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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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마복음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도마는 누구인가?

2. 도마복음 발굴연구사

3. 도마복음서 전문

본문내용

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로 이 ‘디두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랍어(토마)와 히브리어(톰)에서는 ‘도마’라는 단어가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쌍둥이’라는 의미를 가친 별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유다’(즉 유다도마-쌍둥이 도마)로 알고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도마행전과 시리아어 사본들의 요14:22에서 (가룟인이 아닌) ‘유다’가 ‘도마’와 ‘유다 도마’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요14:22에 나타난 이와 같은 이름의 다양성은 일찍이 도마가 눅6장과 행1장의 목록들에 나타난 ‘야고보의(아들 혹은 형제)유다’와 동일시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도마행전에서는 ‘유다 도마’가 예수 자신의 쌍둥이 형제로 간주되고 있고, 메소포타미아 교회에서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4권 (서울: 기독교문사, 1981), 348.
이란 뜻이고, 요한복음은 세 번씩 도마를 믿음이 없는 제자로 묘사하고 있다(요11:16, 14:5, 20:24).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도마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이나 어느 정도 둔한 면이 있는 제자로서, 그의 부족한 이해력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진리를 보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일단 이해하면 그는 매우 강건한 충성심을 나타내 보여준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속에 도마는 \'의심하는 도마\'로 우리에게 부정적 이미지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런 도마를 주목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후 도마의 선교활동들에 관한 전승들을 따져볼만한 가치가 있다. 유세비우스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한 전승은 그가 파르티아에서 활동하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3세기 혹은 4세기경의 『도마행전』은 그가 인도에서 활동하다가 순교하였으며 그의 유해는 메소포타미아로 옮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2. 『도마복음』의 발굴연구사
1945년 12월 엘 카스르 동네의 농부 형제가 이집트의 북부 나일 강 서쪽 기슭 나그 함나디(Nag Hammadi)라는 곳 부근에서 밭에다 뿌릴 퇴비를 채취하려고 땅을 파다가 땅 속에서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혹시 귀신(jiin)이라도 들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으나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귀신이 나오지 않아 안심은 되었으나, 실망스럽게도 보물도 없었다. 그 안에는 오로지 가죽으로 묶은 열세뭉치의 파피루스(papyrus)종이 문서뿐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고문서가 골동품으로 값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시장에 나가 팔았다. 이것이 ‘나그 함마디 문서’의 발굴경로이다.
이 문서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추기경이 수도승들에게 ‘이단적’이라 여겨지는 모든 책들을 모두 파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집트에 있던 그리스도교 최초의 수도원 도서관에서 몰래 빼내온 책들을 숨겨놓은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나그 함마디 문서의 발견은 1947년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Dead Sea Scolls)’의 발견과 함께 성서고고학의 최대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사해 두루마리가 주로 히브리 성경과 유대교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면, 나그 함마디 문서는 특히 신약 성서학과 초기 그리스도교 역사 연구를 위해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재료가 된다.
이때 52종의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이 문서들은 모두 이집트 고대어인 콥트(Coptic)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콥트’란 ‘이집트’란 뜻인데, 콥트어 사본이란 고대 이집트 말을 그리스어 문자로 적은 사본이다. 거기에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여러 가지 이름의 복음서들, 예를 들어 『도마복음』, 『빌립복음』, 『마리아복음』, 『진리복음』, 『이집트복음』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끈 것은 바로 『도마복음』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도마가 예수님의 쌍둥이 형제로 알려져 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도마복음』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한대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앤드류 하비(Andrew Harvey)교수 같은 이는 1945년 12월에 발견된 『도마복음』이 같은 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진 문헌이라 할 정도로 도마복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도마복음』 콥트어 사본은 글씨의 필체로 보아 대략 기원후 35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도마복음』자체는 여러 가지 정황을 참작하여 볼 때 기원후 약 100년경, 『요한복음』과 비슷한 연대에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지만,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30년에서 5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대략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에 기록된 것으로 보는 『마가복음』이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에 기록되었다고 생각되는 『마태복음』, 『누가복음』보다 20년 내지 40년 더 오래된 전승을 포함한 복음서라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도마복음』이 나그 함마디의 콥트어 사본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말 영국 고고학자들이 나그 함마디에서 약250km 떨어진 나일 강 하류 옥시린쿠스(Oxyrhynchus, Oxyrynkhos)라고 알려진 고대 쓰레기 처리장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파피루스 뭉치를 발견했는데, 그 중 일부조각들이 나중 『도마복음』의 일부로 판명되었다. 처음에 “예수 가라사대”의 형식을 담지 하는 3개의 파편이 있었다. 이 파편들엔 POxy 1, 654, 655라고 번호가 매겨졌는데 당시 아무도 이것이 도마복음서의 희랍어 판본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너무 단편적이었기 때문에 그 총체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렌펠과 헌트는 이 3개의 파편을 그냥 “로기아 예수”(Logia Iesou, Sayings of Jesus)라고 분류해두었다. 옥시린쿠스 로기아 3편이 도마복음의 희랍어 텍스트라는 것을 밝힌 사람은, 나그함마드 라이브러리를 최초로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 프랑스 대학원 학생 장 도레스(Jean Doress)의 스승 앙리 샤를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8.06.20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46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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