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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아파트 단지 에 있어 “지속 가능한 개발”의 의미
2. 어떻게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할 것인가?
아파트 개발의 과거, 현재, 미래
2. 어떻게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할 것인가?
아파트 개발의 과거, 현재, 미래
본문내용
<어떻게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할 것인가?>
1. 아파트 개발의 과거
1970년대
저층아파트에서 고층으로 전환
주변 인프라 구축시작 최소한의 주거면적 1인당 3평 기준에서 1인당 5평 기준으로 국제기준 변경 1972.12.30 주택건설촉진법 제정 국민주택 규모 전용면적 85㎡(25.7평) 이하로 규정
강남권의 개발 등 대규모 단지의 개발로 연간 2000호에 해당하는 아파트 건설 주택건설 물량의 23.4% 차지 60-70 년대의 이와 같은 주택의 양적 성장은 도시로의 인구집중 및 지가상승으로 인해 토지의 고도이용이 불가피해 졌으며, 재화로써의 주택에 대한 가치의 상승으로 향후 고층건물의 형태의 아파트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소형아파트를 중심으로 약 1500가구가 보급
초고층화와 환경친화형 아파트 시도
1980년 대
1970대 후반 부동산의 투기 억제 정책 및 주택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공동주택의 양상체제 확립 이러한 정책은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이 심화되자 아파트 개발은 더욱 늘어났고, 도심권 인구 분산을 위해 과천과 고덕, 목동, 상계 등의 신시가지 건설.
목동아파트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들은 거주성과 도시경관에 주의를 기울인 형태의 아파트로 개발되었으나, 대부분의 민간 아파트 들은 판상형의 배치와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의 형태로 구성되어 거주성의 향상보다는 전적으로 경제논리에 의한 양적 팽창이 주를 이루었다
195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 주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공공주택사업 사업 초기엔 성공적인 모델로 관심을 가졌으나 빈민공간화 되면서 20년 만에 철거,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
<관리 실패사례.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아파트 단지로 세인트루이스의 도시화가 가속되고 인구 유입이 늘면서 남부지방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올라온 이주민들에게 도심지의 거주지가 필요했고 주정부는 슬럼가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33개동의 11층 공공아파트를 1954 세웠다
프루이트 아이고의 주요 거주자는 극빈층과 흑인이었다. 정부는 복지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거주자의 삶을 제한했다
예측과는 달리 세인트루이스의 인구는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며 중산층, 백인들은 이주해 거주자 중 흑인 비율은 98%가 되었다.
정치가들은 세금으로 단지를 관리하는 것에 반대했고 이후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져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은 깨진 채로 방치되고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단지의 입주율은 60%를 넘은 적이 없었으며, 197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건물 33개동 중 27개동이 빈집으로 전락했다.
빈 곳들에서는 외부인들이 침입하여 강간, 강탈 등 범죄를 저질렀고 거주민들을 범죄자로 인식하여 차별대우를 받았다.
1. 아파트 개발의 과거
1970년대
저층아파트에서 고층으로 전환
주변 인프라 구축시작 최소한의 주거면적 1인당 3평 기준에서 1인당 5평 기준으로 국제기준 변경 1972.12.30 주택건설촉진법 제정 국민주택 규모 전용면적 85㎡(25.7평) 이하로 규정
강남권의 개발 등 대규모 단지의 개발로 연간 2000호에 해당하는 아파트 건설 주택건설 물량의 23.4% 차지 60-70 년대의 이와 같은 주택의 양적 성장은 도시로의 인구집중 및 지가상승으로 인해 토지의 고도이용이 불가피해 졌으며, 재화로써의 주택에 대한 가치의 상승으로 향후 고층건물의 형태의 아파트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소형아파트를 중심으로 약 1500가구가 보급
초고층화와 환경친화형 아파트 시도
1980년 대
1970대 후반 부동산의 투기 억제 정책 및 주택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공동주택의 양상체제 확립 이러한 정책은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이 심화되자 아파트 개발은 더욱 늘어났고, 도심권 인구 분산을 위해 과천과 고덕, 목동, 상계 등의 신시가지 건설.
목동아파트와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들은 거주성과 도시경관에 주의를 기울인 형태의 아파트로 개발되었으나, 대부분의 민간 아파트 들은 판상형의 배치와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의 형태로 구성되어 거주성의 향상보다는 전적으로 경제논리에 의한 양적 팽창이 주를 이루었다
1950년대 미국 세인트루이스 주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공공주택사업 사업 초기엔 성공적인 모델로 관심을 가졌으나 빈민공간화 되면서 20년 만에 철거, 실패의 상징이 되었다.
<관리 실패사례.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아파트 단지로 세인트루이스의 도시화가 가속되고 인구 유입이 늘면서 남부지방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올라온 이주민들에게 도심지의 거주지가 필요했고 주정부는 슬럼가를 밀어버리고 그 위에 33개동의 11층 공공아파트를 1954 세웠다
프루이트 아이고의 주요 거주자는 극빈층과 흑인이었다. 정부는 복지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거주자의 삶을 제한했다
예측과는 달리 세인트루이스의 인구는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며 중산층, 백인들은 이주해 거주자 중 흑인 비율은 98%가 되었다.
정치가들은 세금으로 단지를 관리하는 것에 반대했고 이후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져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은 깨진 채로 방치되고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 단지의 입주율은 60%를 넘은 적이 없었으며, 197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건물 33개동 중 27개동이 빈집으로 전락했다.
빈 곳들에서는 외부인들이 침입하여 강간, 강탈 등 범죄를 저질렀고 거주민들을 범죄자로 인식하여 차별대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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