구의 지도력
2) 경제적 성화의 지도력
2. 차이점
1) 에큐메니칼적 복음주의자
2) 사랑과 눈물의 십자가신학적 설교가
1. 공통점
1) 성화추구의 지도력
남은 김인서 목사도 성화를 추구하는 지도자였다. 성화가 그의 목회와 선교의 원동력이었다. 성화를 영화(靈化)라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변화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榮化:glorification)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靈化)란 성화의 다른 표현으로 남은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남은의 유일한 표현방식이요 영화(榮化)란 고전 15장을 근거로 하는 영화로운 몸(somapneumatikos)으로 변화되어 부활함을 의미한다. 남은의 독창적인 용어는 또 하나있다. 그것은 인화(人和)라고 하는 표현이다. 인화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계명대로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영화와 인화는 웨슬리적 경건주의로 풀어 본다면 내면적 인격적 성화(inner personal sanctification)는 영화요, 외재적 사회적 성화(external social sanctification)는 인화로 해석할 수 있다. 남은은 여기 영화와 인화의 신학적 출발점으로 복음신앙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복음신앙이란 십자가의 체험이다. 그것을 경건주의적으로 분석해보면 십자가의 은총을 믿음으로 의인화(義認化:justification)와 거듭남(重生:regeneration)을 체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32년 11월 4일 <신앙지> 창간호 권두언에 “선언(宣言)”이란 제목으로 실린 남은 자신의 글을 여기에 잠깐 인용하여 보겠다.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신자의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거하고 성령의 위화(爲化)에 속하나니 이는 신앙생활의 체(體) 곧 내용이요, 그리스도께서 주시면 우리는 받고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면 우리는 드리며 그리스도께서 정하시면 우리도 따라 정하나니 이는 신앙생활의 용(用) 곧 실천이다. 그리스도의 내주를 체로하고 그리스도화(化)를 용으로 하는 신앙생활의 반석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시니 우리를 죄악과 사망과 사탄에게서 구원하심을 복음이라 이르고 이 신앙생활을 완성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림하신 성령의 위화에 있나니 이를 영화라 이르고 신앙생활을 사람과 사람끼리 실행함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하라”하신 예수의 새 계명을 준행함에 있나니 이를 인화라 일러 복음신앙, 영화운동, 인화주의, 이 셋을 신앙생활의 3대 강령이라 하노라.
이 남은의 핵심사상을 민경배교수는 그의 독창적인 해석의 도식인 내연(內燃)과 외연(外延)으로 풀어간다. <그리스도 내주의 체>가 내연이요, <그리스도화의 용>이 외연이라고 아주 흥미 있게 해석한다. 그리고 그 내연과 외연의 중간에 동력(動力)으로 성령을 둔다. 다시 말해서 남은의 3대강령인 복음신앙(그리스도의 내주)은 내연, 영화운동은 동력(성령의 역사), 인화주의는 외연(그리스도화)이라고 민교수는 해석한다.
그러나 본인은 경건주의적 시각에서 해석을 좀 다르게 하고 싶다. 남은이 말하는 첫째 강령인 복음신앙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체험적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義認化) 거듭나서(重生) 그리스도의 내주가 임하는 수직적수동적객관적 은혜체험이요, 영성체험 곧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전가되고 부어지고 옷 입혀지는 경험, 다시 말해서 죄악 된 우리의 본성과는 전혀 다른 의롭다 하심이 우리 밖에서 다가오는 imputation (extra nos: out of us)이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과 참여는 전혀 개입되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for us)베푸시는 은총이다. 남은은 “밀실의 영음”(1937년 12월)에서 다음과 같이 다가오시고 옷 입혀지는 은총을 표현한다.
오 주여! 내가 받은 복음은 당신이 친히 주신 것이로소이다. 하늘에서 온 것이요 땅에서 얻은 것이 아니로소이다. 나의 복음은 바울이 창작한 것도 아니요, 내가 모방한 것도 아니요, 당신이 만세 전에 예비한 것으로 바울을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한 복음이로소이다.
