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중세 세계(THE MEDIEVAL WORLD)
1) 중세종합(Medieval Synthesis)
2) 주요한 주제들(Major Themes)
2. 서구 선교 노력(WESTERN MISSIONARY EFFORTS)
3. 동방기독교(EASTERN CHRISTENDOM)
4. 신성로마제국의 발원(RISE OF THE HOLY ROMAN EMPIRE)
5. 봉건사회의 교황권(THE PAPACY IN A FEUDALISTIC SOCIETY)
6. 포티우스 분열(THE PHOTIAN SCHISM)
참고문헌
1) 중세종합(Medieval Synthesis)
2) 주요한 주제들(Major Themes)
2. 서구 선교 노력(WESTERN MISSIONARY EFFORTS)
3. 동방기독교(EASTERN CHRISTENDOM)
4. 신성로마제국의 발원(RISE OF THE HOLY ROMAN EMPIRE)
5. 봉건사회의 교황권(THE PAPACY IN A FEUDALISTIC SOCIETY)
6. 포티우스 분열(THE PHOTIAN SCHISM)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지지를 받았다. 695년경에 교황은 그를 우트레히트의 대감독(Archbishop of Utrecht)으로 임명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교황의 권위 아래 활동한 가장 유명한 선교사는 위니프레드(Winifred) 혹은 보니페이스(Boniface, 680-754)였다. 그는 그레고리 2세에 의하여 독일로 파견을 받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 회심자들이 그들의 옛 관습과 미신들을 포기하기가 어려운 것을 알았을 때 보니페이스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와 그의 성직자들은 이방신 토르에게 경배했던 헤세 지방의 오래된 떡갈나무(an ancient oak tree in Upper Hesse that was sacred to Thor, the pagan god)를 베어버렸다. 그 후로 신앙이 더욱 신속하게 전파되었고 교회들은 일어났고 그 땅은 교화되었고 더 많은 선교사들이 영국에서 왔다. 그는 754년에 이방인들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는데 “자기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기도하면서 생애를 마쳤다.
3. 동방기독교(EASTERN CHRISTENDOM)
야만족의 침입은 제국의 서방부분을 황폐케 했으나 동방부분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두고 계속되었다. 때때로 야만족들은 동방황제에게 명목상 충성을 고백했으나 실제로 그들 지역을 독립적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527년부터 565년까지 강력한 동방황제였던 유스티니안(Justinian)은 몇몇 잃어버려진 지역을 교화시켰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 5차 세계 종교회의(553)를 연 것 외에 그는 믿음, 도덕, 교회적인 문제들을 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제국의 법을 편찬하고 조화시킨 유스티니안 법전(the Code of Justinian)을 만들게 했다. 유스티니안 아래서 문학, 예술, 건물이 황금시대와 같이 번창하였다. 그는 성 소피아의 바실리카(Basilica of St. Sophia)를 콘스탄티노플에 건축하게 했다. 이것은 동방건축의 모델이 되었고 비록 오랜 동안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유스티니안 이후 수년 동안 황제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을 통하여 직접. 간접적으로 동방교회를 다스렸다.
동방은 서방처럼 야만족의 침입으로 인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고 동방제국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지만, 또 다른 세력이 이내 동방에서, 서방에서는 한동안 강력한 도전으로 일어났다. 즉, 이슬람의 위협이었다. 모하메드(Mohammed, 570-632)는 이 세상에 독특한 사명을 느꼈다.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안에 어떤 진리를 보았으나 자신을 그의 선지자로 주장했던 알라에게 궁극적인 충성을 바쳤다. 헤지라(Hegira)라고 불리우는 622년에 그가 메카(Mecca)에서 메디나(Medina)로 도망한 사건은 이슬람의 원년으로 삼는다. 그는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썼다. 그의 죽음 후에 추종자들은 북쪽 팔레스틴으로, 서쪽으로 이집트와 북 아프리카를 넘어 양면 공격을 감행했다. 635년에 다메섹은 함락되었고, 예루살렘과 안디옥은 638년에, 알렉산드리아는 641년에 몰락했다. 그들은 계속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으나, 동방황제인 레오 III(Leo III)세에 의해 717년 저지 당했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까지 멸망하지 않았다. 이슬람은 북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대부분을 교회로부터 점령했다. 그들은 732년 촬스 마텔(Charles Martel)에 의해 서방의 투어스에서 패전했다. 1492년에 최종적으로 스페인에서 축출 당하였다. 이슬람은 아랍의 번역물들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전달하므로 서방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십자군을 자극하므로 성지를 다시 찾으려는 유럽의 운동을 일으켰다.
8,9세기에 동방은 지적, 문화적으로 서방에 훨씬 앞섰다. 동방에서는 암흑시대와 같은 것이 없었다. 과거와의 연속이 야만인의 침입에 의해 무너지지 않았다. 동방황제들은 항상 교회를 지배했다. 다메섹의 요한(John of Damascus, c. 675-c. 749)은 뛰어난 학자 중 하나였고 동방에서 최후의 교부로 간주된다. 그의 지혜의 샘(Fountain of WIsdom)은 위대한 종교회의들에 기초한 동방교회의 완성된 조직신학이다. 동방교회는 현대까지 그 이상을 넘어 발전하지 못했다.
