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의 질서관
Ⅰ. 서론
Ⅱ. 본론
1.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질서
1) 질서의 중층성
2) 정치학에서의 질서-바름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개인과 공동체
1) 정의와 개인과 공동체
2) 공동의 중층성
3.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국가
1) 국가의 다의성
2) 바른 합의론
4.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국제 인식
1) 시대 인식
2) 국가 연합으로서의 politeia
Ⅲ.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Ⅱ. 본론
1.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질서
1) 질서의 중층성
2) 정치학에서의 질서-바름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개인과 공동체
1) 정의와 개인과 공동체
2) 공동의 중층성
3.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국가
1) 국가의 다의성
2) 바른 합의론
4.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국제 인식
1) 시대 인식
2) 국가 연합으로서의 politeia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당연히 있어야 할 서열이나 위치에 배치하거나 설정한다고 하는 place in a certain order or relative position 라는 사용법을 가진 말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 taxis라는 말은 우주 만물의 질서 taxis라고 하는 차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 taxis가 사물의 본연의 모습에 의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물은 어떤 형태로든 함께 질서를 이루고 있다(술테타크타이). 그러나 동일한 방법이 아니다. 물고기도 새도 식물도. 그러나 하나의 질서가 다른 질서와 아무런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이 하나의 질서를 향해 함께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의 가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즉 거기서는 자유인들은 제멋대로 일을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고 모든 일 또는 그 대부분은 질서 정연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편 노예나 가축은 공동의 일(트·koinon)을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 제멋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각각의 자연 본성physis이 그 원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형이상학』제12권 제10장 1075a16-23)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희구하는 것을 선으로 여기지만, 그러나 그 희구의 방법은 그 자연 본성physis에 의해서 차이가 난다. 노예나 가축은, 말하자면 그 자연 본성으로서의 본능이나 감성에 따라서 선을 추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질서를 형성하지만, 자유인은 그 자유인으로서 자연 본성에 따라서 질서를 형성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자유인의 자연 본성에 따르는 방법이란 어떠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유인의 규정 그 자체도 중층적이지만, 당면한 문맥에서의 자유인이란 노예와 대비된 존재일 것이다. 여기서의 자유인은 노예와 달리 논의하고 판단하는(브레이티콘) 이성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정치학』제1권 제13장) 그러면 이 논의하고 판단하는 지성이란 무엇인가? 논의한다는 것이 어떤 타인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이상, 그것은 자기와 타인과의 의지의 조정, arrangement를 포함해서 더욱 적절한 결단을 내린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자유인 사이의 질서 형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것은 또한 통치 방법의 이중성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정리되고 있다.
‘첫째, 생물에서는 노예적 통치(데스포티콘·아르케)도 시민적 정치적 통치(폴리티콘·아르케)도 관찰할 수 있다. 즉 영혼은 육체를 노예적 통치에 의해서 통치하고 지성(누스)은 욕구(오레키시스)를 시민적 정치적 통치에 의해서……통치한다.’(『정치학』제1권 제5장). 노예적 통치가 요구하는 질서는 기본적으론 타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통치자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것인데 반해, 시민적 통치가 요구하는 질서는 자유인의 자유로운 의지나 욕구를 서로 설득하거나 합의하는 방식으로 추구한다. 이런 방법으로 추구되는 질서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바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2) 정치에서의 질서-바름
그런데 자유인이 서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논의하고 판단하여 합의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실현되는 질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름dikaion’이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제3권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바름이란 누군가에 있어서의 바름이며, 또 먼저 『윤리학』에서 말한 것처럼, 배분되는 물건에 관해서도 배분을 받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배분되는 것이다.’(1280a16-18) 말하자면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배분하는 방법이 바름이며,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 마음의 쏠림이 정의justice라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바름이 반드시 안정적이며 원리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 사이의 긴장과 대립 및 투쟁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해석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건의 동일함에는 합의하나homo logo, 사람의 동일함에 관해서는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280a18-19). 여기서부터 ‘만약 균등한 사람들이 균등하지 않는 것을 또는 균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균등한 물건을 취득하거나 배분하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투쟁이나 불평이 생길 것이다’(『니코마코스윤리학』제5권 제3장 1131a22-24)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개인과 공동
