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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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약]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부 그도 프랑스야!
▶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점 (이 책에서 나타난 내용)
▶ 1부에서 느낀점
▶비판해 볼 점
▶ 토론거리

제 2부 프랑스 사람들 이야기
▶감상과 비평
▶토론거리

제 3부 한국 사회와 프랑스 사회의 만남
▶감상
▶토론거리

제 4부 남북과 좌우
▶ 감상
▶ 토론거리

제 5부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안다.
▶슬픈 대륙의 발라드
▶젊은 벗,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안다
▶토론거리

◈참고자료◈
▶프랑스 혁명의 결과
▶.김활란 상
▶ '피에르 부르디외' 관련 기사
▶<국경없는 의사회(Médecins Sans Frontiers; Doctors Without Borders)에대하여>
▶<읽기 자료 - 국경 없는 의사회 헌장>
▶<낭트칙령>
▶앤서니 기든스의 <제 3의길 내용요약>
▶p.266 서상목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 부결 관련 기사

본문내용

째, 국경 없는 의사회는 가난과 자연적 혹은 인위적 재난,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들의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차별하지 않고 돕는다.
둘째, 국경 없는 의사회는 보편적 의료 윤리와 인도적 지원을 받을 권리의 이름으로 중립성과 공정성을 실천하며 방해받지 않고 그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요구한다.
셋째, 국경 없는 의사회 자원봉사자들은 자신들의 직업 윤리를 지키며, 어떤 정치 경제 종교적 권력으로부터라도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할 것을 맹세한다.
넷째, 국경 없는 의사회 회원들은 자원봉사자로서 자신들이 수행하는 임무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국경 없는 의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것 외에 자신이나 수령자들에 대한 어떠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도 갖지 않는다.
▶<낭트칙령>
1598년 4월 13일 프랑스의 왕 앙리 4세가 낭트에서 공포한 칙령.
신교파인 위그노에게 조건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약 30년간 지속된 프랑스의 종교전쟁(일명 위그노전쟁 1562~98)을 종식시킨 점에서 의의가 크다. 앙리 4세가 즉위할 당시 프랑스는 신 구 양파의 종교적 대립으로 국내는 2분되었고, 혼란이 극도에 달하였다. 왕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직접 신교에서 구교로 개종하면서 신교도(위그노)에게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인정하고자 이 칙령을 공포한 것이다.
따라서 이 칙령은 일찍이 프랑수아 1세와 앙리 3세에 의하여 규정된 구교 이외의 이단(端)은 엄벌에 처하며, 이의 밀고자는 벌금 또는 몰수재산의 1/4을 양여한다 등의 조항을 삭제시켰다. 결국 국민에게 신앙의 자유를 부여한다는 취지에서 공포되었으나, 국가의 입장에서는 구교를 국교로 규정한 실정이어서 이 칙령 이후에도 구교도는 신교도에 비해서 훨씬 유리한 조건이 부여되었다. 주요한 조항을 보면, ① 기정사실로 인정한 곳에서의 위그노의 예배의식 집행은 용인되나 파리 시내에서는 금한다. ② 위그노에 대하여도 재산상속 대학입학 관리취임의 권리를 인정한다. ③ 이미 8년 전부터 위그노가 장악한 요새는 이후에도 신앙상의 안전지대로서 장악함을 허가한다. ④ 구 신 양교도 간의 분쟁을 심리하기 위하여 가톨릭교도 10명, 위그노(신교도) 6명으로 구성된 특별법정을 파리 고등법원 내에 두며, 신 구교 같은 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특별법정을 세 곳의 지방고등법원 내에 설치함을 인정한다 등으로 되어 있다. 결국 신앙의 자유를 규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위그노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측의 불만은 더욱 심하여 고등법원이 칙령의 등록수속을 거부하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듬해 2월 앙리 4세가 고등법원에 대하여 강경조치를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루앙의 지방고등법원의 경우는 1609년까지 등록을 지연시키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다음의 루이 13세 때에는 재상 리슐리외가 무력으로써 위그노의 정치력을 분쇄하고 칙령 중의 안정지대 인정조항을 삭제하기에 이르렀고(알레 칙령), 또 절대군주인 루이 14세는 85년 10월 18일 전 조항을 폐지하고, 위그노의 종교적 시민적 자유를 전면적으로 박탈하였다. 이로써 남 서 프랑스에 많이 살던 신교도 약 100만이 크게 동요를 일으켜 그 중의 약 40만 명이 영국 네덜란드 프로이센 등으로 망명하였다. 신교도는 거의가 근면한 상인 기사 공예인 군인 등이었으므로, 이로 인한 프랑스의 손실은 많았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 3의길 내용요약>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 프랑스의 조스팽 등 유럽의 신중도좌파 정권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이론 복지국가로 대변되는 구식 사회주의의 사회정의와 평등의 개념은 빛이 바랬다.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성취와 성장의 가치도 점증하는 번영과 함께 위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좌우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이 나아가야 할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한 것이 제3의 길이다. 양식을 갖춘 천문가와 시민집단 즉 중민이 제3부문에 많이 있다. 이들은 어떤 집단보다 정부개혁,금융개혁, 재벌개혁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들을 조직화하는 참여 민주주의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p.266 서상목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 부결 관련 기사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의 의미
우리 헌정사에서 정부(대통령)로부터 이송된 현역 의원의 체포구 속 동의안은 모두 16건이다. 이 중 이번 서상목 의원 건을 포함해 부 결된 것은 모두 4건이다. 나머지는 모두 가결됐거나, 본인 스스로 의 원직을 사직해 폐기 처리됐다. 이번 서 의원 건은 헌정사적으로도 적 잖은 의미가 있다.
제헌국회에서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낸 조봉암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안이 부결됐으나, 제헌국회는 지금처럼 정당 모습을 갖춘 것이 아니었 다. 더구나 당시 조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이승만 대통령의 정적 죽 이기 성격이 짙었다. 조 의원은 그 후 진보당 대통령 후보로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다 투옥돼 사형집행됐다.
두 번째는 56년 3대 국회에서 국제시계밀수 혐의로 제출된 자유당 박 영출 의원에 대한 구속 동의안이다. 이 때 박 의원은 집권당인 자유당 소속으로, 자유당 당론은 각자 의사에 맡긴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결이 가능했다. 박 의원은 국회에서 결백을 강조하며 (죄가 있으 면)할복 자살하겠다는 말을 속기록에 남겼다. 박 의원은 자유당에서 제명됐다.
세 번째는 60년 5월 24일 4대 국회에서 315 부정선거 혐의로 제출 된 6명의 자유당 의원 중 정존수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이다. 이 때 자유당은 419 혁명 후 사실상 해산된 상태였지만 개헌을 이 유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다수당인 자유당은 이 체포동의안 에 의원 각자 의사에 맡긴다며 정치적 활동을 포기한 상태였다.
앞서 보듯이 지금까지 정부가 제출한 현역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부결 된 것은 정당이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거나, 체포 당사자가 여당 의원 으로 여당이 당론을 정하지 않은 상태, 아니면 혁명 직후의 비상 상황 에만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소야대 상황도 아닌 정상 정당구조 속 에서 야당 의원의 체포 동의안이 부결된 이번 서 의원 건은 헌정 사 상 초유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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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2.05
  • 저작시기2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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