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에세이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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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음의 양식 에세이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마음의 양식

본문내용

큰 장점이라고 동행한 건축가 선생님이 설명해 주었다.
이와 반대로 도시형 묘지를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었다. 알도 로시(Aldo Rossi)라는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진 현대식 묘지 건축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죽음을 일상성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즉, 죽은 사람도 산 사람처럼 집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회랑처럼 긴 건물의 양쪽으로 납골함을 설치하고, 가운데는 통로를 내고 중간 중간 교차로를 만들었다. 지붕 가운데는 유리로 길게 처리해 바람과 햇볕이 항상 들어오게 하여 최대한으로 맑고 밝은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도시 한 복판에서 함께 공존하는 구조였다. 이층 형이나 아프트 같은 구조물 등 건축적인 미적, 시각적 변화에도 신경을 많이 기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실정은 도시 안은 고사하고 변두리라도 화장장이나 납골당 계획을 세우기만 해도 집값이 떨어지고 동네 버린다고 집단적인 민원이 제기되는 형편이다. 이는 죽은 자를 어떻게 하든지 멀리 밀쳐 내려고만 하고, 또 산 자와 죽은 자를 철저히 분리하려는 이기적인 가치구조에 기인한다. 누구든지 언젠가는 죽을 것인데, 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묘지를 공원의 일부, 납골당 건물을 도시의 일부 구조물로 인정하는 것이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가치관을 실천하는 한 방법론이 될 터인데, 우리에게는 아직 시기상조인가 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존도 좋긴 하지만, 그럴 필요조차 없게 만든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더 깔끔하고 고상한 방법은 죽을 자가 생각을 바꾸면 된다. 죽을 때 마지막 유언으로 살아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면 어떨까 싶다.
“나는 설사 땅 한 평, 공간 한 칸이라고 할지라도 죽은 후에는 차지하지 않겠다.”
이럴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화장한 후에도 남는 것은 가루로 만들어 온 산천에 뿌린다면 가장 빨리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가장 빨리 나무로, 꽃으로 환생할 수 있다. 남은 자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든 것은 약간의 생각 차이일 뿐이다. 뒷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건 빚을 남기지 말자. 산 자들의 억지 배려가 오히려 죽은 자를 오래도록 욕되게 할지도 모르니까.
등불을 들고 종로 네거리에 서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연등행렬의 일원으로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를 거쳐 우정국로를 함께 걸었다. 그런데 차를 타거나 혹은 보행로를 걸으면서 지나쳤던 그 거리가 아닌 또 다른 생경함으로 다가왔다. 인도에서는 부분적으로 보이던 것들이 8차선 아스팔트 중앙선 위에 서 있으니 종로거리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느 위치에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이 개인적으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늘 현실에 매몰돼 눈앞에 떨어진 일의 처리에 급급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전체를 망각하기 마련이다.
종로거리를 가로막고 차지한다는 것은 권위주의 시절 국가원수 나들이나 군사 퍼레이드 혹은 그 반대로 1970~80년대 스크럼을 짠 대학생들이나 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적 행위였다.
그런데 요즘 같은 다양화 시대에는 문화권력, 환경권력, 노조권력이란 말까지 심심찮게 등장하는 실정이니 혹여 이게 종교권력으로 남들에게 비쳐질까 적이 조심스럽다. 승용차를 몰고 나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마냥 통제를 기다리다가 교통방송으로 급히 채널을 맞추던 씁쓸한 기억을 남들에게 전가시켜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오랜 시간 길을 차단함으로써 생기는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문화적 부가가치를 창출해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또 다른 부담으로 어깨를 짓누른다.
다행히도 연등축제는 600년 역사의 고도 서울을 더욱 볼거리가 풍부한 전통 문화도시로 비쳐지도록 하는 데 일조를 해왔다. 해마다 해외 방문객의 참관이 늘어가더니, 이제 국내 모든 축제를 통틀어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테마 자체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신라, 고려시대의 연등회가 박제된 행사가 아니라 조선을 거쳐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생활 속에 살아 있는 세시풍속으로서의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개인용 팔각 등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의 디자인이다.
절집은 산중마다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를 가풍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각 사찰 역시 나름대로 독자적인 전통을 지켜왔고, 도 가꾸어 나가고 있다. 그런 저변 문화들은 연등 속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뭔가 젊고 참신한 면을 강조하는 연등이 있는가 하면, 서구적인 듯 하면서 동양의 미를 한껏 드러내는 퓨전등도 더러 보인다.
붉은색 톤의 오방 빛깔을 통해 전통의 담지자로서 위상을 한껏 강조한 등불도 있다. 연등이 단순하게 일률적으로 정형화된 틀이 아니라 절 나름의 사세와 문화적 안목의 결합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한낮에도 “어둡구나! 어둡구나!” 하면서 등불을 들고 다녔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밝혀야 하는 자기 내면세계의 반조(返照)는 게을리 한 채 외형적인 것만 추구하고 바깥으로만 치닫는 풍토의 만연을 경계하는, 노선지자의 대중을 향한 연민이기도 하다.
등불은 자기를 태워서 주변을 밝힌다. 이는 희생과 봉사의 뜻이다. 등불은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어 준다. 이는 지혜의 빛으로 온 세상을 밝혀 가라는 의미다. 참등불은 믿음으로 심지를 삼고, 자비로 기름을 삼으며, 생각으로 용기를 삼는다. 그 빛으로 부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명예에 집착하는 어리석음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를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내 몫의 연등을 켜면서 이렇게 발원해 본다.
이 정성 다하여 연등을 올리오니
온 누리를 두루 밝게 비추게 하소서.
내 이제 스스로 등불이 되게 하여
모든 이의 어둔 맘이 밝아지게 하소서.
인간은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자연 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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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04.28
  • 저작시기2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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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965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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