둘째 강령인 영화운동이란 단순히 성령의 동력으로만 풀이할 수 없는 성화의 차원으로 남은은 해석한다. 남은은 영화를 이렇게 묘사한다: “이 신앙생활을 완성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림하신 성령의 위화에 있나니 이를 영화라 이르고...” 여기에서 남은은 신앙생활의 완성이란 성화론적 표현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아무리 의롭다함을 얻고 거듭났다 할지라도 개인 날과 궂은 날, 평안과 고민 등 우리의 신앙생활의 굴곡이 있고, 성장과 퇴보가 있기에 성령의 위화와 영화를 통하여 날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완성을 이루어야 하는 성화론을 여기서 펼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마저도 변혁시켜 가는 수평적, 주관적, 능동적 영성체험의 차원으로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 가는 영화 곧 impartation (in nobis: in us)이다. 따라서 남은의 제2강령도 그리스도화의 일부분이요 그리스도화의 내면적 인격적 성화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남은은 실제로 웨슬리의 경건주의적 중생과 성화 체험신앙을 중요하게 여김을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웨슬레가 웨슬레된 것은 옥스포드대학에서 배웠기 때문이 아니요, 또는 대교파를 수립했기 때문도 아니요, 물론 사회사업을 많이 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웨슬레가 옥스포드대학에 있을 때 매조(每朝) 4시이면 웨슬레에게 정복음을 설하여 주는 은자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메도디스트의 예언자라고 할만한 “엄숙한 소명”(저술이름)의 저자 윌리암 로(William Law)씨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정복음을 들었을 뿐으로 웨슬레가 된 것은 아니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레의 일기에 의하면 모라비아 종도와의 기도회에서 속죄의 대신앙에 입(入)하여 성령의 감화를 경험한 것이 웨슬레로 하여금 웨슬레 되게 한 첫 출발점이다.
여기서 남은은 웨슬리가 성화적 영성추구자 윌리암 로의 영향을 받고 성화의 출발점으로 올더스케
목차
1. 공통점
1) 성화추구의 지도력
2) 경제적 성화의 지도력
2. 차이점
1) 에큐메니칼적 복음주의자
2) 사랑과 눈물의 십자가신학적 설교가
1. 공통점
1) 성화추구의 지도력
남은 김인서 목사도 성화를 추구하는 지도자였다. 성화가 그의 목회와 선교의 원동력이었다. 성화를 영화(靈化)라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변화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榮化:glorification)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영화(靈化)란 성화의 다른 표현으로 남은이 독창적으로 개발한 남은의 유일한 표현방식이요 영화(榮化)란 고전 15장을 근거로 하는 영화로운 몸(somapneumatikos)으로 변화되어 부활함을 의미한다. 남은의 독창적인 용어는 또 하나있다. 그것은 인화(人和)라고 하는 표현이다. 인화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계명대로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 영화와 인화는 웨슬리적 경건주의로 풀어 본다면 내면적 인격적 성화(inner personal sanctification)는 영화요, 외재적 사회적 성화(external social sanctification)는 인화로 해석할 수 있다. 남은은 여기 영화와 인화의 신학적 출발점으로 복음신앙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복음신앙이란 십자가의 체험이다. 그것을 경건주의적으로 분석해보면 십자가의 은총을 믿음으로 의인화(義認化:justification)와 거듭남(重生:regeneration)을 체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32년 11월 4일 <신앙지> 창간호 권두언에 “선언(宣言)”이란 제목으로 실린 남은 자신의 글을 여기에 잠깐 인용하여 보겠다.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신자의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거하고 성령의 위화(爲化)에 속하나니 이는 신앙생활의 체(體) 곧 내용이요, 그리스도께서 주시면 우리는 받고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면 우리는 드리며 그리스도께서 정하시면 우리도 따라 정하나니 이는 신앙생활의 용(用) 곧 실천이다. 그리스도의 내주를 체로하고 그리스도화(化)를 용으로 하는 신앙생활의 반석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시니 우리를 죄악과 사망과 사탄에게서 구원하심을 복음이라 이르고 이 신앙생활을 완성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림하신 성령의 위화에 있나니 이를 영화라 이르고 신앙생활을 사람과 사람끼리 실행함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하라”하신 예수의 새 계명을 준행함에 있나니 이를 인화라 일러 복음신앙, 영화운동, 인화주의, 이 셋을 신앙생활의 3대 강령이라 하노라.