동방교회는 모라비아[the Czech Republic]의 슬라브족, 불가리아, 러시아에 선교를 시작했다. 863년 모라비아 왕의 요청으로 슬라브 언어를 알고 있는 메토디우스(Methodius)와 씨릴(Cyril)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슬라브 알파
독일과 프랑스에서 교황의 권위 아래 활동한 가장 유명한 선교사는 위니프레드(Winifred) 혹은 보니페이스(Boniface, 680-754)였다. 그는 그레고리 2세에 의하여 독일로 파견을 받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다. 회심자들이 그들의 옛 관습과 미신들을 포기하기가 어려운 것을 알았을 때 보니페이스는 강경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그와 그의 성직자들은 이방신 토르에게 경배했던 헤세 지방의 오래된 떡갈나무(an ancient oak tree in Upper Hesse that was sacred to Thor, the pagan god)를 베어버렸다. 그 후로 신앙이 더욱 신속하게 전파되었고 교회들은 일어났고 그 땅은 교화되었고 더 많은 선교사들이 영국에서 왔다. 그는 754년에 이방인들에 의하여 순교 당하였는데 “자기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기도하면서 생애를 마쳤다.
3. 동방기독교(EASTERN CHRISTENDOM)
야만족의 침입은 제국의 서방부분을 황폐케 했으나 동방부분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두고 계속되었다. 때때로 야만족들은 동방황제에게 명목상 충성을 고백했으나 실제로 그들 지역을 독립적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527년부터 565년까지 강력한 동방황제였던 유스티니안(Justinian)은 몇몇 잃어버려진 지역을 교화시켰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제 5차 세계 종교회의(553)를 연 것 외에 그는 믿음, 도덕, 교회적인 문제들을 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제국의 법을 편찬하고 조화시킨 유스티니안 법전(the Code of Justinian)을 만들게 했다. 유스티니안 아래서 문학, 예술, 건물이 황금시대와 같이 번창하였다. 그는 성 소피아의 바실리카(Basilica of St. Sophia)를 콘스탄티노플에 건축하게 했다. 이것은 동방건축의 모델이 되었고 비록 오랜 동안 이슬람사원으로 사용되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유스티니안 이후 수년 동안 황제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들을 통하여 직접. 간접적으로 동방교회를 다스렸다.
동방은 서방처럼 야만족의 침입으로 인한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고 동방제국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지만, 또 다른 세력이 이내 동방에서, 서방에서는 한동안 강력한 도전으로 일어났다. 즉, 이슬람의 위협이었다. 모하메드(Mohammed, 570-632)는 이 세상에 독특한 사명을 느꼈다. 그는 유대교와 기독교안에 어떤 진리를 보았으나 자신을 그의 선지자로 주장했던 알라에게 궁극적인 충성을 바쳤다. 헤지라(Hegira)라고 불리우는 622년에 그가 메카(Mecca)에서 메디나(Medina)로 도망한 사건은 이슬람의 원년으로 삼는다. 그는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썼다. 그의 죽음 후에 추종자들은 북쪽 팔레스틴으로, 서쪽으로 이집트와 북 아프리카를 넘어 양면 공격을 감행했다. 635년에 다메섹은 함락되었고, 예루살렘과 안디옥은 638년에, 알렉산드리아는 641년에 몰락했다. 그들은 계속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했으나, 동방황제인 레오 III(Leo III)세에 의해 717년 저지 당했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까지 멸망하지 않았다. 이슬람은 북 아프리카와 스페인의 대부분을 교회로부터 점령했다. 그들은 732년 촬스 마텔(Charles Martel)에 의해 서방의 투어스에서 패전했다. 1492년에 최종적으로 스페인에서 축출 당하였다. 이슬람은 아랍의 번역물들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전달하므로 서방의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십자군을 자극하므로 성지를 다시 찾으려는 유럽의 운동을 일으켰다.
8,9세기에 동방은 지적, 문화적으로 서방에 훨씬 앞섰다. 동방에서는 암흑시대와 같은 것이 없었다. 과거와의 연속이 야만인의 침입에 의해 무너지지 않았다. 동방황제들은 항상 교회를 지배했다. 다메섹의 요한(John of Damascus, c. 675-c. 749)은 뛰어난 학자 중 하나였고 동방에서 최후의 교부로 간주된다. 그의 지혜의 샘(Fountain of WIsdom)은 위대한 종교회의들에 기초한 동방교회의 완성된 조직신학이다. 동방교회는 현대까지 그 이상을 넘어 발전하지 못했다.
동방교회는 모라비아[the Czech Republic]의 슬라브족, 불가리아, 러시아에 선교를 시작했다. 863년 모라비아 왕의 요청으로 슬라브 언어를 알고 있는 메토디우스(Methodius)와 씨릴(Cyril)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슬라브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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