1) 바름과 개인 및 공동
이 ‘바름’의 질서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공동의 이익(트·코이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 taxis라는 말은 우주 만물의 질서 taxis라고 하는 차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 taxis가 사물의 본연의 모습에 의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물은 어떤 형태로든 함께 질서를 이루고 있다(술테타크타이). 그러나 동일한 방법이 아니다. 물고기도 새도 식물도. 그러나 하나의 질서가 다른 질서와 아무런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이 하나의 질서를 향해 함께 질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의 가정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즉 거기서는 자유인들은 제멋대로 일을 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고 모든 일 또는 그 대부분은 질서 정연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편 노예나 가축은 공동의 일(트·koinon)을 거의 하지 않고 대부분 제멋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각각의 자연 본성physis이 그 원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형이상학』제12권 제10장 1075a16-23)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희구하는 것을 선으로 여기지만, 그러나 그 희구의 방법은 그 자연 본성physis에 의해서 차이가 난다. 노예나 가축은, 말하자면 그 자연 본성으로서의 본능이나 감성에 따라서 선을 추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질서를 형성하지만, 자유인은 그 자유인으로서 자연 본성에 따라서 질서를 형성한다고 여겨진다. 그러면 자유인의 자연 본성에 따르는 방법이란 어떠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유인의 규정 그 자체도 중층적이지만, 당면한 문맥에서의 자유인이란 노예와 대비된 존재일 것이다. 여기서의 자유인은 노예와 달리 논의하고 판단하는(브레이티콘) 이성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정치학』제1권 제13장) 그러면 이 논의하고 판단하는 지성이란 무엇인가? 논의한다는 것이 어떤 타인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이상, 그것은 자기와 타인과의 의지의 조정, arrangement를 포함해서 더욱 적절한 결단을 내린다고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자유인 사이의 질서 형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것은 또한 통치 방법의 이중성이라고 하는 방법으로 정리되고 있다.
‘첫째, 생물에서는 노예적 통치(데스포티콘·아르케)도 시민적 정치적 통치(폴리티콘·아르케)도 관찰할 수 있다. 즉 영혼은 육체를 노예적 통치에 의해서 통치하고 지성(누스)은 욕구(오레키시스)를 시민적 정치적 통치에 의해서……통치한다.’(『정치학』제1권 제5장). 노예적 통치가 요구하는 질서는 기본적으론 타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통치자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것인데 반해, 시민적 통치가 요구하는 질서는 자유인의 자유로운 의지나 욕구를 서로 설득하거나 합의하는 방식으로 추구한다. 이런 방법으로 추구되는 질서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바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2) 정치에서의 질서-바름
그런데 자유인이 서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논의하고 판단하여 합의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 실현되는 질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름dikaion’이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제3권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바름이란 누군가에 있어서의 바름이며, 또 먼저 『윤리학』에서 말한 것처럼, 배분되는 물건에 관해서도 배분을 받는 사람들에 관해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배분되는 것이다.’(1280a16-18) 말하자면 ‘각자에게 각자의 것’을 배분하는 방법이 바름이며,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 마음의 쏠림이 정의justice라는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바름이 반드시 안정적이며 원리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 사이의 긴장과 대립 및 투쟁을 통해서 실현된다고 해석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건의 동일함에는 합의하나homo logo, 사람의 동일함에 관해서는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280a18-19). 여기서부터 ‘만약 균등한 사람들이 균등하지 않는 것을 또는 균등하지 않은 사람들이 균등한 물건을 취득하거나 배분하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거기에 투쟁이나 불평이 생길 것이다’(『니코마코스윤리학』제5권 제3장 1131a22-24)
2.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의 개인과 공동
1) 바름과 개인 및 공동
이 ‘바름’의 질서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공동의 이익(트·코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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