이 남은의 핵심사상을 민경배교수는 그의 독창적인 해석의 도식인 내연(內燃)과 외연(外延)으로 풀어간다. <그리스도 내주의 체>가 내연이요, <그리스도화의 용>이 외연이라고 아주 흥미 있게 해석한다. 그리고 그 내연과 외연의 중간에 동력(動力)으로 성령을 둔다. 다시 말해서 남은의 3대강령인 복음신앙(그리스도의 내주)은 내연, 영화운동은 동력(성령의 역사), 인화주의는 외연(그리스도화)이라고 민교수는 해석한다.
그러나 본인은 경건주의적 시각에서 해석을 좀 다르게 하고 싶다. 남은이 말하는 첫째 강령인 복음신앙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체험적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義認化) 거듭나서(重生) 그리스도의 내주가 임하는 수직적수동적객관적 은혜체험이요, 영성체험 곧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전가되고 부어지고 옷 입혀지는 경험, 다시 말해서 죄악 된 우리의 본성과는 전혀 다른 의롭다 하심이 우리 밖에서 다가오는 imputation (extra nos: out of us)이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과 참여는 전혀 개입되지 않고 전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for us)베푸시는 은총이다. 남은은 “밀실의 영음”(1937년 12월)에서 다음과 같이 다가오시고 옷 입혀지는 은총을 표현한다.
오 주여! 내가 받은 복음은 당신이 친히 주신 것이로소이다. 하늘에서 온 것이요 땅에서 얻은 것이 아니로소이다. 나의 복음은 바울이 창작한 것도 아니요, 내가 모방한 것도 아니요, 당신이 만세 전에 예비한 것으로 바울을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한 복음이로소이다.
둘째 강령인 영화운동이란 단순히 성령의 동력으로만 풀이할 수 없는 성화의 차원으로 남은은 해석한다. 남은은 영화를 이렇게 묘사한다: “이 신앙생활을 완성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강림하신 성령의 위화에 있나니 이를 영화라 이르고...” 여기에서 남은은 신앙생활의 완성이란 성화론적 표현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아무리 의롭다함을 얻고 거듭났다 할지라도 개인 날과 궂은 날, 평안과 고민 등 우리의 신앙생활의 굴곡이 있고, 성장과 퇴보가 있기에 성령의 위화와 영화를 통하여 날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완성을 이루어야 하는 성화론을 여기서 펼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마저도 변혁시켜 가는 수평적, 주관적, 능동적 영성체험의 차원으로 우리의 본성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 가는 영화 곧 impartation (in nobis: in us)이다. 따라서 남은의 제2강령도 그리스도화의 일부분이요 그리스도화의 내면적 인격적 성화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남은은 실제로 웨슬리의 경건주의적 중생과 성화 체험신앙을 중요하게 여김을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웨슬레가 웨슬레된 것은 옥스포드대학에서 배웠기 때문이 아니요, 또는 대교파를 수립했기 때문도 아니요, 물론 사회사업을 많이 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웨슬레가 옥스포드대학에 있을 때 매조(每朝) 4시이면 웨슬레에게 정복음을 설하여 주는 은자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메도디스트의 예언자라고 할만한 “엄숙한 소명”(저술이름)의 저자 윌리암 로(William Law)씨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정복음을 들었을 뿐으로 웨슬레가 된 것은 아니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레의 일기에 의하면 모라비아 종도와의 기도회에서 속죄의 대신앙에 입(入)하여 성령의 감화를 경험한 것이 웨슬레로 하여금 웨슬레 되게 한 첫 출발점이다.
여기서 남은은 웨슬리가 성화적 영성추구자 윌리암 로의 영향을 받고 성화의 출발점으로 올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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